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꽃잎 / 박한
-바다의 노래
별이 떠 있나요 기다리는 곳에
밤새 이슬들이 무겁진 않나요
난 떠나온 곳에 바람만 외웠어요
파도를 아무리 뒤적여봐도 소용없어요
여긴 들어오지 마세요
어둠과 날숨들이 엉킨 이곳은
뒤집힌 꽃잎
종이 치질 않네요 아직 밤인가요
늦지 않았다면 이제 사과할게요
별을 바라보며 사랑을 꿈꿨고
누군가 그리울 땐 꽃을 꺾었죠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나는 분명 봄이었는데
겨울나무들처럼 온몸을 잃어버린
뒤집힌 꽃잎
난 이제 알았어요
별이 이토록 어둡다는 것을
그리고 내 영혼이 이렇게 무겁다는 것을
어머니, 울지 말아요
난 이제 그만 어두워질게요
다만 내 이름은 꽃잎이라 기억해줘요
깊은 바닷속, 종소리 들리지 않겠지만
이 수업도 어쨌든 끝이 나겠죠
은혜 갚은 세
전단지 한 마리가
가로등에서 푸드덕거렸다
선분양 2억5천,
내 열쇠로는 찢어진 곳을
꿰매줄 수 없었다
멀리서 온 것 같았다
월세 좀 넣어주세요
주인이 전화가 와서 말이에요
그건 새가 아니라 세라구요
전단지는 얌전했다
전 세입자가 두고 간 냉장고에 붙여놓고
신김치를 꺼내 먹었다
봄되면 공터마다
철근들이 자라
흐드러지는 쇳소리에
나는 별빛 아래 오줌을 누고 다녔다
창문을 열어두고 나간 오후
냉장고가 쉰 배를 웅웅 앓았다
창밖에선 레미콘 트럭들이
둥글게 익어가고
스리랑카에서 온 지 8년째 된 삐띠는
이제 겨우 개새끼야를 이해했다
납기일이 지난 고지서들처럼
차라리 유기되고 싶어
가로등 아래서 몰래
쓰레기봉투의 목줄을 풀어주었다
어느덧 무성해진 철근 위로
해가 보이지 않을 때
그늘이 너무 길게 자랐다며
주인이 와서 월세를 깎았다
나는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를 한 번 더 조여 맸다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
눈이 내린다
떠나간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뭉치지 않는다
손을 들지 않아도
모든 길들은 이별하는 중
난 치워진 눈보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
왜 이런 곳에
동백이 피었는지 모른다
겨울은 낳은 것마다 목마를 태우고
어린 새들이 날아오를 때마다
누군가 그리운 사람은
창밖으로 몸을 내민다
팔짱을 풀고
하얀 간지럼을 타는 나무들
입김을 꺼내 분다
그러면 남은 얼굴둘
여러 갈래로 흩날리고
쌓인 발자국 따라
발이 푹푹 뜬다
시집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삶창, 2023,4,20 초판
박한 시인
2018 지용신인문학상 순한 골목 당선
카페 게시글
―······추천하는 시
박한 시집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 대표시
홍혜향
추천 0
조회 34
26.07.03 14:33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