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 병풍도 ‘맨드라미축제’
구릉지에 형형색색 맨드라미 ‘물결’
30품종 276만포기 색동옷 입은듯
주민 스스로 땅 내놓고 힘합쳐 조성
7~8월 모종 심어 이맘때 흐드러져
날씨 선선해 뭍사람들 나들이 제격
‘2022 찾아가고 싶은 가을 섬’ 선정
가을철 전남 신안 병풍도의 맨드라미 공원에 가면 한편에는 다채로운 빛깔의 맨드라미를, 다른 한편에는 쪽빛 바다를 끼고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갈수록 짧아지는 가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기 섭섭하다면? 계절을 만끽하러 섬으로 떠나자. 높고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바다와 붉은 꽃이 넘실대는 곳이라면 더욱 좋다. 낭만이 가득한 섬 꽃 여행이다.
온몸으로 계절을 즐기기에 섬만 한 곳이 또 있을까. 하늘·땅·바다를 한눈에 담아 감상하며 가을이 왔음을 오감으로 느끼기에 제격이다. 여기에 정취를 더해줄 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10월의 자연을 누리러 맨드라미 섬으로 불리는 전남 신안 병풍도에 갔다.
증도면에 속하는 병풍도는 인구가 300명을 넘지 않는 작은 갯마을이다. 주민은 대개 농사를 짓거나 염전에서 일한다. 놀거리·즐길거리가 마땅치 않아 그동안은 여행지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변화를 맞은 건 2019년부터다. 11.5㏊ 규모의 맨드라미공원이 조성된 것. 야트막한 구릉지에 빨강·노랑·분홍·주황 등 형형색색 맨드라미가 심겼다. 이에 맞춰 집도 빨간 지붕을 입었다. 쪽빛 바다와 붉은빛 꽃이 조화를 이루자 뭍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병풍도에 심긴 맨드라미는 닭 볏을 닮은 재래종과 달리 색과 모양이 다양하다.(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 프레시룩·캐슬·페더·기모노 맨드라미.
닭 볏을 닮은 맨드라미는 시골집 안뜰이나 담장 밑에 자라는 흔하디 흔한 꽃이다. 보통의 꽃과는 다른 특이한 생김새 때문인지 관상용으로 그리 인기가 높지 않다. 병풍도에서 맨드라미가 주인공이 된 데는 사연이 있다.
10여년 전 맨드라미 효능을 활용해 소금을 만들려는 이가 있었다. 자투리땅마다 꽃을 재배하고 연구했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결국 계획은 엎어지고 여기저기 화단만 흔적처럼 남았다.
한동안 잊힌 채 홀로 피고 지던 꽃은 주민이 마을환경 개선에 나서면서 쓸모를 되찾았다. 때마침 섬마다 꽃을 주제로 축제를 열었고 병풍도는 맨드라미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다 함께 힘을 모아 버려둔 땅을 개간했고 좀더 화려한 촛불 맨드라미를 더해 지금에 이르렀다. 재능 기부 형태로 마을 가꾸기에 손을 보탠 김을배 전 신안군농업기술센터 소장(72)은 “마을주민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땅을 내놓고 울력해 꽃밭을 만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주민 스스로 연 마을행사는 이제 어엿한 전국 축제로 발돋움했다. 본래 맨드라미는 여름꽃이지만 축제가 열리는 10월 이맘때 만발하도록 일부러 7∼8월에 모종을 심는다. 무더위를 피해 나들이하기 좋은 시기를 겨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올해는 행정안전부와 한국섬진흥원이 꼽은 ‘2022 찾아가고 싶은 가을 섬’ 9곳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원에 심긴 맨드라미는 30여품종 276만포기이다. 색깔별로 줄지어 심긴 화단 사잇길을 걷다보면 그야말로 ‘꽃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군데군데 자리한 ‘신안 1004섬’을 상징하는 흰색 천사 조각상과 박공지붕 쉼터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돋운다. 완만히 경사진 언덕이지만 길이 단정하게 정비된 덕에 노약자는 물론 휠체어 사용자도 오가기에 편하다.
남편과 함께 광주광역시에서 첫차를 타고 왔다는 김선경씨(67)는 “날씨가 선선해 여행하기에 딱 좋다”면서 “북적이지 않아 여유롭게 꽃밭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노란색 해바라기, 보라색 아스타, 흰색 메밀꽃, 분홍색 코스모스가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서로 다른 색과 모양이 어우러져 풍광을 다채롭게 변주한다.
한창 걷고 나면 슬슬 배가 고프기 마련이다. 축제기간에는 한시적으로 부녀회가 먹거리장터를 운영한다. 지역특산품인 낙지를 인심 좋게 넣어 조리한 낙지탕탕이와 낙지볶음·해산물라면이 입맛을 당긴다. 맨드라미 빵과 에이드로 입가심까지 하고 나면 속이 든든하다. 평소에는 마을 안에 따로 식당이 없으니 입도하기 전에 주전부리를 챙겨오는 것이 좋다.
맨드라미는 개화기간이 길다. 평균 60일에서 최장 90일까지 핀다. 병풍도에선 8월부터 개화가 시작됐고 아스타·코스모스 같은 가을꽃도 한아름이니 축제가 지나서도 한동안은 오색 빛깔 꽃밭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짧은 가을, 섬에서 꽃과 함께 긴긴 추억을 만들어보자.
신안=지유리, 사진=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