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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탁스 (DOTAX) 원문보기 글쓴이: Suomi
* 이태원 참사 생존자 분이 쓴 글임
1.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실 생존자는 아닌거 같아요
와이키키 술집 앞에 껴있었고, 압사 사고 골목으로 휩쓸려갈뻔 했던 것도 맞긴 하지만,,
압박이 갑자기 심해져서 발이 안닿았던 것도 맞지만, 숨이 쉬기가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와이키키 술집 벽으로 붙어야 살 수 있다고 난관에서 끌어주신 것도 맞지만, 그때 술집에서 문을 열어주고 대피해서 잘 살아남았고,
10시 40분쯤 부터는 아 살았다 이제 그럼 술 먹고 놀수 있는 건가? 라는 생각도 했었던지라,,
참사 생존자로 분류는 아닌 것 같아요
생존자로 분류되고 ptsd 고위험 환자로 분류된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환자라는 사실에
정신과 치료 연계 시스템을 안내받고 나온 이후,
선생님께서는 내게,
트라우마가 심할 수록 스스로 고립이 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사 이후 혼자 고립되어 꾹꾹 참는 것 보다
나의 슬픔을 타인에게 공유했을때 그 슬픔으로 타인이 위로를 받을 수도 있어요.
글을 쓰시는 분이니, 트위터나 커뮤니티등에 글로 연재하듯이 공유해보시는 것은 어떠세요 라는 말을 권유받은 후,
나는 나의 그날 이야기와 상담치료 이야기를
여러편의 글로 공유하기로 마음 먹었다.
"선생님 아무래도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아니에요 가지 말았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수 있게 지켜주는 것이 맞아요
놀다가 참사를 당한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첫번째 심리 상담 치료 하던 날 선생님의 한마디에 큰 위로를 받았던 순간>
*참사 이후 정신과 치료 과정 공유
국가트라우마센터 전화상담(1577-0199)와
심리학회 전화상담 (1670-5724 )20분 전화상담 후
거주하는 구의 정신복지센터 대면 상담치료 및 ptsd 검사완료
고위험도 ptsd 판정후 정신과 치료 연계->
거주지 연계 정신과 치료 무료 상담가능하다는 안내와 일주일 동안 상담 치료후,
국가 트라우마센터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지속적 모니터링 예정 안내
2.
선생님, 어떤 감정이 오늘 힘들게 했냐고 물으셨죠
오늘 언론에 혼자 목이 쉬어라 터져라 사람 통제하는 경찰관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저는 구출된후 참사현장 근처 새마을 회관이라는 술집에서 안으로 들어와 몸을 피하라는 말에 친구와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경찰관을 저도 보았고, 처음으로 압사..?로 사람이 죽었다고? 인지했던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언론에 나온 것 처럼 그분 혼자서만 통제한건 아니었습니다
새마을 회관 이라는 술집 사장과 직원들이 모두 가게를 내팽겨치고 따라 나가서 통제를 도왔거든요
뿐만 아니라 저를 처음 대피하게해준 참사현장 근처 와이키키 술집 직원들도 문을 열어 저와 다수를 구해주셨고,
그 분들도 가게를 뒤로하고 야광봉으로 온 몸으로 참사현장으로 입장 하는 새로운 유입의 사람들을 막고 통제했습니다
참사현장 근처 술집들 왜 음악을 저리고 안끄냐고 도대체 정신이 있는거냐며 sns에서 욕을 많이 하더라고요.
음악을 안끈게 아니고, 본능적으로 달려나가 통제하느라 음악을 끌 사람이 없었던 거였어요
통제가 된후 12시가 넘어서는 잠깐 들어와서 음악을 끄셨거든요
무자비하게 주변 상인들을 욕하는 sns를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꼈고 화가 나고 원망 스러운 감정이 무지막지하게 올라왔어요
현장에 있지 않던 당신들이 도대체 무엇을 아냐고,
보이는게 전달되는게 전부는 아닌거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언론에서는 주변 상인들이 얼마나 도왔는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잖아요 관심도 없는 것 같고요.
지금 한 이야기를 jtbc 제보 채널과 시사 라디오 채널 제보 채널에 이야기 했어요, 주변 상인들에 대한 이야기 꼭 다뤄달라,
하지만 어디도 뉴스에 내보낼 생각은 없어보였고 대답도 오지 않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언론은 어디에 무엇에 관심이 있는 걸까요,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너무 무섭고 자꾸 두눈을 감게 돼요
-화가 나고 원망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해줄 수 있느냐는 상담 치료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3.
