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학의 동향과 마사장
돌돌돌돌 소리는 이 양반이 끌고 다니는 작은 수레 — 노인들이나 부인네들이 장보러갈 때 사용하는 손수레 — 에서 나는 소리이다. 호탕한 인사와 더불어 내 방에 들어오면, 마사장은 우선 짐을 끌러 자기가 가지고 온 물건들을 테이블 위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예컨대 Personal Knowledge니 Back to the Rough Ground 하는 것들이 보인다. 혹은, A Companion to Metaphysics, Truth and Method, Handbook of Curriculum and Teaching, Handbook of Teacher Education 등이 보인다. 책이다. 영미권에서 발행된 영어로 된 책들이고, 주로 교육학 분야의 책들이다. 마사장은 책장사이다. 교육학 분야의 영어 원서를 취급하는 책장사. 이 양반에게 특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양반은 방물장사처럼 소비자를 찾아다닌다는 것이고, 특이한 것 또 한 가지는...... 또 한 가지는, 꼭 말해야 한다면, 무단복사라는 말을 사용하여 나타낼 수밖에 없지만, 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장물인줄 알고서 구입하면 구입자도 범법자가 되는 거 맞지?)
이 양반, 공부를 제법 하였거나 외국물을 좀 먹은 사람이냐고? 학자의 길을 걷다가 선회하였다거나, 유학을 하는 중에 더 좋은 일꺼리를 발견하여 그 길로 나섰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렇지 않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 변두리에서는 대형 서점의 지배인, 출판사의 편집자나 영업사원, 작은 출판사의 사장, 그리고 무단복제 책장사 — 이들이 다 같은 사람들이다. 이 일하다가 저 일하는 등 흔히 직종을 옮기곤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마사장도 그만그만한 직종에 종사하던 사람일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아니다.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이 양반,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알파벳 — 글자 그대로 알파와 베타 -- 만 아는 수준이 아닌가 싶다. 그는 자기가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물건의 이름을 시원스럽게 말한 적이 없다. 심지어 자기 손으로 제작하기까지 하였으면서도 그 물건의 이름을 발음한 적이 없는 것이다. 내가 “퍼스널 날리지”니 “백 투 더 라프 그라운드”니 라고 말하면, 이 양반은 “아, 그거요”, “아, 저거요”라고 말한다. 고유 명사를 회피하고 대명사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무 문제없다. 그것은, 숫자도 한글도 읽을 줄 모르는 우리 할머니가 귀신같이 버스를 찾아 탔을 뿐 아니라 문안에 있는 구청 같은 상급 관청에서의 업무 처리도 척척 해내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정도가 아니다. 우리 할머니만 해도, 일자무식이었으면서도, 집안을 잘 이끄셨을 뿐 아니라, 친척들의 일에도 관여하고 동네일에까지 참견하는 등 폭넓은 영향력과 막강한 지도력을 발휘하셨다. 마사장의 영향력과 지도력은 한 수 위다. 한 마디로 말해서, 마사장은 한국의 교육학의 동향을 좌지우지한다. 한국의 교육학자들은 마사장이 찍어낸 책을 사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사장 이외의 다른 구매 경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상경하여 광화문의 대형 서점을 방문하거나 그곳에 주문을 넣을 수 있으며 해외의 출판사나 해외의 서점과 직접 접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그렇게 번거롭게 일을 한다는 말인가?
비용 문제를 생각해보면 아예 게임이 안 된다. 위에서 예로 든 책들은 단행본인데, 마사장은 전집류를 선호한다. 그게 돈이 좀 되기 때문이다. 나는 British Journal of Curriculum Studies 스무 권과 Journal of Philosophy of Education 이십 여 권을 들여놓은 적이 있는데, 그 값은, 참 미안하지만, 종이값에 불과했다. John Dewey 전집 17권짜리는, 권 당 2만원씩 해서 34만원인데, 나한테는 권 당 1.5만원으로 주겠다고 한다. 나는 벌써 몇 주 째 고민 중이다. Rousseau 전집 15권짜리도 비슷한 가격으로 판매 중이다. 마사장의 영향력은 이렇게 가격 경쟁력에서 나오며, 또 한 가지, 기동력에서 나온다. 전국을 돌아다닌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마사장은 승합차 그레이스를 끌고 다니는데, 언제이건 내가 존 듀이에 관한 장고를 멈추고 — 물론, 나한테만 1.5만원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 결단을 내리기만 한다면, 마사장은 즉시 자기 자동차로 내려가 17권을 손수레에 싣고 돌돌돌돌 소리를 내면서 돌아와 내 연구실 바닥에 부려 놓을 것이다.
