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 기형도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길래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있다.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 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보아라, 쉬운 믿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다.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뿐, 건너가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내 어찌 모를것인가.
내 생 뒤에도 남아있을 망가진 꿈들, 환멸의 구름들,
그 불안한 발자국 소리에 괴로워할 나의 죽음들.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있는가.
곧이어 몹쓸 어둠이 걷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오, 네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