선생님, 제가 죄책감이 커 보인다고 하셨죠
죄책감이라기 보다는,, 제 자신이 좀 징그럽습니다
저는 10시 40분 구출, 10시 50분 와이키키 술집 바로 옆 새마을회관 술집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대피하고 있던 친구를 만났어요.
그때까지도 전혀 상황 파악이 안되었어요
그냥 특이한 압박 상태를 겪었나?
위험하긴 했는데 지났으니 됐지 뭐. 이런 마음
뉴스가 뜬것도 아니었고, 마이크나 확성기로 누가 안내를 구체적으로 해주는 것도 아니었고 저는 대피하려고 왔지만
그 술집에서 만난 텔레토비 분장 4명의 귀여운 친구들과 놀 생각에 시동을 걸고 있었어요
귀여운 친구들이 춤을 추고 술을 건네 주길래,
받아먹었고 같이 신나게 춤을 췄습니다 15-20분 그렇게 놀았던 것 같아요
얼마나 제가 흥겹던지 영상을 찍어뒀더라구요 그때 시각이 11시 7분,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영상 속 우리가 신나게 놀던 장면들 뒤로 구급요원이 들것으로 사람을 실어나르고 있었다는 걸요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죄책감이 아니라 이건 좀.. 제 자신이 너무 징그러운 인간인거 같은거에요.
친구들은 저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 라고 위로해주었지만,
친구들은 이 사실을 몰라요. 제가 입을 꾹 닫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며칠을 집에만 박혀 있었으니까요
11시 7분 이후, 목이 터져라 통제하는 경찰관이 가까이 다가와 앞에서 사람이 깔려 죽었어요. 통제에 동참해 주세요 소리치는걸 보고 술이 깨기 시작했어요
,, 에이 설마 저 사람 경찰 아닐 수도 있어 거짓말 이라고 속으로 생각한것도 사실입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통제되기 시작하고 인구밀도가 거리에 현저히 낮아지기 시작하더니, 길 중간에서 서있던 여자들이 갑자기 픽픽 쓰러지더라고요
한두명이 아니길래 속으로 단체로 약물을 했나보다 그래서 구급대가 오는건가봐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선채로 질식사 했던 사람들이 사람이 풀리자 쓰러진 것이라는 걸 뒤늦게 뉴스로 알았습니다
들것에 실려나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술 많이 먹고 싸움이 났나보다 생각했지만
이내 곧 1초에도 몇명씩 쏟아져 옮겨지는 사람 80명 이상 보며 무언가 이상하다 직감했어요
그때가 11시 30분, 이상하다 분명 사람이 죽었으면 기사가 뜰텐데 아직 기사는 안뜨네 그럼 다 살았겠지
갑자기 구출되고 새마을회관으로 건너올때 밑에 바닥에 깔려 누워있던 여자분이 생각 났어요.
그 분의 친구분이 도와달라고 사람들에게 소리쳤지만, 술먹고 쓰러진 사람인가보다 .. 하지만 일단 얼른 빠져나가야지 하고 그냥 왔어요
선생님, 이 모든 사실을 친구들이 안다면
그래도 저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요?
말하지 못한게 또 하나 더 있어요
Cpr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었어요
그런데 너무 무서워서 하지 않았어요 집으로 도망치는게 우선이었던거 같거든요
사람 실려나갈때는 세상 모르고 놀더니 정말 너무 징그러운 인간인거같아요 저는
그때 그냥 cpr 도울걸 그랬어요
<죄책감이 커 보인다는 심리상담치료사의 질문에 대한 답>
4.
1. 큰 사고 현장에서 살아돌아왔네.다행이다!
우리 '다행'이라는 관점에 초점을 맞춰볼까요?
살아돌아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00씨
2. 시간을 되돌려 그날 그 시간으로 간다면, 쓰러져있던 여성분을 도울 거 같으세요?
-모르겠어요
아마 없었을거에요, 사람이 꽉 들어찬 거리에서 떨어진 핸드폰이나 소지품을 줍겠다거나 사람을 돕겠다고 몸을 숙이면
그대로 내가 위험해질수 있어요.
다시 한번 질문 할게요?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 사람를 구하러 몸을 숙이셨을거 같으세요?
-아니요,,
3. Cpr도 마찬가지에요! 전문인력이 아니고 술을 드신 상태라 참여했어도 큰 도움되지 못하고 오히려 돕지못했다는 무기력함을 느꼈을수 있어요.
그럼 우리 관점을 '다음번'으로 바꿔 볼까요?
다음번에 이런일이 생기면 내가 사람살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게 cpr 배워봐야지, 우리 같이 cpr 배우는거 알아볼까요?
