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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세기초 니세포르 니에프스와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 토머스 웨지우드와 윌리엄 헨리 폭스 톨벗의 예술적 영감에 의해 발명되었다. 다게르의 다게레오타이프 방식은 영국의 화학자 존 프레더릭 고더드에 의해 취급이 간편해지면서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사업으로 번창하였다.
1890년대에는 정확한 복사재현이 가능해져 사진이 정규적으로 잡지에 실리기 시작했고, 1915년에 이르러 신문에서도 사진을 이용하게 되었다. 또한 화가들이 회화와 사진을 결합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시도되었다.
1920, 1930년대에는 더욱 사실적인 양식의 사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사실주의 이후 몇몇 예술가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여러 양식의 사진을 만들어냈다. 합성사진이나 사진을 수채화와 결합시키는 방법 등이 인기를 모았던 예술방식이었다.
다게르의 방식은 전세계에 급속도로 퍼졌다.
1839년말 이전에 여행자들은 이집트·이스라엘·그리스·스페인 등지의 유명한 유적지에 대한 다게레오타이프를 가지고 파리에 돌아왔다. 처음에는 노출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서 작열하는 태양아래 얼굴이 분말가루로 하얗게 덮인 채 사람들은 수분 동안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다. 좀더 그럴싸한 초상화를 만들기 위해 유럽과 미국에서 다게레오타이프 방식의 광학적·화학적·실용적인 면 등을 향상시키기 위한 실험이 시작되었고 결국 영국의 화학자 존 프레더릭 고더드에 의해 취급이 간편해지자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1840년대 중반까지, 렌즈와 민감도의 기술에서 이루어진 진보는 노출시간을 약 20~40초로 단축했다. 다게레오타이프 사진술은 번창하는 사업이 되었으며 특히 미국에서 번창해 1840년대말 미국의 모든 도시에는 '다게르의 예술가'가 있었고 작은 마을들과 동네에서는 짐마차를 사진관으로 꾸민 순회영업사진가들에게 사진을 의뢰했다.
다게레오타이프의 인기는 '발광성의 그림'이 누렸던 인기를 능가하는 것이었지만 톨벗은 꾸준히 자신의 방식을 개선시켰다.
그는 곧 몰식자산이 잠상을 현상하는 데 이용될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 방법은 1835년 금속판 사진에 일어난 혁명처럼 종이 사진에 혁명을 가져왔다. 이전에는 16.5×22cm 음화를 만드는 데 1시간의 카메라 노출이 필요했었으나 이제 그는 1분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잠상을 현상하는 것은 종이 사진을 다게레오타이프와 동등한 위치로 올려놓았다.
톨벗은 그의 진보된 음화방식을,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그림'을 뜻하는 캘러타이프라 명명하고 특허를 내 자신의 권리를 보호했다.
1851년 유리음화를 만들기 위한 습식 콜로디온법이 도입됨에 따라 사진술에 대변혁이 일어났다.
이 새로운 방식은 영국의 조각가 프레더릭 스콧 아처가 발명한 것으로 기존의 모든 방법보다 20배나 빨랐으며 더욱이 특허의 제한을 받지 않았다. 유리판 음화들은 세부묘사에서 다게레오타이프에 뒤지지 않았으며 그 음화들로부터 종이인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 방식은 1가지 심각한 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사진가가 판을 노출시키기 바로 직전에 감광처리를 해야 하고 노출한 뒤 감광처리된 판에 습기가 남아 있는 동안 현상을 끝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진가가 항상 완전장비를 갖춘 암실을 대동하고 다녀야 한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습식 콜로디온법은 거의 순식간에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30여 년 동안 최상의 것으로 군림했고 사진의 인기를 크게 증진시켰다. 유리판 음화들로 만든 양화의 인화들은 처음에는 톨벗의 소금인화지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나 1850년대 중반부터 상이 천천히 나타나는 알부민 인화지(화학적 현상과정 없이 직접 햇빛에 노출시켜 영상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인화지) 위에 만들어지게 되었다. 알부민 인화지는 감광처리되기 전에 달걀흰자로 입혀졌고, 달걀흰자는 인화지의 표면에 윤이 나게 하여 사진의 질을 향상시켰다.
알부민지는 1850년 블랑카르 에브라르에 의해 소개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까지 보편적으로 이용되었다(앰브로타입).
1854년 파리에서 앙드레 아돌프 외젠 디스데리가 소개한 새로운 양식의 인물사진이 1859년 이후 널리 유행했다.
이것은 대지를 댄 사진의 크기가 명함 크기(약 10×6cm)와 비슷하다 하여 명함판사진이라 불리게 되었다. 디스데리는 4개의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사용해 1장의 유리판 위에 8개의 음화를 만들어냈다. 사진마다 각각 다른 자세가 취해질 수도 있었고 한꺼번에 여러 개의 노출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이 장치의 가장 첫째가는 장점은 경제성이었다.
사진가가 8장의 인물 사진을 만들려면 1장의 유리판만 감광처리하고 1장의 인화지만 만들어 8장의 독립된 사진들로 자르기만 하면 되었다. 이 시기에 음화를 손으로 수정하는 작업이 소개되었으며 또 유화물감으로 사진 위에 덧그리는 관습도 생겨났다.
하나의 미적 수단으로서의 사진에 대한 고찰은 습식 콜로디온법의 유행으로 카메라에 매료된 전문가와 아마추어들로 구성된 사진단체들이 결성됨에 따라 추진력을 갖게 되었다.
1853년 지금의 영국 왕립사진협회의 모체인 사진협회가 런던에서 결성되었고 이듬해 파리에서 프랑스 사진협회가 창립되었다.
사진협회의 첫번째 회합에서 회장인 찰스 이스트레이크 경(그는 당시 영국 로열 아카데미의 회장이기도 했음)은 세밀화 화가인 윌리엄 뉴턴 경을 초청해 그의 견해를 제시하게 했다.
뉴턴은 사진이 "(가능한 한) 순수예술의 인정된 원리에 따라 찍혀지기만 한다면 화가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뉴턴은 사진가가 그의 작품을 더욱 예술작품처럼 만들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피사체의 초점을 약간 흐리게 하라고 제안했다. 또한 그는 대담한 수정작업을 권유하기도 했다.
'예술'은 어떠해야 한다는 우선개념에 부합되는 사진을 창조하도록 강하게 촉구한 결과는 여러 개의 음화를 조합해 하나의 양화를 만드는 방안이었다.
이 방안의 목적은 너무나 복잡해서 직접적인 방식으로는 찍혀지지 않는 대상의 회화적인 구성물을 얻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기법을 실행한 사진가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오스카 G. 레일란데르와 헨리 피치 로빈슨일 것이다. 사진가들이 회화에 대항함으로써 예술로의 길을 고집하는 동안, 비평가들은 이 새로운 매체를 독자적인 미적 지위를 지닌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했다.
감각적·직접적인 초상사진이 만들어져 예술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촬영을 위한 꾸며지고 연기된 감상적 유형의 장면에는 사진의 특성인 예리한 객관적 진실이 결여되었다. 전람회를 위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사진가들이, 매체에 대한 놀랄 만한 인식과 이해로 세계와 인간의 활동을 사진으로 만들었는데, 때때로 그들의 작업은 의식적으로 만든 예술작품을 능가했다.
습식 콜로디온법이 통용되는 시기에는 다수의 사진가들은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습판법의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기념할 만한 여행사진들을 만들어냈다.
가장 성공적인 사진가들 가운데 한 사람은 영국인 프랜시스 프리스였다. 그는 1850년대말 중동지역에서 작업했던 여러 유럽 사진가들 중 가장 활동적인 사진가로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서 뿐만 아니라 나일 강을 따라 카이로에서 아부심벨에 이르기까지 널려 있는 유적지에 대한 수백 점의 훌륭한 사진들을 만들었다. 풍경사진은 보통 책 속에 실어 출판하기 위해서 또는 수집가들에게 팔 사진화집으로 의도되었으나, 미국에서는 종종 사진가들이 정부가 하는 탐사작업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기도 했고, 철도회사의 의뢰를 받아 철로를 놓고 다리를 건설하며 새로운 노선이 통과하는 곳의 장엄한 광경들에 대한 홍보사진을 만드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많은 풍경 사진가들이 입체사진을 찍었는데, 1856년 이후 이안(二眼) 렌즈 카메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중 사진들은 입체경(立體鏡)을 통해 보면 놀랄 만한 3차원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1832년 영국의 물리학자 찰스 휘트스톤이 처음으로 설명한 입체사진은 어떤 화가도 6.35cm(인간의 두 눈 사이의 평균거리) 간격으로 떨어진 두 시점에서 정확하게 보이는 2개의 장면을 그릴 수 없기 때문에 사진에만 고유한 것이다. 1860~1920년경 사이에 입체사진 투시장치는 오늘날의 텔레비전 수상기처럼 영국과 미국의 가정에서는 아주 흔한 물건이었다.
