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상류에 있는 정자에서 노닐다가 돌아와서
오랜만에 고향인 진안 백운의 섬진강 상류에 자리 잡은 영모정과 모운정, 그리고 수선루를 찾았다. 지난밤에 내린 비로 강물은 탁했다. 하지만 여름 햇살에 나무숲은 울창하고 정자들은 아름다웠다.
나라 안에 이름난 누정들이 많이 있다. 강릉의 경포대, 밀양의 영남루, 안동의 만휴정, 예천의 초간정, 함양의 거연정, 남원의 광한루,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월송정 등이 내가 유독 사랑하는 정자다.
그렇다면 ‘누정’이라 일컫는 정자란 무엇인가?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명칭으로서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루 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식의 집이다. 이규보가 지은「사륜정기(四輪亭記)」에는 “사방이 확 트이고 텅 비어 있으며 높다랗게 만든 것이 정자”라는 설명이 나온다. 또한『신증동국여지승람』의 ‘누정 조’에 의하면 누정은 루(樓), 정(亭), 당(堂), 대(臺), 각(閣), 헌(軒), 재(齋) 등을 통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본래 그 명칭들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만 16세기 선비들에게는 그런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 ‘재’는 수신 또는 개인적인 학문 연구공간으로서 사방을 벽으로 둘러싼 폐쇄적인 형태이며, ‘정’은 길 가던 사람이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고 ‘당’은 터를 높이 돋우어 우뚝한 모습의 건물이다. 또한 정사(精舍)라는 명칭도 있는데 이것은 후진들을 모아서 학문을 강론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누각은 누관(樓觀)이라고도 하며 대개 높은 언덕이나 바위 혹은 흙으로 쌓아올린 대 위에 세우므로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누각은 경복궁에 있는 경회루(慶會樓)일 것이다. 김영상 (金永上) 선생이 지은『서울 육백년』에 의하면 “경회루에서는 사신을 위한 연회나 여러 신하들과의 연회 이외에 혹 친시(親試)도 베풀어졌고 혹은 무예를 권장하기 위해 관사(觀射)도 열렸으며 출사에 따른 친전연(親錢宴)이 베풀어 지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경사스러운 회연이 자주 있었다. 또한 부처님께 기도드리는 기불독경(祈佛讀經)이 행하여졌을 뿐만이 아니라 연못가에서 비가 오기를 기원하던 기우제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
누정은 마을 안이 아니라 경승지에 풍류를 곁들인 휴식공간으로 특별하게 지은 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지형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방이 탁 트여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지었다. 다음은『동문선』에 실린 이규보의「사륜정기(四輪亭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름에 손님과 함께 동산에다 자리를 깔고 누워 자기도 하고 혹은 앉아서 술잔을 돌리기도 하고 바둑도 두고 거문고도 타며 뜻에 맞는 대로 하다가 날이 저물면 파하니, 이것이 한가한 자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햇볕을 피하여 그늘을 찾아 옮기느라 여러 번 그 자리를 바꾸게 되므로 그 때마다 거문고, 책, 베개, 대자리, 술병, 바둑판이 사람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지므로 잘못하면 떨어뜨리는 수가 있다.
여름 한낮에 손님이 찾아오면 정자로 가서 더러는 자기도 하고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는 데, 경치를 바라보는 데는 좋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햇볕 때문에 자꾸 옮겨다니니다 보니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방이 트인 시원한 정자에 올라 시간을 보낸다면 그런 불편은 없을 것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영조법식(營造法式)』이라는 문헌에는 “정은 백성이 안정을 취하는 바이니 정에는 누가 있다. 정은 사람이 모이고 머무르는 곳”이라는 기록이 있고, 『후한서』의「백관서」에는 “여행길에 숙식시설이 있고 백성의 시비를 가리는 곳이 정”이라고 하였다.
이규보는 정자의 기능을 손님 접대도 하고 학문을 겸한 풍류를 즐기는 곳으로 보았다. 그는 정자에는 여섯 명이 있으면 좋다고 하였는데, “여섯 사람이란 거문고를 타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시에 능한 스님 한 사람, 바둑을 두는 두 사람, 그리고 주인까지”였다. 아울러 정자를 만드는 이유와 방법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살고 싶은 곳>에서
널 너와 지붕과 우물천장이 아름다운 영모정, 그리고 도깨비 형상이 아름다운 모운정, 그리고 암굴 안에 지어져 보물로 승격된 수선루의 기이한 풍경,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문화유산들이다.
2021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