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선생이 영화 남한 산성 감상평을 올려 놓았네요.
노컷뉴스에서 옮겨왔습니다.
이 사람은 어찌어찌 하다가 겨우 시간을 내어 일요일 심야프로를 보았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내용에다다, 김훈의 원작을 두 세번 읽은 적이 있어서 큰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단지 최명길 역의 이병헌, 서날쇠 역의 고수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래는 도올의 감상평입니다.
영화 <남한산성>을 본 소감을 밝힘
- 이 땅의 철학자 도올 김용옥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이 영화를 보았으면 한다. 여태까지 최고의 흥행실적인 1,700만의 관객수를 돌파했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사건의 디테일과 무관하게 역사적 사실장면들의 정감과 리얼리티, 그리고 생각의 흐름을 치열하게 담아내고 있다. 음악도 좋았다. 작가 김훈의 실사구시적 정신과 감독 황동혁의 주제 파악능력과 고도의 추상화 능력이 결합하여 잔잔하면서 강렬한, 그리고 우리에게 반성을 요구하는 화면들을 구성해 내고 있다.
역사에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식과 몰상식만 있다.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와 식량이 있으면 싸우는 것이 상식이요, 싸울 수 있는 아무런 기력이 없으면 화해하는 것이 상식이다. 생각해보라! 이 영화의 장면은 노량해전으로부터 불과 40년 후의 시점이다. 임진왜란으로 우리나라는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리고 광해군의 무리한 토목공사와 인조반정으로 국가는 혼란에 빠져있었다.
척화는 선이고 주화는 악이라는 윤리적 2원론은 역사를 보는 잣대가 될 수 없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우리나라 역사 전체를 파악하는 안목이 부족했으며 주자학의 도통관념에 사로잡혀 화이지분(華夷之分)으로 역사의 실상을 보지 않았다. 때는 이미 숭명(崇明)의 시대가 아니였다. 최명길의 입장은 상식일 뿐이다. 중요한 사실은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자기들과 같은 뿌리의 고구려-발해 대제국의 정통후예로서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에도 홍타이지 인품의 한 측면이 묘사되어 있지만, 그들과는 얼마든지 영예로운 협상이 가능했고, 삼전도의 치욕을 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조선의 정벌이 아니라, 중원의 정벌을 앞두고 후방의 교란을 원치 않았을 뿐이다. 재빨리 외교적 협상에 응하여 정당한 전략을 폈으면 호란자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몽골제국과 대청제국이 모두 고구려제국을 흠모하여 흥기한 나라들이다. 징기스칸이나 홍타이지(청태종)도 당태종을 무찌른 연개소문의 카리스마에 직간접으로 훈도된 세계사적 인물들이다. 여진과 우리가 한 핏줄이라는 생각만 있었어도 민중은 호란의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고, 향후 북학파의 노력도 풍요로운 결실을 맺었을 것이고, 개화도 일본보다 빨랐을 것이다. 주화를 주장하는 최명길만 고립해서 생각하지 말고, 삼전도비를 쓴 이경석, 노자주를 단 박세당, 강화학파의 정제두, 원교 이광사, 초원 이충익의 사상 물줄기를 정확히 이해해야 최명길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김상헌의 우국심정도 존중되어야 한다.
첫댓글 도올의 마지막 단락의 의미는 제가 실감할 수 없지만,,,,
<영화에도 홍타이지 인품의 한 측면이 묘사되어 있지만....>의 내용을 내 나름으로 적어보면,
다음 두 장면이 남습니다.
하나. 남한산성 내에서 칸이 오는 것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장면과,
둘, 칸이 와서 용골대와 대화하는 장면이 오버랩됩니다.
남..성내에서 칸이 오는 것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한 사람은 최명길이었고,
최명길의 해석이 옳았음을 칸과 용골대의 대화에서 칸이 설명하는 방식으로 영화는 전개되고 있습니다.
칸과 용골대의 대화는 왜 칸이 칸이고, 용골대는 군인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르게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민초들이 봄을 맞이하는 장면과,
7인의 사무라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되었습니다.
7인의 사무라이 마지막 장면은 농민들이 봄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면서
사무라이 두목이 '최후의 승자는 농민들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한가지 역겨웟던 것은
최명길을 향한 김상헌의 대사인데,
진정 백성을 위한 세상을 위하여 너도 나도 임금까지도 없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썰을 푸는데
그것은 감독이나 각색을 해써던 사람이 집어넣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것이 자기의 잘못된 판단과 주장에 대한 면책을 위하여 물귀신처럼 다른 사람을 싸잡아
물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마치 작금의 이명박 홍준표 정진석 나경원등을 보는 것과 같다.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 부닥치는 일에 도움을 줄 수는 있다는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역할이겠지요.
나라일이라는 광의의 측면보다는 우리 일상에서도 자신의 어줍잖은 체면이나 자존심으로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얼버무린 옛 기억이 납니다. 마치 김상헌처럼...
이제는 나이가 들고 조금은 정제된 생각으로 사물을 객관화 하여 보려합니다만, 좀 젊은시절에는 경쟁심이나 자기중심적 주관의식으로 깨끗한 승복이나 상대방을 칭찬과 축하하여 주지 못 하기도 하였지요.
객관적인 안목으로 사물과 자기 자신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때 인식의 변화와 발전이 있게 됨을 뒤늦게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