신문에 사진이 실려나오기 이전까지 무수히 많은 입체사진이 유통되었으며 그것들이 지닌 영향력은 대단했다.
1870년대에 습식 콜로디온을 대체할 건조물질을 찾으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건판이라면 사전에 준비될 수 있고, 노출이 끝난 뒤 한참 지나서도 현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871년 영국의 내과의사인 리처드 리치 매덕스는 정제한 아교 속에 브롬화은을 넣은 감광유제를 우연히 만들어 발표했는데, 이 제안으로 인해 1878년 은염류를 내포한 젤라틴이 입혀진 건판 생산공장이 세워지게 되었으며, 이것은 또한 현대사진의 여명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젤라틴판은 콜로디온판보다 60배 정도 더 빛에 민감했다. 속도가 빨라져 카메라는 삼각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즉석 스냅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다양한 소형 카메라들이 등장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중 1888년 조지 이스트먼이 소개한 코닥 카메라가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다.
코닥 카메라 의 단순성은 아마추어 사진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다. 그것은 유리판 대신 대략 직경 6.35cm의 사진을 연속해서 100장 정도 찍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의 두루마리로 된 음화물질을 저장하고 있었고, 마지막 음화를 노출시킨 뒤, 카메라까지 통째로 이스트먼 공장 가운데 한 곳으로 보내졌다. 뉴욕 주의 로체스터, 미들섹스의 해로에 이스트먼 공장이 있었으며 그곳에 보내진 롤필름이 현상·인화되었다.
처음에는 종이를 기층(基層)으로 한 필름이 사용되었고 상(像)을 담은 젤라틴층은 현상되고 정착된 뒤 따로 떼어져 투명한 지지층에 옮겨졌다. 종이를 기층으로 한 필름은 1889년 질산섬유소의 투명한 플라스틱을 기층으로 하는 필름으로 대체되었다.
건판이 소개되기 몇 년 전에 세계는 캘리포니아에서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찍은 말들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반사되는 배경막을 치고 12~24대의 일련의 카메라들을 차례로 배열하고 말이 달려나갈 때 셔터가 눌러지게 함으로써 마이브리지는 걷거나 달리는 말의 연속동작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확보했다. 그것들은 전통적으로 그려져왔던 말의 걸음묘사와 너무 달라 일반 출판물과 과학 출판물에 국제적으로 발표되었을 때 정당성을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마이브리지는 자신의 사진들이 정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특별히 이 목적을 위해 고안한 슬라이드 환등기로 사진을 1장씩 스크린에 투사해보였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세계최초의 활동사진 상연이 되었으며 이 기념할 만한 사건은 1880년 샌프란시스코 예술연합회에서 행해졌다(영화).
움직임에 대한 마이브리지의 사진적 분석은 프랑스의 생리학자 에티엔 쥘 마레로 단일연속사진을 개발하게 했다. 마이브리지가 움직임의 연속적인 단계를 각각의 구체적인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를 한 조로 사용한 반면, 마레는 1대의 카메라만 사용해 1장의 감광판에 연속된 동작 전체를 기록했다.
마레의 방법에서는 움직임의 다양한 단면들에 대한 영상이 서로 겹치기도 했으나 움직임의 흐름을 보고 이해하기는 좀더 쉬웠다. 또한 마레는 마이브리지보다 더 짧은 간격으로 더 빠른 속도를 기록해낼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의 작업은 모두 동작 연구와 영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사진을 기계적인 과정이 아닌 하나의 예술로서 인식하고, 회화를 지배하는 전통적인 규칙들을 따르지 않고 사진 자체의 용어로 사진을 평가하려는 움직임은 1892년 런던에서 결성된 '링크트 링'협회(Brotherhood of the Linked Ring)에 의해 많은 진전을 보았다.
이 단체는 저명한 회화주의 사진가인 H.P. 로빈슨과 아르누보 운동의 지도자인 조지 데이비슨, 그리고 런던 사진협회의 과학적 편견에 불만을 느낀 여러 사람들에 의해 결성되었다. 그들은 해마다 살롱이라고 부르는 정기적인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01년까지 그들의 자랑스러운 긍지는 "살롱을 통해 링크트 링은 회화주의 사진이 홀로 설 수 있으며, 순전히 기계적인 사진과는 완전히 다른 미래를 가지고 있음을 명백히 증명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단체들이 성립되었는데 그중 가장 영향력 있는 것으로는 1902년 미국에서 앨프레드 스티글리츠가 결성한 사진분리파가 있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의 음화나 양화를 수정하거나 조작하는 것을 인정치 않았으며 일찍이 1892~93년 사이에 휴대용 카메라로 모든 기상 조건 속에서 뉴욕의 광경을 찍어 휴대용 카메라에 대한 회화적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 클래런스 H. 화이트, 해리 C. 루빈캠을 비롯한 몇몇 사진분리파 회원은 스티글리츠처럼 자연그대로의 사진을 선호했으나, 에드워드 스타이컨과 앨빈 랭던 코번 등은 특히 인상주의적인 연초점 방식과 새롭게 도입된 고무인화방식을 지지했다.
방식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진분리파 회원들은 미국 내의 사진에 대한 이상적 기준의 결여와 사진전시회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에 대해 경멸을 나타내며 서로 연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아방가르드 화가들이 관료주의에 대항해 그들의 독립성을 명백히 하고자 동일한 낱말을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상에 대한 반항을 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분리'(secession)라는 말을 선택했다. 이 시기에 활동한 다른 중요한 사진가들은 제이콥 리스, 루이스 W. 하인, 폴 스트랜드 등이다.
카메라의 효시는 카메라 옵스큐라로서, 이것은 한쪽 벽면에 구멍(나중에 렌즈로 발전함)이 나 있는 암실 혹은 어두운 방으로 그 구멍을 통해 방 바깥쪽 물체들의 영상이 반대쪽 벽에 투사되었다.
그 원리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것이며 18세기경에는 자연의 영상을 정확하게 본뜨기 위해 예술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 옵스큐라가 흔히 사용되었다.
1727년 독일의 해부학교수인 요한 하인리히 슐츠는, 16세기 이후 혹은 그 이전에 알려진 은염류(銀鹽類)가 열에 의해서가 아니라 빛에 의해 어두워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의 발견은 카메라 옵스큐라와 병행하여 사진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을 제공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진은 대부분 19세기초 프랑스인 니세포르 니에프스와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 그리고 영국인 토머스 웨지우드와 윌리엄 헨리 폭스 톨벗의 예술적 영감에 의해 발명되었다. 아마추어 발명가인 니에프스는 도안솜씨 없이도 석판화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는 판화에 기름을 칠해서 투명하게 한 다음 감광성 용액을 입힌 판 위에 올려놓고 햇빛에 노출시켰다. 몇 시간 후 판화의 밝은 부분 아래 있던 용액은 굳어졌고, 반면 어두운 부분 밑에 있던 용액은 부드러운 상태로 남아 씻어낼 수 있게 되어 판화의 영구하고 정확한 복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1826(또는 1827)년에 니에프스는 백랍판을 끼운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 자연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성공적인 사진을 만들어냈는데, 노출시간은 약 8시간 정도였다.
다게르는 전문적인 무대장치 화가였으며 1822~39년에 파리에서 친구와 함께 유명한 장소와 역사적인 사건들을 묘사한 14×22m 크기의 초대형 그림들이 전시된 디오라마관을 경영했다. 반투명한 종이나 얇은 천에 그려진 그림들은 변화하는 조명효과를 세심하게 이용해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전시되었다.
다른 많은 예술가들처럼 다게르는 카메라 옵스큐라가 만들어내는 영상을 본떠 밑그림을 만들었는데 그는 니에프스가 하는 일을 알고 그에게 편지를 써서 1829년 12월 4일 두 사람은 동업자가 되기로 합의했다. 니에프스가 사망한 지 2년 뒤인 1835년, 다게르는 요오드화은판 위에 잠상(潛像)이 형성되며 그것은 '현상'할 수 있고 수은증기를 쏘이면 영상의 노출된 부분 위에 접착해 눈에 보이게 된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요오드, 은). 그리하여 노출시간이 8시간에서 30분으로 단축되었으나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효과는 영구적이지 않았다.
1837년 다게르는 식용 소금용액 속에 노출되지 않은 요오드화은을 용해시킴으로써 영상이 영구히 정착될 수 있음을 발견해냈다. 그해에 그는 은을 입힌 동판 위에 그의 작업실을 찍은 사진을 만들어냈는데 그 사진은 사실성과 세부묘사가 놀랄 만큼 탁월했다.
니에프스와의 계약과는 달리, 당시 다게르는 이 진보된 방식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다게레오타이프라 불렀다.
