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초스피드 진행...ㄷㄷ
076
그때 시휴오빠가 프로포즈 선물로 준 것은
직접 디자인한 비키니였다.
그래..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4년 전 여름이었지.
자기랑 결혼하면 비키니 입게 해주겠다던 시휴오빠.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전부 대호오빠가 준비해준 거라 하지만,
그래도 제법 멋드러졌던 그날의 프로포즈.
그리고 이미 휴학신청에 해병대 지원.
거기다 살고있는 집도 다음달까지 비우기로 했다는 이야기.
모든게 레포트 핑계로 나와 만나지 않던 그 2주일간에 이루어진
..나에겐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근데 이 비키니 언제쯤이면 입을라나."
하지만 막상 결혼비용 저축시간이라 생각하니 그리 길게 느껴지진 않더라구.
시휴오빠가 그 당시 나에게 맡기고 간 통장엔 보증금 돌려받은 것과 가구 정리한 돈
외에 그래피티로 짜잘하게 모은 돈이 5천만원 들어 있었는데, 그걸론 좀 부족하잖아.
그래서 그동안 온가족이 발 벗고 나서 생활비 아끼기에 돌입했지.
저번달까진 어린이집 도우미일도 해봤는데, 힘들었지만 참 뜻 깊었어.
"엄마 오늘 시휴오빠 휴가날인 거 알지?"
그리고 시휴오빠가 축구대회 우승으로 포상휴가를 나오는 오늘.
나도 비밀리에 준비한 이벤트가 하나 있는데...
"당근이지."
..이름하여 데릴사위 이벤트!
뭐, 아직 우리가 결혼을 한 상태는 아니지만 엄마아빠도 원하시는 듯 했다.
어차피 들어갈 집도 없는 상황이고, 제대하면 바로 결혼할 사이인데..
3박 4일정도는 우리집에서 지내는 것도 괜찮다 싶은 생각이니 말야.
"천서방 해병대에서 고생이 많을텐데 맛있는 것 좀 많이 준비해야겠다."
그나저나 시휴군에서 천서방으로 바뀐 저 애칭.. 정말 적응 안 되네.
"근데 마리야. 천서방 아버님이랑은 아직도 연락 안 한다니?"
"응.. 제대하면 같이 찾아뵙기로 했는데, 나도 솔직히 걱정이야."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처음으로 뒷모습을 보이는 아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시던 아버님.
이러다 정말 두사람이 의절하게 되는 건 아닌지.. 정말 걱정이야.
..
..
"어때? 맛있어?"
"이야.. 이제 마리가 엄마보다 잘 하는 것 같은데?"
엄마와 장장 4시간째 주방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나.
몸보신용 삼계탕과 시휴오빠가 좋아하는 녹차돈까스를 주메뉴로
이미 식탁 위에는 상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아빠한테 전화해봤어?"
"10분 전에 터미널에서 만났대."
"그럼 좀 있으면 오겠네. 천서방이랑 같이."
"근데 엄마 그 천서방이란 말 좀 어떻게 하면 안 돼?"
어째 들을 수록 적응되기는 커녕 점점 더 거슬리는 것 같어.
"왜? 좋기만 하구만."
"나도 이렇게 적응이 안 되는데 시휴오빠는 어떻겠어?"
"넌 천서방 아버님이 너한테 새아가라고 부르면 기분나쁠까?"
"......."
..무진장 좋겠다.
하지만 새아가는 감지덕지고, 내 이름 한번 불러주신 적이 없는데.
"우리 왔다!"
그때 문이 열리며 예비 장인어른과 예비 신랑이 모습을 드러내.
몸소 자동차로 터미널까지 가서 시휴오빠를 태우고 오신 아빠.
이제 베이지색의 해병대 근무복이 꽤나 잘어울리는 시휴오빠가
푸짐한 점심상을 보며 입을 다물줄 모른다.
"오빠, 이번 휴가는 우리집에서 보내."
..
..
"꺄하하! 그래서? 그래서 치고박고 싸웠어?"
"아니요, 그랬다간 병장님한테 더 혼나잖아요.
너 제대하고 보자. 하니까 설설 기던데요? 멍청한 놈."
"꺄하하하! 해병대라고 무서운줄만 알았는데 되게 재밌다!"
"왜 귀신잡는 해병대라고들 하잖아요? 근데 귀신을 잡기는 얼어죽을
밤에 귀신나온다고 화장실도 못가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배부르게 점심을 먹은 우리 네 식구는 시휴오빠의 군대이야기에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떠들고 있었다. 엄마가 아주 제일 좋아하셔.
"훈련같은건 견딜만 하구?"
입대하는 날 옷가지와 중요한 짐들은 다 우리집에 두고 갔기 때문에,
정말로 한식구가 된 것 같은 분위기다.
"훈련이야 뭐 마음만 먹으면 다 하는데, 아무래도 내무반 생활이 제일 힘들죠.
처음엔 진짜.. 뒷통수 한대 쎄게 맞으니까 고참이고 뭐고 패주고 싶더라구요."
