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의약단체들의 한 해 농사를 갈음할 수가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 수가협상은 지난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에 따라 의·병협의 약제비 4000억원 절감 목표가 핵심 쟁점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약제비 절감 여부에 따라 가져갈 의·병협의 몫이 관건인 만큼 약사회 등 타 단체들의 협상 여부와 시점, 인상 요구 폭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의료계, 약제비 절감 달성 좌초에 '사면초가' 의원과 병원 수가는 올해 3월부터 8월까지 병·의원 진료분 중 9월까지의 심사분을 대상으로 절감여부를 평가받게 된다.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의 병·의원 약품비 총액이 5조1617억원임을 감안하고 올해 절감 목표액을 4000억원을 배분, 6개월치로 환산하면 병원은 1112억원, 의원은 888억원을 각각 줄여야 한다.
협상에서 자율계약 타결 후 병·의원 노력에 의해 기간 내 약품비 절감 목표가 달성됐다면 병의원은 절감치와 목표치 간 차액의 50%에 해당하는 인상률을 협상결과에 더해 받을 수 있다. 다만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에 의한 절감효과는 전면 제외된다.
수가협상을 기한 내 자율타결로 매듭짓지 못할 경우 병원 1.2%, 의원 2.7% 인상률을 기준으로 약제비 절감 연동이 작동, 절반인 50%의 책임은 의·병협의 몫으로 돌아간다. 수가가 인하 되더라도 병의협은 패널티를 막을 명분이 없다는 의미다.
현재까지 합의된 약제비 절감 모니터링 결과가 완벽하게 도출된 상태는 아니지만 병·의원의 노력만으로 절감 효과가 유의미할 것이라는 예측은 나오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집계한 3월부터 5월까지의 심사결정분에 따르면 전국 3월부터 4월까지의 진료분 중 의원급 약품비가 전년 동기와 비교해 11.8% 증가한 8074억3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8년에서 2009년까지의 동기 증가율 14.3%과 비교해 증감률이 둔화된 것이지만 약가 변동요인과 심결 기간을 늘려 산출할 경우 더 큰 폭으로 증가될 수 있다. 사실상 증가세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약제비 절감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협상에서는 올 초 불거져 오리지널 처방 확산으로 야기된 의료계 리베이트 쌍벌제와 약국 금융비용 합법화가 어떤 작용을 일으킬 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약제비 절감이 사실상 좌절될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병의협은 악재의 주원인을 리베이트 쌍벌제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 단체들은 싸늘한 반응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어떤 이유라도 고가약 처방 확산의 수치를 제도 탓으로 돌릴 순 없다"며 "지난해 건정심과의 합의 내용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은 처방권을 갖고 있는 의료계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차후 약제비와 지불제도 개편의 연속성에 관한 비관적 전망이다.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약제비 절감 연동이 건정심 의결사항임에도 의료계의 쌍벌제에 대한 강한 반발로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면서 "더욱 큰 문제는 올해 협상에서 다뤄야 할 지불제도 개편 등 연속성에 미칠 악영향"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의협은 지난 5일 공단과의 1차 협상에서부터 건정심까지 이어지는 약제비 연동과 관련해 "차후 의료계 그 누구도 약제비 절감에 동참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해 협상카드로 역이용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약국 금융비용 합법화, 수가협상 '변수'시민단체와 학계는 약국 금융비용 합법화도 협상 카드의 주요 쟁점으로 비중 있게 보고 있다.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금융비용 보상기준에 따라 마일리지 포함 최대 2.5%까지 인정되는 금융비용 인정을 들고 약국 행위료 부분에 칼을 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재정위 관계자는 "조제료 등 약국 행위료에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돼 왔고 최근 백마진을 금융비용으로 인정하면서 수가인상 요인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올해 또는 내년도 수가에서 구체적으로 거론될 가능성은 다분하다"고 밝혔다.