한편 영국에서는, 유명한 도예공 조사이아 웨지우드의 아들인 토머스 웨지우드가 1802년, 질산은으로 감광처리한 종이 또는 가죽 위에 영상을 기록하는 것에 관한 실험을 보고했다. 그는 종이 위에 놓인 물체의 화상을 기록할 수는 있었으나 그것들을 영구적으로 만들 수 없었으며 더욱이 카메라가 만드는 영상을 기록하는 데는 실패했다.
웨지우드와 프랑스 선구자들의 작업을 알지 못한 채,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과학자로서의 교육을 받은 톨벗은, 카메라 옵스큐라로 관찰한 영상들을 화학적 방법으로 기록해내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1835년 이미 그는 종이를 보통의 소금용액(염화나트륨)과 질산은 용액에 교대로 담구어 감광성으로 만드는 실제적인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종이의 섬유질 속에 염화은(鹽化銀)이 생성되었다.
빛에 노출된 염화은은 진한 색조를 띤 미세하게 쪼개진 은이 되었다. 그러나 강한 소금용액으로 세척함으로써 인화지를 정착시키는 톨벗의 정착방법은 적절치 못했고, 1839년 2월 과학자인 F.W. 허셜 경의 제안이 있기까지는 성공적인 방식이 못되었다. 허셜 경은 음화(陰畵)를 소디움 하이포설파이트(차아황산염:지금은 소디움 티오설파이트라 불림)로 정착시키고 인화하기 전에 밀랍을 입혀 인화지의 입자를 감소시켰다.
다게르의 방식에 대한 소식이 1839년 1월 영국에 전해지자, 톨벗은 그의 '발광성의 그림' 방식에 대한 발표를 서둘렀고 이어서 왕립학회 회원들에게 자신의 기술에 대해 완벽하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것은 프랑스 정부가 다게레오타이프의 제작방법을 공표하기 6개월 전의 일이었다. 이와 유사한 기술을 가지고 우선권을 주장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가장 손쉽고 믿을 만한 방법으로 화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사진술을 확립한 2가지 기본방식은 톨벗과 다게르에 의한 것이다.
1920, 1930년대에는 아마도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환멸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 새롭고 더욱 사실적인 양식의 사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독일에서 신객관주의로 알려진 전후(戰後) 사실주의 양식의 대표적인 인물은 전문 사진가 알베르트 렝거 파치이다. 그는 아르누보 시대(1890~1914) 사진의 모호함과 왜곡을 몹시 싫어했고 일상의 사물들이 지닌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그의 사진들은 강한 디자인, 사실적인 기록, 물질을 강조하는 순수 사실주의로 특징지어진다. 신객관주의는 카를 블로스펠트가 식물들을 본보기로 하여 1900년경에 찍은 경이롭고도 훌륭한 식물의 확대사진이 발표되었을 때 큰 영향력을 얻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약 30년간 생계의 수단으로 찍어온 상냥하게 꾸민 표정과 겉치레의 스튜디오 인물사진에 싫증을 느낀 아우구스트 잔더는 쾰른의 그의 스튜디오에서 소매상인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1930년 앤셀 애덤스가 폴 스트랜드의 작품을 보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로 결심했으며 자신이 이름붙인 '자연풍경에 대한 해석'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몇몇 예술가들은 사진인화지 위에 물체를 직접 올려놓고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빛에 노출시키면 인화지는 물체의 불투명성 및 투명성에 따라 어두워지는 정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또 하나의 실험형태는 합성사진이었다. 사진을 수채화와 결합시키는 방법은 이미 1870년대에 인기를 모았던 예술방식이었다. 20세기 첫 10년 동안 입체파 화가들이 그들의 추상적 캔버스 위에 신문의 기사조각을 오려붙이거나 병의 상표 또는 심지어 실제 물건들까지 덧붙이기 시작하면서 매체들을 자유롭게 결합시킨다는 사고가 되살아났다. 이 콜라주(프랑스어로 '붙인다'는 뜻의 'coller'에서 유래)기법이 확대된 것은 필연적인 것으로 탁월한 포토 몽타주들이 1920년대 독일의 예술가인 존 하트필드, 한나 회히, 헤르베르트 바이어, 오토 움베르,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에 의해 만들어졌다(포토몽타주). 같은 시기에 프랑스인 외젠아제의 기록사진이 처음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1898년경부터 파리와 그 주변풍경들을 직접적이고 진솔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적(詩的) 표현으로 1만여 점의 사진에 그려냈다. 그의 음화와 전 작품이 뉴욕 현대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정보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설득력을 지닌 매체로서의 사진이 지닌 위력에 대한 인식은 좀더 나중에 일어났다. 굴뚝청소부, 꽃장수, 뱃사람, 그리고 잡상인들에 대한 감동적이며 진솔한 사진들에 의해 설명된 사회학연구가 단순한 서술방식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1880년대 뉴욕 시에서 경찰기자로 활동했던 제이콥 A. 리스는 맨해튼 남동부지역 빈민촌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던 가난한 이주민들의 삶을 개선해보고자 개인적인 운동을 벌였다. 그 자신도 1870년 덴마크에서 뉴욕으로 이민온 이주민으로서, 자신이 근절하려하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의 사진들은 미 입법부가 관계 법규를 개정하게끔 자극을 주었다. 그밖의 주목할 만한 기록사진가들로는 리처드 비어드, 존 톰슨, 루이스 W. 하인, 벤저민 스톤 경이 있다.
1890년대 망판과정 기술이 완벽해져 정확한 복사재현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사진이 정규적으로 잡지에 실리기 시작했다.
또한 1915년에 이르러 신문도 화제가 되는 사건을 보도하는 데 사진을 이용하게 되었으며 신문 삽화가라는 직업은 점차 쇠퇴되어갔다. 기술의 발달이 재현 작업의 질을 향상시켰지만 초기 보도사진의 주제와 양식은 전반적으로 무디고 상상력이 부족했다. 1924년 에르마녹스와 1925년 라이카가 등장함에 따라 비로소 삽화가 실린 신문잡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넓은 구경의 렌즈가 부착된 이 2가지의 독일제 소형 카메라는 옥외촬영을 위해 극히 짧은 노출시간만을 필요로 했으며 심지어 있는 그대로의 조명으로 실내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이러한 성능 때문에 형식적인 자세를 탈피할 수 있게 되었고 놀랄 만큼 현실감 있는 사진들이 나오게 되었다. 1928~29년에 유럽 최대의 사진잡지인 〈뮌헨 화보 Munchner Illustrierte Presse〉와 〈베를린 화보 Berliner Illustrierte zeityng〉가 새로운 양식의 사진을 싣기 시작했다.
아마도 소형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초기사진가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에리히 잘로몬과 펠릭스 H. 만일 것이다.
유럽의 다른 지역과 미국에서도 독일의 사진잡지를 본떴다. 그중 한 잡지가 1928년 파리에서 발간된 〈뷔 Vu〉로 비록 단명했지만, 그중 한 호는 로버트 카파가 스페인 내란에 대해 찍은 기념할 만한 사진들을 전면에 게재했다.
1936년 〈라이프 Life〉지와 〈룩 Look〉지가 미국에서 창간되었는데, 사진편집자와 사진가, 조사담당, 작가가 한 팀을 이룬다는 하나의 공식이 성립되었다. 그결과 뚜렷한 사진 양식이 창조되었다.
보도사진가들이 아주 짧은 순간 속에서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하도록 자신을 훈련하고 순간적인 인식이 영원히 보존되는 속도와 정확성으로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위대한 창조의 재능이다.
헝가리인 앙드레 케르테스가 1915년 초반과, 1920년대 파리에서 찍은 후기 작품 속에서 이러한 재능은 뚜렷이 드러난다. 프랑스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후에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탐구라고 말한 그의 양식을 1930년경부터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카메라는 "눈의 연장"이었다. 그는 비상한 정확성으로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장면을 완벽하게 구성된 사진으로 감지했다.
자연의 색채를 흑과 백의 다양한 음영으로밖에 변형시키지 못하는 것은 처음부터 사진의 약점으로 간주되었다.
오토크롬 방식은 최초의 실질적인 컬러 사진방식으로서 프랑스에서 오귀스트와 루이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개발되어 1907년 소개되었다. 이것은 전정색성(全整色性:모든 색채에 민감한 특성) 유제의 얇은 필름이 입혀진 색채막(기본색을 여과시키는 역할을 하는 염색된 녹말가루와 여과되지 않은 모든 빛을 차단하는 흑색가루가 덮인 유리판)을 사용했으며 컬러의 투명 양화(陽畵)를 만들어냈다.
뤼미에르 형제의 성공은 부분적으로 사진판을 제조하는 런던의 한 업체가 바로 1906년에 소개한 전정색성 유제의 개발 덕택이었다(전색성 필름). 컬러 사진 방식의 개선과 대안을 찾으려는 연구가 계속되었으며 1935년 미국의 음악가들인 레오폴트 고도프스키 2세와 레오폴드 매너스가 공동으로 코닥 연구실험실에서 코닥크롬필름을 발명해 현대적인 컬러 사진 시대가 열렸다.
