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옥 교수의 한국선 이야기 2. 선승 태몽
선승의 탄생 암시하는 태몽 다양 민속 태몽 수용, 불보살 뜻 계시 금빛새 떨어뜨린 오색알 품기도 선승 부모와 주민 같은 꿈꾸기도 |
태몽은 태어날 아기의 과거와 현재, 미래 사연을 짐작하게 하니 부모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되어왔다. 그래서 태몽과 관련된 민속이 다양하다. 신화나 전설, 고소설 등은 주인공의 품성과 활약을 암시하려고 태몽을 활용한다.
선승의 태몽 중에는 우리나라 민속 태몽을 그대로 수용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불보살의 뜻을 계시하는 경우도 있다. 아기 선승이 전생의 어떤 존재의 환생임을 암시하는 경우가 특히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는데, 둘로 나눠진다. 먼저 어머니 아버지의 간절한 발원으로 선승이 잉태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경우이다. 다음으로 호승(胡僧)이나 범승(梵僧)이 선승의 어머니를 찾아와 아들로 태어나기를 서원하는 경우다.
선승 태몽은 선승이 앞으로 어떤 특별한 마음을 일으켜 출가하기에 이르는가를 암시해주기 때문에 소중하다. 선승 태몽은 한 분의 선승이 태어나 위대한 깨달음에 이르고 중생제도를 완성한 뒤 열반에 들기까지 부모나 주위 분들의 지극한 정성과 축원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불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는 귀한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1. 민속 태몽의 수용
마을 단위로 한 생을 꾸려가던 우리 선조들은 자기 집과 마을에 큰 인물이 나기를 기다렸다. 큰 인물 혹은 영웅이 마을을 빛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큰 인물을 낳게 해줄 ‘큰 꿈’에 환호한 것은 당연했다. 민속에서 영물로 통하는 용, 호랑이, 말, 이무기 등 동물이나 해와 달, 별, 구슬 등이 등장하는 태몽은 ‘큰 꿈’이었다. 선승 태몽은 우리 민속에서 마을이 함께 기대했던 그 큰 꿈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원오(圓悟, 1215; 출생년도만 밝힘)국사의 부모는 금색 새가 떨어뜨린 오색찬란한 알을 가슴으로 품는 태몽을 꾸는데, 똑같은 꿈을 마을 사람이 함께 꾸었다. 운봉(雲峯, 1889)선사의 어머니는 꿈속에서 오색찬란한 빛을 보고 기뻐했는데, 아기가 탄생할 무렵 집에서 한 줄기 서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목격하고 감동한다. 진묵(震?, 1562)선사의 고향 불거촌 사람들은 선사가 태어날 때 빛의 위력으로 초목이 3년 동안 시드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선승의 부모뿐 아니라 마을 사람이 함께 태몽을 꾸거나 경험하는 현상에서 선승 태몽과 민속 태몽의 긴밀성을 확인한다.
