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례 평지로 들어
경칩을 하루 앞둔 삼월 초순 일요일은 집 근처 사는 지기들과 봄 마중 나들이를 갔다. 보름 전 용추계곡으로 들어 이른 봄 피는 야생화 노루귀 탐방을 함께 했던 지기들이다. 그날 용추계곡에서 진례산성을 넘어가 평지마을로 나갈까 했는데 무릎이 불편해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선배로 인해 일정을 단축했다. 이번엔 자동차로 비음산 너머 진례로 이동해 몇몇 곳을 둘러올 참이다.
나는 혼자서 어디든 잘 다니는데 지기들은 나에게 행선지를 위임한 길 안내를 부탁해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열차로 경전선 삼랑진이나 진주 근처로 나가볼까 싶었으나 일요일은 승차권을 예매하지 않으면 입석을 감수해야 해 지기가 운전대를 잡아 넷이 함께 길을 나섰다. 일행은 도심을 벗어난 동읍에서 진영의 시골길을 달려 노티터널을 빠져나가니 진례면 소재지가 가까웠다.
남해고속도로가 부산으로 접속되는 시골길 진례 시례마을로 들었다. 김해 진례는 하동 악양이나 합천 초계가 떠오르는 면 단위 고을이다. 악양을 이르길 거지가 동구 밖에 들어 동냥 행각을 나서 마을마다 돌다 보면 한 해가 간다는 곳이다. 지금은 서울에서도 낙향한 문사들이 귀촌해 사는 동네다. 초계 역시 강원도 양구 펀치볼처럼 한 고을이 넓은 분지라 진례를 연상하게 했다.
지난날 농경시대는 배산임수가 촌락 형성의 필수 요건이었다. 마을 앞으로는 시내가 흐르고 뒤에는 땔감을 마련할 산이 있어야 했다. 진례 시례는 옛날 옛적 그곳에 살던 이들은 풍수해 걱정 없이 한평생 살다 뒷산 어디엔가 묻혔을 고을이었다. 시례마을 동구를 지나 클레이아크미술관과 나란한 분청도자박물관을 찾아갔다. 토기에서 청자를 거쳐 백지가 구워지는 과정을 살펴봤다.
박물관을 나와 인접한 전시관으로 드니 넓은 매장엔 인근 가마에서 도공들이 빚은 도자기가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구매 고객이 아닌 전시품을 둘러보는 관객이 되어 매장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나는 지난날 근무지 동료들의 퇴직 기념품으로 마련했던 밀양의 청암도요와 경기도 이천 이진도자기가 떠올랐다. 거기서 다기와 같은 생활 도자기가 아닌 예술 도자기를 장만했다.
분청도자박물관과 전시관을 둘러보고 십여 년 전부터 개발하는 진례 레포츠타운 공사 현장으로 갔다. 창원을 에워싼 정병산과 비음산이 용제봉으로 이어진 낙남정맥이 김해 신어산으로 건너가는 산기슭이 진례였다. 조선 개국 초 계유정난의 수양대군에 핍박받은 문신 가운데 밀양 고을로 피신한 광주 안씨 한 분파가 정착한 곳이다. 진례 출신은 청주 송 씨로 배우 송강호도 있다.
문전옥답이 신도시 개발로 수용된 시례마을 인근을 답사하고 아직 정식 개장하지 않은 중앙공원을 거닐었다. 지금은 마을을 지키는 노인들만 있겠지만 앞으로 신도시가 들어서면 신설될 학교 터가 마련되어 있고 어린이 놀이터까지 갖추어 놓았더랬다. 우리는 예전 논밭이 상전벽해가 되어 신도시가 들어설 곳을 둘러보고 다음 행선지인 평지 백숙촌 진례저수지 둘레길로 갔다.
김해가 낙동강과 인접했지만 진례는 화포 습지와도 떨어져 강가와 멀어 농업용수가 부족해 축조한 저수지였다. 산중 마을은 백숙촌으로 알려졌지만 우리는 둘레길을 걸으면서 다음 일정을 의논했다. 저수지 둑길 아래 신월마을로 내려가 점심을 들고 다시 돌아와 볕 바른 자리에 돋아난 쑥을 캐기로 의기가 투합했다. 거기 맛집에 해당하는 문어 철판짜장과 짬뽕으로 점심을 잘 먹었다.
점심 식후 아까 지나온 진례저수지 둑길 아래 무송마을 볕 바른 자리로 다시 갔다. 앞장을 선 내가 냇가의 시든 검불을 헤치니 움이 돋는 여린 쑥이 연방 드러났다. 동행한 지기들은 철 이르게 만나는 쑥을 캐기에 여념 없었다. 이어 만족한 전원생활을 누리는 부부와 잠시 한담을 나누고 신안마을에서 장유로 와 산기슭 찻집에서 커피 라떼로 여정을 마무리하고 창원터널을 통과했다. 23.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