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가장 훌륭한 사역자의 모습은 자신의 고유 빛깔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1.22절을 보면 참으로 감동적인 모습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사역을 감당하는 사무엘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사무엘은 당시 나이가 들었지만 무지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갈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하나님께 이스라엘 자손들의 뜻을 전하는데, 일체 자신의 생각을 섞지 않습니다. 또 이스라엘 자손들로부터 말을 들었을 때에도 자신의 생각을 섞어 그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견을 들어주면 안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에 결코 동조할 수 없다고 버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체 덧붙이는 말 없이 들은 그대로 하나님께 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무엘의 모습은 하나님의 일을 맡아 수행해야 할 성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말씀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고 쉬워보입니다. 그러나 말씀 그대로 실천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있는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냥하면 되는 것을, 무슨 특권이라도 되는 양 버티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쓸데없는 참견을 하고, 자기의 뜻을 받아주지 않으면 일 안하겠다고 고집 부리는 이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이제 이러한 이들은 본문의 사무엘의 모습을 보고서 반성해야 합니다. 일하는 자세를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이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의 주장을 관철해 내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한 심부름꾼입니다. 만일 그가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고 한다거나 부각시키고 있다면 그는 사역자로서는 부적절한 인물입니다. 바로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모세는 실패한 사역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므리바에서 자기의 '성깔’ 을 드러내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치라는 것을, 자신의 감정을 실어 거세게 두 번을 쳐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던 것입니다(민 20:11). 인간적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입니다. 그 동안 쌓인 것이 얼마나 많고 화가 났으면, 그 온유함이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가 그와 같이 화를 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그러한 행동을 믿음이 없는 행위로 간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겨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행위로 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못박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느보산에서 아직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은 그를 하늘로 부르신 후에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이셨습니다(신34:7). 이러한 사실이 바로 사역자가 자신의 고유 빛깔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금기시해야 하는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절제되지 않은 자신의 감정이 드러나려고 할 때가 있습니까? 그 옛날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의견이 있습니까? 이 정도는 나에게 영광이 돌아와도 될 것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까? 모세를 돌아보고, 사무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만을 온전히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빛깔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모습만이 나타날 때, 우리는 하나님게 칭찬받는 종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격변의 시기에 사무엘과 같이 순종하는 종을 들어 쓰신 하나님께서는 말세지말의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도 그런 순종의 사람을 찾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