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히 이룰 줄 확신하노라(6월 11일 주일 설교)
로마서 4:13-25(신약 244)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에서 찾아보니까 ‘변화가 너무 심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의 현대 사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이 사용되는 표현인데 요즘 이 표현이 더 실감 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는 세상이고 몇 년 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들이 전개되는 그래서 몇 년 뒤를 예측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다양한 상황들이 불확실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더 간절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 사람들은 종교적인 힘을 의지하려고 하거나 미신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로 점 교육을 받으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광고가 며칠 전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목요일 SBS 실화탐사대에서는 무속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방영이 됐습니다. 전화로 상담하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고 수천 만 원대의 굿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 방영이 됐는데 현대인 중에서 무속인이나 타로점이나 사주를 보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가나안으로 왔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건데 젊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땅으로 간다면 도전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75세가 된 아브라함이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고 평생 같이 살던 가족과 친척을 떠나서 아무도 모르는 땅으로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지만 인간적으로 아브라함은 참 힘든 상황을 믿음으로 견디어 낸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은 불확실성의 시대로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불확실성을 앞에 두고 가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는 믿음으로 불확실성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때보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노라” 이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노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상속자가 되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 불확실한 것 중에 하나는 상속자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에 올 때 아브라함이 소유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란에서 어느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가나안으로 가면 아브라힘의 소유인 땅은 하나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가기는 하지만 과연 거기에 가면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염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를 복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과연 내가 차지할 기업 즉 땅이나 삶의 터전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내가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된다고 하면 그럼 내 재산은 누구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100세가 되어 이삭을 나을 때까지 아브라함의 상속자는 없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상속이나 상속자가 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아브라함에게는 중요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아브라함의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누가 상속자가 되는 것인가에 대한 신앙적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상속자의 개념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13-14절을 보면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약속하신 것이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장차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약속이나 결국은 상속자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상속자가 되는 것은 즉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조항을 잘 지키면 그에 대한 보응으로 상속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해서 언약이 이루어지고 언약하신대로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14절을 다시 보면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바울은 만약 율법에 속한 자들 즉 율법에 의해서 상속자가 결정되는 것이라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없다면 아무리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해도 상속자의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고 이 믿음이 왜 중요한가 하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는 의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인간은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고 약속의 땅을 상속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대로 선을 행한다고 해도 우리는 완전하게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하면서도 여전이 악을 따르는 습성들이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고 의롭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의 정신을 이해하고 율법을 100% 완전하게 이행한다고 해도 완전히 의롭게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됨으로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으로 상속자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은혜에 속한 것입니다. 15-16절을 보면
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되는데 그 이유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없다면 범법함도 없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되는 것이고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신 것은 결과적으로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상속자의 자격이 없는데 상속자가 되게 한 것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존재가 아님에도 구원받게 하신 것이 은혜이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복을 받을 성도가 되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고 은혜로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은혜도 없는 것입니다.
2. 능히 이룰 줄 확신하노라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됨으로 가능한 것이고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고 아브라함의 믿음은 능히 이룰 줄 확신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에 대해서 소개했습니다. 17절을 보면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 75세였고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많은 무리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바로 이 일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아브라함같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다 받아들이십니다. 이 약속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장래에 될 일을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처럼 확실성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자를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죽은 자 같은 상황에서도 다시 살아나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참빛 사업체마다 죽은 것 같은 사업체라도 다시 살아나는 사업체로 세워질 것입니다.
질병의 고통으로 죽은 것 같은 아픔을 느끼지만 주님이 치료해서 건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삶의 모든 분야에서 죽은 것 같은 절망의 사망이라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시지만 하나님께서 불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18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없는 자를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18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아들을 주실 것이며 그 아들에게서 많은 자손이 나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런 약속이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지금까지 자녀가 없었는데 이 나이에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75세가 될 때까지 자녀가 없다는 것은 아브라함 부부가 자녀를 나을 가능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면 능히 이루실 수 있음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19-21절까지를 보면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은 생물학적으로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나이도 100세가 되어가기 때문에 자녀를 낳는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 믿고 확신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불리한 조건과 불가능한 조건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모든 것을 가능으로 바꾸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능력을 믿고 믿음이 약해지지 않아야 합니다. 믿고 기도하고 기다릴 때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납니다.
3. 의로 여기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으므로 가능한 것이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자를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심을 믿었고 그래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인간적인 실수를 하기도 하고 했지만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연약하고 실수가 있지만 믿음으로 의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의 믿음 즉 그것이 의로 여겨졌습니다. 22-23절을 보면
4: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4: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아브라함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나.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자기 아내를 동생이라고 한 것이나 그도 인간적으로 보면 허점이 있고 이기적인 사람이고 실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약점과 실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능히 이룰줄 확신하는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신 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연약하고 실수가 있지만 믿음 위에 설 때 의롭다 여김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족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인지가 하나님의 관심이 아니라 얼마나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24절을 보면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고 사망권세 이기고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신 것은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기 위해서 베푸신 사랑의 은혜입니다.
25절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우리가 범죄한 것 즉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를 위한 속죄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고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됨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바울 사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자가 상속자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능히 이룰 줄 확신하는 믿음으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능히 이룰 줄 확신하는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아 상속자가 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며 사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