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서
/헤럴스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니, 조국의 영광이니, 한민족의 저력이나 혹은 그 탁월한 우수성 등에 관한 개념이나 기대들을 버렸었다. 그만큼 나는 그런 어이없는 대통령이 저런 이상하고 웃기는 지도자가 나올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이제껏 배우고 느껴왔던 정치, 지도자, 정당, 그에 따른 사회와 나라의 개조나 번영이 상식이나 혹은 보편적인 순리대로 가지 않을 수도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한 것이다.
즉 쉽게 말하면, 백성이라 불리는 인간들이 한순간에 또라이가 되고, 병신이 되고, 집단 최면처럼 광란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먹여주고 모든 슬픔과 위로를 대신해주던 예수를 한 순간에 폭군과 죽여야 할 원수처럼 돌변했던 과거의 역사들이 마냥 이야기로만, 그냥 소문으로만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서도 흔히 일어나고,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아무리 외면하고 무관심하려고 해도 아닌 밤중에 홍두께요, 설상가상으로 이명박 정권의 하찮고 무가치한 정치에 비하면 통합진보당의 좌파종북세력과 그 옛날 공산주의 열혈추종자들이 새삼스레 고개를 내밀고 아직도 버젓이 이 땅에, 이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집단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저으기 충격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때는 나도, 한민족의 일원이요 형제국으로써 그나마 외세의 압제와 침입으로 유발된 분단과 냉전의 현실 때문에 북한과의 우호적인 연대 내지 자발적인 협력체제를 옹호하고 애써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적극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편이었다.
대학가의 운동권 내지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관련 사회주의 노선에 집착하여 그런 식의 논리와 사상에 투철한 친구나 혹은 가까운 동료들이 간혹 있었지만, 그리고 그런 시대의 조류와 현상들이 잠깐의 시절에는 약간의 발전적인 아픔도 되나 그 이상의 번영을 위한 자연스런 몸부림 아닐까 하는 고뇌의 시간들도 겪었었다.
주사파 핵심조직원이었던 이광백의 과정을 돌이켜보거나,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의 인생역정을 보거나, 통일운동의 거두였던 문익환 목사의 경로들을 살펴봐도 지금의 통합진보당 내의 그런 어이없는 작자들만큼 실망과 충격과 우려를 나타내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그들의 노력이 거시적이고 민족적인 관점에서는 그들을 흡수하고 오히려 우리 사회가 그런 반세포적이고 해로운 세균들의 활동처럼 더 건강한 사회와 나라를 위해서 필요악이라 나는 여길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통합진보당의 사태를 간략히 보면서 나는 심히 우려스럽다.
아직도 저런 하찮은 종자들이, 지금 때가 어느 때이고 시대가 어디쯤인데, 아직도 어린 애들을 세뇌시키고 작당을 지어 사상과 정신을 교란하고 목적달성을 위해서 민주와 보편적 가치들을 전도시키다니, 매우 심각하고 걱정스러워진 것이다. 더우기 저들이 파당을 지어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국고를 탐내고 나라의 지원과 보조금을 챙기면서 국가의 기밀과 고급 정보들을 접하는 의원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저들이 활동하게 된 그 근저를 살피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특히 소위 저들만의 리그로 이 땅을 유린하는 자들의 횡포와 기만들을 생각하면, 밑에서 수고하는 노동 계급과 서민들의 애환이 한번은 이 땅을 엎어버려야 된다고 할만큼 분노와 자극이 일어날 수도 있다. 강도만도 못한 자들이 정권을 획득하고 자격도 없고 전문능력도 없이 지들만의 인사와 전횡으로 국가를 농락하는 현금의 작태들이 결코 작다거나 안심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사회와 국가가 이 모양이니 빨갱이 내지 편향적, 기형적인 주사파 내지 친북 성향의 반미반제주의자들이 국가 전복이나 체제일탈을 내걸고 혁명이나 지하공작을 벌이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볼 때에도,
이명박 정권의 저런 개만도 못한 것들이 정권취득과 부정부패 및 국정농단을 부린다면, 언제가는 주사파 내지 좌파종북세력이라한들 뭐가 다르겠는가? 누군들 어떤 수작과 공작으로 국민을 속이고 정권을 획득한들 무어 얼마나 다르겠는가?
물론 그렇게 말하면 딱히 대답할 게제도 없다.
