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자작자작 내리고 있다
이 비 그치고 나면
수수 꽃 다리는 활짝 필까
붉게 물든 봉오리
통통 하던걸
곧 한 겹씩
옷을 벗고 만개한 얼굴로 오가는 발길을 멈추게 하고 말걸
활짝 핀 꽃은
지는 날만 남았을 테지
꽃물 머금은
수줍은 여린 자태의 봉오리는
기다리는 설렘이라도 있었건만 ...
모든 것은 준비와 때가 있으니
어느 것에 미련을 둔단 말인가
겨울은 탈탈 털어대며
떠날 채비 인사 소란스럽다
시래기
이맘때면
뒤란 흙벽에 매달려 하얗게 바래가던 시래기 꼬랑지
몇 오라기마저 먹어 치울 때다
삭풍이 부는 겨울 밤
속이 헛헛해 잠이 깨고
구들이 식어 냉골이어서 잠이 깨는 밤
몇 년째
솜 못 갈아 넣은 부실한 이부자리 덮어 쓰고
쏴!
바람소리에 섞여 들려오던
뒤란 벽에 걸린 시래기끼리 부딪치는 소리 유난하던 겨울 밤
쏴! 버석!
싹싹 버석!
신기하게 아침에 나가보면
밤새 그토록 버석거리며 서로의 몸을 치던 시래기들이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 하나 없이 말짱 한 채로 걸려있다는 것이다
( 꽁꽁 얼었으니 )
집안에 있는 먹을거리는
무엇이든 아껴야 하는 겨울이라
시래기 한 줌조차 귀하던 시절
시래기는
후닥닥 삶아지는 것이 아니던 시절
그 시절엔 불을 때서 삶았으니
이틀을 솥 안에 두고 불의 강약을 조절해서
삶아 내야 물렁하고 부드러운 시래기가 되는 것이다
늦가을 시래기를 많이 걸어둔 집에서는
한 번 삶을 땐 대여섯 오리 걷어와 삶아댄다
큰 가마솥이 있어야 가능하고
가마솥에 삶아야 뜸도 잘 들고
푸근하니 잘 무른다
솥이라고는
팔랑개비같이 가벼운 양은 솥단지 하나로
밥과 국을 끓여 먹던 우리 처지엔
시래기를 삶아도
겨우 한 오리 벗겨와 솥에 우겨넣고 삶는데
양은솥이라
빨리 끓고 빨리 식는 것도 있지만
가마솥 뚜껑만큼
묵직하니 김이 새지 말아야 뜸이라도 푹 들것을
양은 뚜껑 하는 품새란
가볍고 본데없이 촐싹거리는 사람모양
쉴 새 없이 달싹거리며
김을 빼버리는 터에
궁여지책 뚜껑위에
옹기 투 가리나마 씌워 눌러 놓곤 했다
시래기 한 솥 삶아 물에 담가 우려내놓으면
괜히 든든하고 며칠 찬 걱정 없어 좋았다
찬 없을 때
이웃 누가 삶은 시래기 한 뭉치 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던 때이다
시래기가 맛있을 한 겨울엔 아껴가며 먹다가
봄바람 먼지 속에 더운 기가 전해 올 즈음
시래기마저 삶으려고
걷어 볼라치면
그 좋던 푸른색은 다 빠지고
희나리 희끗희끗한
줄기와 잎 몇 개로 남아 잔바람에도 휘청대던 시래기
그나마 혹여 후 두둑 떨어져 소실될까 염려해
미리 물바가지 들고 가
입에다 물 품고 후후 푸푸! 내뿜어
눅눅하게 한 뒤 걷어내어
반은 삶고 반은 포대에 담아 광에 넣어둔다
한여름 푸성귀 귀할 때 먹으려고
시래기 삶을 때 소다 한 숟갈 넣으면
쉽게 물러진다 해서
집집마다 소다를 넣고 삶았는데
그렇게 쉽게 물러지진 않았다
밤새
솔가지로 서너 번 김을 낸 다음
은근짜~한 불로 뜸 푹 들여 삶아낸 시래기는
쫑쫑 썰어
읍내 식당서 얻어온 소기름 덩이 몇 개 넣고
된장 풀어 끓인 그 맛이란
지금 온갖 여우같은 맛에 익숙한 입맛에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남아 있다
텁텁하고 짜디짠 된장에
소기름이 뭉치가 들어가 퍼지면서 내는
부드럽고
구수한 국물 맛
질긴 시래기 줄기 속을 동물성 기름이 얼마나 녹진하니 녹여 놨는지
씹으면 죄다 소고기 맛이라
국물도 시래기도 한없이 퍼 먹고 싶은 맛이지만
그 시절에 맛있는 것은 언제나 아껴 먹어야 했다
소기름 얻기 전쟁이 벌어졌던 시절
장 복순 엄마는 소기름 한 덩이 얻기 위해
읍내 협동식육 식당 설거지를 종일 해주기도 했다
퐁퐁도 없고
싱크대도 없던 시절
식당 맨 바닥에 엎드려
기름기 범벅인 국그릇과 불판을 닦아주고 얻은
소기름 한 덩이 축구공만한 ...
그 기름덩이를 퍽퍽 썰어
불쌍한 소녀가장 나에게도 건네주던 복순 엄마
우리 두 집은 똑같이
한 달가량 소기름 넣은 시래기 국을 먹었다
장 복순 엄마는
귀한 거 맛있는 양념을 쓸 적마다 이렇게 말했다
“자야”
“비상처럼 넣어 먹거라
“비상이 뭐예요?
