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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 미얀마 상황에 대해서 단순한 군사독재-반독재 투쟁 구도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얀마 정치 상황에 숨겨져 있는 미얀마의 복잡한 근현대사와 세계 패권경쟁, 그리고 제국주의와 반제투쟁의 문제 등 전반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저자 소개: 연세대 대학원 문학석사 사학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꾸준히 배우고 공부하고자 합니다.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통일조국과 민중세상을 기원합니다.
머리말
지난 2월 초,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2020년 11월 미얀마 총선 결과*에 대하여 군부는 약 7천여 건의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선거 무효소송을 걸었다.
군부가 내세운 부정선거의 근거로는 집권여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열세인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 대한 선거 미실시, 불법 사전투표와 투표지 수거, 투표함 분실, 유권자보다 860만명 많은 집계 투표지 등이 있다.
그러나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는 공정하게 치뤄졌다’고 군부의 문제제기를 일축하였고, 무효소송 역시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여기에다가, 정부 구성에 있어서 집권여당은 개헌을 통하여 군부의 영향력(의회 25% 고정 배당)을 축소시키고자 하였다.
* 2020년 11월 미얀마 총선에서,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전체 의석의 62.4%(군부 할당 의석 25% 제외하면 83.2%)를 차지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 민주주의민족동맹(NLD): 1988년 9월 27일 아웅 산 수치가 창당한 정당. 서방권의 지원을 받아 사회주의 미얀마를 통치한 국가평화발전위원회에 대항하였다. 지지기반은 도시 거주민 및 청년층이다. 2015년 총선과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하여 집권 여당이 되었다.
잇따른 부정선거 문제제기의 기각과 집권여당의 군부 영향력 축소 방침에 반발한 군부는 집권여당에 최후통첩을 보냈고, 마침내 2월 1일에 쿠데타를 단행했다.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국가고문 아웅 산 수치와 대통령 윈 민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과 민주주의민족동맹 소속 의원들을 감금하였다. 그리고 군부는 군사정부인 국가행정위원회를 세우고 미얀마의 정치‧사회 전반을 장악하였으며, 군정체제 하에서 1년 내로 재선거를 치룰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미얀마에서의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자, 중국은 무간섭을 천명한 반면에 미국과 영국을 위시한 서방권 국가들은 일제히 이를 규탄하고 미얀마 군부에 대한 외교적·경제적 압박에 들어갔다. 그리고 미얀마 내부에서는 쿠데타 및 군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에 군부에서는 반 군부 시위에 대해 강경 대응을 천명하였다.
미얀마에서의 군부에 대한 반 쿠데타 시위에 대하여, 한국사회에서는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미얀마 시민사회의 시위를 지지하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동안의 군사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 끝에 마침내 민주주의를 쟁취한 현대사를 가진 우리에게 있어 미얀마 시민사회에 적잖은 공감과 감수성을 느꼈으리라.
특히, 짧은 기간 동안의 이른바 ‘민주정권’이 군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된 미얀마의 현 상황은 4.19 혁명과 그에 따라 수립된 장면 내각을 뒤엎은 1961년의 5.16 군사쿠데타, 1980년 ‘서울의 봄’을 5.17 내란으로 뒤엎고 이어서 광주에서의 시민항쟁을 무참히 학살한 전두환의 신군부가 연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우리는 현 미얀마의 정치 상황을 과연 단순한 군사쿠데타와 그에 맞선 반독재 민주화투쟁으로만 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우리네 현대사를 미얀마 정치‧사회 상황에 그대로 투영하는 것이 옳은가?
오히려, 세계정세와 미얀마 근현대사 등 전반적인 배경과 반제국주의적 관점 등을 고려해서 보면 단순한 군사쿠데타-반독재 민주화투쟁으로만 보긴 힘들다.
본 글에서는 현 미얀마의 상황을 평가하는 데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안을 개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미얀마 현대사에서의 반제국주의 전선과 미-중 패권경쟁
미얀마의 현 상황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미얀마 현대사와 세계 정치(냉전 체제, 반제국주의 전선, 미-중 패권경쟁 등)와의 연관성이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현 미얀마 연방 공화국(1989~)이 들어서기 이전에, 미얀마는 군사정부가 근 50년 동안을 통치하였다는 것은 모두들 잘 알 것이다.