이 반전(反轉) 필름으로 영사막에 투사할 수 있고 인쇄용으로 재현할 수 있는 컬러의 투명 양화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듬해 독일의 아그파회사가 아그파컬러 음-양화 방식을 개발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그 필름은 1949년까지 실용화되지 못했다. 오늘날에는 사진의 약 80%가 컬러로 찍혀지고 있다.
사진의 역사 대부분이 사진기계 자체의 기술향상뿐만 아니라 필름·유제·화학물질에 일어난 과학적 진보와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사진과정의 주요구성요소에 대한 설명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진현상 방식은 흑백의 음화-양화 방식이다(→ 흑백 사진). 카메라에서 렌즈는 필름 위에 찍힐 장면의 상(像)을 투사하며, 필름에는 브롬화은과 같이 빛에 민감한 은염류가 입혀져 있다. 렌즈 안에 장착된 셔터는 장면에서 반사된 빛을 주어진 시간 동안 받아들이며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현상할 수 있는 영상을 감광처리된 층 위에 만들어 필름을 노출시킨다.
현상과정 동안 암실에서 빛에 쏘인 염화은의 결정체들은 눈에 보이는 침전물 또는 농도를 형성하며 금속은으로 전환된다. 필름의 어느 주어진 부분에 닿은 빛의 양이 많을수록 염화은도 더 많이 현상되며 그 부분에 형성되는 침전물의 농도도 짙어진다. 다양한 밝기를 지닌 영상은 이러한 명암의 정도가 완전히 뒤바뀐 사진, 즉 음화가 된다. 물체의 밝은 부분들은 현상된 필름에 어둡거나 혹은 농도가 짙은 부분으로 기록되고, 물체의 어두운 부분들은 은이 거의 없으며 농도가 엷은 부분으로 기록된다. 현상되고 난 필름은 현상되지 않고 남은 염화은을 모두 녹여버리는 정착용액으로 처리되어 노출되지 않은 부분이 뒤이어서 어두워지는 것을 방지한다. 마지막으로 세척액은 가용성의 염들을 필름 유제로부터 모두 제거해 젤라틴층 안에는 영구한 음화의 은영상이 남게 된다.
양화는 이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얻어진다. 이 보편적인 방법이, 필름에 쓰였던 것과 유사한 할로겐화은 유제가 입혀진 감광용지(인화지) 위에 음화를 투사시키는 인화이다. 확대기의 광원에 의한 노출은 다시 한번 음화의 잠정적인 영상을 만들어내며 현상과 정착과정을 거치면 인화지는 양화의 은영상을 갖게 된다.
밀착인화에서는 필름과 인화지가 앞면이 서로 맞붙여 놓여지며 확산된 빛이 음화를 비추면서 지나가도록 노출된다. 음화에서 농도가 짙은(흑색의) 부분은 인화지에 거의 노출을 주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밝은 영상부분이 되게 한다. 음화의 얇은 부분은 더 많은 빛을 통과시켜 인화지에 어두운 부분을 만든다. 그리하여 원래장면의 명도를 재창조한다.
가장 간단한 형태에서 보면, 카메라는 필름이 올바른 면에 가 있도록 지탱시키거나 바꾸어주는 장치, 원하는 장면에 카메라를 겨냥할 수 있게 하는 뷰파인더, 그리고 렌즈·셔터·조리개가 부착된 빛이 새지 않는 용기이다.
렌즈는 상이 맺히는 면 위에 놓인 필름 위로 거꾸로 된 카메라 앞 장면의 상을 투사한다.
상은 렌즈와 필름 사이의 거리가 어느 특정한 간격을 유지할 때 선명하게 되며 이 간격은 렌즈의 초점거리, 렌즈에서 물체까지의 거리와 관계가 있다. 근경과 원경의 물체들을 찍기 위해, 가장 간단한 종류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카메라에는 렌즈와 필름면 사이의 간격을 조정하는 초점조절장치가 있어 선택된 지점에서 사물들이 필름 위에 선명한 상을 맺게 한다.
셔터는 일련의 꽃잎 형태의 금속날로 렌즈 안 또는 뒤에 부착되어 있거나, 블라인드 커튼의 형태로 필름 앞에 부착된다.
셔터는 필름을 렌즈에 의해 형성된 상에 노출할 수 있도록 예정된 시간 동안 열 수 있다. 필름에 도달하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2가지 요인중 하나는 노출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조정가능한 크기로 열리는 원으로 조리개 또는 렌즈 구경이라 한다. 조리개의 열림과 노출시간의 결합이 사진에서의 노출이다. 물체의 모든 명암단계들을 필름 위에 충실히 기록하려면 노출은 반드시 물체의 밝기(발광상태)와 맞게 선택되어야 하고 필름의 감광속도와도 맞게 선택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카메라에는 대부분 노출계가 내장되어 있어서 올바르게 노출된 영상을 만들 수 있도록 사물의 밝기를 측정하며 셔터나 렌즈 조리개를 맞춘다.
가장 간단한 유형의 카메라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형으로 대부분 앞에서 기술된 렌즈, 셔터, 뷰파인더, 풀림지지장치 등의 기능을 구비하고 있다.
광선을 통과시키지 않는 용기는 전통적으로 상자 형태로 되어 있었다. 오늘날 이와 비슷한 유형의 카메라는 필름을 쉽게 감고 뺄 수 있는 호주머니용 카메라이다. 일반적으로 고정된 셔터 장치는 약 1/50초의 노출을 만들고, 렌즈는 카메라에서 1.5m 이상 떨어진 모든 피사체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게끔 영구적으로 고정되어 있다. 대체로 플래시가 내장되어 있는 이러한 카메라들은 조작은 간편하지만 일광에서 움직임이 없는 물체나, 움직임이 적은 물체만 찍을 수 있어 용도가 제한되어 있다.
35㎜ 소형 카메라는 연속적으로 구멍이 나 있는 35㎜ 필름(본래 표준영화용 필름)이 이용되는 소형 카메라로, 이 35㎜ 필름은 화상(畵像)의 크기가 24×36㎜이고 통에 감겨져서 12~36장의 노출을 만든다.
전형적인 35㎜ 카메라는 렌즈 구경의 변경이 가능하며, 셔터가 1초에 1/1,000초, 또는 그보다 짧은 노출시간을 만들고 무한대의 거리에 있는 물체로부터 약 1.5m, 또는 그보다 가까운 거리의 물체에까지 초점을 맞출 수 있다. 감는 막대, 또는 내장된 모터는 각각의 노출을 위해 필름면을 한 화면에서 다음면으로 진행시키며 동시에 셔터를 팽팽하게 만든다. 장전된 필름이 모두 사용되면 밝은 곳에서 필름을 카메라 밖으로 꺼내기 위해 필름 통 속으로 되감는다. 35㎜ 카메라에는 보통 상을 바로 보는 뷰파인더가 있으며, 정확한 거리지정을 위해 흔히 거리계, 또는 자동초점방식과 결합되어 있다.
최신형 카메라는 대부분 카메라의 노출지정과 연결되어 작동하는 노출계를 내장하고 있다. 더 진보된 형태는 렌즈를 교환할 수가 있으며 광대한 보조기기를 겸비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35㎜ 카메라들이 일안반사식으로 되어 있다.
스튜디오와 상업사진을 위한 뷰카메라 또는 전문 대형 카메라는 보통 4×5in(인치)에서 8×10in 사이의 낱장으로 된 필름(예전에는 감광처리된 판)에 단일의 노출을 만든다. 앞면에는 교환가능한 렌즈와 셔터가 부착되고 뒷면에는 간유리판(초점조정을 위한)과 필름판이 끼워진다.
이 앞뒷면은 주름막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궤도막대 위에서 각기 이동될 수 있다. 또한 이 면들은 상대면의 중앙을 기준으로 보아 좌우, 또는 상하로 움직여질 수 있고, 수평·수직의 축으로 보면 회전시키거나 기울어지게 경사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기능은 영상 조절(선명도의 배분, 주제와의 거리, 원근감)을 자유롭게 하지만 거의 언제나 삼각대에 올려놓고 써야 하므로 시간이 걸린다.
중형 손카메라는 낱장의 필름(2 1/2 ×3 1/2in에서 4×5in 사이의 크기가 일반적임), 롤필름 또는 교체 가능한 상자에 든 70㎜ 필름을 사용하며 렌즈를 교환할 수 있고 거리계가 결합되어 있기도 하다.
광각 렌즈와 확장비율의 필름(즉 6×12~6×17cm)을 사용하는 특별한 종류도 있다. 중형 손카메라는 20세기 전반기에 보도사진가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다. 재래식은 접히는 주름상자와 늘릴 수 있는 받침판 또는 버팀판 장치 위에 렌즈면이 놓인다. 현대식 디자인은 교환가능한 앞면과 뒷면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몸체로 되어 있다.