그럼에도 그 본질과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결국 친북 운동권 내지 좌파세력이라고 불리는 정신이상자들도 제 한 목숨 부지하고 어찌 살아보려고 하는 작은 발버둥이요 어이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가만히 주의를 기울여서 보면, 옛날 운동권 내지 친북노선세력에 가담했던 아이들은 전부 정신적 기형아들이요 결국 제 밥 벌어 제 한몸 지키려고 부대끼는 처량한 신세들이 명확하다. 단지 지들이 뭔가 대단하고 위대한 일을 하는 것처럼 현실을 착각하거나 냉엄한 현실의 이치를 자신들만의 잣대로 바라보기에 빚어지는 잠깐의 현상들에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 시대에, 지금에서 통합진보당 내의 공산주의자들 내지 그런 좌파친북세력들을 경계하고 축출해야하는가?
그들이 김일성을 공부하고, 북한을 사랑한 것이 죄요 잘못이 아니다. 그들이 공산주의를 학습하고 반미제국주의의 모순과 현자본주의의 악습을 꾸짖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지들 살라고 지들끼리 힘을 모아 작은 시정부를 압박하고 그런 자금과 용돈마련을 위해서 지방기업을 그럴싸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이 법과 제도가 허락하고 그래서 그 제도권에 나름의 기지를 발휘해서 정치세력화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탓만을 할 수 없다.
내가 우려하고 심히 걱정스러운 것은,
그들이 배운 운동과 사상학습이란 것이, 말로는 노동권 사수요 서민의 복지라고 하지만 정작 편협한 이데올로기와 자신만의 정당화, 목적과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무도하고 폭력적인 근성이다. 진짜 좌파와 진보라면, 자신을 희생하여 대의에 헌신하고 바른 가치에 몰입하여 모범과 희생으로써 공동선을 쟁취하고 그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여야 한다.
우리가 늘 듣는 일화지만, 두 창녀가 솔로몬 왕에게 찾아왔다.
3일 간격으로 죽는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들이 살아있는 아이임을 재판하는 이야기이다. 결국 칼로 두 동강이를 내서 주어라고 할 때, 진짜 엄마는 자신의 아기가 죽는 것만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어서 아기를 죽이지 말고 살려두라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차라리 다른 엄마품에서라도 살아가기를 바라는 까닭에서다. 나는 이런 진보, 이런 좌파친북세력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아이를 찢어 죽이고 둘로 나누어 공평이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엄마는 자신의 아이임을 알고도 차마 죽이는 선까지는 가지 않았다. 아쉬워도 안타까워도 아기 대신 자신이 죽어도, 아니 백번을 죽어도 감당하고 싶었지만, 그렇수도 없는 현실 속에서 아이를 살리고 끝내 자신을 포기했다. 자기의 선한 뜻도, 어설픈 주장도, 아무리 위대하고 빛나는 웅변들도 죽어가는 아이 앞에서 사랑으로 삼켜야만 했던 것이다.
나라를 살리고 정의를 살리고 모든 선한 유권자, 자신을 믿어주는 엄마들의 격려와 응원에 답하는 정당의 지도자, 그런 정치인들이 겨우 돈 몇 푼 뜯어먹자고 민주의 아이, 인권의 자식, 자유와 복지와 합의의 갓난이를 두 동강 내서야 쓰겠는가?
내가 이석기, 김재연, 이정희, 김선동 같은 무리들을 하찮고 가소롭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런 더럽고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려고 지금껏 그 많고 구구한 개소리, 껍데기 소리, 그럴싸한 구라들을 던졌던가?
자신들이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이유와 핑계와 온갖 구실을 갖다붙이면서 구정물과 진흙탕 싸움을 연출하다가 이상한 법문이나 선문답 같은 씨부렁거림을 하면서 슬쩍 사라지고 이슈를 뭉개버리는 그런 얄팍하고 잔대가리 굴리는 짓 말고, 이번이 아쉬우면 다음에 다음에 안되면 그 다음에라도 참다운 민주, 바른 정치, 위대한 국민이 살고 아름답고 부강한 나라로 우뚝서는 세상을 위한 정치를 하려면, 진짜 엄마의 심정처럼 큰 뜻 바른 가치의 아이를 먼저 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서서는 피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사랑하는 아이를 살리는 길이요 훗날에라도 장성하고 위대한 인물로의 아들을 만날 기회를 남기는 지혜이다.
찢어 죽여 두 동강이로 갈라주시오 라고 말하는 가짜 엄마의 입장을 진보라고 한다면, 차라리 그런 진보는 오늘 장례식을 치루라. 그대들의 죽음이 한민족의 희망이요, 그대들의 초상이 통일된 선진한국의 미래라고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