또한, 군사정권을 이끌었던 군부가 ‘민주화’가 성립되었던 쿠데타 직전에도 미얀마 의회에서 기본적으로 전체 의석의 25% 이상을 고정 지분으로 차지하고 미얀마의 정치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으며, 최근의 쿠데타를 주도한 것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현 체제 이전에 미얀마를 오랫동안 통치한 군사정부가 사회주의 체제(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를 표방했던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네 윈을 위시한 군사정부는 ‘미얀마식 사회주의’와 버마 민족주의, 반제국주의 노선을 천명하여 미얀마에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이전 시기의 제국주의 부역자들을 처단하였다. 또한, 제3세계 비동맹노선을 지지하여 중국과 연대하였다.
군정 치하의 미얀마의 사회주의, 반제국주의 노선은 당연히 미국, 영국을 위시한 서방권에게 있어서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미얀마에 강력한 경제제재를 자행하여 압박하는 한편, 영국 유학 중이던 아웅 산 수치를 적극 지원하여 이른바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게 하였다.
이후 1980년대 말~90년대 초에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여 미얀마에 대한 지원과 연대가 축소됨에 따라, 미얀마 군사정부는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고립‧압살 책동과 ‘군사독재 악마화’ 선전에 맞서 사회주의 체제 및 반제국주의 노선을 수호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1988년에 이른바 ‘8888 항쟁’이라 불리는 대규모 반공 시위(이른바 ‘색깔 혁명’)***의 발생과 서방권의 전방위적 압박 끝에 군사정부는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하였고, 감금상태에 있던 수치를 석방하고 일정 부분 사회 통제를 풀고 개방을 실시하는 등의 유화책을 점차 펼쳐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비록 1995년에 실시된 첫 선거(민주주의민족동맹 압승 결과)의 경우 군부에 의해 무마되어 군부통치가 20여 년 가량 연장은 되었지만, 수치를 위시한 서방의 지원을 받는 ‘민주화 세력’은 군사정부 치하에서 점차 세력을 넓혀 2015년에 총선에서 승리하고 정권을 차지한 것이 쿠데타 이전까지의 오늘날 미얀마 현대사의 전말이다.
*** 색깔 혁명(Colored Revolution): 1980년대 말 사회주의권 붕괴와 더불어 구 사회주의권 국가와 제3세계 국가에서 순차적으로 벌어진 반공 시위들. 명목상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내걸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서방권 제국주의 세력의 반공시위에 대한 전략적 지원과 해당 국가의 기존 세력에 대한 제재 및 압박, 그리고 서방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매체(CNN, BBC, VOA, SCMP 등)를 통한 선전선동(시위의 미화와 기존세력에 대한 악마화)이 크게 반영되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냉전시기부터 오늘날까지 미얀마 현대사를 둘러싼 세계 정치의 영향이다. 냉전 시기에는 사회주의 미얀마에 대해서 중국은 반제국주의 국제연대 차원에서 미얀마를 지원하였다.
중국의 미얀마 지원의 요인은 다음과 같다.
미얀마는 중국과 남쪽(운남성 일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근대 시기부터 중국주도 천하체제 하에서 미얀마와 조공책봉관계를 맺고 있던 관계였다. 그렇기에 중국에게 있어서 미얀마는 (북)조선, 러시아, 베트남, 라오스, 인도 등과 더불어 아시아 지역에서 중요한 외교 대상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여기에다가,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표되는 오늘날 세계 패권 경쟁에 있어서 미얀마는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중국이 서아시아 국가에서 석유를 수입하여 중국 남부까지 인도양 뱃길을 통해 운반하는 과정에서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일대 말라카 해협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다.
그런데, 벵골 만-미얀마 내륙-중‧면(中‧緬) 국경지대를 통하면 운송 경로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굳이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석유를 운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중국은 미얀마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 2017년에는 미얀마 국토를 관통하는 송유관 및 가스관을 개통하였다.
반면 서방권에게 있어서 미얀마는 중국 남서부에서 중국을 군사‧경제적으로 압박할 좋은 지정학적 위치이다.
그렇기에 냉전 시기부터 사회주의 양대 국가 중 하나인 중국을 압박하고 사회주의 미얀마를 전복시키고자 아웅 산 수치의 이른바 ‘민주화 운동’을 꾸준히 지원했던 것이고, 오늘날에도 대중국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미얀마를 포함하여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전술한 중‧면 간 송유관 및 가스관 설치 역시 서방권의 미얀마 전략에 영향을 주었다.
