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형제·자매 7명 대담 이들이 광장에 나온 이유는 부모 앞에서 울 수 없어 혼자 울어 “우리가 왜 행동하는지 알아달라”
유족의 시간은 여전히 지난해 10월29일(참사 발생일)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에게 제대로 된 추모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서울시의 분향소 철거 움직임 등 ‘참사의 기억’을 지우려는 정부와 서울시의 행태에 분노한 유족들은 고통의 시간을 뒤로한 채, 서울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희생자들의 부모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까지 분향소를 지키기 위해 동참하는 상황이다.
지난 8일 서울시청 인근 스터디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희생자들의 형제·자매 7명은 모두 20∼30대로 한창 각자의 인생에 몰두할 시기지만, 휴직·퇴직을 하거나 학업과 생업을 마치고 남는 시간을 쪼개 유가족협의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유족들의 삶은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었어요. 사람들이 참사를 남의 일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먼저 간 동생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다면 모든 걸 다 하겠죠. 그게 제 인생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고 김유나씨의 언니 김유진(28)씨가 말했다.
2차 가해에 움츠러들다가도…“동생이 보고 있는데 멈추면 안 되겠다”
참사가 발생한 직후부터 시작된 희생자들을 향한 악성 댓글과 장관·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에 형제·자매 유족들은 움츠러들기도 했다. 갑자기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과 불안 앞에 자신의 고통을 들여다보기도 쉽지 않았다.
최휘로(33·고 최다빈 오빠) 8살 차이가 나서 딸 같은 막냇동생이었어요. 모든 걸 제가 다 알려줬어요. 동생이 제가 가르쳐주지 않은 일을 처음 한 것이 저승에 간 거예요. 장례식장엔 기자들도 많이 와서 (그들로부터) 가족을 지켜야 했고, 부모님은 남은 형제들 걱정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앞에선 울 수 없으니까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혼자 많이 울었어요.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려고 노력했어요.
최연화(27·고 최보성 누나) 저는 첫째기도 하고 동생 가는 길이 너무 힘들까 봐 안 울었거든요. 저희가 얼마나 친했는지 아니까 엄마, 아빠도 걱정하고…괜찮다고 하기 바빴던 것 같아요. 처음엔 댓글을 보고 진짜라고 믿었어요. 정부 탓을 하는 건 옳지 않다는 댓글이 지배적이었거든요. (하지만) 계속 맴돈 생각은 ‘왜 신고가 있었는데 아무도 가지 않은 거지’ 싶고, 의문이 꼬리를 물어서 나도 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진우(33·고 이주영 오빠) 유족들은 모두 슬퍼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정부는 이런 걸 고려해 유가족이 모일 수 있게 해 주고, 이 상황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해줬어야 하는데 국가 애도 기간(2022년 10월30일∼11월5일)은 끝나 있고, 경찰 조사도 끝났어요. 일반 시민들은 평소처럼 한 달을 온전히 보냈지만 유족들의 한 달은 하루처럼 느껴졌어요. 시간의 감각이 다른 거예요.
참사 100일에 이르기까지 유족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재난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지만 정부를 향한 믿음은 불신으로 바뀌고, 사건에 대한 관심도 점차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 “딸 입장에선 엄마, 아빠가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죠. (유가협 활동) 그만하자고도 얘기해 봤어요. 그런데 지한이 방에 들어가면 마음이 바뀌어요.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다. 세월호 때 기사 댓글도 많이 찾아봤는데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저희 부모님도 그깟 댓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희생자) 159명이 우릴 쳐다보고 있다고 말씀하세요.” 배우인 고 이지한씨의 누나 이가영(26)씨는 유가족협의회 활동에 매진하는 아버지 이종철 유가협 대표와 어머니 조미은씨를 생각하며 말했다. . . . 전문출처 참조
첫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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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기사부분 자르고 가져왔어요
유족에 대한 악플 때문인가 한겨레가 댓글은 막아놨네... 아니 애초에 본인 직무 안 하던 인간인데 공백이 왜 있겠냐고 국짐쓰레기들 또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처하고 있어 ㅅㅂ 진심 죽은 사람들만 불쌍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