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루 냉이를 캐다가
입춘 이후 우수가 지났고 며칠 뒤 경칩이 다가온다. 우수에 얼어붙은 대동강이 풀리고 경칩이면 개구리가 겨울잠서 깬다는 말이 현실과 동떨어짐은 지구 온난화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듯하다. 대동강은 현장을 가 볼 수 없어 모르겠지만 동면에서 깬 개구리는 입춘 무렵이었다. 나는 보름 전에 진전 미천 부재골에서 의림사로 넘으면서 알을 슬어놓고 울어대던 북방산개구리를 봤다.
양지바른 곳은 일월 하순 대한부터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초본으로 지난해 가을 싹이 터 잎줄기를 펼쳐 자라던 광대나물이나 봄까치는 한겨울에 꽃을 피웠다. 나는 며칠 전부터 몇몇 곳을 순례하며 검불 속 움이 터 자라는 쑥을 캐왔다. 냉이는 이보다 먼저 소한에도 캐서 냉잇국이나 나물이 되어 우리 집 식탁에 올라왔다. 산간 계곡 가랑잎을 비집고 핀 노루귀와 바람꽃도 봤다.
이월 끝자락 화요일은 문학회 동인과 트레킹을 나섰다. 나를 포함 이웃에 사는 넷은 팔룡동으로 옮겨가 일행은 다섯이 되어 비좁긴 했지만 승용차 한 대에 함께 타고 내가 정한 목적지로 향했다. 나는 동행하는 문우들과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을 거닐고 보리밭에 자라는 냉이를 캐 올까 싶었다. 이번 겨울 나는 혼자서 창녕함안보를 거쳐 두 차례 지나간 곳이라 주변 풍광에 익숙했다.
창원대로에서 천주암 아래서 굴현터널을 자나 감계 신도시를 바라보며 마금산 온천장으로 향했다. 운전자가 온천장으로 들어 북면 내산리로 가는 길을 놓쳐 본포교를 건너 학포에서 노리로 올라갔다. 일교차가 큰 이른 아침이면 안개가 자주 끼는 강마을인데 우리가 지날 즈음은 그렇지 않았다. 임해진 벼랑을 앞둔 노리 동구에서 개비리길의 사연이 서린 개 무덤과 빗돌을 둘러봤다.
북면 명촌이 건너다 보이는 벼랑인 임해진을 거쳐 길곡으로 올라갔다. 나는 동행한 문우에게 낙동강 중류 내륙에 바다 해(海) 자가 든 임해진 지명이 특이함을 알려주었다. 옛적 부산 다대포에서 돛을 띄운 배가 삼랑진은 물론 임해진에서 경북 상주에 이르는 수운이 700리라고 했다. 부곡 온정리로 가는 샛강을 지나 길곡의 노고지리 생태공원을 지나면서 추모탑 앞에서 차를 세웠다.
거기는 창녕함안보 북단으로 4대강 사업 공사 기간 순직한 스물두 분 영령을 위로하는 빗돌이었다. 많고 많은 이들이 4대강 자전거길을 질주하거나 차를 몰아 스쳐 가도 순직 노동자의 위령탑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지 싶었다. 나보다 먼저 추모비 앞에 선 문우가 고개를 숙여 나도 얼떨결에 참배했다. 전시가 아님에도 국토 건설 현장에서 기꺼이 목숨 바친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이후 창녕함안보 공도교를 지나 밀포나루 앞에는 하중도 갯버들에 물이 오르는 청류도가 드러났다. 밀포교 건너 덕남마을에서 광려천이 흘러온 샛강 소랑교를 건너 5번 국도 낙동대교를 앞둔 이룡교차로에서 강둑 너머 차를 세웠다. 일행은 쉼터에서 다과로 한담을 나누고 보리밭에서 할 일이 기다렸다. 나는 준비해 간 호미로 냉이를 캐고 동료 문우들은 뿌리의 흙을 털어 가렸다.
보리 반에 냉이 반과 같은 둔치 보리밭에서 한동안 캔 냉이는 각자 봉지에 그득 채워졌다. 이후 아까 이룡교차로에서 둑을 넘기 전에 봐둔 식당으로 되돌아갔더니 맛집으로 알려져서인지 대기표를 받아 기다려 순대국밥과 맑은 술을 몇 잔 비웠다. 점심 식후엔 오전의 채집활동과 다른 일과를 진행했다. 낙동강 중류의 강나루 생태공원은 둘레길을 한 바퀴 둘러도 좋은 산책 코스였다.
칠서 강나루 맞은편 창녕 도천은 우강리 배수장이고 그 곁은 임진왜란 의병장이 말년을 보낸 망우정과 신도비각이 바라보였다. 당시 한갓 서생에 지나지 않던 곽재우는 종묘사직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서안을 물리치고 현고수에 매단 북을 울려 의병을 모아 죽창을 들고 왜적과 맞서 싸웠다. 경상우도에서 진주와 의령과 함안과 창녕은 남명 선생의 조카사위 곽재우를 잊을 수 없었다. 23.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