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은 문장력에 감탄!
내 평생 접한 글 중에서 단연코 으뜸입니다
어머니 여한가(餘恨歌)
옛 어머니들의
시집살이
자식 거두기
질박한 삶을 노래한 글입니다
한국 여인들의 결혼 후 시집살이에서 생기는 한(恨)을 이야기한
순박한 글입니다.
열여덟살 꽃다울 제
숙명처럼 혼인하여
두세 살씩 터울 두고
일곱 남매 기르느라
철 지나고 해 가는 줄
모르는 채 살았구나
봄여름에 누에치고
목화 따서 길쌈하고
콩을 갈아 두부 쑤고
메주 띄워 장담 그고
땡감 따서 곶감 치고
배추 절여 김장하고
호박고지 무말랭이
넉넉하게 말려두고
어포육포 유밀등과
과일주에 조청까지
정갈하게 갈무리해
다락높이 간직하네
찹쌀 쪄서 술담 그어
노릇하게 익어지면
용수박아 제일 먼저
제주부터 봉해두고
시아버님 반주거리
맑은 술로 떠낸다음
청수 붓고 휘휘 저어
막걸리로 걸러내서
들일 하는 일꾼네들
새참으로 내보내고
나머지는 시루 걸고
소주 내려 묻어두네
피난 나온 권속들이
스무 명은 족하 온데
더부살이 종년처럼
부엌살림 도맡아서
보리쌀로 절구질해
연기불로 삶아건 져
밥도 짓고 국도 끓여
두 번 세 번 차려내고
늦은 저녁 설거지를
더듬더듬 끝마치면
몸뚱이는 젖은 풀솜
천근만근 무거웠네
동지섣달 긴긴밤에
물레 돌려 실을 뽑아
날줄들을 갈라 늘여
베틀 위에 걸어놓고
눈물한숨 졸음 섞어
씨줄들을 다져 넣어
한치두치 늘어나서
무명한필 말아지면
백설같이 희어지게
잿물 내려 삶아내서
햇볕으로 바래기를
열두 번은 족히 되리
하품 한번 마음 놓고
토해보지 못한 신세
졸고 있는 등잔불에
바늘귀를 겨우 꿰어
무거운 눈 올려 뜨고
한뜸도 뜸 꿰매다가
매정스러운 바늘 끝이
손톱밑을 파고들면
졸음일랑 혼비백산
간데없이 사라지고
손끝에선 검붉은 피
몽글몽글 솟아난다
내 자식들 해진 옷은
대강해도 좋으련만
점잖으신 시아버님
의복수발 어찌할꼬
탐탁잖은 솜씨라서
걱정부터 앞서는데
공들여서 마름질해
정성스레 꿰맸어도
안목 높고 까다로운
시어머니 눈에 안 차
맵고매운 시집살이
쓴맛까지 더했다네
침침해진 눈을 들어
방내 부을 둘러보면
아랫목서 윗목까지
자식들이 하나 가득
차내 버린 이불깃을
다독다독 여며주고
막내 녀석 세워 안아
놋쇠요강 들이대고
어르리고 달래면서
어렵사리 쉬 시키면
일할엄두 사라지고
한숨만이 절로 난다
학식 높고 점잖으신
시아버님 사랑방에
사시사철 끊임없는
접빈객도 힘겨운데
사대봉사 제사들은
여나무번 족히 되고
정월한식 단오추석
차례상도 만만찮네
식구들은 많다 해도
거들사람 하나 없고
여자라곤 상전 같은
시어머니뿐이로다
고추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매워라
큰아들이 장가들면
이 고생을 면할 건가
무정스러운 세월 가면
이 신세가 나아질까
이내몸이 죽어져야
이 고생이 끝나려나
그러고도 남는 고생
저승까지 가렸는가
어찌하여 인생길이
이다지도 고단한가
토끼 같던 자식들은
귀여워할 새도 없이
어느 틈에 자랐는지
짝을 채워 살림 나고
산비둘기 한쌍같이
영감하고 둘 만남아
가려운데 긁어주며
오순도순 사는 것이
지지리도 복이 없는
내 마지막 소원인데
마음고생 팔자라서
그마저도 쉽지 않네
안채별채 육간대청
휑하니 넓은 집에
가문날에 콩 나듯이
찾아오는 손주 녀석
어렸을 적 아비모습
그린 듯이 닮았는데
식성만은 입이 짧은
제어미를 택했는지
곶감대추 유과정과
수정과도 마다하고
정 주어볼 틈도 없이
손님처럼 돌아가네
명절이나 큰 일 때는
객지사는 자식들이
어린것들 앞세우고
하나둘씩 모여들면
절간 같던 집안에서
웃음꽃이 살아나고
하루이틀 묵었다가
제집으로 돌아갈 땐
푸성귀에 마른 나물
간장된장 양념까지
있는 대로 퍼주어도
더 못주어 한이로다
손톱발톱 길새 없이
자식들을 거둔 것이
허리 굽고 늙어지면
효도 보려 한 거드냐
속절없는 내한평생
영화 보려 한 거드냐
꿈에라도 그런 것은
상상조차 아니했고
고목나무껍질 같은
두 손 모아 비는 것이
내신 세는 접어두고
자식걱정 때문일세
회갑진갑 다지나고
고희마저 눈앞이라
북망산에 묻힐 채비
늦기 전에 해두려고
때깔 좋은 안동포를
넉넉하게 끊어다가
윤달 든 해 손없는날
대청 위에 펼쳐놓고
도포원삼 과두정매
상두꾼들 행전까지
두 늙은이 수의일습
내손으로 다지었네
무정한 게 세월이라
어느 틈에 칠순팔순
눈 어둡고 귀 어두워
거동조차 불편하네
홍안이던 큰 자식은
중늙은이 되어가고
까탈스러운 울영감은
자식조차 꺼리는데
내가 먼저 죽고 나면
그 수발을 누가 들꼬
제발 덕분 비는 것은
내가 오래 사는 거라
내 살 같은 자식들아
나 죽거든 울지 마라
인생이란 허무한 것
이렇게도 늙는 것을
낙이라곤 모르고서
한평생을 살았구나
원도한도 난 모른다
이 세상에 미련 없다
서산마루 해지듯이
새벽별빛 바래듯이
잦아들듯 스러지듯
흔적 없이 지고 싶다
<어머니의 여한가>
짠한 감동을 준다.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나의 어머니가 열여덟 살 꽃다울 제 혼인을 하셨다.
누가 지었을까?
작자는 청은 구자옥(1887~1950)이라는 설이 있다.
생각보다 그다지 오래전 분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 시대상이 급변했다.
읽고 나니 가슴이 찡해오고 엄마에게 다시금 죄송한 마음만 자꾸 일어나네요.
작자가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실제로 이런 인생을 경험하신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닐까 싶어서
감탄과 존경이 저절로 우러납니다.
살아계시는 부모님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효도하세요.
하고 싶어도 효도를
못하는 사람이 가장 후회하면서
권해드립니다.
가슴 찡하며 그저
감탄사만 나옵니다.
감동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