스튜디오 또는 뷰카메라 뒷면에 부착되는 간유리판은 필름을 노출시키기 위해 필름판으로 교체되어야 하므로 사진을 찍는 속도가 느려진다.
일안 반사식(一眼反射式) 카메라는 간유리판과 함께 필름도 항상 제자리에 놓아둘 수 있다. 45° 각도의 거울이 렌즈로부터 상을 형성하는 광선을 카메라 윗부분에 있는 유리면 위로 반사시킨다. 거울은 노출되는 동안 통로에서 비켜나 있다가 다시 되돌아와 다음 사진의 초점을 보고 맞출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유리면 위의 상은 노출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사라져 볼 수 없게 된다. 오늘날의 일안반사식은 35㎜ 카메라나 진보된 롤필름형에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35㎜ 반사식은 눈의 위치에서 유리면을 볼 수 있게끔 광학 프리즘 장치가 되어 있고 노출계와 전자식 노출조절장치를 내장하고 있으며 교환가능한 렌즈와 수많은 정밀부품 등을 구비하고 있다. 종종 카메라가 광범위한 보조기기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진보된 롤필름 반사식은 교환가능한 뷰파인더·초점유리판·렌즈 등 더 많은 단일기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안 반사식(二眼反射式)은 롤필름을 장전하는 카메라 상자 위에 반사거울과 유리판이 부착된, 부피가 큰 2층으로 된 카메라이다.
이것은 2개의 렌즈를 가지고 있으며 아래부분에서 필름 위에 기록될 때의 상의 선명도와 범위를 위의 유리판으로 볼 수 있도록 서로 동조하여 초점을 맞춘다. 상은 노출시간 동안에도 계속 보이지만 두 렌즈의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이것을 시차라 함), 위 유리판에서 보여지는 상의 범위와 필름에 기록되는 범위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오늘날 사용되는 주된 셔터 유형은 꽃잎형 셔터와 초점면 셔터이다.
첫째, 조리개 셔터라고도 하는 꽃잎형 셔터는 렌즈 복합체 안에 들어 있거나 렌즈 바로 뒤에 놓여진 일련의 금속날, 또는 꽃잎들로 구성되어 있다.
렌즈에 통로를 만들고자 잎들이 바깥쪽으로 동시에 제껴지면서 셔터가 열린다. 잎들은 정해진 노출시간 동안 열린 채로 있다가 다시 닫힌다. 전자회로(흔히 노출계장치와 결합되어 있음)나 기계식 셔터의 조정가능한 지동(地動)장치가 열릴 시간을 조절하는 동안, 전자석들의 결합, 또는 전자석들과 용수철의 결합이 셔터 장치를 작동시키는데 보통 1초에서 1/500초 사이이다.
둘째, 초점면 셔터는 빛이 새지 않는 천으로 된 2장의 블라인드식 커튼 혹은 금속 블라인드의 결합체로서 상이 형성되는 면 바로 앞에서 잇따라 필름을 가로질러 움직인다.
첫번째 블라인드는 필름을 노출시키고 2번째 블라인드는 그것을 다시 덮는다. 두 블라인드는 이동하는 틈새를 만드는데, 틈의 간격은 노출시간으로 결정되며 틈새가 좁을수록 노출시간이 짧다. 실제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모든 노출시간에 대해 비교적 일정한 편이다. 기계, 또는 전자석과 조절회로가 2번째 블라인드를 움직이게 한다.
초점면 셔터는 보통 1초(또는 더 긴 시간)~1/1,000초, 또는 1/1,000초~1/4,000초 사이에 노출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렌즈의 조리개는 일련의 잎들이 렌즈를 통해 필름으로 가는 빛을 조절하도록 통로를 넓히거나 좁힌다. 조리개의 조절 링에는 통상 f-수치 또는 스톱 수치라고 하는 1.4, 2, 2.8, 4, 5.6, 8, 11, 16, 22, 32 등 수치가 표시되어 있다.
f-수치의 제곱은 빛을 받아들이는 양과 반비례한다. 앞에 기술한 세계표준화수치계열에서 각각의 숫자는 바로 다음 높은 f-수치, 또는 f-스톱보다 2배의 빛을 받아들인다(즉 2배의 노출을 주게 됨). 오늘날 카메라의 셔터 지정 역시 1, 1/2, 1/4, 1/8, 1/15, 1/30, 1/60,……1/1,000초 등 2배 또는 1/2의 연속으로 표준화되어 있다.
f-수치와 셔터속도 조절기능에서 수학상의 논리를 단순화하려는 시도는 노출값의 공식(EV)을 낳게 했다.
이것은 연속되는 수치의 한단계(노출값 간격)가 효과적인 노출의 2배 또는 1/2을 뜻하는 자연수의 연속이다. 노출값이 낮을수록 노출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노출값 10은 노출값 11보다 2배 많은 노출이며 노출값 9보다 1/2이 적은 노출이다. 각각의 노출값은 동등한 양의 노출을 주는 조리개/셔터 속도 조합에서라면 그 값이 같다. 즉 f-2.8과 1/250초, f-4와 1/125초, f-5.6과 1/60초는 같은 값이다. 한동안 EV눈금을 가지고 조리개와 셔터 속도 지정을 연결시킨 카메라가 있었는데 그러한 카메라에서는 주어진 노출값에 의해 여러 가지 셔터 속도들 중 하나를 선택하면 노출을 고정시키기 위해 자동적으로 조리개가 조절된다.
노출값지정눈금은 노출의 자동화로 쓸모가 없어졌으나 이 표시법은 노출기준(어떤 특정한 필름 속도에서)이나 주어진 노출양을 얻으려는 조명기준을 지시하는 데 계속 이용되고 있다.
조망 스크린을 구비하고 있는 카메라에서(뷰카메라 또는 일안반사식) 보는 것과 초점 맞추기는 렌즈 조리개를 완전히 연 상태에서 한다. 그러나 실제 노출은 흔히 더 작은 구경으로 만들어지므로 반사식 카메라(뷰카메라에서도 증가 추세임)는 완전자동, 또는 반자동으로 노출 직전에 실제 필요한 구경으로 렌즈를 좁히는 기계장치를 갖춘다.
간유리(지금은 대부분 표면이 거친 플라스틱)판은 화면을 구성하고 선명도를 조절하고자 장면의 상을 보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이다.
유리판은 영상이 생기는 면을 지정해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유리판 없이도 영상을 볼 수 있지만 그런 경우 아주 정밀하게 초점이 맞추어진 고배율의 확대경이 있어야 최대로 선명한 영상면을 정할 수 있다. 허공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은 간유리 구조로 인한 선명도판단의 간섭을 최소화한다.
우리 눈은 선명도가 약간 떨어져도 그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므로 초점 스크린(특히 반사식 카메라)은, 중앙에 상을 가르는 V자형 분리기 혹은 분리기가 마이크로프리즘 부분에 접속된 초점보조장치와 결합되어 있다.
상을 가르는 분리기는 1쌍의 프리즘 분리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초점이 맞지않는 상을 2개의 선명한 상으로 분리해 2개의 상이 좌우에 놓이게 한다. 렌즈가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면 상은 분리된 부분(눈이 좀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을 끊임없이 횡단하게 된다. 마이크로프리즘 부분에는 수백 또는 수천 개의 미세한 분리기가 결집되어 있다.
이것들은 들쭉날쭉한 외곽선과 흐트러진 질감의 뭉그러진 상을 만들며 상이 선명해질 때 비로소 맑아진다. 초점 스크린이 없는 카메라는 일반적으로 거리계가 부착되어 있어서 어림잡은 물체까지의 거리에 렌즈를 맞춘다. 덜 진보된 형의 카메라에는 거리측정보조기구로서 광학 레인지파인더가 있는데 이것은 뷰파인더와, 뷰파인더 축의 한쪽편 몇 in 정도로 회전하는 거울로 조립되어 있다. 우리 눈이 물체의 상을 볼 때 거울은 제2의 시점에서 제2의 상을 서로 겹치게 한다.
사물의 거리에 따라 거울을 올바른 각도로 회전시키면 2개의 상이 합치된다. 거울의 움직임은 거리계와 연결되어 있거나 렌즈의 초점조절장치와 이어진다. 렌즈가 초점이 안 맞으면 레인지파인더에는 이중, 또는 분리된 상이 나타난다. 거울을 돌리는 대신 회전식의 광학프리즘 분리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어떤 카메라들은 두 레인지파인더 상(像)의 동시부합(또는 그것의 결함)을 마이크로칩 회로장치로 분석하여 평가한다.
