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못해서 억울한 것이 있다면, 술 못마시는 것과 멀미하는 것
안해서 잘한 것이 있다면, 골프(신부님들 골프치는 것을 가톨릭신문에 공개적으로 비판하였으니... 어찌....)
1994년 5월 29일 가톨릭 신문에 실렸던 글을 올려 봅니다.
제목 : 제발 골프만은....
16세기 초 영국에서 엔클로저 운동이 한창이던 무렵,「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는 농경지의 목장화 현상으로 농민들이 일터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양이 땅을 먹는다』고 꼬집었다. 거의 5백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 곳곳에서「양」대신「골프장」이 급속도로 국토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골프장 건설로 인하여 수십 년 잘 자란 나무들이 사정없이 잘려 나가는 것은 물론 녹색 물결이 일렁이던 산간 곳곳의 농경지들이 훼손되고 있다. 골프장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전국 택지 면적의 11%에 해당하고 우리나라 전체 공장 면적 5천7백여만 평을 훨씬 넘어서는 엄청난 규모이다. 또한 골프장 잔디에 살포하는「디코닐」농약은 물 속에 2백만분의 1 정도만 들어가도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할 정도로 맹독성이어서, 식수를 오염시키는 등 환경오염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골프 인구가 눈에 띄게 증가현상을 보여 소위 상류층 사회에서는 골프를 치지 않고는 사교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이들은 골프가 그렇게 사치스러운 운동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10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4~5시간을 상쾌하게 즐길 수 있으며 중년층을 위한 체육시설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골프문화를 흰 자위를 드러내어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들의 처지에서 보면 이 같은 주장에 전혀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4~5시간에 10만 원 지출」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계층이 극소수로 제한되어 있는 우리네 형편에서 골프는「귀족 스포츠」「특수층의 놀이」일 뿐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서민에게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스포츠인 것이다.
골프장 입장료, 캐디 봉사료, 음식값 등 하루 골프장에서 최소한으로 써야 할 10만 원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골프장에 나서기 위한 부대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시중에 나와 있는 골프채는 외국 제품이 대부분이다. 값이 비교적 싼 국산은 찾는 고객이 별로 없어 진열대의 구색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골프 코너에서 골프 입문자들에게 권하는 외제 골프채 세트는 1백만~1백50만 정도이고, 중년층 이상이 주로 찾는 그레파이트 등 특수 재질로 된 제품은 보통 3백만 원 선이라고 한다. 여기에다 골프장의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신어야 한다는 골프화도 쌀 한 가마니 값에 가깝고, 골프공 세트, 골프장갑, 골프백ㆍ골프 티셔츠 등 골프를 치기 위한 장비와 복장만으로도 몇백만 원은 예사로 나갈 수밖에 없다.
문제가 골프 회원권 문제에 이르면 골프가 사회 계층간의 위화감을 부채질한다는 것이 실감으로 와 닿는다. 최근 골프장 건설 러시현상이 일면서 값이 약간 내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웬만큼 괜찮다는 골프장의 경우는 2억대에 가깝고, 약간 처지는 경우도 5천만 원 이상이라는 골프 회원권 값은 서민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액수이다. 골프 회원권 한 장이 웬만한 소규모 아파트 1채 값을 넘어서고 있는 설정이다.
이처럼 자연 생태계를 훼손하고,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며, 소수의 가진 자들만의 사치스러운 스포츠로서,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는 골프가 청빈과 검소를 표양으로 삼아야 하는 사제들에게도 어느새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 레지오 활동을 하는 중에 냉담자를 방문하고 냉담의 원인을 물었더니,『본당 신부가 주일미사 강론에서는 우리 국민들의 사치 풍조를 개탄하면서, 특별히 우리 신자들은 검소한 생활을 통해서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내용의 강론을 마치고는, 미사 후 신자들과 악수를 하는 도중에 골프 스윙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교회 가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어졌다 』고, 그리고『사제관에 가면 마누라만 빼고 부족한 것이 없이 사는 사제들의 모습에 실망했다』며 냉담 이유를 말하는 것을 들었다.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새기면서 검소하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몇몇 성직자들에게 물신주의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전 교구 차원의 성직자 납세를 결정한 이후 이 납세 결정은 교회와 성직자의 투명성을 부각시키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신성한 납세의 의무를 다한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바람직한 조치로 환영 받고 있다. 그런데 성직자들이 한 달에 겨우 1만 원 내외의 세금을 납부할 정도의 수입으로「귀족 스포츠」인 골프를 즐길 수 있는지 의문이 간다. 모르긴 몰라도 본당에서 행세 꽤나 한다는 평신도들의 뒷돈(?)으로 사제들이 골프를 치는 것임에 분명하다. 물론 혼자 사는 신부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골프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스포츠일지도 모르지만 가진 자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인생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대다수 소시민들인 본당 신자들의 삶은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은 자명하다.
목자에게 양떼를 지키라고 지팡이를 주었더니 오히려 그 지팡이를 골프채 삼아「저 푸른 초원에서」양떼를 위협하는 늑대들과 어울려 골프공을 날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제발 골프만은 자제하시는 것이 어떨런지요.』
고홍석 · 전북대 농공학과 교수
첫댓글 이런 글을
가톨릭신문 <방주의 창>이라는 컬럼에 올렸으니
골프장 근처에도 갈 수 없을 수밖에....
어쩌면
스스로 발목을 잡은 것이 되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