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지절에 마음을 정갈하게 닦을 작품 한 편을 선별했다. 따가운 햇볕이 아닌, 햇무리는 해의 둘레에 둥글게 나타나는 흰빛의 테를 말한다. 달무리와 같은 의미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길을 걷다 마주친 햇무리 그 속의 태양이 아무리 뜨거운 유월의 태양이라도 그 속에 갇히고 싶은 시인의 마음. 살고 싶은 네 눈동자라고 표현한 그 시인의 마음속에서 이 여름을 이겨낼 방법이 떠오른다.
세상 만물의 이치는 모두 같을 것이다.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에서 삶은 재창조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햇무리 사이로 노을이 지고 그 노을을 품에 안고 한없이 가벼워지는 내 숨결을 느껴보는 칠월이 되면 좋을 것이다. 연암사 유월 산길을 걷고 싶다. 아주 가볍게. 햇무리가 희붐하게 지고 있다.
오금에서 오는 건지 더 멀리서 오는 건지
가산으로 가는 건지 더 먼 데 가는 건지
들렀다 가마 했는데, 빈 우산만
활짝 웃고
너무 이른 것만 같고 이미 늦은 것만 같고
오금이나 가산에서 기다리는 것만 같고
소나기, 거의 다 온 것만 같고
다시 올 것만 같고
-『김포신문』2024.07.24. -
〈정두섭 시인〉
△ 인천, 신라문학 대상, 경남 신문 신춘문예, 중봉문학상 대상, 2024시집 (마릴린 목련) 출간
사람을 태우거나 내리기 위한 잠시 멈추는 장소를 정류장이라고 한다. 종점까지 가기 위한, 혹은 다음 정류장까지 가기 위한 장소. 문득 우리가 사는 삶의 지금 이 지점이 정류장인지 종점인지 다음 정류장까지 가기 위한 잠시 멈춤인지 궁금해진다. 정두섭 시인의 작품은 해답이 없다.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특기다. 애초부터 결론이 없는 것인지, 알아서 결론을 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특유의 해학 속에 숨긴 삶의 사변화된 모습과 군상이 때론 나와 같아서 곤궁해진다. 다 온 것만 같은데, 다시 올 것만 같은 것이 어쩌면 인생 아닐까 싶다. 불안과 기대, 양면을 가진 동전을 던지며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