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같은 거라 짧게 쓰겠습니다. 순간 든 생각이긴 하지만 같이 공유해 보면 좋을 듯 해서요. ^^
1. 민주화에 대한 비하 발언 또한 수용하는 게 민주주의의 관용이고 정수이다.
제 생각은 아니요. 입니다. 어느 사회이든 금기란 있는 법이고, 대개 문화적 금기는 해당 공동체의 가치이자 잣대입니다. 이와 같은 잣대가 훼손될 상황이면 누구나 우려를 표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와같은 논의의 밑바닥까지 들어가면, 결국 개인의 권리와 사회 안정성에 대한 두가지 견해. 자유주의자와 공동체주의자의 가치관 대결이 펼쳐집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자유 범위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대한 논박입니다. 철학가로 따지면 로크의 자유주의와 벤담이나 밀의 공리주의가 맞붙는 부분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여기에 대해 설명할 수준은 못되니 그렇다고만 하겠습니다. ^^;;
여튼, 위의 경우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도 명성이 높은 마이클 센델은 ['권리'와 '권리를 보호하는 선'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하라.] 라고 조언합니다. 이번 전효성씨의 발언과 연관지어 생각한다면, 민주화에한 비하 발언은, 자신이 그 말을 뱉을 수 있도록 사회가 용인한 혹은 합의한 민주적 가치에 대한 부정입니다. 즉, 민주주의에 근거한 개인의 발언은 최소한 민주적 가치에 어긋나지 않는 범주 내에서 용인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이와 같은 잣대가 개인의 혐오적 발언에 대한 금지나 처벌을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가 존립할 수 있는 제1원칙이니까요. 다만, 그 범주가 개인의 틀을 넘어선, 사회적 무리지음에 대해서는 단호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민주주의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 한들, 인종차별주의자의 가두 행진이나 혹은 그들이 공공재라 할 수 있는 공중파에 대한 발언권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이에 대한 극명한 잠언으로 프랑스 속담을 인용할 수 있는데요, '엥똘레랑스'의 '똘레랑스'는 '엥똘레랑스'이다. 다시 말해, 무관용에 대한 관용은 무관용을 낳는다는 걸 서로 인지해야 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적 장치, 어느 사회나 그렇겠습니다만,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주어진 천부적 가치로서 옛부터 실재 했던 게 아니라, 우리의 앞선 세대들이 피로서 투쟁한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에 대한 부정이나 비하는 개인이 나고 자라난 토양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진배 없죠. 저를 포함한 젊은 세대들은 특히나 역사에 약한데, ‘시장원리로서의 교육, 능률의 교육, 경쟁의 교육’을 신조한 5.31 교육 개혁안의 공표가 95년도의 일인 걸 감안하면, 이 스무해에 대한 부채가 지금 아랫세대의 공공선에 대한 무지로 돌아오는 듯 합니다.
2. 일베가 지금 사회적으로 거론되는 까닭.
여론이 한쪽으로 몰리면 어떻게든 반발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대다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불거져 오는 일베에 대한 경각심이나 경멸은 지난 5년간 이명박 정권이 가져온 '종북 낙인'에 대한 급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난 10년간 민주 정부에서는 지금만큼 온라인 상으로 견해 간의 대립이 격해지진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 상황을 보면, 어찌되었건 당시 정치권이 집단 간의 이해 다툼에서 나름 완충지대 역할을 해온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5년 동안 온라인 뿐만 아니라 촛불 집회를 비롯한 오프라인의 여론이 무참히 억압되어 왔고 이게 사회적으로 구성원 간에 '불통'이란 개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특히나 진보 계층은 독이 잔뜩 오를 때로 오른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진보의 가치인 '이념의 다양성'을 보장하기엔 지쳐있다고나 할까요. (물론, 윗 문단의 전체 가치에 대한 비하를 제외하고) 그래서 오히려 걱정이 좀 됩니다. 니체의 말 '괴물과 싸우며 심연을 들여다 본 자, 괴물이 된다.'이 지금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가 됩니다.
이에 대해, 시사in의 문정우 기자는 '블루 드레스'란 책을 소개하며, '우분투 보토' 정신을 강조했는데요, 이 말의 뜻은 내 삶은 너를 통해서만 가치가 있다는 아프리카 특유의 사고방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철저한 자기반성과 절제입니다. 남아공을 인종 해방으로 이끌었던 아프리카민족회의는 극단적 방식을 혐오해, '알몸이 드러날까봐 바지춤을 붙들고 싸우는 조직'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30년을 활동했습니다. 심지어 아프리카민족회의 지도자를 암살하기 침투한 정부 요원에 대한 고문을 철저히 금지했습니다. 기자의 말로는, 형법과 유사한 행동 강령을 만들어 내부 범죄를 처벌한 세계 유일의 투쟁 조직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라는 큰 질문을 항상 머릿속에 두고 개인이 아니라, 그러한 개인을 만드는 시스템과 투쟁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반역사적 행위의 일상화에 저 역시 지쳐갑니다만, 이와 같은 와중에도 분노와 경멸보다는 이해와 존중으로 상대를 대하는 방법을 스스로 익히는 게 지금 진보 계층이 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이번 5년은 정말 수양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서로 다독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진보의 길은 항상 ‘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요구하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의 양심까지 지켜줄 수 있는 도량이 매번 요구됩니다.
미국 진보 조직가의 아버지 사울 D. 알린스키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노여움은 순발력을 동원하는 자극제이지만 2~3년 안에 소진한다. 이타심도 감정의 소모이기에 4~5년 안에 소진된다. 정치적 전망과 연결된 이념은 한 15년 정도이다. 그보다 오래 행동의 생기를 연장하려면 종교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종교의 선동은 교조주의라는 사슬로 사람을 묶어 버린다. 결국 유일하고 확고한 진리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자기들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올바른 결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 그 단순한 믿음이 새로운 감동을 자아내며 원동이 된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함께 열심히 ‘사람’을 지치지 말고 믿어 봅시다. 부처 핸접!
ps. 에구 쓰다보니 결국 문소린지 저도 모르겠네요;; 결론이 흐지부지 합니다. 개떡같이 말씀드렸지만 찰떡같이 알아들어주십사... _(_.,_)_
첫댓글 맞는말씀인데...이해와 존중은 불가능할듯해요ㅠㅠ
일베의 용도란 .. 대신 총알 맞아 주기 .. 일까나 ~ 일베라고 쓰고 .. 존재 자체가 .. 졸라 쪽팔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