기존에는 미국 태평양함대로 말라카 해협을 봉쇄하기만 하면 중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용이했던 것이 미얀마 내륙을 통해 석유를 운송하는 경로로 바뀌면 중국 경제 봉쇄 전략에서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방 제국주의 세력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있어서 미얀마의 위치는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이렇듯, 미얀마 현대사에서의 사회주의 및 반제국주의 노선의 전개 및 좌절 과정과 이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영향을 고려해 보면, 쿠데타를 주도한 미얀마 군부를 단순한 군사독재 세력, 과거 독재의 적폐라 판단하는 것은 힘들다 할 수 있겠다.
특히나 사회주의 미얀마에 대한 서방권의 지속적인 고립‧압살‧전복 책동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서방권에서는 사회주의 미얀마 시기 이른바 ‘군사독재’와 부패, 경제 침체, 반대파 탄압 등을 들어 군부를 비난하나, 정작 미얀마가 겪은 사회경제적 난관은 오랜 서방 제국주의 세력의 압박과 1980년대 말~90년대 초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가장 결정적인 요인임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동시기 북녘 동포들이 사회주의권 붕괴와 제국주의 세력의 압박 속에서 자력으로 고난의 행군을 극복해 나가야 했던 상황과 일치한다.
2.현대 미얀마 정치 갈등의 시원 – ‘로힝야 문제’로 대표되는 소수민족 갈등
현 미얀마 정치 상황은 물론 미얀마 근현대사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사안은 또 있다. 바로, ‘로힝야 문제’로 대표되는 미얀마의 소수민족 갈등이 그것이다.
수년 전부터 로힝야 문제는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이 미얀마를 압박하는 또 다른 수단(인권 문제)이 되어 왔다.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의 경우 로힝야족을 탄압하고 학살한 주체로 비난하고, 아웅 산 수치의 경우 로힝야족 탄압을 묵인했다는 이유로 비난하며 협력관계를 철회한 사례를 봐도 그러하다.
하지만, 서방권이 선전하는 그대로 로힝야족은 ‘미얀마 정부에 의해 핍박받는 불쌍한 소수자이자 사회적 약자’라고만 볼 수 있을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미얀마 근현대사에서의 로힝야족의 위치를 따져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소수종교에 해당하는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벵골계 종족인 로힝야는 식민지 시기였던 1885년에 미얀마(당시 영국령 버마)를 식민 지배했던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인도에서 전략적으로 이주시켰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로힝야족을 미얀마에 정착시키며 이전부터 버마족(미얀마 주류 민족)과 소수민족들에게서 강탈한 토지로 구성된 플랜테이션 농장의 소유권을 로힝야족에게 주는 특권을 부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토지를 빼앗긴 버마족은 물론 타 소수민족들이 로힝야족에 대한 인식이 악화된 것은 명약관화였다.
또한, 영국은 독립투쟁을 전개하던 버마족을 견제‧탄압할 목적으로 로힝야족과 소수민족에게 입대권을 부여하여 버마족의 독립투쟁을 토벌하게 하였고, 이는 버마족의 반(反) 로힝야 감정을 더욱 자극시켰다.
즉, 버마족에게 있어서 로힝야는 영국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매국노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는 태평양 전쟁시기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미얀마를 침공하여 영국을 축출할 때 버마족이 반영적 입장에서 일제에 협력하여 로힝야족을 공격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한편, 식민지를 빼앗긴 영국은 일본에 맞서고자 친영세력인 로힝야를 지원하였으나, 정작 로힝야족은 대일 항전보다는 버마족과 소수민족들을 학살하는 데 집중할 뿐이었고 이 때문에 버마족 및 소수민족-로힝야 간 의 갈등은 더더욱 확대되었다.
이후 1948년 버마가 독립을 쟁취하고, 이어서 1962년에 사회주의 체제가 성립되면서 지위는 역전되었다. 버마족이 미얀마의 주류를 차지한 반면, 식민지 시기 주류에 위치했던 로힝야는 ‘매국노’, ‘식민부역자’ 지위로 추락하였다.
네 윈이 이끄는 사회주의 미얀마는 반제국주의 노선과 식민지배 청산 차원에서 부영(附英) 매국노였던 로힝야족에 대한 모든 특권을 박탈하였고, 로힝야 소유 토지를 몰수하여 버마족과 소수민족들에게 분배하였으며 다수의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로 추방하였다.