"어머머.. 아직도 군대에 폭력이 있어?"
"신참 때는 인간취급도 못받아요. 지금이야 좀 살만하지."
내 분명 장담하는데, 저 인간도 신참들 무쟈게 괴롭히고 있을 거야.
학교 후배들도 그렇게 괴롭혔던 인간이 군대 신참들은 오죽하겠어.
..
"안녕히 주무세요."
평소엔 안 하던 밤인사까지 하고는 시휴오빠와 방으로 들어왔다.
단 둘이 불 꺼진 내 방에서 자게 될 줄이야.. 흐흐흐.
괜히 뿌듯한 마음에 싱글벙글한 얼굴로 침대에 누우면..
"난 밑에서 잘게."
라면서 좁은 바닥에 이불을 까는 시휴오빠.
"왜? 올라와서 같이 자장. 응?"
"군생활 하다보니까 바닥이 익숙해."
참나. 군인아저씨인거 티내냐?
...그렇게 몇분이나 지났을까.
잠이 든 건지 뒤척임이 없어진 시휴오빠.
어째 입장이 바뀐 것 같다. 왜 내가 더 들뜨는거야?
"......"
결국 나도 밑으로 내려와서 삐딱하게 누운 시휴오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잠을 청하면..
오늘은 왠지 좋은 꿈을 꿀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잘 가. 다치지 말구."
아.. 입대할 때보다 더 서운한 것 같아.
3일동안 나름대로 뜻있게 보낸다고 보냈는데
기억나는 거라곤 밥먹은 것밖에 없으니 원...
"진짜 간다."
말없이 웃으며 손인사를 건내고는 다시 힘찬 발걸음으로
군대에 복귀하는 시휴오빠.
"잘 가라, 자식아!"
하나같이 일도 팽게치고 따라온 오빠들이 우렁차게 인사하면..
그렇게 시휴오빤 모습을 감춘다. 무적해병이라는 이름으로.
"쩝.. 저녀석은 벌써 병장인데 난 담달에 이등병이야. 젠장."
큭큭.. 하긴 나보다 더 맘고생이 심한건 이 오빠들인가봐.
아직 군옷 한번 못입어본 사람들이 시휴오빠를 보면 얼마나
앞길이 막막할까..
"넌 임마 육군이잖아. 어디 해병대 앞에서 고따위 막말을 하냐."
"뭐? 그럼 짜샤 너도 해병대 가봐! 지도 못가면서 말이 많아요."
다음달에 입대하는 수호오빠와 동혁오빠가 다투기 시작하면,
다른 오빠들도 긴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씩 한다.
"난 은아랑 사고쳐서 애를 두명 낳을까봐. 그럼 면제래."
"미친놈."
"맘같아선 손가락이라도 짜르고 싶다."
"야 그래도 군대를 갔다와야 진짜 남자야, 짜식들아."
그땐 나와 상의도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린 시휴오빠가
무지 미웠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리 말했으면, 내가 극구반대할 것이 뻔하니까 그렇게 한 거겠지.
요즘들어 자꾸 느끼는 거지만... 참 다행이다.
시휴오빠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서.
..너무너무 다행이야.
◈그 녀석을 빽으로 세상과 맞짱뜨다◈077
"이정도면 괜찮지? 천서방 학교랑 위치도 가깝구.
화장실도 두개인데 보증금 5천이면 무지 싼 거지."
시휴오빠의 제대를 며칠 앞두고..
엄마와 나는 서울 강남에 나와 있었다.
인천 토박이인 우리 모녀가 서울까지 나온 목적은,
두말 필요없이 신혼집으로 얻을 전세집을 보기 위해.
"난 괜찮은데 시휴오빠가 어떨지 모르겠네."
예전에 살던 집이랑은 건물구조가 좀 달라서 혹여나
내맘대로 결정했다가 후회하는 일이 생길까 걱정이었다.
"어차피 전세집인데 뭘 그렇게 신경써.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면 되지."
"..그치? 그럼 여기로 하자 그냥."
몇시간동안 이집 저집 돌아다니다 결국 결정한 집은
오빠네 학교에서 지하철로 3정거장인 작은 빌라..
집값이 너무 비싸서 아파트는 꿈도 못꾸더라.
"예전에 살던 집은 어땠니?"
"인천에 있을 땐 꽤 좋은 오피스텔이었는데,
혼자 서울에서 자취할 땐 작은 원룸이었어."
그래도 신혼집인데 원룸을 구할 수도 없는 일이니..
처음엔 그냥 이정도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해야지.
"가구는 천서방 제대하고 보는게 낫겠지?"
"응."
으으.. 결혼만 하면 장땡인줄 알았건만 뭐가 이리 복잡한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게다가 500만원에 육박하는 결혼식비용 때문에 신혼 초엔 쫄쫄 굶으며 살게 생겼어.
"엄마랑 아빠는 결혼하고 얼마나 있다가 집 샀어?"
"음.. 너희 친할아버지 돌아가시고나서."
"나도 빨리 우리집 갖고싶다..."
"어머머. 얘 말하는거 봐?"
내집을 갖는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네...