”비상은 먹으면 죽는 거니까 아주 아껴 쓰면 약이 된다는 말이지,
봄비가
봄비같이 내린다
다 익은 사랑같이 포근하게
첫댓글 시골집에서 시래기 삶는 날을 정해놓고 가마솥에 물을 붓고 장작을 지피는 모습을 테레비에서 봤네요.
잘 삶긴 시래기는 보약보다 낫지요.
저도 청풍명월 덕분에
요즘 시래기반찬으로
맛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시래기국에 조밥만 먹었던 어려운 시절을
얘기하던게 불과 몇년전 같은데...
이제는 그 시래기가 더 귀해졌으니
세상의 변화가 어찌되는걸까 ?
어쨌든 간밤에 봄비가 내렸으니 좋네요.
양은두껑이 딸각거리는 냄비안에 소기름 넣고 삶은 시레기국..
세월따라 변해버린 여우같은 입맛에도 변하지 않은 아련한 향수의 맛 고향의 맛입니다..
시레기국처럼 맛깔난 님의 글로
아련한 추억을 건드리는
봄비가
다 익은 사랑같이 포근하게 다가오는 봄날 아침이네요!
푹 삶은 시래기국 이야기에 절로 침이 넘어갑니다. ㅎ
유년시절의 가난한 밥상에, 일상적으로 올라오던 시래기국.
왜 국이름이 시래기국이야~, 이름도 불만족스럽던~,
그래도 울엄마 손끝으로 맛깔나던 국맛.
처마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물기빠져 말라가던 시래기 대열이
집 풍경을 더욱 초라하게 느끼게하던 시절.
모두 한때가 되어 훗날 추억의 뒤안길로
저무리라는 걸 몰랐던 그 때가 그립네요.
우리엄마가 삶던 시래기 장면
떠 오르네요
인사동이야기 올리려다
운선님 울림깊은 글에 감동받았어요
전 시래기가 들어간
모든 요리를 좋아하는데
삶는과정이 만만찮아 자주 못해요
시레기국 맛이 느껴지
는 글 잘 보았습니다.
좋은 글 동감합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쉬어 갑니다.
운선님이 가끔 풀어내어 놓는
흑백필름이 돌아가는 듯한 이런 글을 읽어면
저는 문득 문득 백석시인을 생각하게 됩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이틀을 고아야 한다니
시레기도 인고의 산물인가요?
어쩜 요렇게
시래기 조리과정을 자글 자글 오물 오물 군침삼키게금 표현
하는지
글 재주가 있다해도 실제
경험 하지 않고는 표현 못할수도 있겠네요
하여튼 글 솜씨 조리 솜씨
정성 솜씨 탁월한 삼위일체네요
시래기 무침 억수로 좋아 합니다^^
어느 시인이 싯귀에
신사복 입은 도회지 남자가
어느 담벼락에 걸려있는
시레기를 보고 훔치려다 들킨
그를 추억을 훔치려했다고
운선님 글은
쉽게 풀어내면서 사실적 표현력에
늘 빨려들어가듯 읽어내려옵니다
대단한 필력에 늘 감탄하네요
저는 시레기추억은 그저그렇게
먹어본 추억 밖에 없으면서도
저도 시래기를 참 좋아하는데
글에서 시래기의 구수한 내음새가 납니다.
시래기 짜박이 해먹고 싶네요
예전에 엄마께서 많이 해주셨는데
지금은 건강식이 되었습니다
엄니~ 보고싶어 ㅠ
좋은글 감사합니다
운선님 ㅎ ^^
시레기 몇번 실패하고야
최근 성공에 가까운 맛을 냈답니다
생각보다 멀리있지 않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것을...
아마 포기했다면 그맛을 찾지 못했을겝니다
삶는것 부터 좋은 맛을
찾을때까지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함을 생활 곳곳에서 느낍니다
운선님의 삶의 밀착형 글에서 자연의 맛을 느낍니다^^♥
@환타스틱
시래기는 푹삶는것이 첫번째 그리고 충분히 우려낸후 갖은 양념에 된장 투하 ㅋ
식용유와 들기름으로 자작하게 볶는다
★뽀인뜨
들깨가루를 넣으면 국물도 줄고 이미 삶은 시래기는 살짝 볶아줘도 맛있다는 실패
안할검다 ㅋ ㅋ
아놔...
노하우를 ㅋ ㅋ
@환타스틱
우짜긴요 ㅋ ㅋ
어렵지 않음
들깨가루가 황금 레시피
그렇다고 살림잘하는
여자는 아니고 애들 잘키우는
속깊은 어미로 ㅋ ㅋ
맛있게 해봐요^^
설겆이 해주고 얻은 소기름으로 온가족이 맛있게 먹을 생각하면
설겆이도 즐거웠겟지요..
엄마의 마음은 참 숭고하고 아름다워요
수수꽃다리 곧 피게 될것입니다.
자주색 수수꽃다리는 먼저피고
하얀색 수수꽃다리는 좀 늦게 오지요.
비가 내리는 요일이 어쩜..한국과 이곳이 비슷한지요.
아침이 오면 저녘이 오는것 ..
그런 시간만 다른것 같읍니다.
시간 의미 없어요
하루 24시간 같음이
중요할뿐이죠
그 시절 돼지 비게로 볶은 볶음밥의 고소한 맛도 잊을 수 없는 맛 중 한가지 일겝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