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동천 산수유꽃
삼일절 이튿날은 목요일로 각급 학교는 신학기 첫날이었다. 내가 다니는 자연학교는 학기제가 아니라 학사 일정을 구분함은 의미가 없다. 지난해 연말 서울에서 받았던 건강 검진 후속 조치로 시내 병원에서 진료를 겸한 재검을 받는 절차를 밟는 중이다. 아침나절은 그 마지막 단계로 속을 비운 상태에서 소화기내과 전문의의 초음파와 위내시경 검사 일정이 잡혀 병원에서 보냈다.
공복 상태로 병원을 나왔으니 집으로 돌아가 유동식으로 빈속을 채움이 좋겠으나 나에게 그런 밥상은 사치였다. 일과 시간이 한참 늦어도 자연학교 등교를 마냥 지체할 수 없어 병원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건너뛴 점심을 때우고 길을 나섰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 대산 들녘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으니 구룡산 기슭으로 민자 건설 터널 도로가 지났다.
내가 사는 창원에서도 산수유꽃을 볼 수 있는 주남저수지 인근 들녘으로 찾아가는 걸음이다. 관공서나 주택 정원 또는 거리에서 조경수로 자라는 산수유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매화에 뒤이어 피어나는 노란 산수유꽃은 향기보다 화사함이 더했다. 인터넷 검색에서 구례 산동마을에선 코로나로 열지 못한 산수유꽃 축제가 이번 달 중순 4년 만에 재개된다는 기사를 봤다.
초본에서 피는 야생화 탐방과 함께 목본에서 피는 꽃도 놓칠 수가 없다. 매화를 본답시고 굳이 섬진강 건너 광양 청매실농원이나 낙동강 강변 원동 순매원으로까지 나갈 일 없다. 매화는 대한 무렵부터 한두 송이씩 피던 납월매로 완상했다. 어느 분재원 온실의 수형이 아름다운 고목 분재에 벙그는 매화도 볼 기회가 있었다. 매화에 이어 피는 산수유꽃을 보려고 발품을 팔아 나섰다.
이른 봄 목본에서 피우는 꽃이 매화와 산수유꽃이다. 둘 다 농가에서는 소득을 창출하는 유실수이나 수확 시기는 달랐다. 꽃이 저물고 초여름에 영그는 매실은 효소나 장아찌 재료로 삼고 담금주로 쓰였다. 산수유는 가을이 되어 자잘한 과육이 여물어 빨갛게 익었다. 구례 산동 산수유 집산지에서는 가을에 딴 열매에서 씨앗을 깐 과육만으로 약재 원료로 삼아 소득원이 되는 듯했다.
어제는 의림사 계곡으로 들어 초본에서 피는 변산바람꽃과 노루귀와 함께 붉은대극을 보고 나왔다. 그 계곡에서 목본에서 피는 삼총사 꽃을 봤는데 매화와 삼지닥나무 꽃망울에 이어 생강나무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산중에서 생강나무는 절로 자라 노랗게 꽃을 피우지만 산수유는 사람 손길에 심겨 꽃을 피웠다. 내가 찾아가는 대산 들녘의 죽동 천변 산수유도 심어 가꾼 조경수였다.
지난해 늦가을 죽동 천변으로 나가 산수유나무에 조랑조랑 달린 열매를 따 모아 씨앗을 가려내고 과육만 말렸다. 산수유 열매를 따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도 씨앗을 골라내는 일은 인내심이 요구되었다. 산수유 열매 말린 과육은 내가 약재로 끓여 먹는 영지버섯을 비롯한 여러 가지 건재들에 섞여 약차로 달여 음용하고 있다. 집에서 끓여 먹는 건재들은 모두 자연에서 구한 것이다.
대산면 소재지 가술을 지난 송등마을에서 내려 죽동천을 따라 걸었다. 천변에 조경수로 자라는 산수유나무에서 피는 노란 꽃의 열병을 받으며 지났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어 열흘쯤 지나면 만개할 듯했다. 꽃이 피는 가지에는 작년 열매가 쪼그라진 채 달려 있었다. 무려 십 리에 이를 길고 긴 천변은 산수유나무가 계속 이어졌다. 도중에 들녘 마을 구산으로 들어가 봤다.
넓은 들녘의 벼농사 뒷그루로는 비닐하우스단지에서 특용작물을 길렀다. 예전부터 성했던 수박 농사에서 당근으로 작목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연중 수확하는 풋고추 하우스에는 베트남 젊은이들이 열매 따느라 손길이 분주했다. 구산에서 강변의 신성으로 나가 종점에서 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아까 내렸던 송등마을 어귀에서 대산 들녘과 주남저수지를 둘러 시내로 돌아왔다. 2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