비록 식민지 시기 이이제이 전략의 영향으로 버마족과 소수민족 간의 사이 역시 그리 좋지는 않았으나, 영국 제국주의자들과 로힝야족에게 토지를 강탈당하고 심각한 탄압을 받은 역사를 공유하였으므로 이들은 로힝야 숙청에 있어서는 뜻을 같이 하였다.
사회주의 미얀마의 식민지배 청산 차원의 로힝야족 숙청에 대해 이전 식민지배자였던 영국은 반발하였다.
영국은 식민지배 당시 식민지배의 수단으로 써먹은 로힝야를 지원하는 한편, 사회주의 미얀마의 식민청산을 ‘소수민족 로힝야에 대한 인권탄압’이라 비난하며 악마화 하였다.
여기에 영국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 제국주의자들과 연대하여 유엔 안보리, 인권위원회에 로힝야 문제를 상정하고 지속적으로 미얀마에 간섭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 미얀마의 주도세력이었고 현재 쿠데타를 주도하는 군부는 로힝야족을 탄압‧학살한 주범으로 비난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세력은 자신들이 식민지 시기에 미얀마에 정착시키고 식민부역세력으로 이용한 로힝야에 대한 책임(영국, 방글라데시로의 난민 정착사업 등)은 전혀 지지 않고 있다.
이는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 일대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강제 축출하고 시오니즘 성향 유태인을 정착시켜 이스라엘을 세우고선 정작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을 외면하는 상황과 아주 유사하다.
정작 아이러니한 것은, 서방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지원을 통해 미얀마의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점진적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완성시킨 아웅 산 수치 역시 로힝야 문제를 빌미로 지원을 중단해 버린 것이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의 미얀마 정부 역시 로힝야에 대한 정책과 인식은 사회주의 미얀마와 동일하였다. 미얀마 국회 내에서 집권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과 소수민족 정당 연합체, 군부 지지세력 간의 갈등은 극심하나, 로힝야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 시기와 동일하게 연대하였다.
여기에다가 로힝야에서 전(全) 미얀마 차원의 탄압에 대항하고 분리독립을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ISIL과 같은 무슬림 극단주의 세력과 연계하여 테러행위를 자행하고 주민들을 학살하면서 미얀마 정부의 대(對) 로힝야 강경노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렇듯, 현대 미얀마 정치의 주요 문제이자, 쿠데타의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 로힝야 문제에서도 전혀 책임지지 않은 채, 반제국주의‧식민청산을 주도한 군부를 로힝야 탄압 및 학살자라 비난하고 아웅 산 수치 역시 로힝야 문제 해결에 미온적이라고 지원을 철회해 버리는 것이 서방 제국주의의 실체라 할 수 있겠다.
즉, 원죄(原罪)는 자신들에게 있으나 정작 그 책임을 식민 정책의 피해자인 미얀마에 돌리고, 지속적으로 미얀마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미국, 영국을 위시한 서방 제국주의 열강이 진정 세계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정의의 세력으로 여겨지는가?
냉전 시기에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자행한 각종 만행과 친미성향 파쇼독재정권(남한, 필리핀, 남베트남 등)에 대해 지원 및 방조한 사실, 심지어 자신들의 침략을 격퇴시킨 통일 베트남을 견제하고자 노선마저 달랐던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를 지원했던 각종 흑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이런 사례를 생각하면, 현 미얀마에 대한 서방의 입장 역시 달리 보일 것이다.
3.아웅 산 수치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 – 과연 민주화 투사로만 볼 수 있는가?
현재 미얀마 정치를 보는 데 있어서 고려해 볼 주제로는 아웅 산 수치 자체의 문제 역시 고려해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아웅 산 수치는 흔히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 산 장군의 딸이자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의 투사’로 인식된다.
오랫동안 군사정부에 의하여 구금과 가택연금하에서도 이른바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으며, 노벨 평화상과 국제 앰네스티 양심대사상, 광주인권상 등의 다양한 상을 수여 받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본 글에서는 수치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본다. 모두들 알다시피, 수치는 미얀마 독립투쟁의 영웅이자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아웅 산의 딸이다.
