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이단론 시비는
언제나 신학과 교리의 적용의 측면에서 보다는
정치적 측면에 의해 부각되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시화되고
대형화될 때,
타산해보고
불리해 질 것 같아 보이면
이내 터뜨려 버리는 식입니다.
세상 정치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류광수 다락방 운동'을 보고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이단인 것을 감추는 방법으로
류광수 보고 이단이라는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평강교회에 대한 이단성을 요구한 측과
장로교 합동 교파로 유입시켜도 된다는 측의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바른 신앙생명을 걸고
반대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전반적인 양상은 그다지 긍정할만큼
이러한 환경들이 구축되어져 있지 않습니다.
유입이 무산되었기에
한국교회의 장래가 바른 신앙적 전통에
서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신앙과 신학을 생명을 걸고 고수해야 할 것으로 생각지 않고
단지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한계는
언제나 대세에 따른다는...
이러한 파워게임에 유리한 쪽에 줄을 서는 것이
현명한 모습이요
성경이 말씀하는
"교만하지 않는 지혜"라고
애써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정치적 현실과 타협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자들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른 성경적 대안은
언제나 뒤로 밀려나가는 것 처럼 보입니다.
류광수의 이단성을
자신들의 확고한 신앙적 관점에서
비판해 낼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개교회주의로 돌아선 자신들의
성경해석의 많은 국면들-
예를 들자면 교회론, 구원론, 성화론, 선택구원론...-
많은 부분에서 교리와 삶의 본질을 변질시켜놓고 있음에도
이들이 특정 이단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단지 조직의 양심상
따른다는 군중심리
그 이상도 이하도
될수 없을 것입니다.
그 증거로서,
류광수 보고 이단이라고 근거를 내세우는 그 근거를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교회나 노회나 총회나 교단이나
혹은 친구 목회자들에게
먼저 적용시켜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류광수 집단이
한국 교회 목사들의 병폐를 빌미로 삼아
거기에 승부를 걸어 영혼 장사를 하는 것에 대한
시기심의 발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기와 분쟁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육체의 열매입니다. (갈 5:20)
자신들의 교인들을 관리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류광수 집단을 이단이라고 몰아세우는 태도는
그 자체가 곧 이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혹세무민하는 자들의 일반적 태도입니다.
물론 소수의 바른 교회도 있지만 말이죠
.
류광수의 이단성은
그의 계시론에서 비롯됩니다.
즉 성경이 계시가 아니라
성경이 현실화되어 나타난 현상,
그 자체를 계시로 간주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런 열성있는 불신앙성은
인간의 종교성을 이용해서
어쨌든 교회나 키우자는 속셈에서 나왔습니다.
예를 들면,
실제로 초대교회의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야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일반 대중들은,
자신의 자존심이 손상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제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신앙인 행세하기에 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존의 한국 교회나 개척교회도
다 이런 식이긴 하지만
단지 류광수는
한국 교회의 타락상을 지적해 가면서 한다는 점에
그 진실성에 대한 신뢰성을 더 받게 되어
호소력이 강해지고 있을 따름이지요.
교인들은 평소에
한국 교회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다가
이 류광수의 말을 듣고서는
제대로 된 참된 종이 나온 것처럼
착각하는 겁니다.
류광수의 나머지 이론,
즉 기도론과 전도론도
모두 이 실제적 계시론에 부합되도록
변조시킨 것입니다.
류광수의 제시하는 마귀론은
한국 교회의 타락상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하기 위해
장식품에 해당될 뿐이지
실제적인 내용은
그냥 한국의 전래되는
토속 귀신론의 연장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일반 목사들은,
뭐라도 흠잡을 것이 없을까 살피다가
김기동 씨 마귀론과 똑같다는 것을
물고 늘어지는 비겁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한국 교회 비판 말고는
자신들이 하는 짓을
보다 노골적으로 더 열심히 한다는 것 외에는
더 심오한 진리 같은 것이
류광수 집단에서
아무리 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류광수 집단으로 돌아서는 목회자들의 심리는 이러합니다.
"에라, 이왕 이 목회 시장바닥에 들어선 인생,
류광수처럼 일단 화끈하게 한 몫 잡고 보자.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는 것을 나중 문제이다.
그래 앞 뒤 안 가리고 뜨거워지는 거야!
뜨거움이 전부야!
뜨거운 것이 최고야!
뜨거움으로 승부거는 거야.
저 류광수에게서 어떻게 하면 저토록 뜨거워질 수 있는 가 그 비법만 배우는 거야.
류광수는 나보다 더 더 무식하니 학적으로 배울 것은 하나도 없고....
오! 저 말도 안되는 횡설수설!
앗, 그러나 뜨거움으로 유도하니
저 민중들이 다 속아 넘어가네.
나도 그 수법을 활용해야겠다.
어차피 장사는 장사니까 "하고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류광수 씨의 존재 의미는,
한국 교회의 총체적 이단성을
대표적으로 온 몸으로 보여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교회다니고
활동함에서 나오는 자기 의'를 긍정하는 그것이
류광수 및 한국 교회의 이단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