이 장치는 렌즈가 올바른 거리에 맞추어질 때 전자신호를 보내며, 거리지정은 대개 카메라에 내장된 보조전동기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초점자동화는 카메라의 사용을 더욱 간편하게 만들었다. 소량의 빛을 발하는 발광 다이오드(LED)에 의해 발사된 적외선 광선이나 파동으로 생성되는 3각형, 또는 물체로부터 반향되는 초음파신호의 시간측정(음파탐지기)에 의존하는 자동거리계장치도 있는데 주로 아마추어용 카메라에서 이용된다.
이러한 장치들이 거리를 자동으로 측정하는 한편 일안반사식 카메라는 전자 화상분석장치가 선명도를 측정한다. 이 장치로 발생된 신호가 카메라파인더 안에 상이 선명한지의 여부를 보여주는 붉은색 또는 녹색의 LED를 작동시킨다. 또한 그 신호는 완전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도록 렌즈 안의 보조전동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장치들은 어두운 곳이나 사람의 눈으로도 선명도를 잘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제약을 받는다.
유리망판이 없는 카메라에서 장면을 볼 수 있게 하는 부품을 뷰파인더라고 하는데, 뷰파인더는 장면의 얼마 만큼이 필름 위에 나타날지를 보여준다.
가장 간단한 뷰파인더는 카메라 위 앞부분에 있는 철사로 된 4각테이며 카메라 뒷면에 중심을 맞추도록 눈을 보조하는 제2의 사각테를 수반한다. 오늘날의 파인더들 대부분은 카메라 안에 내장되어 있는 렌즈 복합체이다. 밝은 테의 파인더는 필름 위에 기록되는 범위의 윤곽선을 그리기 위해 조망장치 안에 반사된 흰테를 보인다. 또다른 형태로는 사진기가 대물 렌즈를 카메라의 윗부분에서 내려다보게 하는 반사식 뷰파인더가 있다.
이안반사식 카메라의 윗부분이 그러한 반사식 파인더이다. 일안반사식을 제외한 다른 카메라에서는 뷰파인더의 축이 렌즈축과 대체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파인더와 렌즈의 시야가 정확하게 부합되지 않는다. 시차의 결함은 먼 거리의 물체들에서는 별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가까운 장면의 인물사진에서 흔히 발생하는 것으로 파인더에서는 전부 다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에서는 머리가 부분적으로 잘려나가게 되는 실수의 원인이 된다.
시차보정장치를 구비하고 있는 카메라의 뷰파인더도 있다.
노출계는 올바른 노출을 위한 최적의 카메라 장치 조절을 제공하도록 어떤 장면의 빛을 측정한다.
빛에 민감한 전지가 전지에 도달하는 빛의 양에 따라 전류를 발생하거나 조절한다. 전류는 노출맞춤을 표시하기 위해 LED를 조절하는 극소형전류계 또는 회로에 전압을 가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카메라들은 전류 또는 신호가 셔터 속도나 렌즈 구경을 직접 조절하도록 마이크로프로세서, 또는 다른 회로에 영향을 준다. 전지는 보통 전류를 발생하며 그 다음에 증폭되는 실리콘, 또는 감광성반도체소자로 되어 있다.
재래식 카드뮴설파이드 전지는 전지 위에 닿은 빛이 전류를 발생시키면서 그것을 통과하고 있던 전류에 대한 저항을 바꾼다. 셀렌 전지는 지금도 여전히 카메라에서 이용되고 있는데 역시 전류를 발생시키지만 크기가 크고 덜 민감하다.
일안반사식 카메라들은 유리스크린상(像)의 밝기를 측정하기 위해 5각프리즘집 내부에 1개 또는 그 이상의 광전지를 가지고 있다.
노출정도는 렌즈를 통과해서 들어오는 빛(TTL 측정)에 의존하며, 따라서 렌즈의 시계각도, 근접촬영시의 노출보정, 산란광 및 그외 여러 요인들의 조절이 가능하다. 어떤 TTL장치는 렌즈로부터의 빛을, 유리 스크린에 닿기 전에 광전지로 전환시키거나(광선을 분할시키는 장치나 광전지를 부분적으로 반사하는 거울 뒷편에 놓고 그것을 이용함) 노출직전 또는 노출되는 동안에 특별히 조립된 제1의 셔터막이나 필름으로부터 반사된 빛을 측정한다.
그러한 필름반사(OTF) 측정방식은 전자플래시를 조절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뷰카메라에서는 광전지가 있는 탐침이 이용되기도 한다. 그것은 초점면 바로 앞에서 어느 지점으로든지 이동이 가능하므로 상이 맺히는 면에서 어느 지점이든지 선택해 상의 밝기를 측정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노출전에 행해지며 그런 다음 탐침은 통로에서 제거된다. 전문사진작가들은 손에 드는 별도의 분리된 노출계를 사용해 노출계가 읽은 것을 수동으로 카메라에 맞추기도 한다.
플래시는 사진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인공조명으로, 짧은 시간에 높은 강도의 재생가능한 빛을 제공한다.
그것은 노출과 함께 즉시에 동조(同調)되며 건전지를 넣은 소형 플래시는 독립적으로 사용된다. 가장 일반적인 전자식 플래시는 가스가 충전된 튜브를 통해 방전되는 고압의 전류에 의존해 수백 볼트로 충전된 축전지가 에너지를 방전한다(낮은 전압의 전지, 또는 전압공급선에서 전압승격회로장치를 통함). 저전압회로는 플래시를 터뜨리는 고압의 파동을 발생시키며 대개 1/1,000초 정도나 더 짧은 시간 동안 지속된다.
소형의 플래시, 예를 들면 벽이나 천장으로부터 반사된 플래시에 의해 실내물체를 밝힐 수 있도록 조절가능한 반사판을 부착한 경우가 많다. 전자 플래시는 종종 빠르게 반응하는 광전지와 서로 연합하여 물체에서 반사되는 빛의 누적양을 측정하고 빛의 양이 미리 지정해둔 양에 도달했을 때 플래시가 꺼지게 한다(컴퓨터 플래시). 따라서 이 플래시 작동시간을 조절함으로써 물체가 어느 정도 거리 안에(보통 0.6~6m) 있는 한 자동적으로 플래시의 노출을 조절할 수 있다.
낮은 출력, 또는 가까운 거리에서 컴퓨터 플래시의 작동시간은 1/5,000초까지 단축될 수 있다. 카메라와 플래시의 결합과 함께 카메라 내부의 OTF 측정은 플래시가 카메라에 부착되었을 때 만들어진 적절한 접촉에 의해 플래시의 작동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전용' 플래시(이런 플래시의 조절회로설비는 특정한 카메라의 회로설비와 접속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부름)는 플래시가 작동될 준비가 되고 카메라를 자동적으로 동조 셔터 속도에 맞출 준비가 되면 카메라 파인더 안에 신호를 준다. 플래시는 보통 셔터가 열리는 동시에 작동되도록 카메라 셔터의 스위치로 터뜨려진다.
카메라와 플래시의 연결부분(접점)과의 접촉이나 전기선이 플래시를 셔터 스위치와 연결한다. 셔터 접촉은 보통 셔터가 열리는 순간 끊긴다. 초점면 셔터는 플래시 동조를 위해 필름을 완전히 노출시켜야 하며(일반적으로 1/60초 또는 더 느린 셔터 속도로), 플래시 전구의 셔터는 플래시가 가장 밝은 정점에 이르는 동안 계속 열려 있어야 한다(플래시벌브).
1930년대에 35㎜ 소형 카메라가 개발되면서부터 교환가능한 부품과 특수화된 부속품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류의 작업에 이용될 수 있는 시스템 카메라의 개념이 발달되어왔다.
오늘날 어느 정도 진보된 35㎜ 소형 카메라에는 교환가능한 렌즈와 근접촬영, 현미경 사진 연결장치, 필터, 플래시 장치, 그외 여러 가지 부속품들이 장착되어 있다. 가장 정교한 카메라에는 교체가능한 반사 스크린, 필름면, 필름집이 있고, 파인더 체계도 교체할 수 있으며 원격조정장치, 고속장전체계 등을 겸비할 수도 있다. 전문가용 롤필름 카메라와 뷰카메라들은 교체가능한 카메라 몸체, 필름면, 주름상자, 렌즈, 셔터를 선택·조립할 수 있다.
이것은 거의 모든 분야의 사진을 다루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조립되는 만능 카메라에 가장 가까운 형태이다.
카메라에서 상을 형성하는 렌즈는 볼록렌즈로 가장 간단한 형태의 볼록렌즈는 양면이 볼록한(불콩 모양으로 되어 있음) 단일 렌즈이다.
