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단위, 지구, 국가봉사자들의 열린 토론회를 늦게 읽고서 공감하는 바 퍼왔습니다.
인천지구 형제자매님들, 우리도 한번 고민해 보고 나눠보면 어떻겠습니까?
첫째 날 종합토론
- 토론회를 통해 형제회 봉사를 하면서 고민하고 헤쳐 나가려고 노력하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았으나 국가평의원들이 고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국가형제회는 전체 재속회원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여기 모인 단위회장님들은
단위평의회의 문제를 고민하다보니 당연히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해는 한다.
그러나 이 거리감이 좁혀 없어져야 한국의 재속회가 제대로 될 수 있다.
단위형제회가 자기 단위형제회만이 아닌 이웃의 단위형제회,
이웃의 지구형제회 그래서 한국 전체 회원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
바로 회칙과 회헌의 가르침대로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형제회 = 형제애>
이것이 극복해 나가야 할 주요과제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형제회 안에 사는 것이다.
‘형제회’는 일차적으로 단위형제회를 지칭하지만 모든 형제회를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형제회도 국제평의원을 두고 국제형제회와의 긴밀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한 나라 안에 있는 모든 형제를 한 형제.자매로 생각하고
걱정을 함께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의 말씀 중에 국가형제회가 고민하는 문제의 해결점도 나왔다.
이 고민의 해결이 국가가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해결은 회원들이 살고 있는 단위형제회에서부터 회원들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될 때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고, 이 변화의 주체가 바로 ‘회장단’이다.
지금까지 하향전달식으로 이루어져 왔던 문제를 완전히 뒤엎기 위해
이번 국가평의회는 그동안 노력해 왔다.
근본과 본질은 단위형제회에 있으며, 오늘 모임도 그런 취지로 만들어졌다.
오늘 나온 말씀은 사실 6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형제회 분할(왜 본당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양성과 사도직 체험,
교구와의 관계 개선, 형제회의 획일화를 탈피하기 위한 방안,
‘형제애’를 살리는 방안, 소모임 활성화이지만 크게 보자면
“형제회를 제대로 살리기 위한 문제”로 다 집결된다.
우리가 수도자가 아닌 재속인으로 사는 것은 교회의 자녀로 사는 것이다.
지역 교구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교구장님 밑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교님 안에서 형제애를 나누는 형제회로 살아야
회칙과 회헌의 정신을 살아내는 것이다.
여러분이 돌아가셔서 형제회가 변화될 수 있도록
각오를 다지고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한다.
<형제회 분할- 왜 본당으로 들어가야 하는 가>
형제회 규모를 줄여야 된다거나 형제회가 본당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을
국가형제회나 지구형제회가 서둘러서 밀어부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회칙과 회헌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로는 도저히
‘형제애’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들의 의식화에 대해 말한 것이다.
우리가 뜻을 가지고 있고 분명 이런 문제로 기도하고 고민하면 반드시
하느님께서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는다. 때가 되면 다 길이 생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다.
서울 지구 가운데 한 구역이라도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가
75주년이 되는 2012년이 되기 전에 한 본당에 들어가 단위형제회를 설립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것이 예수님이, 사부님이, 우리의 회칙을 인준해 주신 교황청이
기뻐할 일이기 때문이다. 형제회 분할문제가 거론되면
흔히 영보의 부족문제와 본당 설립 시 교구장 서면동의를 받는 문제가 나오는데
그것은 형제회를 설립한 관구 수도회 장상께서 고민할 문제이지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위형제회 스스로 본당으로 들어가 보겠다는
마음이 간절하고 그런 고민을 평의원들이 할 때 길이 열리는 것이다.
서울교구 안에서 우리가 재속회원으로서 본당 안에서도
주교님의 자녀로 잘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이 가운데에서
본당사제와 잘 지내는 구역이 있다면 그 구역만으로 형제회를 세우면 된다.
그 본당신자만으로 형제회를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꼬가 트이면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제는 서서히 해결되리라 본다.
회칙과 회헌의 정신으로 보면 교회 공동체
즉 교구공동체인 본당 공동체 안에 살아야 한다. 그래야 주교님 안에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헌에 의하면 성당이나 수도원에 근거를 두지 않는 형제회는 없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서울지구 마석 글라라 할머니들의 경우도 공동체 생활을 하지만,
인근 설립된 형제회인 말가리다 형제회 소속 회원으로 계신다.
공동체 생활은 하되 설립 형제회에 소속하면 된다.
본당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회헌 17조에 근거한다. 결국은
재속프란치스칸으로 불림 받은 것은 교회와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이다.
<형제애 나누기, 양성문제>
앞 토론에서 열심하게 사셨던 회원이 전출하면서
불쌍하고 슬픈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해 준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맺은 ‘형제애’는 영원히 천국까지 가는 것이다. 그런 죽음이 더 이상
우리 형제회 안에서 생겨서는 안 된다. 행불자라는 용어도 그렇다.
우리 형제회에서 서약한 형제가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평의회에서 모를 수 있는가.
회칙과 회헌의 정신으로는 있을 수 없고 ‘형제애’를 정말 모르는 것이다.
형제회는 핏줄을 나눈 형제.자매같은 그런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곳이다.
