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자매듭은 정말로 가장 튼튼할까
등반을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매듭, 그리고 가장 처음 배우는 매듭이 8자매듭이다. <MOUNTAINEERING>에는 여러 가지 매듭 중 8자 매듭이 가장 강도가 세서 매듭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약 80%의 강도를 유지한다고 나와 있다. 국내 등반기술서에도 물론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이 또한 궁금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전에 모 산악회의 어떤 선배는 유독 8자매듭을 하지 않고 옭매듭을 선호했었는데, 그분은 등반기술서를 접하기 전에 선배로부터 옭매듭이 가장 강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안전벨트에 옭매듭으로 로프를 묶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분에게 직접 바위를 배운 게 아니라서 속으로만 ‘8자 매듭이 더 강하다고 책에 써있는데’라고만 생각했었다. 어쨌든 그분은 옭매듭을 하고도 아무 사고 없이 지금까지 바위를 하고 있다.
옭매듭이건 8자 매듭이건 바위를 잘 오르는 것과는 관계가 없지만, 클라이밍을 떠나 어린이가 가질 수 있는 호기심으로 문제에 접근해 보면 정말 강도 차이가 날까? 그렇다면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와 비슷한 실험을 한국산악회 산악기술위원회에서 하고 세미나를 했었다. 그런데 세미나 장소에는 청중이 단 4명이 왔다고 한다.(최근 굿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직접 실험을 하려고 했는데 이미 비슷한 실험을 작년 유학재 선배가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도 세미나에 안 갔었다)
세미나 후 ‘카라비너 및 슬링에 대한 고찰’이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이 실험은 다이내믹로프가 아니라 웨빙슬링으로 한 것이라서 책에 나와 있는 ‘8자매듭 80%’ 라는 수치와는 단순 비교할 수가 없다.(사실 책에도 그 80%가 무슨 종류의 로프로 한 것인지, 실험방법은 어떤지, 그 수치가 인장력인지 순간충격력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단순히 강도라고 했으니 아마 늘어나서 파손되기 직전 강도인 최대인장력일 것 같다. 그게 맞는다면 이 실험과 같은 방법이다)
실험은 여러 가지 슬링을 놓고 최초 100kg의 하중을 가한 후 1분간 대기상태로 두어 안정화 시킨 후 다시 힘을 가해 절단될 때까지 시간과 늘어나는 거리 및 인장력에 대해 측정한 것이다.
결과는 나일론 슬링이 5회 테스트에서 평균 2.14톤의 인장력을 나타냈고 옭매듭을 한 것은 1.33톤, 8자매듭은 1.39톤의 인장력을 가졌다. 책에 나와 있는 계산대로라면 옭매듭은 1.39톤, 8자매듭은 1.71톤의 인장력을 가져야 하는데 결과는 각각 62%와 65%로 그보다 300kg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다이니마 슬링은 조금 다른 결과를 보였다. 같은 테스트에서 평균 2.6톤의 인장력을 나타냈으나 옭매듭을 했을 때는 1.71톤으로 약 65%, 8자매듭은 1.70톤으로 똑같은 65%의 인장력을 가졌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각각 두 개의 매듭이 절단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나일론 슬링의 경우 옭매듭은 2.09초, 8자매듭은 2.2초로 0.1초쯤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이니마 슬링은 격차가 더 커서 옭매듭은 0.8초 만에 끊어졌는데 8자매듭은 1.22초가 걸려 0.4초 정도 차이가 났다.
결과의 차이를 거론하기 전에 이게 다이내믹 로프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다이내믹로프에는 충격을 줄여줄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인 신장율이 있다. 다이내믹로프의 신장율은 두 가지로 측정하는데, 사용신장율과 추락신장율이다. (국내에서 행하는 ‘검’ 마크는 끊어지기 직전 최대신장율을 측정한다. 이것은 선박용 로프와 같은 스태틱 로프에만 해당되는 것인데도 구분 없이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어쨌든 실제 등반 상황과 같은 추락신장율은 40% 이하가 되도록 하는데, 드롭타워 추락시험에서 로프가 늘어나는 시간 동안 충격이 분산되는 효과를 낳는다.
두 가지 결과를 놓고 추론해 보면 ‘8자매듭 80%’의 해답은 ‘시간’에 있다. 8자 매듭은 등반에 사용되는 매듭 중 매듭 부분의 길이가 가장 길다. 1m의 로프로 옭매듭을 5개 만들 수 있다면 8자매듭은 4개밖에 못 만든다는 것이다.
즉 매듭 길이가 길기에 충격을 받았을 때 매듭이 한계순간까지 조여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시간은 다이내믹로프의 신장력과 같은 충격 분산효과를 가져오기에 옭매듭보다 8자매듭이 실제 추락에서 매듭 강도가 강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것은 ‘매듭의 강도는 매듭 길이에 비례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달리 보면 얼마든지 교재에 없는 새로운 매듭을 만들어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매듭을 오래 사용해야 하는 원정등반에서는 고정로프작업을 할 때 ‘9자 매듭’을 하기도 한다.(편의상 9자매듭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옭매듭에서 반 바퀴를 더 돌리면 8자매듭이 되듯 완전히 한 바퀴를 더 돌려 묶는 것이다)
그럼 10자 매듭이나 100자 매듭은 더 튼튼할까? 그건 모기 잡으려고 칼 뽑는 일. 일반적인 암벽등반에서 사용하는 매듭은 8자매듭이 헛갈리지도 않고 로프 사용 길이도 가장 경제적이고, 또 적당히 튼튼하기에 많이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8자 매듭 80%, 옭매듭 60%라는 단순한 공식에는 의문이 간다.
출처 :우송대학교 OB산악회 글쓴이 : 최원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