휴전협정 조인일
6⋅25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여가 지난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첫 휴전 회담이 개최되었고, 7월 26일 정전 협상의 대상과 의제에 대해 양측이 합의하였다.
휴전 회담은 총 575회에 걸쳐서 진행되었고,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마무리 되었다.
휴전 회담의 주요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군사분계선 확정 문제로 북한과 중국군은 38도선의 원상 회복을 주장하고 연합군은 현재의 군사 대치선을 주장하였는데, 결국 연합군 안으로 타결되었다.
둘째는 휴전 감시기구 설치 문제였다. 중립국 4개국으로 감시 위원단을 설치하는 문제를 오랫동안 논의한 끝에 연합군 측에서는 스웨덴과 스위스, 북한과 중국 측에서는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추천하였다.
셋째는 포로 교환 문제로 이 문제는 18개월 동안 논란이 되었다.
연합군 측은 자유 송환을 북한과 중국 측은 강제 송환을 주장하였는데, 결국 자유 송환으로 결정되었다.
1953년 4월, 6개월 동안 휴회 상태에 있던 휴전 회담이 재개되었고, 6월에는 휴전 회담 최대의 난제였던 포로 교환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1953년 7월 22일 군사 분계선이 확정되었고, 7월 23일 송환 포로 인계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7월 27일 제159차 본회의에서 한국어⋅영어⋅중국어로 된 전문 5조 63항의 정전 협정 문서에 인민군 측 대표 남일 대장과 연합군 측 대표 해리슨 미 육군 중장이 서명하였다.
그리고 클라크(Mark. W. Clark) 연합군 사령관, 북한군 총사령관 김일성, 중국 인민 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각각 정전 협정서에 서명함으로써 정전 협정이 조인되었다.
휴전 회담을 반대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