이론적으로 그러한 렌즈는 평행광선의 빛줄기를 렌즈 뒷면의 한 점(초점)에 모은다. 렌즈로부터 이 초점까지의 거리가 초점거리이며 이는 렌즈면의 곡률과 렌즈 유리의 광학적 특성에 의거한다. 렌즈 앞에서 매우 먼 거리, 광학상 '무한대'에 있는 물체는 초점이 통과하는 면(초점면)에 거꾸로 된 상을 형성한다. 가까운 물체로부터의 광선은 초점면 뒤의 면에 상을 만들고 가까운 물체일수록 렌즈에서 더 먼 뒤편에 상을 만드는데 렌즈가 서로 다른 거리에 있는 물체에 대한 선명한 상을 얻기위해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상의 크기비율, 또는 재생된 크기비율은 상의 크기와 물체의 크기에 대한 비율이며 이것은 종종 확대배율이라고 인용되기도 한다.
상이 물체보다 작을 때 물체의 확대배율은 1.0 이하가 된다. 예를 들어 상이 물체의 1/20 크기이면 확대배율은 0.05 또는 1:20이라고 표시된다. 어떤 주어진 거리에서 물체의 상의 크기비율은 렌즈의 초점거리에 의해 결정된다. 카메라의 표준 렌즈 초점거리는 보통 화상이 나타나는 면의 대각선 길이와 거의 비슷하다. 긴초점거리의 렌즈는 더 큰 크기비율의 상을 만들지만 그결과 카메라가 잡을 수 있는 장면이 좁아진다.
바꾸어 말하면, 유효시계각(有效視界角)이 충분히 넓을 경우 짧은 초점거리의 렌즈는 작은 비율의 상을 만들지만 더 넓은 장면을 소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카메라들이 상의 다양한 크기비율과 허용영역을 구사할 수 있도록 초점거리가 다른 렌즈들을 바꾸어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렌즈의 초점거리는 렌즈틀에 ㎜로 표시되어 있다. f-수치라고도 하는 구경은 초점거리와 렌즈에 도달하는 입사광선의 지름과의 비(比)이다.
예를 들어 초점거리가 50㎜이고 입사광선줄기의 지름이 25㎜이면 f-수치는 2이다. 입사광선의 지름은 대개 렌즈-조리개의 지름이며 그것은 약간 크거나 작을 수 있다. 최대구경(가장 크게 열린 조리개에서 f-수치) 역시 렌즈 위에, 보통 f:2, f/2, 또는 1:2 라는 형식으로 표시된다. 유효시계각 렌즈는 정확하고 선명하며 필름의 중앙과 각각의 가장자리에 고르게 밝은 상이 생기도록 반드시 카메라 필름면의 전체영역을 덮을 수 있어야 한다.
표준 렌즈는 적어도 60°의 각도를 함유해야 하고 광각 렌즈는 70°~90°정도의 더 넓은 각도를 함유하며(초광각 렌즈는 더 넓음), 장초점 렌즈는 좁은 각도를 함유한다. 유효시계각은 렌즈의 디자인에 의존한다. '광각' 또는 '좁은 각'이 반드시 '짧은 초점'이나 '긴 초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긴 초점은 필름면의 크기와 상관된 렌즈의 초점거리를 뜻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목적의 다양한 초점거리를 지닌 카메라 외에 특별한 기능 또는 특별한 디자인의 렌즈들이 있다.
망원 렌즈는 장초점 렌즈보다 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 렌즈들의 결합은 전체 렌즈의 길이와 이면초점거리(맨 뒤쪽 렌즈에서 필름까지의 거리)를 초점거리보다 약간 짧게 만든다. 단초점의 광각 렌즈들은 항상 필름 가까이에 있으나 렌즈와 필름 사이에 거울을 회전시킬 어느 정도의 여유가 필요한 일안반사식 카메라에서는 이면초점거리가 렌즈의 초점길이보다 약간 더 긴 역초점 디자인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외의 렌즈들로, 상의 각이 110보다 더 큰 어안(魚眼) 렌즈, 곡면거울에서 반사된 상을 빛으로 형성하는 거울 렌즈, 가변초점 또는 줌렌즈(렌즈 체계 안의 여러 요소 또는 그룹의 움직임에 의해 초점거리가 변화될 수 있음) 등이 광범위하게 이용된다.
보통의 필름에 입혀진 유제는 미세한 은할로겐 화합물의 결정체들이 포함되어 섞여 있는 젤라틴층이다(→ 유탁액). 카메라에서 빛에 노출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 즉 잠상이 생겨나는데 이것은 현상용제에 의해 금속은으로 환원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노출되지 않은 은할로겐 화합물과 구별된다. 현행이론은, 빛의 작용으로 은할로겐 화합물 결정체에서 풀려난 전자가 끌어당기는 전하(電荷)를 발생하며 이동하는 쪽으로, 은할로겐 화합물의 결정체들이 금속은의 미세한 입자들(감도입자)을 운반한다고 가정한다. 감도입자가 충분히 크다면 그것은 현상용제의 공격지점이 되며, 현상용제는 은할로겐 화합물 전부를 은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
현상될 수 있는 감도입자를 운반하는 할로겐 입자들이 잠상을 형성한다. 사진가들의 실제적 관심은 필름의 입상성(粒狀性:입자의 미세한 정도), 해상력(解像力:물체를 정밀하게 나타내는 정도), 콘트라스트(물체의 명암을 구별짓는 정도)이다. 그것들은 필름의 고유한 특성이면서도 현상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미세한 은할로겐 화합물 결정체들에서 비롯된 화상(畵像)은 불연속성 구조이다. 이것을 크게 확대하면 입자 모양이 나타나는데 이 현상은 비교적 큰 은할로겐 화합물 결정체들을 함유한 고감도 필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세부묘사에 대한 필름의 해상력은 그것의 입상성뿐만 아니라 감광유제(상의 세부를 퍼뜨리는 경향이 있음) 속에서 빛이 흩어지는 정도나 빛의 세기, 세부를 훌륭하게 재현하는 필름의 콘트라스트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효과들은 물리적으로 측정되어 선명도값으로 매겨질 수 있으며, 필름의 선명도 판정의 기준으로서 해상력보다 우선시된다. 미립자 필름이 두께가 얇을 수록 선명도가 높다.
콘트라스트가 높은 필름은 피사체(被寫體)에 나타난 명암의 차이를 농도차이가 큰 화상으로 재현해내며, 콘트라스트가 약한 필름은 명암차이를 농도차이가 별로 없는 것으로 만든다.
필름은 몇 μ(1μ= 0.001㎜) 두께의 젤라틴코팅, 보통 9~12μ(1/2,000in까지) 두께의 유제층(은할로겐 화합물이 젤라틴 안에 섞여 있음), 필름 기층과 유제층의 접착을 도모하는 접착층이나 그것을 대신하는 층, 보통 삼중질산섬유소 또는 관련 중합체(重合體)인 필름 기층, 또는 지지층, 안으로 말려듬을 억제시키는 필름기층 뒷면의 지지층 등 여러 가지 요소로 구성된 다층(多層) 구조이다. 흔히 필름에는 후연지지표층에 빛의 반사를 막는 불투명한 염료가 들어 있다.
오늘날 컬러 사진과정은 3색방식으로 3가지 기본색의 자극제를 알맞게 결합함으로써 자연에서 발생한 서로 다른 색채들을 재현한다.
이 기본3색(청보라, 초록, 빨강)은 가시 스펙트럼의 약 1/3씩을 차지한다. 3색 효과는 색이 있는 광선을 결합시키거나(가색법), 보색 필터들의 결합체에 백색광선을 통과시켜 필터들이 각각 기본색들 중 하나를 통제함으로써(감색법) 만들어질 수 있다.
가색법에서 빨강과 청보라 빛의 결합(즉 흰색 판의 한 점 위에 투사된 2가지 색의 광선들)은 자홍색을 나타낸다.
같은 양의 빨강과 초록은 노랑을 만들고 같은 양의 초록과 청보라는 청록색을 만든다. 이 3색 광선들을 흰색판 위에 한꺼번에 겹치면 흰색이 되며 2가지 또는 3가지 색의 배합이 달라짐에 따라 결국 다른 모든 색상들이 만들어진다.
감색법에서는 노랑, 마젠타, 시안필터, 또는 염료층이 백색광선에서 다양한 비율의 기본색들을 제거시킨다. 노랑필터는 백색광선에서 파란성분을 흡수함으로, 필터를 통과하는 백색광선 안에 존재하는 파란색의 양이 조절한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마젠타 필터는 초록빛의 양을 얼마나 남길지 조절하고, 시안은 빨간색 성분의 양을 조절한다.
시안과 마젠타 필터가 백색광선 속에서 완전히 겹쳐지면 빨강과 초록의 성분 모두를 통제하게 되며 파란빛이 나타나게 된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시안과 노랑의 필터가 같이 사용되면 빨강이 생겨난다. 백색광선 안에서 상이한 농도로 염색된 상이나 필터를 완전히 겹치게 함으로써, 기본색의 광선을 완전히 겹치게 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재창조해낼 수 있다.
가색법과 감색법의 차이점은 그 접근방식에 있다.
