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조선시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족보 편찬에 열중하였던 정치세력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내가 생각하건대, 옛날에는 종법이 있어 대수의 차례가 잡히고 적자와 서자의 자손이 구별지어져 영원히 알 수 있었다.종법이 없어지고서는 족보가 생겨났는데 무릇 족보를 만듦에 있어 반드시 그 근본을 거슬러 어디서부터 나왔는가를 따지고 그 이유를 자세히 적어 그 계통을 밝히고, 친함과 친하지 아니함을 구별하게 된다.이로써 종족 간의 의리를 두터이하고 윤리를 바르게 할 수 있었다.<안동권씨 성화보>
1)서원을 설립하여 선현에 대한 제사와 추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2)향약을 제정,보급하여 상민층에까지 유교의 예속을 침투시켰다.
3)가묘와 사당을 설립하여 성리학적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했다.
4)성리학적 의리와 명분을 바탕으로 양천제를 확고하게 하고자했다.
답이 4번이라는데 4번도 맞는지문아닌가요??
줄그어진 부분이 약간 애매하기도 한데..
설명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양천제는 조선시대에 법적인제도입니다 양천제를 바탕으로 반상제가 성립되는데 그배경이 성리학적 명문을바탕으로하는 사회분위기...반상제(법,제도가 아닌)가 성립되는거..ㅡㅡ;;
초기에는 양천제(양반과 평민은 양인, 그외에 천인)였으나 중기부터는 명분론에 따라 반상제(양반외에는 전부 상놈)로 구분하고자 했심다
아..양천제나 반상제나 거의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는데..그렇게 구별해야하는군요,,고맙심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