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찬영의 방
“아! 아파 기지배야!”
“그러게 승질을 못 죽여!”
“개#$%^%&#@”
심하게 상처가 난 찬영의 손과 팔을 승하가 매우 서툴게 치료해 주고 있다. 승하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기뻐 보인다.
“술 취한 애들 상대해서 뭐가 남는다고. 니는 연예인 되겠다는 애가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 어떡할라 그러냐? 나중에 악플러 생기면 아주 다 쫓아댕기겄네.”
“응 쫓아 댕길거야.”
“헐 미친놈.”
“이정아 욕하면.”
순간 승하의 얼굴이 슬퍼졌다.
“그 언닌 되게 좋겠다. 자기 욕한다고 때려주는 사람도 있고….”
“아오 생각할수록 열 받네. !@##!@$^%$”
승하는 묘한 표정으로 길길이 욕하는 찬영을 쳐다본다. 그리곤 일어나면서 씁쓸하게 말한다.
“내일 메론 빙수나 사줘. 니 약 발라줬으니까. 나 간다.”
찬영은 그제야 옆에 승하가 있는 걸 알았다는 듯 승하와 똑같이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야 넌 내가 왜 좋냐.”
“그러니까. 나도 생각할수록 열 받는다. 갈게.”
쾅 닫혀지는 방문을 꽤나 한참 바라보는 찬영. 무의미하게 피식 웃는다.
#11 서울의 대형 찜질방.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사이좋게 양머리를 한 동자와 지민, 그리고 아역스타 신동아.
동아는 앞에 각종 찜질방 음식을 쌓아놓고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신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형아 형아 내가 걔한테 뭐라 그랬는지 알아? 나는 클래스가 달라. 낄낄낄 완전 웃기지 형아?? 하하하”
입 안의 각종 음식물을 사방에 튀기며, 지민의 품에 안겨 신나게 영웅담을 늘어놓는 동아. 시상식 때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진짜 아홉 살배기 꼬마아이의 모습이다.
“하하하하, 신동아 그런 표현도 알어? 야 너 너무 물든 거 아니냐.”
동아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시원하게 웃어재끼는 지민. 하지만 누가 봐도 지금 지민은, 옆에서 멍 때리고 있는 여자 친구에게 온 정신이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의 영웅담이 잠시 멈춘 틈을 타, 지민은 동자에게 걱정스레 말을 건넨다.
“왜 그래, 동자야. 어디 아파? 표정이 안 좋아.”
“내 표정이 왜.”
“몸 안 좋니?”
“아냐. 동아야, 누나 이제 가야겠다. 학원 늦겠다.”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듯, 동자는 급하게 일어난다.
“아이쒸. 아직 나 13탄밖에 얘기 안했는데. 오늘 형아한테 21탄까지 말할 거였는데! 누나 혼자 가.”
잔뜩 짜증이 든 동아를 지민은 번쩍 안아 목마를 태워준다.
“이야~ 우리 꼬맹이 살 많이 쪘네! 너 옆으로만 늘리면 안된다. 형아처럼 키 큰 훈남 되려면 채소도 많이 먹어야 돼.”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픈 동자는 잰걸음으로 여탕을 향한다. 옛날 같았으면 너무도 사랑스러웠을 저 둘의 대화. 하지만 이제는 아무 감정도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
#12 이촌동 지민의 집
“서현이가 이렇게 예쁘게 자랐구나. 어쩜 엄마를 쏙 닮았네.”
“그러니깐 엄마, 한지민 고게 유학만 갔어도 벌써 우리 집 며느리였을 텐데.”
“곱다 고와.”
거실에는 지민 엄마와 지연이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누가 보아도 감탄할 만한 고운 외모의 여자는 수줍게 칭찬을 받고 있다.
“그래, 이번에는 아예 들어온 거지?”
“엄마, 몇 번을 물어봐.”
“아니 또 나갈까봐 불안해서.”
“네에 이제 안나가요. 한국에서 대학교 가려고요. 지민 오빠 몸은 좀 어때요?”
“수술은 잘 됐어. 관리를 잘 해야 하는 데, 이눔자식 오늘도 꼭두새벽부터 나가서, 전화도 안 받고 하는 게, 또 늦게 들어올 거 같아.”
“아…. 옥동자…? 그 분 아직도 만나나요?”
“에휴…. 말도 마, 서현아. 아주 갔다 오더니 더 심해진 것 같다. 그 기집애 떼어 놓으려고 보낸 것도 있는데 이건 무슨 더 애절해 하니 원….”
“맞아. 너가 좀 떼어 줘라.”
순간 서현의 눈에 차가운 무언가가 스쳐간다. 얌전히 포개어 놓은 두 손에도 살짝 힘이 들어간다.
“네에…….”
“맞다, 이번에 서현이 아버지 대한언론인상 후보에 오르셨던데, 서현이네는 집에 아주 경사가 끊이질 않네.”
“아직 받으신 게 아닌데요 뭘.”
“에이 당연히 이 사장님이 받지. 다 죽어가는 하늘일보를 그렇게 살려놨는데. 그래, 조만간 식구들 같이 모여서 식사 한 끼 하자.”
“네, 아주머니.”
“그나저나 서현이 오늘 지민이 보려고 왔을 텐데, 못봐서 어떡하니.”
“앞으로 자주 보면 되죠.”
“그래, 내가 지민이 들어오자마자 서현이 과외 이야기 해볼게. 지민이 이 자식 보기는 맹해도 수학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해요. 괜히 수학교육과가 아니야.”
지민 엄마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서현을 붙잡고 이야기꽃 피우기를 멈추질 않는다.
#13 강남의 작은 보습학원 앞.
방금 찜질방을 다녀와서 그런지 한결 뽀얘진 동자와 지민이 학원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들어오지 말라니깐.”
“왜애. 내가 신동아를 어떻게 떼고 온건 데!”
“다음에. 다음에 들어와.”
“아 나 선생님들 보고 싶어. 원장쌤이랑 도도쌤이랑. 아 그 복사기 아저씨는 잘 계시지?”
“야 한지민.”
말을 내뱉은 동자는 순간 지민의 얼굴을 살핀다. 아니나 다를까, 파래진 지민의 얼굴. ‘야.한.지.민.’…. 지민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네 글자이다. 마치 주문이라도 걸린 듯 지민은, 주저리주저리 하던 말을 멈춘다. 갑자기 올스탑 된 지민의 모습에 오히려 동자가 더 놀랐다. 어쩜, 그대로다. 이 아이는.
"다, 다음에. 정말 데려갈게. 오늘은 이만 가."
“이따,”
“이따 데릴러 오지 말구. 오늘 도도선생님이랑 야식 먹기로 했어.”
“나도,”
“도도쌤 사적인 얘기 할 거 같아. 너 있음 어색할거야.”
내가 미쳤지. 유치하게 왜이래.
뻘쭘하게 멍하니 서있는 지민을 뒤로한 채, 동자는 학원 문을 매우 거칠게 열고 들어간다.
“연락할게!”
뒤도 돌아보지 않는 동자에게 소리치는 지민의 목소리가 잠겼다.
지민은 그렇게 한참이나 힘없이 학원 앞에 서있었다.
첫댓글 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