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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바둑 실력은 유수(손재하)보다는 쪼금 못하고(순전히 유수 주장이다) 최종민 교수보다 한수 위다(이건 순전히 내 주장이다). 동기들 중에는 건계(김상동)가 제일 잘 둔다는데, 나를 항복 시키지 못했으니까 거시기하고 뭐시기하다.
그건 그렇고, 계사년과 갑오년의 가르마를 아내는 하느님 신전에서, 나는 박카스 신전에서 갈랐다. 송년 바둑대회를 마치고 술꾼들이 술을 마다하랴. 한 잔 걸쳤다. 위장이 놀랄까봐 선발대로 맥주 한 잔 먼저 보내고, 폭탄주 일 곱잔, 그리고 다모토리로 소주 한 잔을 던졌다. 알딸딸한(병나발을 불던 나도 한 물 갔다, 아이가) 것이 세상이 눈 아래로 보이고 돈짝만 했다. ‘챈들러’ 얘기로는, 술이 사랑 같다고 했다. 첫 키스는 마법 같고, 두 번째는 친밀하고, 세 번째는 지겹다고. 그런데 나는 역으로 간다. 마실수록 업 되어 장자의 호접몽 경지에 이른다. 끝자락은 낙화유수지만.
이젠 늙다리들이라 허름한 술집에서 TV를 통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지난 개털(지나고 나면 모두 개털이다)같은 퍽퍽한 계사년에 우린 모두 수고했다고, 갑오년 올해는 더 힘내서 살자고, 묵은 감정 있거들랑 내려놓자고 어깨를 감싸기도 했다―가는 년 보다 오는 년이 곱기를 바라면서. 그랬다. 우린 계사년을 보내며 늘 시간의 등성이에 서서, 버려진 등성이처럼 꽃도 보내고, 낙엽도 보내고, 사람도 더러더러 보내지 않았던가. 체호프는, “그래도 살아야 한다.” 고 했다. 맞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가는 일이다. 갑오년에도 말처럼은 못 달려도 어쨌든 말 꼬랑지라도 잡고 늘어져야한다. 누구나 한 편의 글을 그냥저냥 쓰다가도 마무리할 때가 되면 바짝 긴장하기 일쑤다. 달리기를 할 때도 으레 마지막에 기운을 왕창 쏟고, 꽃도 지기 직전에 으뜸으로 화사하다 않는가. 우리 화사한 꽃이 되어 나앉자.
회원들과 헤어져 스마트 폰을 열어보니 아라비아 숫자가 12;55.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새벽을 향해 자박자박 걸어가고 있었다. 놈도 살아가고 있었다. 2년 동안 술을 마신 셈이다. ‘25시 슈퍼’에 들렀다. 로또 두 장(한 장은 나와 아내 생일과 결혼 날짜를 조합한 것과 또 한 장은 자동으로. 언제나 그랬다)과 포카리스웨터 한 병, 가나초코바(냉수와 초콜릿은 술 깨는데 좋다)를 계산대 아가씨에게 내미니 “4,850원으로 모시겠습니다.” 했다. 발랄하게 융기된 두개의 젊은 봉오리가 터틀넷 티셔츠에 갇혀 파닥거리며 티셔츠를 한껏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오천 원 짜리 한 장을 주고 150원을 거슬러 받았다. 풋대추 같은 얼굴의 아가씨는, 내 손바닥에 반들거리는 100원 짜리와 50원 짜리 주화를 곱게 얹어 놓으며 속삭였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행운을 비는 여신처럼. 하얀 손등에는 파란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봉곳한 가슴팍에 한00라고 아가씨 이름인 듯 금빛실로 돋을새김하여 또렷하게 오버로크 돼 있었다. 한 씨라? 아가씨의 얼굴에 또 한 여인의 얼굴이 오버랩 되며 아우러졌다.