가색법에서 색들은 서로 다른 강도를 가진 기본색광들이 결합됨에 의해, 감색법에서 색들은 백색광에서 서로 다른 비율로 존재하는 기본색광이 제거됨에 따라 얻어진다. 대부분 현대의 컬러 필름은 감색법에 기초하고 있으며, 2가지 방법 모두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현이 완벽하지 못한데 그것은 필터의 착색이 이상적 규정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목적에 거의 충실하게 색의 재현이 가능하다.
3색 감색법으로 색을 재현하기 위해 컬러필름은 맨먼저 상의 색을 3개의 독립된 감광층에 의해 색의 기본구성성분으로 분해한다.
3개의 층은 각각 파랑, 초록, 빨강빛에 배타적으로 반응한다. 각 층의 상은, 스펙트럼에 대해 그 층이 함유한 감광성의 보색으로 된 양화의 상이 생성되도록 반전현상된다(반전 필름). 그러므로 파랑에 민감한 층에는 원래장면이 지닌 모든 파란색에 대한 음화의 상이 생기고 그뒤 파랑이 아닌 모든 색에 대한 양화의 상이 나타난다. 이 양화의 상은 노란색이 된다.
마찬가지로 원래 초록을 기록하는 층은 초록이 아닌 모든 상에 대한 마젠타의 양화를 만들고 빨강을 기록하는 층은 빨강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양화의 시안상을 만든다. 예를 들면 파란 하늘은 노란 색상의 양화로 그려진다기보다는 마젠타의 양화(초록이 아닌 것)와 시안의 양화(빨강이 아닌 것)로 그려진다. 파란 하늘이 있던 부분은 마젠타와 시안 염료가 완전히 겹쳐지고 백색광선이 그 결과물(채색된 투명 필름)을 통과하면 그 빛의 초록과 빨강 성분은 상실되지만 파랑성분은 남게 되며 결국 하늘이 파랑으로 보여진다.
음화의 컬러 물질들도 위와 유사한 방법으로 작용하지만 직접현상에 의해 염색된 음화의 상을 얻어낸다. 파란 피사체의 색상은 노란 음화의 상을 만들도록 파랑에 반응하는 필름층에 기록된다. 초록색 성분은 초록에 반응하는 층에 마젠타로 염색된 상을 만들고, 빨강성분은 빨강을 기록하는 층에 청록색의 상을 만든다. 그러므로 어떤 피사체에 대해 컬러 음화는 색조에서 뿐만 아니라 밝기에서도 명암이 뒤바뀐다. 3가지로 달리 반응하는 층을 가진 컬러 인화지 위에 음화의 컬러 필름을 인화하면 다시 1번 진행과정이 역으로 되어 양화의 인화로 원래 피사체의 색상이 재구성된다.
반전 컬러 필름은 깨끗한 젤라틴 표면층, 파랑에 민감한 은할로겐 화합물과 노란색을 형성하는 착색결합자(무색의 물질로서 은영상이 만들어지는 모든 부분이 은의 농도분포에 맞는 비율로 염료를 착색시키고자 현상약제의 본래물질과 반응함)를 포함하고 있는 첫번째 유제층, 다음 유제층으로 진행하려는 파란빛을 차단하는 노란색 필터층, 파랑과 초록에 민감한 은할로겐 화합물과 마젠타색을 형성하는 착색결합자를 함유하고 있는 2번째 유제층(파랑은 노란색 필터층에 의해 제거되어 있음), 파랑과 빨강에 민감하며(파란빛은 이미 제거되어 있음) 시안을 형성하는 착색결합자를 함유한 그다음 유제층, 최대한의 접착력으로 필름 기층으로 유제층을 안전하게 밀착시키는 접착층, 투명한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의 파생물, 또는 종종 폴리에스테르이며, 전형적으로 0.005in의 두께인 필름기층 또는 지지층, 지지층의 뒷면으로서 빛을 흡수하는 층(접착층 내의 빛의 분산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며 롤필름에서 필름이 안으로 말려드는 것은 억제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변경될 수 있다(안전 필름). 특별한 응용분야에서 계획적으로 왜곡된 컬러를 그려내고자, 각각의 층안에서 형성되는 빛에 대한 감색성과 염료의 결합을 다르게 합성한 필름(疑似 컬러 필름)도 있다.
양화의 컬러 물질(인화용)은 투명한 필름이 아니라, 종이 또는 흰색의 불투명한 필름 기층으로 되어 있으며 빛의 산란을 방지하는 층이 없다.
유제의 연결방식은 앞에 기술한 짜임새와 다를 수 있으며 그것들의 스펙트럼에 대한 민감성은 더 나은 색채재현을 낳게 하는 음화염료전도특성의 주요원리가 될 수 있다. 염색된 상들은 대체로 내광성(耐光性)을 가지고 있으나 강한 자외선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바래게 된다. 오랜기간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컬러의 투명양화와 사진은 자외선흡수 코팅이나 필터층으로 보존할 수 있다.
가색 필름은 보호막과 중간접착층 외에 흑백유제층과 필터선면을 담고 있는 기층으로 구성된, 좀더 단순한 구조의 필름이다.
필터선면은 매우 가느다란 빨강·초록·파랑의 투명한 필터선의 연속으로서(1in당 1,800선까지), 렌즈로부터 빛이 유제층에 닿기 전에 이 면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유제층은 양화의 상을 만들어낸다. 빨간색의 피사체는 빨간 필터선을 투명하게 놓아둔 채 빨강이 아닌(즉 초록과 파랑) 필터선들 뒤에 은을 형성한다. 마찬가지로 초록부분은 초록의 필터선을 투명하게 놓아둔 채 빨강과 파란색을 차단한다.
상안의 모든 부분에 걸쳐 필터 요소가 존재하므로 가색법의 투명양화는 감색법의 양화보다 농도가 진하며 고배율로 확대하면 필터선의 무늬를 나타낼 수도 있다. 가색법의 투명양화는 단지 고속반투명전사방식에서 이용된다. 야외촬영에서는, 특히 원경이 포함된 때 종종 자외선흡수 필터가 필요하다. 자외선은 필름의 파랑민감층에 기록되어 투명양화안에 전체적으로 푸른색 기운을 만들어낸다.
옅은 분홍색의 스카이라이트필터는 햇빛만 받고 있는 야외의 피사체에 대해 햇빛 때문에 생겨난 차고 푸르스름한 색을 중화시킨다.
노출된 후 완성된 사진을 입수하기까지에 이르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현상설비가 내장된 카메라에 대한 제안은 1850년대부터 있었다. 그중 초기의 것이 페로타이프 방식인데, 이것은 후일 거리의 사진사나 해변을 순회하는 사진사들에 의해 '기다리는 동안'이라고 이름붙인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카메라 안에서나 바로 옆에서 액체의 화학약품을 다루어야 하는 거추장스러움 때문에 이것은 여전히 불편한 방법이었다. 1940년대 미국의 과학자이며 발명가인 에드윈 H. 랜드는 점성의 젤리, 또는 풀의 형태로 현상약품을 담은 밀폐된 주머니가 궁극적으로 카메라 안에서 건식의 현상을 가능하게 하고, 노출된 후 1분 내지 그 이내에 양화의 사진을 만들어내는 필름 구성을 고안했다. 랜드는 이 방식을 실체화시킨 카메라로 시범을 보이고(1947), 폴라로이드회사를 세워 시장에 내놓았다(1948).
즉석 컬러 인화 필름(폴라컬러)은 1963년에, 낱장의 완전한 컬러 필름은 1972년에 소개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다른 제조업체들도 이와 유사한 즉석인화방식을 소개했다(→ 폴라로이드 랜드 카메라).
즉석인화방식은 완성된 인화가 신속하게 필요한 응용분야에 많은 편익을 제공한다. 이 방식이 처음 활용된 분야는 아마추어의 스냅 촬영과 근무지나 보안지역 통과를 위한 증명사진에서 발전된 즉석인물사진이었다. 그러한 통과증은 인적사항들과 함께 사진을 기록하는 특수 카메라로 만들어지며, 그 합성사진은 수정이 불가능하도록 박판을 씌운 신분증이 된다.
스튜디오 사진에서는 즉석사진으로 노출의 시험과 조명효과를 신속하게 검토할 수 있다. 초대형의 폴라컬러 인화는 스튜디오 안에서의 인물촬영에 이용되며 일반적인 즉석사진은 수많은 상업적 응용분야에 이용된다. 또한 실험단계를 기록하기 위해 연구소에서도 광범위하게 이용되는데 현미경사진과 적외선사진, 즉석 내시경검사법과 임상기록, 법의학 기록, 역전류검출관, 비디오, 컴퓨터의 그래픽 그림 등을 즉석에서 경(硬)복사본으로 만드는 데 이용된다.
자동방식의 투명양화는 전통적인 35㎜(보통 일안반사식) 카메라로 컬러 혹은 흑백 슬라이드의 신속한 생산을 위해 강의, 출판, 과학사진의 여러 분야에서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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