평생을 미얀마의 독립과 통합을 위해 싸워 온 아웅 산의 미얀마에서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의 딸인 아웅산에 대한 미얀마에서의 영향력 역시 대단하다 할 수 있겠고, 사회주의 시기 군부 역시 수치를 함부로 건들지 못한 요인 역시 여기에 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치의 위상과 영향력은 역설적으로 서방 제국주의 세력이 수치를 매개로 미얀마에 간섭하고 사회주의를 붕괴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어떻게 보면 영국에 대항하여 독립투쟁을 이끈 아버지와 달리, 영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을 받아 이른바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딸의 행보는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달리 보면 아웅 산 자체의 한계로 일어난 결과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호찌민 주도로 예전 식민 지배 세력이던 프랑스를 전쟁을 통해 축출하고 분단국이나마 자주독립을 쟁취한 베트남과 달리, 아웅 산은 전쟁 이후 영국과의 협상(애틀리-아웅 산 협정, 1947.01.)을 통하여 독립을 쟁취하려 했다.
결국 이는 반영 독립투쟁을 함께 주도한 미얀마군의 반발을 사서 1947년 7월 19일 아웅 산과 동료 6명이 암살당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후, 초기 버마 연방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소수민족 간 내전을 겪다가 전술한 네 윈 휘하 군부의 사회주의 혁명을 통하여 사회주의 미얀마가 들어서고 식민지배 청산을 통해 겨우 자주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아웅 산의 딸인 수치는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점차 서방식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경도되었다.
이런 수치에 대하여 서방 제국주의 세력이 미얀마에 재개입할 수단으로 여긴 것은 당연하다.
1988년에 수치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하여 귀국했다가 대규모 반공시위(이른바 ‘8888 항쟁’)에 참여하여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급부상하였고, 이를 빌미로 서방 제국주의 세력은 수치의 ‘민주화 투쟁’을 적극 지원하며 사회주의 미얀마와 군부를 압박하였다.
따지고 보면, 수치에게 수여된 노벨평화상‧앰네스티 인권상 등의 각종 수상 내역은 서방 제국주의 세력이 의도적으로 수치를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우상’으로 띄워주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겠다.
거기에다가 미국 힐러리 클린턴과의 연대, 미 상‧하원 및 영국 의회에서의 연설 등도 서방권의 수치 지원의 일환으로 행해진 것이다.
여하간 수치를 매개로 한 미얀마에 대한 서방권의 간섭과 책동 끝에, 2015년 11월 10일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집권하면서 미얀마의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불완전하게나마(+헌법에서의 군부 세력 의회 의석 고정 25% 보장 조항) 성립되었다.
하지만, 수치가 주도하는 미얀마에 대한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기대는 얼마 안 가 무너지고 말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영국 식민지배 잔재’이자 ‘부영 매국노’였던 로힝야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인식과 정책이 사회주의 시기와 동일했던 것에서 실망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지원 하에 미얀마를 차지한 수치가 친서방 정책을 펼치고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여 중국을 견제하리라 예상한 기대와 달리 수치는 ‘균형 외교’를 내세워 이전 시기 연중(聯中) 노선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물론, 수치는 서방과의 관계도 강화하긴 했지만, 기존의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중시했다.
2016년 이른바 ‘민주정부’ 출범과 함께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수치는 습근평, 이극강 등 중국의 주요 인사들과 먼저 외교관계를 열었으며, 미국은 중국 다음으로 방문하였다.
여기에다가 수치 집권 미얀마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도 참여하였고, 전술한 중국-미얀마 간 송유관 및 가스관의 준공도 수치 집권기에 이뤄진 것이다.
이렇듯 수치 집권 미얀마가 자신들의 기대와 달리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친서방 정책은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둔 것에 대해서 서방 제국주의 세력이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또, ‘민주주의와 자유‧인권의 투사’를 자임한 수치가 정작 정치행보에 있어서는 권위주의적‧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서방이 수치에 대해 실망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통령은 의전만 하는 사람,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수치는 국정운영에 있어서 대통령의 권한을 무시하고 사실상 미얀마 국정에 있어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실시했다.
그리고 (비록 군부에게 의회와 정부에서의 일정 지분을 보장하는 현 정치체제 자체의 한계도 있지만) 수치는 부정선거 논란과 개헌 건으로 틀어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민주화 운동’ 시기에 자신이 싸워왔던 대상인 군부와 국정에 있어서 적잖은 협력관계를 맺었다.
수치-군부 간의 국정에서의 협력은 수치가 내걸었던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었을 뿐더러, 전술한 연중 외교노선과 대(對) 로힝야 정책 등 군부 시기의 정책이 수치 정권에서도 적잖게 계승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다가, 수치는 권력을 이용해 자신을 반대하던 언론을 탄압하는 등 군부 통치 시기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국정운영 행태를 보였다.
