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회절 외 1편
구봉완
적막 속 기억의 자리를 찾아 빛은 침투한다
사랑의 가장 아픈 색이 흰색이다
부서져 내리는 시멘트 담벼락을 따라
좁은 골목길이 흰 눈에 덮여 있다
잘못 피었다 시든 장미꽃을 닮은
이상기온의 12월, 흰 눈이 고즈넉하다
고통과 번뇌를 벗고 달빛 아래
한그루 나무 속 동그란 회상의 빛이 머문다
쌓여있는 눈은 스스로 삶의 중력을 느낀다
상처의 통증이 안으로 사라져 잊고 지내는 동안
잠을 청하는 사물의 굴곡진 마음을 찾아 어둠을 밝히듯
시간의 둘레를 따라 눈은 6각형의 눈물을 흘리지
어둠의 힘은 파르스름하여 파문을 만드는 곳을 응시하지
먼 곳을 향하던 빛이 서로의 틈새에 머무는 사이
징소리의 결을 따라 공간은 여백을 살피고 있다
강물 속 자맥질을 의식하는 별빛처럼
눈이 내리는 뒷모습 따라 시간은 돌아보며 가고
물결은 휘어지며 손에 쥐고 있던 빛을 다시 놓아 준다
폭설은 모양 그대로 뒤에 숨어 우는 형태를 찾게 한다
마음속에 웅크린 삶이 맥박처럼 붙들던 간섭의 무늬
대숲소리가 주변의 그림자와 함께 문을 두드리고
빛은 갇혀있다 서서히 눈에 덮인 산을 바라보며
겨울과 밤을 새워 흰 색의 가장자리를 맴 돈다.
불루 문(BLUE MOON)
천천히 달빛은 강물에 닿는다
100년쯤 가까이
두 눈 푸르게 외로이 서있던
양철집 담을 따라 가을이 오고 있다
풀벌레 소리 걸어 들어가는
하늘의 문
구름은 뒤를 보며 앞으로 가지
몇 겁의 윤회를 거쳐 여기에 왔을까
과육을 입에 문 이슬 속으로
색을 칠하는 달빛
기다림의 보름은 얼마나 먼 가
허무를 묻게 하던 서른 날
삶은 낡은 부조처럼
불루문 등에 지고 서있다.
구봉완
1958년 충남 서천 출생.
2000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