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공산이씨 홈페이지 글
안악사건에관하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
이승수(李承洙) 字 承吉. (이승길) 안악사건 주도.
안악은 황해도 북서부 地名
15년형 옥고.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독립유공자 3등급). 공주이씨 홈페이지 위대한 선조
1910년 11월 안명근(安明根)이 서간도(西間島)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자금을 모집하다가 황해도 신천지방에서 관련 인사 160명과 함께 검거된 사건.
안명근은 안중근 의사의 4촌
경과
안명근은 한일합방이 강제로 체결되자 서간도로 이주하였다. 그 곳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무관학교를 설립하고자 1910년 11월 입국하였다.
우선 황해도 부호들을 방문, 이원식(李元植)·신효석(申孝錫)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냈다. 신천 발산(鉢山)의 민병찬·민영설 등에게 보조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소지하고 있던 권총으로 위협하며 ‘조국광복의 큰 뜻을 모르는 자’라고 질책한 뒤 평양으로 떠났다.
민병찬·민영설 등은 즉시 재령헌병대에 밀고해 안명근은 1910년 12월 평양역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서울 경무총감부로 압송되었다
일제는 이 사건을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 암살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한 것으로 날조하여 관련인사 160여 명을 일제히 검거하였다. 이 가운데 김홍량(金鴻亮)·김구(金九)·최명식(崔明植)·도인권(都寅權)·김용제(金庸濟) 등은 안악에 있는 양산학교(楊山學校)와 면학회(勉學會)에서 애국적인 문화운동에 힘썼다. 일제는 이들에게 모진 고문을 하여 사건을 더욱 확대하고 날조시켜 안명근 이하 16명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1911년 8월에 있은 공판에서 안명근은 종신형, 김구와 김홍량·배경진·원행섭·이승길·박만준 등은 징역 15년, 도인권은 징역 10년, 김용제, 최명식 등은 징역 7년, 최익형(崔益馨), 고봉수(高奉守) 등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조선총독부는 안중근(安重根)의 사촌인 안명근(安明根)이 1910년 12월에 무관학교 설립을 위한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사건을 계기로 황해도 북서부의 안악(安岳) 지방을 중심으로 160여명의 민족운동가들을 검거하여 그 가운데 김구(金九)·김홍량(金鴻亮)·한순직(韓淳稷)·배경진(裵敬鎭) 등 18명을 내란미수와 모살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한 이른바 ‘안악사건’을 일으켰다. 또한 1911년 1월에는 독립군기지 창건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양기탁(梁起鐸)·임치정(林蚩正)·주진수(朱鎭洙) 등 신민회의 간부로 활동하던 16명을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을 총독 암살 미수사건으로 몰아서 관서(關西) 지방 전체로 탄압을 확대해 그해 9월에는 유동열(柳東說)·윤치호(尹致昊)·이승훈(李昇薰)·이동휘(李東輝) 등 6백여 명의 민족운동가들을 체포하여 구금하였다. 이상 안악사건의 개요를 조사해보았습니다
첫댓글 이명길은 공주공산이씨 공숙공파 58세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