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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1일 성소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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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7-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엄아의 태몽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자주 태몽 얘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태몽은 주로 나와 동생의 태몽이었는데 처음에는 그저 재미로 들었는데 나중에는 그게 사실이 되어 내 생활이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시골집에서 우리 형제를 낳으셨는데 그 때에는 방죽이 있는 동네라서 ‘방죽골’이라는 동네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뒤에는 아담한 동산이 있고, 우리 뒤뜰에는 대나무가 무성했고, 앞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방죽에는 물고기랑 새우랑 방개가 풍성한 그런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방죽의 용천에서 무지개가 솟아올라서 부엌 물 항아리로 들어오는 것을 치마로 받아서 안는 꿈을 꾸고 맏이인 저를 낳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뒤뜰 대나무 숲에 탐스럽게 자란 죽순을 자르려고 대밭에 갔다가 까만 독사가 어머니 손에 매달려 물고 떼려고 해도 매달려 있는 꿈을 꾸고 둘째 아들을 낳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주 그 꿈에 대해서 해몽을 하셨습니다. 큰 아들은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빛나지만 허울만 빛날 것이고 실속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허망하게 잠시 반짝 피었다가 빛이 쪼이면 사라질 것이다. 건강이 좋지 않을 수도 있어 항상 엄마는 건강을 위해서 기도한다. 어머니의 해몽처럼 나는 지금까지 실속 없이 아주 가난하게 십 남매를 키우면서 건강도 좋지 않아서 어머니의 속을 많이도 태우고 돌아가시기 전에도 ‘아프지 말라.’라는 유언을 받았습니다.
둘째 아들에 대해서는 독사처럼 독하게 살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성직자가 되어서 독신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좋은 신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셨습니다. 둘째는 아주 훌륭한 사제가 되었습니다. 내가 사제의 길을 가고자 신부님과 상의했더니 제게는 사제 성소(聖召)가 없고, 장남으로 10남매를 키워야 하는 성소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그때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50년을 성실하게 10남매를 돌보면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를 여윈지 42년 정말 오래 동안 아버지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이제는 후회도 없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사제가 되어 혼자 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외롭고 또 어떤 때는 자식들 생각도 없이 홀가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제 서품을 받는 날 아버지 신부님이 강론 중에 “이제 이 씨 집안 문중의 아들이 아니라 만인의 아버지로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로운 날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인의 아버지로 힘든 날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형에게 하소연하며 울고 싶은 날도 많았을 것입니다. 동생은 형을 아버지로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실 나는 동생들 아홉과 내 아이들 셋의 아버지 역할도 너무 벅찼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수천 명 수만 명의 아버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한 사람의 아버지 역할도 버겁고 힘든데 수많은 사람들의 아버지 역할을 잘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며 정말 고귀한 십자가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아버지 역할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며 고단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착한 목자로서 이 세상에 예수님의 대리자로서 산다는 것처럼 훌륭한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한 큰 아들과 만인의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는 신부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고, 평생을 기도하시며 대견해 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가장 효성스러운 아들은 신부님 아들이었습니다.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신 다음에도 가장 효자는 신부님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신부님 아들을 아들로 대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언제나 존경과 존댓말로 대했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습니다. 언제인가 신부님이 어머니한데 하대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단호하게 “신부님은 어미의 아버지예요”라고 존대 말씀의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태몽을 아주 잘 해몽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와 신부님도 성소를 잘 선택하고 길을 잘 걸으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성소는 각자에게 가장 알맞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께서 어련히 안배하시겠습니까.
야고보 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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