우리는 정말로 서로 핏줄을 나눈 형제.자매처럼
사랑을 나누는 형제회로 살 수 있을 까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교재를 가지고 지식전달에만 열심 하다보면
시골형제회 같은 곳은 이웃과도 두터운 사랑을 나누며 정말 잘 살고 있음에도
주눅이 드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을 근본적으로 기준을 다시 생각해서 정말 형제애가 넘치며 잘 살고 있는
시골형제회가 좋은 형제회라는 의식으로 바꾸어야 된다.
<월례회에 반드시 미사를 해야 하는가>
모임을 하면서 미사를 함께 드리면 일체감이나 은혜로움 때문에 하는 것이지
모임에 반드시 미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임에 미사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그동안은 조직 정비에만 마음을 쓰느라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정말 잘사는 형제회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해서 한국의 가톨릭교회가
우리에게 큰 기대를 걸 수 있도록 매진해야 한다.
교황청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새 회칙을 인준해 준 것 아니겠는가.
<획일화 된 형제회 모습 탈피>
형제회의 획일화에서 탈피해서 살아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연관해서 국가규정을 새롭게 손보고 있다.
단위형제회, 삶 중심으로 돌아가고 우리를 얽아매고 있는 규칙은 완화하려고 한다.
국가규정이 새로 나오면 지구규정도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월례회’라는 말도 ‘모임’으로 바꿀 것이다. 정기 모임은 어떤 형제회는
매주, 2주에 한 번 등 각 형제회의 성격에 따라 자유롭고 다양성있게 하면 된다.
삶을 잘 사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자.
<청년회>
‘유프라’와 ‘청년회’가 분명 같은 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들은 우리들의 고유 프란치스칸 가족이다.
프란치스칸 가족의 하나인 젊은이들의 모임인 청년회에 큰 관심과 도움을 주어야 한다.
오해하고 있는 점 중 하나는 과거 ‘청년부’와는 개념이 다르다.
과거 청년부는 재속프란치스코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같은 회칙과 회헌으로 교육을 받고 회칙과 회헌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유프라에게는 1회나 2회, 결혼성소, 혹은 교구사제나 재속프란치스칸 등
성소가 다 열려있다. 우리로서는 활력가를 파견함으로써
재속프란치스코회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 뿐이다.
원칙적으로 그들의 모임이 생기면 우리들이 가서 함께하고 도와주면 된다.
한국에서는 이런 모임이 저절로 생기기를 기다리기에는 더디기 때문에
평의회에 청년담당을 두어 청년들을 모으는데 힘을 쓰자고 한 것이다.
젊은이들의 성소개발과 관련해서 단위차원의 노력은
재속프란치스코회에 관심있는 젊은이들을 모집하면 된다.
유프라와 연관 지어서 유프라를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유프라의 설립은 재속프란치스코회가 도움을 주고 함께하지만,
기존의 상급유프라가 하는 것이다. 재속프란치스코회의 미래를 생각하면
청년담당자들을 통해 유프라회원을 재속프란치스코회로 많이 안내하고,
단위형제회 차원에서 젊은 청년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된다.
회장단이 회헌의 정신을 잘 살려 청년회에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국가 영적보조자 신부님 말씀>
회개와 쇄신의 중심은 바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령께 내어 맡기는 자세, 즉 영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다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거룩한 영에 내어 맡기는 자세는 주님을 믿는 대표적인 행동입니다.
주님을 믿기 때문에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닌 주님의 지혜에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에 내어 맡기는 것은 세상의 지혜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이런 어려움 그것이 바로 쇄신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십자가입니다.
주님께 내어 드리는 자세로 인해 우리는 십자가도 기꺼이 질 수 있습니다.
돌려드린다는 것은 내 것이라고 믿던 모든 것을 철저히 포기하는
영성적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주님의 영 안에서 살고 성령께 내어 맡기면서
나의 모든 것을 되돌려 드리는 것이
우리 쇄신, 회개의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요 길이다.’하시며
‘나를 믿는 자는 죽어서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하십니다.
세속의 견지에서 죽음은 부정적인 것이지만,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쇄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털어냄으로써 얻는 쇄신은
주님의 영을 지니고 주님의 영에 내어 맡기는 삶을 살 때 새로움을 얻게 됩니다.
사부 성 프란치스코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 일이 없다시피 하니 다시 시작합시다.’
누구보다도 완벽한 삶을 살아내신 사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왜 하셨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권고말씀을 75주년을 맞이하여 쇄신하고자 노력하는
한국재속프란치스코 회원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75년이라는 시간동안 재속프란치스코회가 이룬 것도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변화나 새로움에 대해 귀를 여는 것이 부족한 점은 없었나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령께 모든 것을 내어 맡겨 드리고, 시대의 징표를 늘 인식하면서
고여 썩지 않도록 긴장 속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쇄신을 할 때도 주님의 영께 모든 것을 돌려드리려는 마음으로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형제님,말씀같이 우리들도 함께 깊이 생각해봐야 되는 문제라 여겨집니다.온전한 형제애 나눔,본당 안에서 프란치스칸의 자리 만들기,젊은 푸란치스칸 육성 문제,교회 안에서
세상 안에서 사부님같이 완벽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각자 자신의 삶을 신앙을 돌아보게되는 계기가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한 마음 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