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재 엉겅퀴
삼월에 드니 새봄을 맞은 신학기가 시작됨을 실감한다. 어제부터 집 근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등하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동안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다녔던 아이들이 완화된 방역 지침에 따라 맨얼굴을 드러내 앳되고 해맑은 모습이 보기 좋다. 올해 신입생도 있을 테고 새로 편성된 학급에서 급우 사이나 선생님과 친교 활동이 예전보다 나을 듯했다.
나도 학생인지라 배낭에 도시락을 챙겨 그들보다 먼저 자연학교로 향했다. 자연학교에는 급식이 이루어지지 않아 종종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다. 오늘은 행선지가 북면 양미재 산기슭이라 현지 식당 이용이 불가한 곳이었다. 집 앞에서 105번 버스를 타고 동정동으로 나가 북면으로 가는 17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버스는 천주암 아래서 굴현고개 너머 외감마을 동구를 지날 때 내렸다.
동구 밖 벼를 경작하던 논배미는 비닐하우스에서 미나리를 길렀다. 곧 다가오는 천주산 진달래 개화에 맞춰 찾아올 상춘객들을 상대로 삼겹살과 함께 팔려나갈 미나리였다. 달천계곡 들머리를 비켜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곁 단감농원으로 가는 길에서 숲으로 들었다. 오리나무는 수액이 오르는 기미를 볼 수 없어 연초록은 아직 일렀다. 가랑잎이 삭은 부엽토가 덮인 숲길을 걸었다.
나는 봄날이면 다른 계절보다 잦은 횟수로 양미재를 오른다. 봄날 양미재 숲은 내 텃밭이나 마찬가지로 다양한 산나물을 채집하는 곳이다. 이번은 올봄 들어 첫 산나물에 해당할 엉겅퀴를 캘 요량이다. 잎줄기에 껄끄러운 침과 같은 가시가 붙은 엉겅퀴는 순이 보드라울 때 캐 삶아 데치면 좋은 나물거리가 되었다. 여름 이후 가을까지 전초와 뿌리는 말려 약재로도 삼는다고 들었다.
겨울을 건너오면서 강변이나 들녘에서 캔 냉이는 국이나 나물로 무쳐져 몇 차례 우리 집 식탁에 올랐다. 이월 말에 볕 바른 곳을 찾아가 검불 속에 움이 터 자란 쑥도 캐 모았더니 엊그제는 쑥국이 끓여져 나와 봄내음을 맡았다. 어느 날 오후에 아까 지나온 외감 동구 논배미로 드는 수로에서 돌미나리를 걷어와 아파트 상가 주점 아낙에게 안겨 전을 부쳐 꽃대감과 식도락을 즐겼다.
지난번 구룡산 기슭으로 터널이 뚫린 양지바른 비탈에서 쑥을 캐다가 방가지똥도 여러 가닥 캐 왔다. 두해살이 방가지똥은 추운 겨울을 넘기면서 방석처럼 잎맥을 납죽 펼쳐 봄을 맞았는데 그것도 데쳐 나물이 되어 나왔다. 그 방가지똥과 외양이 비슷한 엉겅퀴는 무덤가 잔디에 잘 자랐다. 내가 찾아간 양미재는 진양 강 씨 선산으로 엉겅퀴가 군락으로 자라는 자생지이기도 했다.
너럭바위 쉼터에 앉아 낙엽활엽수림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한동안 명상에 잠겼다가 양미재로 올라 강 씨 선산으로 가봤다. 멧돼지가 주둥이로 봉분 주변 시든 잔디를 마구 파헤쳐 놓아 어수선했다. 흙 속에 자라는 굼벵이나 지렁이를 찾아 먹으려는 녀석의 왕성한 먹성에 헤아려졌다. 이맘때면 방석처럼 잎맥을 펼친 엉겅퀴가 보일 텐데 어찌 된 영문이지 개체수가 드물어 의아했다.
생태계는 변화무쌍이라 해마다 같지 않은 경우도 더러 봐왔다. 후각이 발달한 멧돼지는 바위 틈새를 비집고 뿌리 박은 칡도 캐 먹었다. 겨울을 나던 녀석이 먹이가 부족하니 무덤가에 자라는 엉겅퀴도 뿌리를 겨냥 흙을 파헤쳐 놓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나보다 발 빠른 선행주자가 엉겅퀴를 호미로 뿌리째 캐 갔을까도 싶었다. 내가 캐려던 엉겅퀴는 고작 몇 포기뿐이었다.
아침나절 양미재에서 엉겅퀴를 캐려던 뜻은 이루지 못하고 구고사 언저리를 서성이다가 산정마을로 내려섰다. 산골 마을 사방사업을 끝낸 골짜기에서 배낭에 넣어간 도시락을 꺼내 비웠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건너편은 천주산이 예곡으로 뻗는 호연봉 산등선이 우뚝했다. 한두 달 뒤 산기슭이 연초록으로 바뀌면 그 숲으로 들어 벌깨덩굴을 채집해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3.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