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전 냇가에서 캔 쑥
삼월 첫 주말을 맞아 근교 산행을 위해 마산역 광장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향했다. 산행을 겸해 볕 바른 임도에 움이 돋아 자랄 쑥을 캐 오고 싶었다. 지난 이월 하순 봄이 오는 길목에 당항포 마동호를 비롯해 소목고개와 구룡산 기슭에서 몇 차례 쑥을 캐왔다. 엊그제 그 쑥은 쑥국으로 끓여져 식탁에 올라와 봄내음을 맡았다. 여린 쑥은 앞으로도 더 캐 진한 향기를 맡을 참이다.
쑥을 캐는 데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길섶에 쪼그려 앉아 검불 속의 쑥을 한낱 한낱 캐야 하는 일이다. 쑥은 캐고 나서도 쑥에 붙은 검불을 하나하나 가려내야 했다. 쑥은 아무 데서나 아닌 장소를 가려서 캐야 한다. 과수원 언저리는 사유지기도 하지만 토양이 농약에 오염된 곳이라 피해야 한다. 차도와 인접한 길섶은 자동차 분진과 매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데라 삼가야 한다.
토요일 이른 아침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로 마산역 앞으로 나갔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에는 봄을 맞은 푸성귀들이 펼쳐졌는데 할머니들이 밭둑에서 캤을 쑥도 보였다. 깔끔하게 선별 세척되지 않은 풋풋한 시금치나 겨울초는 흙내음이 물씬했다. 어디선가 힘을 들여 캤을 칡뿌리를 잘라 파는 사내도 있었다. 물건을 사주지 않고 구경만 하고 지나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진전 당항포 들머리 정곡으로 가는 77번 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났다. 밤밭고개를 넘어 동전터널을 지나 진동 환승장에 들린 버스는 진전면 소재지 오서에서 국도 너머 탑동에서 내렸다. 마을 안길을 지난 독립가옥에서 산기슭으로 올라 고성터널이 지나는 예전 국도를 따라 걸었다. 고개를 넘어갈 즈음 지난해 늦가을 친구와 단풍마를 캐왔던 적석산으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해발고도가 점치 높아지는 으응산과 깃대봉으로 오르는 산등선 몇 군데 고압 송전탑이 지났다. 아까 내렸던 탑동으로부터 1시간 더 걸려 산마루에 이르니 볕이 잘 드는 곳이라서 쑥은 움이 터도 덜 자라 그냥 스쳐 지났다. 인적 없는 산등선은 멧돼지가 주둥이로 온통 파헤쳐 경운기로 밭을 갈아 놓은 듯했다. 무리 지은 녀석들은 먹잇감을 찾아 숲 바닥을 샅샅이 뒤져 놓았더랬다.
산중 송전탑이 끝나자 임도도 막다른 곳이라 개척 산행으로 비탈을 내려서니 볕이 바른 자리에 김해 김씨 선산이 나왔다. 산기슭에 쑥과 함께 전호나물이 보여 배낭을 벗어두고 몇 줌 캐 모았다. 거기부터 산기슭을 빠져나가 대정과 일암을 거쳐온 2호선 국도가 지나는 진전천 냇가로 나갔다. 냇바닥을 따라가면서 자갈돌 틈새에 자라는 쑥과 전호나물만 가려 허리를 굽혀 캐 모았다.
나는 그동안 밭둑이나 길섶에서 캐는 쑥에 익숙했는데 냇바닥의 자갈돌 틈새 자라는 쑥은 의외로 보드랍고 깨끗했다. 전호나물은 명이나물과 함께 울릉도에선 대표적인 특산 봄나물로 통하지만 내륙 지역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였다. 태양광 발전 집열판이 길게 설치된 국도가 걸쳐 지나는 천변에는 주말을 맞아 차를 몰아와 야영하는 이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낙남정맥은 하동과 진주를 거쳐와 발산재에서 여항산과 서북산으로 솟구쳐 남사면 계곡이 진동만으로 향해 흘러온 물줄기가 진전천이었다. 창포만을 앞둔 냇바닥을 따라 걸으니 자갈돌이 닿는 등산화 바닥은 지압 효과를 보는 듯했다. 냇가를 따라가면서 캐 모은 쑥은 양이 제법 되었다. 길을 나설 때는 인적 없는 산중 임도를 걸으며 캐려던 쑥이었는데 뜻밖에 천변에서 캐게 되었다.
진전면 소재지가 가까운 지점에서 둑으로 오르니 쉼터가 나왔다. 봉지에 캐 모은 쑥과 전호나물에 붙은 검불을 가려내고 배낭을 추슬러 둘러멨다. 면 소재지 오서는 유력 성씨가 집성촌을 이룬 동네다. 동대는 안동 권씨고 서대는 밀양 박씨가 모여 살았는데 근래는 다른 성씨들도 귀촌했다. 곰탕집으로 들어 늦은 점심을 들고 정곡을 출발해 오는 버스를 타고 마산을 거쳐 집으로 왔다. 23.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