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울음 / 안도현
괭이로 밭두둑을 만들다가
괭잇날이 무심코 땅 속의 돌의 이마를 때렸을 때
쩡, 하고 나는 소리
그놈을 캐내려고 서둘러 쩡, 쩡, 쩡, 쩡 괭이를 재차 내리찍어 보지만
아뿔싸,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니다, 내가 뒤늦게 알았을 때
나처럼 얇은 흙의 두께를 생각하면서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고추 모는 한 주도 심지 못하고
나는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동네 노인 한 분이 지나가시다가, 두둑을 더 높게 올려붙여야 쓰것소, 한다
햇볕이 흙을 고두밥처럼 고슬고슬하게 말릴 때쯤 되어서야
나는 괭이를 다시 들었다
괭이 자루는 여전히 서늘하였다
괭이는 땅 속의 돌과 부딪치며 또 실없이 불꽃을 튀길 것인가
저 혼자 잠시, 망설였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같이 울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괭이는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밭머리에 이 세상 초록이 다 몰려와서 찰랑대는 날이었다
나는 괭이를 짚고 서서
땅 속에서 혼자 우는 돌을 생각하였다
이놈이 아구똥지다면 구들장으로 써도 내려앉지 않을 놈일지도 모르겠고,
동네 사람 스물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평상이 될 수도 있겠고,
초등학교 운동장만큼 넓어서 헬리콥터가 두 대도 더 내려앉을 수 있을지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고, 저 먼 대륙 하얼빈 역이나 아니면, 모스크바 역까지
그 뿌리가 이어져 있어서 백 년도 넘게 기차 바퀴 소리를 받아내고 있는
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안도현 시인 16|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