해, 달, 별, 구슬, 용 등이 태몽소가 되는 선승 태몽은 민속 태몽과 가장 유사한 경우다. 해는 어머니의 배를 비춰서 맑고 강력한 정기를 내려주거나(일연, 보조, 무학, 원각), 어머니 품 안으로 깃든다(학린, 원증, 편양). 달도 방 안으로 들어와 어머니 배를 비추거나(혜초) 어머니 품 안으로 들어온다(송파, 보우). 별도 품 안으로 들어온다(원효, 초의, 영파). 선승의 어머니가 꿈에서 구슬을 머금고 품는 경우는 더 많다. 영롱한 빛을 내는 구슬은 해와 달과 별의 정기를 압축하여 담고 있는 것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어머니는 신령한 사람이나 새, 쥐로부터 구슬을 전달받는다(묘각, 동진, 풍담, 경성, 설봉, 하의, 도선). 구하(九河, 1872) 스님의 어머니는 여의주를 문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용꿈은 ‘큰 꿈’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다. 원응(圓應, 1051), 의천(義天, 1055)과 용암(龍巖, 1783)의 어머니들은 용이 품 안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었다. 그 외 무용(無用, 1651)의 어머니는 누런 무늬를 띤 커다란 짐승이 하늘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 집을 감싸고 도는 꿈을 꾸었고, 나옹(懶翁, 1320)의 어머니는 황금빛 새 한 마리가 떨어뜨린 알을 품는 꿈을 꾸었다. 벽하(碧霞, 1676)의 어머니는 푸른 새들이 어깨 위로 모여들고 푸른 노을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함월(涵月, 1691)의 어머니는 큰 물고기를 보고 잉태하는 꿈을 꾸었다. 이 모두 민속에서 ‘큰 꿈’으로 받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속의 ‘큰 인물’인 영웅과 다를 바 없는 선승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선승 태몽이 민속이나 서사문학의 태몽에 가장 근접한 사례를 도선(道詵, 827)의 경우가 보여준다. 영암 출신인 도선은 깨달은 뒤 35여 년 동안 광양 옥룡사에 주석하며 수백 명의 제자들을 지도한 덕 높은 선승이었다. 그런 그가 음양풍수설을 설파하는 도사인 것처럼 알려지니 선승으로서의 본모습이 가려졌다. 그의 태몽에서도 그런 변화가 확인된다.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 증성혜등 탑비문〉(1150)은 도선의 태몽을 전하는 가장 이른 시기 자료 중의 하나다. “어머니 강씨의 꿈에 어떤 사람이 명주(明珠) 한 개를 건네주면서 삼키게 했다. 이로 인하여 임신하게 되었다. 만삭이 되도록 오신채와 누린내 나는 육류는 일체 먹지 아니하고 오직 독경과 염불로써 불사에 지극하였다. 태어난 아이는 다른 아이와 달랐다.” 이것은 ‘구슬 받기’ 큰 태몽이다. 태몽이 선승으로서의 품성이나 행동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반면 〈동국여지승람〉(1481)부터는 소위 영웅 서사의 ‘기이한 탄생’에 해당하는 화소가 압도한다. 즉, “마당에 한 자나 되는 오이가 열렸는데 최씨 딸이 그것을 몰래 따먹자 기분이 몹시 상쾌해졌다. 그로 인해 잉태가 되었고 결국 아들을 낳았다. 부모가 인도(人道)를 경유하지 않고 출생한 아이라며 숲속에 버렸다. 며칠 뒤 딸이 가보니 비둘기가 날개로 아기를 덮어주고 있었다. 기특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다. 마침내 고승이 되었다.”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은 “영암 최씨 집안의 처녀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상류 쪽에서 오이 하나가 떠내려 왔다. 배가 고팠던 처녀는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들어가 그것을 건져 먹었다.”고 적고 비슷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내용은 〈영암 도갑사 도선 수미 양대사비문〉(1653)과 〈동사열전〉(1820-1896) 등에서 비슷하게 나온다.
요컨대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 증성혜등 탑비문〉만이 구슬을 삼켜서 잉태하는 태몽을 기록했고 나머지 문헌들은 꿈이 아닌 현실에서 처녀가 우물 속에 떠 있거나 물에 떠내려오는 오이를 먹고 잉태하여 아이를 낳았다가 버렸고 비둘기들이 보호해주는 걸 보고 다시 데려와 길렀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서사문학 쪽에서 말하는 ‘비정상적 탄생’에다 ‘버려지는 아이’ 모티프가 이어진 것이다. 영암의 이웃 화순 출신인 진각(眞覺, 1178)국사의 탄생담도 이와 동일하다는 것을 참작할 때 도선의 이 탄생담은 이 지역 사람들 사이에 전승되던 이야기를 가져온 것일 듯하다. 이것은 영웅이 비정상적으로 잉태되고 어려서 버림받는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위대해지는 영웅담과 다르지 않다. 영웅이란 탁월한 능력을 갖춘 존재로 세속의 욕망을 최고로 충족시키는 데 주역이 된다. 반면 선승은 탁월성에서 영웅과 유사하지만 세속 욕망을 충족하는 게 아니라 그 욕망을 덜어내고 세속의 해방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구분되어야 한다. 민속 태몽이나 서사문학의 태몽과 유사한 선승 태몽을 불교적 관점에서 재조정하려 했을 때, 마야부인의 태몽과 부처님 탄생담을 수용했을 것이다.