죽음보다 외로움이 무서웠던 스무 살(스무 살 하니, 아련하다)의 마지막 해, 마지막 달이였던가 싶다. 희망과 절망을 양 겨드랑이에 끼고 닥치는 대로 술집을 헌팅하든 허기진 때였다. 구룡포 근무당시 자주 출입한 술집의 딸이 소아마비여서 언제나 안방 아랫목에 이불로 하반신을 가린 채 책을 보고 있었다. 그미도 한 씨였다. 방이 모자라도 딸이 있는 방은 술손님에게 내주지 않았는데 내가 가면 무사 통과였다. 그날도 만원이어서 안방―그 방은 항상 침침하고 시간이 정지된 바다 속 심연 같다는 생각을 언제나 했다. 그러기에 그미는 물속에 침전해 있는 인어공주처럼 느껴졌다. 죽여주는 미녀는 아니었지만 독특한 마스크를 가졌는데 냉 냉하면서도 남자를 호리는 그 무엇이 있었다. 흡사 보톡스를 맞은 듯 뇌에 주름하나 없이 깨끗한 백치미가 항상 조금 열려있는 유난히 붉은 입술에 매달려 있었다.
그날도 문을 여니 인어공주는 책장을 넘기지 않는 손 다섯 손가락마다 고깔콘을 끼워놓고 하나하나 빼먹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난 후 내가 주접을 떨고 말았다. “나도 하나 줄래요?” 그미는 나를 빤히 치켜보다 고깔콘이 꽂힌 다섯 손가락을 내 코 앞에 쫙 펴 들었다. 나는 그 중 하나에 손을 내밀었다. 그미는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그리고는 입으로 뽑아 먹으라고 마임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동료들이 수저로 요란스레 술상을 두드려댔다. 나는 숨을 한 번 들여 마셨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 이미 벌린 춤이었다. 술 자석을 돌아보았다. 사람들 눈이 반들반들 거렸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새끼손가락에 끼인 고깔콘을 입으로 뽑아 먹었다. 손가락까지 물어뜯고 싶었지만 참았다. “호호호….” 그녀는 생뚱맞게 자지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새끼손가락부터 먹는 사람은 마음이 연하지만 엉큼하대요.” 동료들도 박장대소. 나는 정곡을 비수에 찔렸다. 그미는 춥겠다면서 이불자락으로 내 다리를 덮어주고는 했는데 그날, 그녀의 손이 이불 속에서 야금야금 내 허벅지를 기어올랐다. 나는 민망스러워 곁눈질로 그미를 보았다. 그미는 천연스레 책을 들여다보며 딴전을 피웠다. 그 손은 내 알바 아니요, 하고. 허벅다리 위쪽까지 도착한 그미의 손이 피아노의 건반을 치듯 허벅다리 안쪽을 한참이나 두드렸다. 노크 하듯.하지만 나는 문을 열어줄 수 없었다. 술꾼들 눈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자 낭패스러웠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놈이 눈비비고 서서히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헐! 나는 달아 오른 후라이펜에 벌거벗고 누운 생선처럼 뜨거운 수치심을 느꼈다. 그미를 쏘아보았다. 그미는 세운 무릎위에 올려놓은 책을 여상스레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귓불이 약간 발그레할 뿐, 맑고 청아한 모습에는 한 점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미는 나 몰라라, 남은 한손의 손가락에 꽂은 고깔콘을 사각사각 뽑아 먹고만 있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괴물을 데리고 산다. 한 놈, 아니면 여러 놈을.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는 “여성의 정신세계를 30년이나 연구해 봤는데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고,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여자가 원하는 것은 뭘까?” 독일 철학자 니체 역시 “여자에 관한 모든 것은 수수께끼.”라고, 나를 다독였다. 여자 속은 신도 모르는 오색찬란한 무지개다. 그미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은 어떤 괴물일까? 나는 개그의 김기리처럼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일순 그미가 반짝거렸다. 갑자기 미치도록 왈칵 좋아졌다. 망가지고 싶었다. 나는 병적일 정도로 양면성이 있는 여자를 좋아한다. 극과 극으로 가는.... 순간, 나는 그미와 결혼하고 싶어졌다. 당장! 접시꽃 사랑을 하면서 순애보를 쓰고 싶었다. 정말이다. 손가락에 장을 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헤어졌다. 그 흔한 작별 인사 하나 없이.
“안녕히 가세요.” 멍청히 서있는 나를 아가씨가 돌려세웠다. 아가씨는 그미의 손녀일지도 모른다. 그미가 험한 세상을 실하게 살아왔는지 아슴아슴했다. 이승을 떠나기 전에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인생을 헛산 것이 아닐까? 숱한 헤맴과 기다림은 아니지만 막연히 기대해 본다. 그녀와 닮은 여인이라도. 그러나 그녀마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무에 아까우랴! 다시 서로 먼 길을 떠난대도 이승의 길목에서 그리운 사람을 다시 한 번이라도 만난다면, 차마 하지 못한 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죽 좋으랴.