이와 같은 수치의 행보는 지지자들로부터 실망을 가져온 한편, 그를 지원했던 서방 제국주의 세력 역시 로힝야 문제‧연중 노선 등과 더불어 수치에 대해 실망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2017년 11월 영국 옥스퍼드 시에서의 명예시민권 박탈을 시작으로 서방의 여러 도시(아일랜드 더블린‧영국 에든버러‧캐나다 등)에서의 수치의 명예시민권이 박탈되고 국제 앰네스티 인권상‧광주인권상 등의 수상내역 역시 회수되는 등, 서방권의 수치에 대한 지원 철회가 가시화되고있다.
맺으며 – 미얀마 쿠데타와 반 쿠데타에 대한 재인식 필요성 제고
물론,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의 권위주의 행보나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군부가 야기한 정책상의 오류들, 시민 사회 탄압은 비판받아 마땅하고 하루빨리 근절되어야 하며, 군부가 공약한 ‘평화로운 재선거’는 제대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쿠데타에 반대하는 미얀마 시민사회의 투쟁에 대해서, 반독재민주화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우리의 현대사를 투영하여 공감하는 것도 어쩌면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 미얀마 상황에 대해서 단순한 군사독재-반독재 투쟁 구도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얀마 정치 상황에 숨겨져 있는 미얀마의 복잡한 근현대사와 세계 패권경쟁, 그리고 제국주의와 반제투쟁의 문제 등 전반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현재 국내 언론들의 지나친 서방 편향적 관점 역시 비판 대상이라 할 수 있다.
RFA, 미국의 소리(VOA), BBC 등 서방권 프로파간다는 물론이고 NYT, WP, CNN, 남화조보(南華朝報, SCMP) 등 서방권의 영향 하에 있는 언론매체의 선전선동에 국내 언론들(보수·진보 무관)이 일방적으로 경도되어 미국·영국을 위시한 서방권은 무조건 ‘선(善)’이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의의 세력’으로, 제2세계 및 제3세계는 ‘반민주·독재정권’이자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매도하는 행태는 사태를 올바로 보는데 있어서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에 2019년 홍콩 사태 당시 친서방 반공 시위대에 대한 무비판적인 찬양 및 혐중 여론 조장은 물론이요, 같은 해 미국의 지원 하에 자행되었다가 실패로 끝난 베네수엘라 쿠데타 기도 당시 국내 언론의 서방 편향적 보도, 2010년대 중~후반 이라크·시리아 내전 당시 이른바 ‘반군’(실제로는 무슬림 극단주의 성향 테러집단)에 대한 미화와 반제국주의 성향 세속주의 정권에 대한 악마화, 반세기 넘도록 자행되어 오고 있는 오보·대북 가짜뉴스를 통한 북에 대한 악마화가 그렇지 않던가?
이와 같은 국내 언론의 행태는 당장 근절되어야 한다.
종합하자면, 우리는 미얀마의 반 쿠데타 시위를 빌미로 패권경쟁을 조장하고 전쟁위기를 조장하려는 제국주의 세력의 기도를 감시하고 분쇄하는 한편, 외세의 간섭 없이 미얀마 민중이 슬기롭게 현 상황을 잘 해결하여 미얀마의 진정한 자주독립과 민주화가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기원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내 언론들의 국제정세에 대한 서방 편향적 보도 행태 역시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시정시켜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미얀마 개황(2019.11), 외교부 2019.11.22.
2021년 "미얀마 사태" 정기열교수 TV, 『21세기연구원』
2021.02.09.미얀마 사태에 대한 중국의 입장,『민플러스』 2021.02.08.
TAKERO MINAMI, “Myanmar coup removes central bank chief, alarming global financiers”,
Nikkei Asia, 2021.02.13.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인민을 위한 군대라면 인민을 보호하고 지킬 것이고, 군부권력을 지킬려는 군대라면 외세든 인민이든 총쏘대며 짖밟겠지요.
약소국가인 미얀마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통치세력은 군부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독재를 하더라도 자국인이 해야하고 외세가 끼어든 순간
그나라는 식민지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좋아도 외세를 등에 업고 출발하는 세력은 제거해야 하죠.
외세가 들어오면 작게 싸워서 끝낼 싸움이 대대적으로 커져서
온나라국민들이 몰쌀을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얀마는 군부통치가 맞고 외세를 배제하고 자발적인 발전을 이뤄야 하죠.
