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수목원은 조선조 제 7대 세조대왕과 정희왕후가 묻힌 광릉의 부속림 중 일부로 500여년간 왕실림으로 엄격하게 관리 해 오다가 일본에의해 국권침탈후인 1911년 국유림구분조사시에 능묘 부속지를 제외한 전지역을 "갑종요존예정임야" 편입 시켰는데 이것이 오늘의 광릉숲이 되었다.
1983년~1987년 까지 수목원과 산림박물관을 조성 하여 1987년 4월 5일 부터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또한 식물자원화를 위한 다양한 식물종의 확보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대두 되면서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1999년 5월 24일에는 임업연구원, 중부임업시험장, 수목원과에서 산림청 국립수목원으로 신설 개원 하였다.
국립수목원은 식물과 생태계에 대한 다양한역할을 담당하고있다.산림생물의 조사, 수집, 증식, 보존, 산림생물 표본의 수집 분류 제작및 보관의 업무를 하고 있으며 국내외 수목원간 교류 협력 및 유용식물 탐색과 확보등의 업무를 보고 있다. 현재 수목원의 넓이는 1.120hr(광릉숲 전체 2.240hr)으로 식물종 6.344종(광릉숲 자생종 938종), 전문전시원 : 3.344종, 열대식물자원 : 3.000종과 서식동울이 4.376종(곤충 : 3972종, 조류 : 180종, 포유류 : 20종, 어류 : 22종) 등이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위치한 봉선사는고려시대인 서기986년 법인국사 탄문이 처음 세운 유서 깊은 사찰이다.봉선사 입구를 지키고있는 하늘 높이 치솟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사찰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창건 당시에는 운악사라고 불리웠는데 1469년 예종 1년에 정희왕후 윤씨가 근처 광릉에 모셔진 세조를 추모하며 운악사를 증축한뒤 봉선사라고 새로운 이름을 붙혔다.
이곳은 전국의 승려들과 신도들을 가르치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명종 6년인 1551년에는 교종의 수찰사로 지정되어 승과시험을 치루는 도량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때 화재를 입고, 625전쟁때 법당과 150칸의 건물들이 불타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였으며 봉선사의 자랑거리는 일주문 안쪽의 연꽃밭에서 매년 여름이면 연꽃 축제를 열어 지역주민들과 경인 각지의 관광객들의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에도 7월 1일 부터 9일까지 연꽃 축제가 열일 예정으로 준비를 했는데 연꽃이 우리가 간 6일에도 겨우 몇 송이기 피기 시작 했다.
어느 절에서나 대웅전의 현판을 볼수 있는데 이곳 봉선사에는 대웅전이라고 하지 않고 "큰법당"이라고 한글로 쓰인것이 이채롭다. 이것은 1970년 운허선사(춘원 이광수의 팔촌 동생)가 대웅전을 새우면서 써서 달아 놓았다. 또한 경내의 봉선사 대종(보물 제397호)이 있는데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진 몇개 남지 않은 동종중하나로 예종원년(1469년 )에 왕실의 명령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초기의 동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광릉(光陵)은 조선 7대왕 세조(世祖)와 정희왕후윤씨(貞熹王后尹氏)의 능으로 사적 1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능은 세조가 석실의 유해무익(有害無益)함을 강조하고 석실(石室)과 병석(屛石)을 쓰지 말라는 유명에 따라서 병석을 없에고 석실은 회격으로 (灰隔)으로 바꾸어 꾸몄으며 ,십이지상(十二之像)을 난간동자석주(欄間童子石柱)에 옮겨 새겼다.회격으로 바꿈으로서 쓸떼없는 비용을 절약 했으며 능 배치상에 있어 동원이강(同原異岡)의 형식이 여기에서 비릇 되었는데 이로써 개국초기에 왕릉제의 일대 변혁을 이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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