4. 사람이 실려나가는게 그것도 모르고 술먹고 춤추고 놀았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에요, 원래 술먹고 노는 곳인데 벌어지지말아야 할 일이 벌어진거에요.
우리 또 관점을 바꿔볼까요?
만약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이 있으면 정말 도움되었겠다 싶으세요?
- 경찰이 마이크, 스피커, 확성기, ,,,,
그리고 안들릴수도 있으니까 led 전광판 안내 같은거,,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세계 문화 거리 술집 상인들도 그거 없으면 영업 할수 없었으면 좋겠기도 해요,,
자기들끼리 핫라인 연결도 있었으면 좋겠고,,
좋은데요? 그럼 우리 이걸 가지고 지금 해볼 수 있는걸 해볼까요? 작게는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기.
크게는 언론사 제보 카톡 채널에 알리기
우리 사회사 참사가 다시 발생했을때 경찰도 통제에 마이크나 확성기를 그리고 전광판을 이용해야한다구요,
상인들은 마이크 확성기 핫라인 연결 없으면 영업 못하게 한다구요.
이 제보가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적극적으로 내가 행동하는 것이 지금의 무력감에 도움이 많이 될거에요.
근데 누가 알겠어요? 이게 만약 반영되서 뉴스나 기사에라도 나올지? 그러면 확 갑자기 살아갈 힘이 백배 천배는 될걸요?
< 두번째 심리 상담에서 전문가의 필요성을 느끼다, 희망을 느꼈기 때문에>
5.
어제 제가 담당하고 있던 다른 남성분이 있어요
똑같이 그 현장에 계셨고, cpr을 할 줄 알아서
한시간 넘게 거기서 cpr을 도우셨대요.
그런데 마지막에 안면이 일그러져있고, 팔다리가 모두 성치 않은 분이 자기 앞으로 왔는데,
Cpr을 하다가 그냥 집으로 도망쳤다는 거에요
그개 너무 괴롭고 힘들다고 하셨어요
이 분에게 00씨라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 나였어도,, 그렇게 했다.
<두번째 심리상담에서 연대감을 느끼다>
6.
같이 살아나온 친구, 진실에게(가명)
우리는 그날 화려한 분장을 했고, 내가 너에게 화장도 해주었지
너는 평생 이렇게 화려하고 짱짱한 피부 메이크업도 처음 받아본다고 했고
기왕 이렇게 화려하게 분장했으니 우리 파운틴이나 프로스트 가보자고. 클럽가서 놀고 길거리에서 분장 한 사람들이랑 사진찍자고.
구경도 하고 이것저것 가벼이 술집도 들렀다가 프로스트 바로 앞까지 도착했을때 우리는 압박이 심해지는 걸 느꼈고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잃어버렸어
Sns에서 사람들이 밀어 밀어 소리치는건지 뒤로 뒤로 소리지르는건지 갑론을박이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분명히 뒤로뒤로 였다고, 그래서 남자분들이 바로 다같이 등을 돌려 녹사평 방향으로 길을 틀고,
흐름이 한번 바뀌면서 우리는 반대로 나올수 있었어
너를 다시 만나고 두시간여의 큰 참사를 두눈으로 목격하고난 후, 나는 현장에서 보가 집으로 돌아온 그 이후부터 고통이 심해지기 시작했어
뉴스로 참사의 심각성과 진실이 드러나면서 어쩐지 내 뇌가 같이 죽어가고 있는 느낌이었거든
나는 적극적으로 상담을 찾아다니고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았지만 가족과 같이 사는 너는 엄마아빠가 걱정한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그리고 오빠에게 아무렇지 않은척. 이태원에 가지 않은척 하고 집으로 돌아갔지.
가족과 공유하지 못한채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과 뉴스를 보고 사담을 나누고 방으로 들어가 울고 목욕을 하며 혼자 풀고
괜히 운동을 나갓다 와보고 하는 너를 보며, 가슴에 응어리지는것이 더 크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아프다
어떤이들은 가족에게 무조건 공유해야한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말해봤자 좋은 소리 나올 가족이 아니라면 그냥 말하지 않는게 낫겟다 싶거든-
심리학회 상담을 처음 받았을때, 내게 처음 물으시던게
바로 가족과 같이 사는지 혼자사는지. 가족과 공유했는지 였어.
간 사실을 공유하긴 햇지만 내가 이렇게 죽기직전으로 마음이 힘든것은 공유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고,
그 상담사도 아무리 가족이어도 좋은 소리 들을 관계가 어니라면 공유말고
가까이 연결된 친구 내 말을 잘 들어줄수 있는 관계에 털어놓고 말로 풀어야한다구
부모님은 세대가 다르니, 우리를 자식을 이해 못할수 있으니 공유못하는 마음은 원망하는 마음과는 다른거다 라고.