그게 바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겁니다.
외세가 들어온 순간에 개인들이 이용당하여
사회와 국가적으로 자유를 잃어버려서 더큰 자유를 잃어버리는 거죠.
개인이 잠시 자유를 잃는 것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사회와 국가가
자유를 잃으면 그나라국민은 대대손손 꼭두각시질을 하다가 평생을 고생하죠.
자유 민주주의를 부르짖되 먼저 나라와 사회의 민주주의를 얻어야 하고
개인은 그를위해서 싸워서 기필코 얻어내야 되는 거죠.
윗글은 그런 의미로 매우 좋은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제대로 된 시각이라고 봅니다.
동감합니다 ^.^
ㅁㅁ
미얀마 쿠테타가 뭔가 미심쩍었는데 이제 감이 잡히네요.
아옹산 수치는 우리의 이승만 같은 인물이었군요.
서방세계의 지원을 받고 국민 영웅으로 떠받들리는 것들이
미안마의 주권 외국인 남자와 결혼한 정치계가 여기에서 불법투표가 이것읗 본 군부가 다시 쿠데타 과연 누가 옳은 행동인지 국민들이 정치계의 새뇌자전에 넘어간지 군부가 국권을 바로 잡는지 우리도 이승만 박정희에 세뇌 되어서 이북 사람은 이마에 뿔달린 괴물로 인식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미얀마 사태를 통해...
아직까지도... 현재에도 영국놈들이 얼매나 나쁜짓을 하는지!
미제국주의가 주류언론을 틀어쥐고 얼매나 사기질, 심리전을 펼치는지 알려 주는군요.
로힝야족은 이 나라의 서북청년단과 같은 놈들이군요!
고맙습니다. 숲별빛님!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황토강님,
제가 올린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지 민플러스의 기사를 옮기기만 했습니다.
민플러스와 많은 사색을 했을 필자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숲별빛 아니지요...
우리 카페 회원들 모두 민플러스에 수시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들어가더라도 이 기사를 지나쳐버리면 알 수 없는거죠 현재의 미얀마 상황을....
님이 비로소 여기에 올림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미제언론의 조작질임을 알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미얀마사태를 자꾸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사건의 본질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미얀마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고, 서방과 교류한 지는 얼마되지
않은 국가입니다. 지금도 국회에 군부가 25%를 차지하고 있어 체제가 우리와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언제든지 군부가 체제유지를 위하여 나설 수 있는 국가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우크라이나 시민봉기에도 똑같은 방법이 적용되었죠.
시민을 민주주의를 한다고 팔아서 결국 이상한 자들이 진압군으로 가장하여
시민에게 총질을 하여서 사건이 커진게 결국 우크라이나가
빈민국으로 전락하는 도전선에 불을 붙인 거죠.
그게 폭발하여서 지금의 우크라이나는
완전히 국부를 털리고 3류국가가 돼서
청년들이 다 탈출러시를 이룬 나라죠.
이런공작을 계속하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지금의 총질이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모사꾼에게 팔려서 돈을 받고 하는 짓거리란 거죠.
위험한 국면에서 잘하리란 걸 믿지만 미얀마국민의 계몽이 필요한 싯점이죠.
@독감사행 우크라이나를 반드시 상기해야죠.
진압군과 무관한 자가 대중을 향해서 사격을 해도 봉기를 하는 자는
진압군인만 주시하지 쁘락치를 주시하지 않죠.
그래서 저 쁘락치를 잡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총알은 안보이니 장갑차가 발사했다고 사기를 쳐도 모르죠.
맹점을 잘 봐야 되고 봉기의 끄나풀을 잘라야 하죠.
독재도 자국인이 외세개입없이 하면 좋죠.
예상피해가 극도로 작게되니 그렇고 외세가 개입되면 전국민이 전란에 빠지죠.
수치는 미얀마국적이 아니죠.
군부가 그게 가장 수치를 적으로 보는 입장이 한마디로 표현된 겁니다.
참고로 사회주의를 하는 나라는 국민이 우선으로 보는게 한결같은
모든 사회주의국가가 취하는 행태죠.
민주주의는 곧 사회주의로 통하는 겁니다.
개인주의는 한발작 떨어진 가진자들의 민주주의지
못가진자들의 민주주의는 아니죠.
민주주의를 표어로한 미얀마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불쌍하죠.