거리(죽전 네거리)에 나서니 1시가 넘었는데도 젊은이들이 거리에 넘쳤다. 세모의 도심지 가로수들은 꼬마전구를 온몸에 칭칭 감고 며칠째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큰 거리는 젊은이들에게 넘겨 주어야한다. 젊은 날, 나도 바짓가랑이로 길을 쓸지 않았던가. 허지만 이제 이 거리는 젊은이들 것이다. 늙은이들은 지금쯤 모두 조용히 잠들어 있거나 뒤척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골목길로 해서 집까지 걷기로 했다. 코를 쑥 빼고 걸어가는 골목 술집마다 젊은이들이 소복소복 모여 제로섬에서 놓여 나 신화를 쓰고 있었다. 누군가 추억을 햇볕에 말리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말리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 나 혼자 골목길을 풍 맞은 환자처럼 비틀대며 걸었다. 바람은 골목을 휘돌아 나의 코끝에 잽을 먹이고는 샛길로 잽싸게 달아났다. 우듬지에선 바람이 히히힝! 청마의 콧김을 내뿜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는 폴 발레리의 시구를 절로 생각나게 했다. 고독이 동행하는 골목길엔 바람이 또 불었다. 방전 된 배터리 같은 느낌이 울컥 들었다.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바람 탓이겠지. 나는 조용필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가슴에 묻고 가던 길 가련다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하지만 난 행복했다는 기억 그것이면 충분해
조용필의 미니앨범 19집 ‘Hello'에 열 번째로 실린 곡 ‘그리운 것은’이란 제목의 가사다. 이 노래는 트로트와 달라서 암만 불러도 입하고 따로 논다. 한, 천 번 부르면 내꺼 될까? 그나저나 그래도, ‘그리운 것’이 무엇인지 진정 알란가 몰라?
추억은 세월의 강처럼 흐르고, 흐르는 단풍처럼 내 인생도 흘러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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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내 글을 읽다니 생뚱맞게 생각이나서
수 년 전 영국 대영 박물관 관람시 안내를 맡은 현지 가이드 0양
중3때 첫사랑(?) k와 너무 닮아
엄마 성이 뭐지?
김씨예요
가슴이 후들 후들..졸업 후엔 만나지 못 했으니 행여 생사라도 알 수 있을까
엄마 고향이 어디지?
전북 부안이예요
실망이 컷지만 그래도 사진이나 한 장
참말로 꼴또롬하네.
고마 팔때기 놔라.
어엣든 기경 조오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 다니는 무무의 상상에 감탄...ㅡ義 峰ㅡ
읽을수록 재미있다.아침에 읽고 지금 또 읽는다.재미 있어서.. 그런데 유수의 사진 한장 더욱 재미있게 하네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 설레인다. 내 어릴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고 먼훗날 또한 그럴 것이다- 윌리엄 워즈 워드
2년에 걸쳐진 술맛좋은 술자리 짐작이 되네요...
감성이 충만하여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젊어질것 같은 고제홍님!
올 한해도 빛나는 재치로 흥미와 웃음, 듬뿍담긴 "님'의 작품 기대합니다.
젊은 날 있었던 짜릿한 추억, 알만하네.
개콘 김지민 말처럼 "느낌 아니까"
달콤하고 짜릿함 아련함, 그리움이 뭇어난 옛 추억담
재미있게 잘 읽었네.새해에도 건강하시길 기원드리네.
추억을 햇볕에 말리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말리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명 문구!!
사랑놀음에 살찐 추억들을 느즈막 꺼내 보는 그 재미 쏠쏠 하시구료.
"그 느낌 아니까 ~"
혼또가?
@고제홍 혼또 데스네
"여자에 관한 모든 것은 수수께끼" ?......한가지, 여자는 헌신적이라는것.
수필집을 한권 제작해야 되겠군. 작가로 모셔야 되겠어. 세월따라 추억따라
풋풋한 고향냄새가 풍기는 좋은 글이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