도선국사 진영.
2. 마야부인의 태몽과 부처님 탄생담의 수용
도솔천 호명보살은 일체중생을 모두 제도하기 위해서는 사바세계로 가야함을 알고 길을 떠난다. 그는 정반왕과 마야부인을 부모로 삼으면 좋을 것 같아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간다. 그 때 마야부인은 코끼리 꿈을 꾼다. 상아를 금으로 단장한 코끼리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온다. 그로부터 잉태의 징후가 나타나고 마침내 오른쪽 겨드랑이로 부처님을 출산한다. 이 태몽과 탄생담을 통해서,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스러워하니 내 마땅히 그를 편안하게 하리라”는 아기 부처님의 첫 말씀이 호명보살의 위대한 서원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게 된다.
선승 태몽이 민속 태몽에 뿌리를 둔 것은 선승이 중생세계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선승은 중생이어서도 안 되기에 선승 태몽은 부처님 태몽을 지향한다. 진관(眞觀, 912)선사의 태몽을 담은 〈산청 지곡사 진관선사 오공탑비문〉이 이 사정을 알려준다. “어머니 유씨는 칠성(七星)의 상서로운 기운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잉태를 하여 겨드랑이 아래로 선사를 출산했다. 선사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으니 귀는 길어서 어깨에 이르고 손을 드리우면 무릎을 지나갔다. 오신채의 냄새를 맡지 않았다. 화택(火宅, 삼계의 괴로운 곳)에 있었으나 마음은 진롱(塵籠, 중생이 갇혀있는 세계)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여기서 겨드랑이 밑으로 탄생한 것은 부처님 탄생소를 명백하게 수용한 것이다. 귀와 손이 길고 오신채 냄새도 맡지 않았다는 것, 세속 밖으로 마음을 향한 것 등도 부처님의 경우를 연상시킨다. 〈금구 금산사 혜덕왕사 진응탑비문〉은 혜덕(慧德, 1038)이 부처님의 감응(感應)을 입어 탄강했다고 강조한다.
선승 태몽이 부처님 태몽에 다가가는 또 다른 길은, 갓 난 선승으로 하여금 영웅이 겪는 것과는 본질이 다른 역경계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보조(普照, 1158)국사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 백약이 무효였다. 위대한 정기를 내려 받아 왕성한 생명력을 보이는 영웅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보조국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병을 낫게만 해주시면 출가하여 부처님을 섬기도록 하겠다는 서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청하 보경사 원진국사 비문〉은 세 살이 되기 전에 부모를 모두 잃는 원진(圓眞, 1171)국사의 처지를 부각시켰고, 〈보은 법주사 자정국존 보명탑비문〉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어머니를 잃는 자정국존(慈淨國尊, 1240)의 상태를 강조했다. 이로써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를 잃은 부처님의 처지와 뚜렷이 연결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심각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 선승의 경우 어머니의 이른 죽음은 어린 선승의 삶이 세속적으로 지속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출가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런 점은 가족관계, 특히 모자관계가 중시되는 우리 문화의 특징을 반영한 것일 테다. 다음 차례에서 이 점을 고려하면서 선승 태몽의 본질과 의의를 공부해보도록 하겠다.
[출처] 이강옥 교수의 한국선 이야기 2. 선승 태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