그러니, 진실아 제발 전화상담이라도,
더 용기내서 대면 심리치료 한번이라도 받아보고 와줘
힘들수록 혼자 고립된다는 말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너를 떠올리게 해서 지금 연락 안되고 혼자 꽁꽁 숨어있는 네가 너무 걱정돼
우리는 이렇게 힘든데,,
그런데 왜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지.
심리학회 1670-5724
국가트라우마센터 02-2204-0001
24시간 야간 전화상담 1577-0199
각 거주지 구마다 무료 정신상담센터 운영
각 거주지 구마다 정신의학과 무료 상담치료 연계운영중
7.
선생님, 오늘은 마음이 어떤가요? 라고 물으셨지요
사과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더니 선생님은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충분한 애도를 하지 못하셔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는길에 이태원역에 들러 추모 하고 가시는 거 어떨까요? 하셨고 저는 조금 망설였지요
"00씨는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고, 상담을 쭉 해본 결과 회복탄력성이 좋고,
사실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참사 현장에서 무언가 행동을 하지 않고 도망치듯 집으로 온 것에 대해
현장에서 충분히 애도를 하지 못해 미안함과 자책이 있는 것 같아요 "
그길로 곧장 이태원으로 향했습니다.
선생님, 가는 길 내내 심장이 두근 거리더라고요.
왜냐고요? 그냥 내가 미움받을 까봐요
그냥,, 그 어린 영혼들이 나를 미워하면 어쩌나 싶어서요
이태원 꽃집 keepeen 이라는 곳 사장님이 인스타에서
'추모가시는 분들을 위한 무료 국화꽃을 드리고 있습니다
누구든 오셔서 가져가세요, 시간 상관 없이 가게 문이 닫혀도 가게 앞에 배치해두겠습니다 '
이 글을 보고 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누군가 일면식도 없지만 함께해준다-
그리고 함께 기꺼이 동행해준 친한 언니도 저의 추모 길을 응원해주었어요 (인스타 @keepeen)
꽃집에 들러 국화꽃을 가지고
이태원역 1번출구에 도착해서 편지를 쓰고 붙이고 헌화를 하고 절을 두번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어요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며 누구에게든 베풀며 살아갈게요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
마음이 많이 풀렸습니다.
응어리 진 것이 풀려나가고 가슴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어요
오길 잘했다 싶었고요.
그런데 옆에서 어떤 할머니랑 아주머니가 싸우시더라고요
할머니가 놀다가 죽은걸 뭐 어쩌라는거냐- 하셨더군요
그 할머니에게 대놓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어요
"할머니, 그러니까 이게 어떤거냐면요.
트로트 좋아하세요? 임영웅 같은 사람이요.
임영웅 송가인 이런 사람들이 무료로 트로트 축제를 열었대요 놀러가고 싶으시죠? 거기 놀라갔다가 사람이 하도 많아서 깔려죽을수 있다는 이야기에요
전국노래자랑, 거기 구경갔다가 그냥 깔려 죽을 수 있다는 소리에요"
놀러갔다가 죽은 걸 뭐 그러냐는 많은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당신은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2002년 월드컵때 성인이었나요?
그때 재밌게 잘 놀라가셨지요? 전국민이 축제분위기 였으니까 젊은 층 모두가 길거리에서 놀았잖아요 그때 깔려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소리에요
안녕하세요, 당신은 이런거 저런거 다 놀지도 않고 집돌이 집순이이신가요?
혹시 스트레스 어떻게 푸세요? 맥주 한잔? 피씨방?
동네 노가리 집 맥주집에 갔다가 갑자기 사람이 떼거지로 몰려서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에요
피씨방에 갔는데 피씨방에서 사람이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고요
쇼핑하러 명동에, 익선동에, 코엑스에 갔는데 그날따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깔려죽을 수 있다는 소리에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나에게 왜 백화점을 갔냐는 사람은 없었다- 라고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심리상담치료후 이태원 추모 현장에서-
8.
"가지고 있던 감정 중에 '혼란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 슬프고 화가나고 미안하고 우울했다가 불안하고 깜짝 놀라서 깨고, 이게 공통적인 감정 상태라고 하셨어요,
이런 것들이 '혼란스럽다'고 느껴지세요? "
-아니요, 저는,,
저는 사실 강한 사람이에요.