그 고생을 전부 시휴오빠한테 떠넘기는 것 같아 기분이 편치않다.
***
[결혼 준비는 잘 되가냐?]
집에 돌아와서 완전 뻗어버리자,
약속이나 한 듯 향기에게 전화가 왔다.
"그런대로. 너희도 학교 잘 다니고 있지?"
요즘들어 사람의 인생은 참 가지각색이라고 새삼 느껴.
22살의 나이에 결혼준비를 하고 있는 나와, 남자친구랑
파릇파릇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향기를 보면 말이다.
[잘 다니긴 개뿔. 파란이 이번에 또 F학점 나왔잖아.]
"F? 그거 A+랑 맞먹을 정도로 나오기 힘든 점수아냐?"
[놀리지마, 이년아.]
"야 그래도. 파란이가 인천대를 간 것만 해도 기적이야."
파란이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난 진짜 못갈 줄 알았는데.
뭐 사랑의 힘이 대단하긴 한가봐. 내 고등학교 시절을
보는 것 같아 동질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인생은 공부가 다가 아니란다. 시휴오빠도 교과서랑 담 쌓은 인간이야.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가서 원하는 거 배우니까 곧 잘 하잖아."
[파란이는 원하는 거 자체가 없는게 문제지.]
"조금만 더 기다려봐. 언젠가 파란이도 길을 찾을테니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길이 있고,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가게 돼있어.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필사적으로 말야.
"열심히 해라."
***
..
장장 2년간의 기다림이 막을 내리는 날.
결혼할 때까지 쭈욱 데릴사위가 되기로 한
시휴오빠를 포항까지 혼자 마중나와 있던 나였다.
"시휴오빠!!!"
한 두명씩 전역하는 군인들 사이에서 시휴오빠가 보인다.
그럼 문득 얼마전 나란히 입대한 수호오빠와 동혁오빠가 떠올라.
"혼자 간다니까, 뭘 여기까지 오고그래."
들어갈 때완 달리 엄청난 여유를 부리며 걸어나오는 시휴오빠.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말년병장의 포스라는 건가.
"먹어. 집에서 싸왔어."
새벽부터 일어나 만든 도시락을 내밀며 말했다.
그 힘들다던 해병대생활을 무사히 마친 축하선물이랄까.
자살하는 사람도 몇 있다던데.. 이렇게 멀쩡히 제대한
시휴오빠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고마운 마음도 들구.
"수호랑 동혁이는 어느 부대래?"
"둘 다 철원으로 배정받았어. 같은 부대로."
"진짜? 운이 좋네."
결국엔 그럴 거면서, 뭐하러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건지.
둘이 군대에서 사고나 치진 않을까 걱정이다. 정말로.
"안 먹여주면 안 먹지?"
어느새 외면당한 김밥 한개를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그러자 냉큼 받아먹고는 어눌하게 말하는 시휴오빠.
"사공빈은 어떻게 지내냐?"
..물어봐주니 고맙네.
"글쎄.. 나랑도 연락 끊긴지 오래 됐어. 이사간 것 같애."
나름대로 연락 안 끊으려고 노력은 했는데..
사람 일이라는게 마음먹은대로 되면 재미없겠지.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재수한다는 말을 했으니,
아무래도 어딘가에서 대학을 다니는 것 같다.
..
"오늘 월미도 가자."
"월미도?"
"제대했으니.. 지휴한테 가봐야지."
***
..
..까악까악하는 갈매기소리는 언제 들어도 참 좋아.
지휴가 우리곁을 떠난지도 어느덧 4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살아 있었다면.. 지휴도 지금쯤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텐데.
"잘 지내냐? 지휴야."
..아직도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어.
아니, 이건 아마 영원히 씻을 수 없는 흉터같은 걸 거야.
"어머니도 잘 지내시죠?"
하늘에서.. 영원히 지휴를 잊지 말라고 준 흉터.
거세게 치는 파도가, 꼭 우리를 반기는 지휴의 목소리같다.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무지 보고 싶었다고. 심술을 부리듯.
그럼 난 지갑속에서 오랫동안 간직하던 지휴의 증명사진을 꺼내.
이 사진.. 영정사진으로 쓰였던 거라 참 오랜만에 꺼내는 거지.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니까.
"보고싶다.."
보고싶다.. 지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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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사랑해줘, 사랑할테니까◈076.077
알파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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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08 22:38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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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지휴야왜죽어서ㅜㅜ다음편기대되요. 사공빈도빨리다시마리랑친하게지내면좋겠는데ㅜ
다음편 기대할께요
다음편 기대해용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너무재미써요ㅠㅠㅠㅠㅠㅠㅠㅠ
우와......이제 재대햇스니?????? 결혼하겠져????ㅋ
지휴 살아이씀 좋겠는데ㅜ.ㅠ ㅋㅋ 사공빈 다시 나타나씀 좋겠네요^^
지휴는 죽으면 안됫썻는데 ㅠ
아아아아아 요즘엔 길게나와서 너무 조아요-!!!ㅋ
지휴야다시살아나렴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