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르가 찍은 밀레
로토렉이 그린 고호 상
그림 이야기(11) - 회화와 사진
사진이 나올 때까지는 그림 이론의 중심이 되는 것은 ‘모방(Imitation)’이었다. 사진이 등장하자 대상을 모방하는 데는 그림이 사진을 따를 수가 없었다. 세밀화를 그리던 화가의 밥벌이는 초상화를 그리는 일 이였다. 사진 때문에 직업을 잃게 되었다. 실제로 빅토리아 여왕 밑에서 일하던 세밀화가는 사진 쪽으로 옮겨갔다.
화가들은 사진에 대항하여 살아남는 회화의 기법을 찾아야 했다. 르네상스 이후로 회화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상을 인식하는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회화는 사진이 나오기 이전부터 우리의 영혼이고, 감수성이며, 상상력의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회화가 원근법을 이용하여 과학적으로 접근한 것은 사진의 원리와 겹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림은 점차 외부 세계를 그대로 전달하기보다는 마음의 활동이라는 내부적인 것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정신 활동이란 것이 없는 사진은 따라올 수 없는 길이었다. 마음의 활동이란 낭만주의와 같은 맥락이다.
화가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주관적 사실이다. 카메라는 아무런 의식적인 의도가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기 때문에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평가가 오히려 사진이 예술의 세계로 들어오기를 어렵도록 하는 방벽이 되었다. 한때는 사진이 오늘의 CCTV만큼이나 증거 효력이 있었다.(오늘은 그렇지 않다.)
그림이 선택한 내면의 표현, 주관적인 표현이 인정받으면서 사진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진 1 — 나다르가 1858년 찍은 밀레상
사진 2 — 로트렉이 그린 고호상
*사진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지만, 화가의 그림은 화가의 주관으로
자연의 형상을 변형하여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