이를 반증하듯 지난 7일 공단과 약사회의 2차 수가협상에서 공단은 금융비용 합법화와 맞물린 조제료 부분을 거론함으로써 이를 협상카드에 활용하고자 하는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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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협상에서 병협의 건정심행 여부는 타 단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
한편 이번 협상에서 병협의 협상 향방이 타 단체들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병원은 의원과 비교해 총 진료비 증가 폭이 큰 만큼 약제비 절감 목표 미달성 폭도 이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공단이 병협을 협상 테이블에 앉혀 자율타결로 매듭짓더라도 나머지 단체들이 '형평성' 명분을 들고 되려 공단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난관에 부딪힌 공단의 협상 포인트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와 함께 의료계의 협조 없이는 정부의 약제비 절감을 비롯해 각종 당면한 정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도 이번 공단의 협상 포인트에 큰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협상에서 공단이 "자율타결 시 (건정심행과 비교해) 기존처럼 최종 인상폭에 불이익을 받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것은 이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지불제도 개편 등 기대감 불구 복지부 '어정쩡'이번 협상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지불제도 개편에 대한 부대합의다.
바닥을 드러낸 건보재정 안정화를 위해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끊임없이 요구해온 지불제도 개편에 대해 일단 한의협과 치협은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병호 박사는 "물가상승과 경제성장 등 수가인상 요인을 조건으로 내세워 한의협과 치협에서 총액계약제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진료량 통제 방안을 계약조건에 넣도록 하는 압력이 커질 것으로 본다"고 올해 수가협상을 점친 바 있다.
따라서 이들 단체를 필두로 한 지불제도 개편이 쟁점화 될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의견에 학계와 시민단체 모두 동의하고 있다.
보건의료계 관계자들도 "이번 협상은 그간 논의돼 왔던 지불제도 개편에 대한 실효성 있는 부대합의가 도출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내용적으로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리베이트 쌍벌제와 약제비 절감 실패 등 의료계 반발 요인이 무엇보다 큰 해라는 점에서 부담을 느낀 당국이 주춤한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 섞인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건정심 위원과 재정운영위원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당국이 올해 협상에서 총액계약제 등 지불제도 개편의 목소리를 지양키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면서 "복지부와 공단이 지출구조 합리화 의지가 있기는 한 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공단, 약제비 연동·지불제도 개편 관철에 정치성 배제해야"보건의료 관계자들이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최근 논란이 일어 복지부 국정감사에서까지 거론된 6기 재정운영위원회 임원 위촉 과정에서 불거진 편파구성 논란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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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 단체들은 공단 6기 재정운영위원회 구성에서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돌연 배제시킨 당국의 결정에 대해 "수가 퍼주기 꼼수"라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
분업 이후 가입자 단체들의 목소리를 대변키 위해 구성된 재정운영위원회는 요양급여비용의 계약 및 보험료의 결손처분 등 건보재정과 관련된 주요사항을 심의·의결 하는 법적기구로, 수가인상에 있어 보험재정을 감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위원 임명권을 갖고 있는 복지부는 참여율이 저조하고 세 번 이상 역임한 위원들을 교체하겠다고 공문을 발송한 뒤 발표 하루 전, 돌연 단체를 변경했다고 통보, 10년 동안 전문성을 발휘해 온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배제시켰다.
이에 대해 민주당 박은수 의원은 "전문성 있는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갑자기 배제시키고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아줌마 부대’를 위원회에 포함시킨 복지부의 행위는 수가인상을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며 맹비판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공단 재정운영위를 무력화시켜 정치적 협상을 노리려는 복지부의 의도가 엿보인다"고 진단하고 "2012년 대선을 염두한 결정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수가 퍼주기’로 귀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학계와 보건시민단체 등 보건의료계 관계자들은 "공단의 세부 협상 자율권을 부여해 지불제도 개편과 약제비 절감 연동을 수가협상의 필수 합의사항으로 관철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상호 사회보험노조 중앙집행위원은 "지불제도 개편과 약제비 절감 연동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가 돼 버렸다"면서 "이번 수가협상에서 이에 대한 단서조항을 반드시 넣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송 위원은 "그럼에도 의료계를 설득하려는 당국의 의지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라며 "공단에 협상 자율권을 부여해 정치적 개입을 차단시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