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시스】안현주 기자 = "한 세기를 지켜봤지만 일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우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역사를 바로 세우고, 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100주년을 맞은 100세 항일 애국지사의 한탄 어린 목소리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이듬해 태어난 최순덕 할머니(1911년 출생·서구 화정동)는 3·1절을 하루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 내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광주여고보(현 전남여고) 3학년생이었던 최 할머니는 1929년 11월3일 광주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일시위에 참가해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나르며 일제에 항거했다.
그는 이날 시위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구속되자 광주여고보 학기말 시험일인 10일 전날 '구속 학생 석방과 조선 독립을 위해 한 글자도 쓰지 말고, 연필도 들지말고, 운동장으로 모이자'란 호소문 150장을 밤새워 작성해 전교생에게 배포했다.
전교생이 시험을 거부한 '백지동맹' 사건으로 인해 주동자인 최 할머니와 가담자 46명은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고 이듬해 1월에는 결국, 퇴학 처리됐다.
'백지동맹'은 총칼을 찬 순사들이 학교를 드나들던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격렬한 의사 표현으로 일본인 교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으며, 전국의 여학교로 학생 독립운동을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최 할머니는 1954년 학생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전남여고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았지만, 정작 외부에는 백지동맹에 참여했던 친구 이광춘 할머니(전남 나주시)가 주동자로 알려져 독립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당시 광주면 부면장과 광주여고보 사친회장을 맡고 있던 친구 박지의 아버지가 백지동맹에 참여한 딸이 구속되지 않도록 사태를 수습하면서 최 할머니의 행적까지 묻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최 할머니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학생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1996년)을 받은 이 할머니를 비롯해 각계 인사들이 "백지동맹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항거로 최 할머니가 주동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탄원했으나, 보훈처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돌려보냈다.
최 할머니는 "내가 원하는 것은 국가의 보상이 아니라 과거 역사를 바로잡아 광주의 후배 학생들에게 자랑스런 긍지를 심어주고 싶은 것이다"며 "일본 재판관들이 전후 보상에 대한 피해자들의 소송을 모두 기각하는 것처럼 그들은 아직도 우리를 무시하고 있는데, 우리는 제대로 된 역사 교육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사람들은 '분하면 높이 되라'는 속담을 가슴에 새기고 민족주의를 부추기는데, 정작 우리나라는 애국에 대한 교육에 너무 소홀한 것 같다"며 "어릴 때부터 우유팩 하나 분리수거하는 것도 나라를 위하는 일임을 철저히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치인들도 나라를 위해 몸바치기보다 개인의 명예를 얻는데 혈안이 돼서 일을 그르치는 것을 많이 봤다"며 "민족이 하나 될 때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듯 정치인들도 '통일정책'을 가장 우선시하는 애국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편, 최 할머니는 3·1절 기념일에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추진하는 행사에 참석해 일본 정부를 규탄할 예정이다.
ahj@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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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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