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산 언저리로
삼월 첫째 화요일 아침나절은 소소한 일들이 기다렸다. 한 달 한 번 다녀오는 동네 내과 검진일이다. 혈당이 안정적으로 관리됨에도 코가 꿴 주치의에게 처방전을 받아 약을 복용하고 있다. 약국을 둘러 은행 창구를 찾은 볼 일까지 해결하고는 용지호수 어울림도서관으로 향했다. 스무날 전 빌려와 읽은 다섯 권을 반납하고 다음 책은 후일 빌리기로 하고 그 길로 자연학교로 갔다.
공복 상태에서 병원을 찾아가야 해 건너뛴 아침 식사는 중앙동 상가에서 국밥으로 때웠다. 병원과 은행에 이어 도서관까지 둘렀더니 아침나절이 거의 지났다. 불모산동 저수지로 나가 봄이 오는 기운을 받아보려고 17번 버스를 타고 도심을 관통해 남산동 버스터미널을 지나 불모산동 종점으로 갔다. 차창 밖으로 비친 창원대로 벚나무는 가지마다 꽃망울이 부푸는 기색이 역력했다.
불모산동 저수지 아래에 살던 원주민들은 도시 개발 밑그림 따라 보상받고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다. 지금은 저수지 안쪽 기축골만이 몇몇 가구가 터를 지키고 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창원으로 이사 왔던 초기에는 봄날이면 불모산이나 용제봉 기슭으로 들어 머위나 취나물을 마련해 나가기도 했다. 근래 창원터널이 혼잡해 불모산터널이 하나 더 뚫리면서 생태계가 많이 달라졌다.
불모산동 저수지는 농업용수 공급의 기능을 상실하고 공업용수로 쓰일 듯했다. 불모산동 저수지 안쪽 계단식 논에서 벼를 경작했던 농지는 텃밭이나 과수원으로 잠식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여러 세대 농장주들은 주중이든 주말에 여가를 내서 소일거리로 지내기 좋을 듯했다. 나는 어디에도 얽매임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울타리 너머로 경작지 구경만으로도 만족한다.
계곡물이 흘러오는 저수지 가장자리 무성한 갯버들은 수액이 오르면선 연두색이 비치길 시작했다. 불모산이나 용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로 들지 않고 저수지 가장자리를 맴돌면서 마른 검불을 헤집어 움이 돋는 쑥을 캐 모았다. 농약 오염이나 매연이나 분진으로부터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청정지역 쑥이었다. 일광욕하듯 봄볕을 쬐면서 허리를 굽혔다 펴길 반복하면서 쑥을 캤다.
불모산동 저수지 일대에서 쑥을 캐다가 전기연구원 담장을 따라 성주사 가는 산마루를 넘어갔다. 성주사 산문으로 가는 산기슭 조경수를 가꾸는 농원의 언덕에 쑥이 보여 몇 줌 캐 보탰다. 성주사 바깥에는 진해구민들의 상수원으로 삼는 수원지가 드러났다. 불모산 정상에서부터 골짜기로 흘러 모여든 계곡물은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오롯이 가두어져 소중한 상수원으로 삼았다.
성주사 수원지 바깥에는 여러 해에 걸쳐 시공하는 제2 안민터널이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안민터널과 제2 안민터널 사이 천선동에는 몇몇 공장이 들어서 가동 중이었다. 천선동에 살던 원주민들이 떠나기 전 조상 대대로 당제를 지냈던 당산나무와 돌탑의 흔적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성주사가 개창되면서 외래 불교문화와 기존 무속 신앙이 오래도록 공존했던 천선동이었다.
개울가 고목 당나무 곁에는 천선동 유허비가 세워져 있었다. 계획도시 개발의 뒤안길에 정든 마을을 떠났던 원주민들의 허전함과 상실감은 빗돌에 새겨져 있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당산나무 주변을 서성이다가 움이 돋아 자라는 쑥을 캤다. 아까 먼저 캔 쑥과 함께 검불을 가려 정리했더니 양이 제법 되어 두 봉지에 나누어 담았다. 한 봉지는 귀로에 친구에게 건넬 참이었다.
배낭을 추슬러 짊어지고 안민터널 입구로 나가 진해에서 오는 버스를 탔다. 시내를 관통해 시청 광장을 돌아 반송시장 할인매장으로 갔다. 수산물 코너에 도다리는 보이질 않아 뭘 살까 망설여졌다. 조기 한 무더기와 선도가 좋아 보이는 전복을 집었다. 아파트단지로 들면서 이웃 동에 사는 꽃대감 친구에게 전화를 넣었다. 적은 양이지만 불모산 언저리서 캔 쑥을 받아 가라고 했다. 23.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