@독감사행 땡~
미얀마 군구쿠테타는 이미 서방세력의 눈밖에 난 아웅산 수치세력을 정치적으로 제거하려는 목적일까요?
서방의 정책에 방해될 만큼 이미 서방세력의 눈 밖에 났고, 중국과 송유관까지도 건설하고 서방세력 의도와 달리 예전 사회주의 계열 군부와도 관계가 좋았던? 수치를
왜? 이 싯점에...군부가 나서서 수치를 제거해야 될까요?
그렇다고 사회주의? 했던 군부가 서방을 등에 없고 쿠테타를 일으켰다고 보기는 좀 곤란하고...
아뭏든 쿠테타 동기가 명확해 보이질 않습니다. 저는 미얀마 내부의 정치경제적 이권장악 싸움으로 보입니다만...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로힝야족을 미얀마에 정착시키며 이전부터 버마족과 소수민족들에게서 강탈한 토지로 구성된 플랜테이션 농장의 소유권을 로힝야족에게 주는 특권을 부여하였다.
1988년에 수치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하여 귀국했다가 대규모 반공시위(이른바 ‘8888 항쟁’)에 참여하여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급부상하였고, 이를 빌미로 서방 제국주의 세력은 수치의 ‘민주화 투쟁’을 적극 지원하며 사회주의 미얀마와 군부를 압박하였다.
수치-군부 간의 국정에서의 협력은 수치가 내걸었던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었을 뿐더러, 전술한 연중 외교노선과 대(對) 로힝야 정책 등 군부 시기의 정책이 수치 정권에서도 적잖게 계승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다가, 수치는 권력을 이용해 자신을 반대하던 언론을 탄압하는 등 군부 통치 시기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국정운영 행태를 보였다.
@채널만호 그래서 서방이 다시 군사구테타로 원상복귀?시킨 후에...
다시 민주화 시위로 군부구테타를 반대하게 해서...
수치대신 또 다른 친서방정권으로 바꾸겠다?는 시도일 수도 있겠네요.
그럼 미얀마 군부쿠테타는 서방의 사주로 일어난 것이 될수도 있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참으로 사악한 미영 서양제국주의 놈들이지요
근데 이렇게 되면 서방에 이용당한 지금 미얀마군부의 쿠테타도 미얀마 역사의 역적이 되나요?
@인향만리 결국 최종적인 유추로는
힘 없는 미얀마 정치와 군부가 서방의 공작에 놀아나는 국가 내부의 비극?이 될 수 밖에 없네요
힘 없고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 정치 수준과 경험 부족, 그리고 정치군부집단의 부패와 탐욕이 가져온 비극인 측면도 있겠지만...
서방의 간교함이 사실이라면 그 위선은 곧 끝날 것입니다
좋은 자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
숲별빛
(숲)_ 숲에 별무리다
(별)_ 별은 빛나는데
(빛)_ 빛은 외로워라
<시>
숲별빛
(숲)숲은 겨울이라 별로고
(별)별은 찬란하게 빛나니
(빛)빛나는 통찰력은 모두를 일깨우네
@황토강 시가 한수위네요^^
대가리가 외세에 길들여지면 몸도 마음도 노예의 신분입니다. 깨닫느냐 아니냐의 문제이지요. 잘 배웠습니다.
군사쿠데타를 두번이나 경험한 국가에서 어쩌다가
타국의 군사쿠데타를 옹호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아이러니 하네요.
비정상적인 과정이 정상적인 결과를 만드는 경우는
지구가 존재하는 한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독감사행 아무튼 문제는 독재 군부나 반독재저항파나 까보면 50보 100보로 그나물에 그밥이라는것.
@독감사행 미안마 군부가 돈과 권력을 외부에 안빼기겠다는 것은 미안마 국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상이다.
쿠데타나 민중봉기는 어디서나 있을 수 있다. 단, 그것이 자력이 아닌 외세의 사주를 받아서 개쥐롤 하기 때문에 문제이다. 대만이 죽을 줄 모르고 미국에 안기는거나 홍콩에 성조기 흔드는거나 천안문 사태 때 자유의 여신상 행진하는 꼴같잖은 행동의 이면에 분할하여 통치하라는 불문율이 도사리고 있다. 동유럽의 오렌지 난동이나 중동의 무슨무슨 난동이나 지금의 미안마나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가리가 외세에 점령 당하면 몸도 마음도 이미 식민지 노예이다.
@독감사행 암요, 당연하죠, 그럼요?, 무슨말씀.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