그러나 가격경쟁력과 기동력이 다는 아니다. 그의 영향력의 기저에는 하나의 혜안이 숨겨져 있다. 교육학의 학문적 동향을 파악하는 안목 말이다. 싸다고 해서, 또 친절하게 가져다준다고 해서, 아무 책이나 들여놓는 사람은 없다. 사실, 마사장도 찍어낼 책을 결정하고 인쇄를 실행할 때에는 가슴이 약간 떨릴 것이다. 많이 할 때에는 100권 가까이 찍는 것 같은데, 좁디좁은 한국의 교육학 원서 시장에서 그것을 소화해낸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마사장이 건재한 것은 지금까지 그의 판단이 대체로 적중하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는 찍어낼 책에 관하여 이렇게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책을 살 사람들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나한테 “조교수님은 교육과정 전공으로 되어있지만 주로 철학에 관심이 있으시잖아요?”라고 말하였으며 “조교수님은 서울대 00 교수님한테서 지도를 받으셨지요?”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의 정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한국의 교육학자들의 학문적 취향 뿐 아니라 한국 교육학의 학통과 한국 교육학자들의 계보를 꿰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내가 책 한 권을 들고 망설이면, 그는 “그 책은 서울대 00 교수님도 들여놓으셨는데.”라고 독백이나 방백처럼 말하고, 나는 못들은 척하면서도 안심하고 지갑을 연다. 그런 식의 독백이나 방백을 말하기 위해, 서울대 무슨 교수님한테는 돈도 받지 않고 책을 건네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마사장은 쓱 하고 내 책장을 훑어보곤 한다. 어릴 때 교수님들의 연구실을 들여다보면서 부러워했던 것 세 가지 중에는, 천장까지 들어찬 장서들도 들어있다. 나는 아직도 내 연구실을 그렇게 채우지 못해서 그렇겠지만, 마사장은 그냥 한 번만 쓱 훑어보면 다 알아낸다. 뭐가 있고, 뭐가 없는지 말이다. 그가 내 책장을 훑어보는 것은, 내가 아직도 구매하지 않은 책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어, 내가 조만간 어떤 책을 들여놓아야 하는지에 관해서 충고를 해주고 나를 고민에 빠뜨리기 위해서이다. 하여간 쓱 하고 내 책장을 훑어볼 때, 그가 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지 모른다. 잠자리의 눈은 어떻게 되어있다더라? 하여간 짐승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하늘을 나는 새들과 땅을 기는 길짐승들은 서로 다르게 물건을 볼 것이다. 청량리에 살 때 우리 할머니는 경희대 쪽에서 나오는 21번 버스를 애용하셨는데, 21번 버스라는 것을 표시하는 그 숫자가 우리 할머니한테는 어떤 식으로 지각되었을지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래도 마사장과 나 사이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책장을 쓱 훑어볼 때 그와 내가 보는 것은 공히 그와 나에게 환희와 고통을 동시에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업자? 최소한 우리가 같은 물건을 가지고 밥벌이를 하는 것은 맞다. 우리는 전공이 같다고 말할 수도 있다. 교육학. 그와 나는 공히 교육학 쪽으로 한다. 교육학 쪽을 판다.
오늘도 마사장이 다녀갔다. 오늘은 나한테 책 한 권을 공짜로 주고 갔다. 미국 교육학회에서 발간된 것 같은데, 두툼한 교육학 사전이다. 너무 초보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나는 받기를 사양했다. 그러나 그는 부득부득 안기고 갔다. 가끔 그가 그렇게 공짜로 주고 가는 책이 있는데, 그 책들은 하나 같이 팔다 팔다 못 팔아 처분하기 곤란하게 된 것들이라고 보면 된다. (2008, 9)
첫댓글 아하 마사장님은 뛰어난 영업맨 이셨구먼.. 각계의 수 많은 다양한 분야의 책 시장에서..교육학 그것도 원서 쪽을 택해...(아마도 혼자 뛸 수 있는 틈새 시장)....여튼 교육학의 내용은 몰라도 이리저리 눈치로 돈 냄새를 맡는 영업맨 마사장님. 그 분 머릿속에서의 책이란 종이와 잉크로 이루어진 제품정도??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