근거 없이 강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살아오며 큰 몇번의 인생의 에피소드들이 있었고 그것을 잘 겪어내왔어요
중학교때 같은 반 친구가 성적 비관으로 세상을 등지기 전날,
반장이었던 저는 그 친구와 마지막 대화를 했던 사람입니다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심한거 알지만 그렇다고 다른 친구 프린트물 훔쳐가서 수행평가 점수 만점 받으려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이 말을 듣고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힘없이 가던 모습이,
그로부터 몇시간 뒤에 학년부장 선생님으로부터 전화 온 그 순간이,
그 다음날 학교 책상이 비워져 친구가 더이상 오지 않는 걸 바라보았을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잊어야 산다고 장례식이나 묻힌 곳을 알려주지 않아 16살 어린마음에 응어리가 지게 했을때도,
27살 초임의 담임 선생님이 너에게도 나에게도 큰 상처인 사건이니 우리 서로 잊고 각자 잘 살자. 우리 다시는 보지말자 하며 졸업식을 마쳤을때.
마치 다리가 부러졌지만 깁스를 하지 않고 두 다리로 일어서려고 노력하며 없었던 일인냥 덮어놓고 26살이 되었을 무렵.
트라우마라는 것이 그 때 해결하지 않으면 십년이 지나서도 발병을 하는거구나 깨달았고, 그때고 글을 쓰며 건강한 방법으로 잘 회복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인생의 난관이 생길때,
저만의 극복 방법이 명확히 있는 편이었기에
혼자서 잘 해결해 내는 편이었어요.
운동을 했고, 글을 썼고, 등산을 갔고
일상이 무너지지않게 루틴을 지키고자 노력했고요
영화를 봤고, 시나리오를 쓰고,
전국의 페스티벌을 다녔고, 음악을 즐겼고
클럽을 갔고,
사는게 퍽퍽하고 외로울때는
일부러 짝사랑하는 남자를 만들어
그 남자 한번 더 구경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오늘만 살자,
그 남자한테 오늘은 초코렛을 건네봐야지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보면 나를 놓치지 않고 살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이것은 내 잘못 저것은 저사람의 잘못
분리를 잘 시키며 성숙하게 잘 판단하는 사람이었어요
속상하지만 객관적으로 힘든 상황을 잘 판단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습니다.
참사 이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뉴스를 보는데
속이 매스껍고 두통이 시작되더니 구토할것 같은 증상
그 다음날은 이겨보려 운동을 갔지만
발이 땅에 닿는 것 조차 어려웠어요 무섭더라고요 바깥이.
운동이 되지 않아요 선생님,
그게 저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이고 무서움인지
아실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통제가 되지 않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이
저에게 얼마나 좌절감이 크고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지
공감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선생님, 저도 제가 왜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어요
잠을 자지 못하고 심장이 빨리뛰고
밥이 들어가지 않는 현상은
어찌보면 저에게 놀랍지 않아요
힘들면 찾아오는 증상이었으니까요
"대견해요 잘 살아오셨어요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
자아가 강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00씨 자아가 강할수록 견디지 못할 큰 사건이 다가오면 더 크게 무너집니다.
줄곧 지금까지 내가 알아서 잘 컨트롤 해오던 나의 세계가 무너져버리기 때문이에요.
삶은 무작위의 고통이 던져지는 거라서 크고 작게 우리를 뒷통수 치지만 지구를 삼킬만한 행성급 돌맹이가 뒤에서 던져지면 ,
별수 있나요 맞고 쓰러져야죠
그동안은 타격감이 없이 무수한 돌맹이를 잘 받아치고 요리조리 잘 피하는 능력자였다면 이번은.. 그냥 핵폭탄급 돌맹이인거에요
자아가 강한 사람이 지금 나 맞고 쓰러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인정해주세요, 내가 지금 많이 힘들구나라는 걸"
<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던, 심리상담치료사와의 대화에서>
ㅊㅊ 소드
첫댓글 정말 힘드셨겠네요…
3자의 시선에서 사고를 바라보다가 그 안으로 훅 들어간 느낌이라 먹먹하네요…
알럽의 이런 글 때문에 오늘도 많이 배우고 느끼고 갑니다
먹먹합니다.... 심리상담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고, 상담사분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시는지도 알게 되었네요. 그리고 수많은 주점 상점들이 문을 열고 도와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진실을 잘 알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아파오네요 모두 힘내시길
와 이 트라우마 극복가능할까요?.....
얼마나 힘들까... 관련 내용 중 가장 현실적이고 진실된 것 같네요.
아무튼 할로윈이 뭐라고 거길 갔냐, 이건 누구의 책임도 아닌 그냥 사고다, 너무 정치적으로 몰아간다, 정치병이다 등등
이 글 포함해서 이번 참사관련 내용을 접하고도 저런 소리하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편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