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정지음 지음 『젊은 ADHD의 슬픔』
결핍을 마주하는 용기의 기록
이 책은 제 8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으로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다. 책은 작가 자신이 25세에 진단을 받았던 날의 혼란스러운 감정에서 시작한다. 사소한 실수가 일상이었던 작가는 이것을 단순한 성격적 특징으로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진단 이후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겼던 면모들이 질환의 일부였음을 알게 되며 허탈함과 좌절에 휩싸인다.
어린 시절 ADHD 치료를 받았다면 더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위로를 찾기 위해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지만 냉정한 의학 정보들만 가득했다. 이에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흐트러지는 집중력을 붙잡아 보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실수와 결핍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치유해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작가는 ADHD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공감을 전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나 역시 ADHD라는 이름표를 단 채 살아가고 있으며 이것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싶었다. ADHD를 가진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투쟁의 연속이다. 멀쩡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집중이 되지 않는 머릿속의 혼란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적 시선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든다. 정지음 작가는 자신의 결핍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 깃든 고통과 슬픔을 숨기지 않는다. 작가가 묘사한 이러한 감정들은 내가 겪은 많은 순간들과 겹쳤다. 특히 작가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이 ADHD라는 이름일 수도 있고 혹은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난 무엇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결핍을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는 책을 덮으며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ADHD와 관련된 것을 넘어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결핍에서 발견한 성장의 가능성
나는 늘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떠다니느라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 일을 끝내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를 신경 쓰며 나 자신을 탓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그러나 정지음 작가의 이야기는 그 모자람이 결코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작가는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자신을 자책하는 대신 그 특징을 활용해 창의성을 발휘할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단순히 작가 개인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가 결핍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작가는 자신을 불완전한 괴물이라며 자신을 정의하곤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자기 인식의 과정 속에서도 자기혐오에 갇히지 않았다. 오히려 망각이 신이 주신 선물이라며 자신을 위로한다. 예전에는 스스로의 잦은 실수를 증오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인생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선물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작가는 모자람 속에서 작고 사소한 성취감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내가 가진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주변의 시선과 비교에서 벗어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과거의 실수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고 나는 그로 인해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했다. 또한 완벽하지 않은 결과물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나를 끊임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작가는 완벽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허접스러움을 묵인할 때 비로소 실행력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 깨달음은 내가 스스로를 얽매이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변화는 작은 성공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삶은 불완전함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결핍 속에서 찾은 빛과 그림자
이 책은 성인 ADHD라는 주제를 다룬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작품으로 ADHD를 가진 독자뿐만 아니라 결핍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시각을 전환시킨다. 하지만 작가의 이야기는 ADHD라는 특정 주제에 집중되어 있어 비슷한 경험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그 공감의 폭이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더 많은 독자층에게 다가가기 위해 결핍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더욱 깊이 탐구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책의 전반적인 서술 방식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특정 부분에서는 비슷한 감정과 상황의 반복이 이야기의 밀도를 떨어뜨린다. ADHD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시도했던 구체적인 방법이나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상세했다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독자들에게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솔직한 고백과 유머는 결핍을 수치심이 아닌 성장의 발판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많은 이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진부한 위로 대신 불완전함 속에서도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려 노력하는 과정의 가치를 조명한다. ADHD라는 특정한 경험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불완전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결핍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것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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