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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문학> 2021 봄호, 계간평
개성이 강한 작품이 돋보인다
野城 이도현
한국시조협회 고문
탈무드에서 “남보다 뛰어나려 하지 말고 남보다 다르게 되라”고 가르친다. 이 말은 사람이 성장 발달함에 있어 그가 가진 수월성(秀越性)보다 오히려 개성이 강한 사람이 성공률이 높다는 말이 아닐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을 갖고 태어난다. 이러한 특성을 조기 발견하여 지도하고 격려하면 특성화 교육이 실효를 거두어 그 방면으로 발달하게 된다.
글을 창작함에 있어서도 남들이 다하는 방식대로 유형적(類型的)인 글을 쓰기 보다는 남과 다른 개성적(個性的)인 글을 쓸 때에 그 작품이 돋보이게 된다.
글의 제목을 정하는 데서부터 소재와 제재의 선택, 내용의 구성, 표현기법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방법을 창안하여 적용하면 그 작품은 독자들로부터 주목을 받는다.
이번 봄호에서 그러한 개성적인 작품들이 많이 평설되었음을 밝힌다.
창밖은 꽃샘바람 들녘엔 움트는 꽃
바람은 천방지축 계절을 외면하네
봄소식 설렘의 향연 마음속에 머문다
시간은 어김없이 계절을 알려 주네
봄소식 몰고 와서 한해를 시작하니
모두가 기원하는 것 무사함이 아닌가
-김동일의 <입춘대길>전문
지난겨울처럼 혹독한 추위와 폭설이 있었을까.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여 우울했던 한해였다. 이제 입춘대길이란다.
김동일 시인은 이 땅에 봄이 와서 설렘의 향연이 마음속에 머물고, 한 해를 시작하는 봄을 맞이하여 코로나를 종식시키고 원상으로 돌아가 온 국민이 활기찬 새해가 열리기를 기원한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 했으니 신축년(辛丑年) 새해 새봄을 맞이하여 나라안팎 모두 길하고 경사스러운 날이 계속되기를 화자와 함께 축원한다. 봄호 첫 작품 밝고 긍정적인 <입춘대길>을 만나 <시조문학> 가족과 함께 기쁨을 나눈다.
김동일 시인은 이번 소시집에 수록된 작품 22편 모두가 철저하게 시조 정형(定型)을 지키고 있었다. 이점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2 더하기 2는 6이라는 북촌 김씨
2 더하기 2는 4라는 진토배기 박씨
한시도 바람 잘날 없이 티각태각 싸움질.
법대로 셈법대로 말들은 반질하나
막무가내 몽니 앞에 물러섬이 전혀 없다
마침내 합의문 내니 2더하기 2는 5.
-심응문의 <여의도 셈법>전문
참 재미있는 작품이다. 여의도 셈법은 이상도 하다. 2 더하기 2는 6이라는 북촌 김씨와 2 더하기 2는 4라는 진토배기 박씨가 바람 잘날 없이 티각태각 싸움질만 한다. 막무가내 몽니 앞에 물러섬이 전혀 없더니 마침내 합의문을 내고 보니 2 더하기 2는 주장하던 6과 4의 꼭 중간숫자 5란다.
오늘의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을 들여다보는 진면목이다. 국민의 선량이라는 모임인 국회가 국태민안과 국리민복에는 아랑곳없이 네 편 내편 갈라서 싸움질만 하는 실상을, 아니 다수당이라는 힘을 내세워 무엇이든 밀어붙이면 다 이룰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그대로 행사하고 있다. 화자는 이러한 여의도 국회 실상을 묘사하고 풍자한다.
특이한 셈법을 구안하여 작품을 구성한 솜씨가 남다르다. ‘진토배기’ ‘티각태각’ ‘막무가내’ ‘몽니’ 등, 내용에 걸 맞는 언어를 선택하여 구사한 솜씨 또한 보통을 넘어선다. 심응문 시인의 대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 그것을 남다르게 구성하여 창작하는 기법이 돋보인다.
깊은 골 비알진 밭 메밀꽃 한창일 제
너른 바위 몸을 뉘어 밤하늘 올려보면
땅인지 하늘에서도 흰 꽃들만 가득하오.
달빛아래 하얀 꽃은 하늘로 승천하고
은하수 수많은 별 땅으로 내려앉아
경계가 따로 없나니 꽃밭이요? 별 밭이요?
-심응문의 <메밀밭과 은하수>전문
심응문의 <메밀밭과 은하수>전문이다.
한 여름 메밀꽃이 활짝 핀 달밤의 정경이다.
화자는 지금 너른 바위에 몸을 뉘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메밀꽃이 하늘로 승천하여 은하수를 이루었으니 꽃밭인지 별 밭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경지이다.
아래를 보면 은하수가 땅으로 내려와 별 밭을 이루고 있으니 꽃밭인지, 별 밭인지 또한 구분할 수 없는 황홀한 지경이다.
하얀 달밤의 하얀 메밀꽃밭을 은하수에 환치한 한여름 밤의 낭만을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고려 말 이조년(1268~1342)의 작품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를 방불케 하는 작품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메밀꽃이 피는 여름밤의 정경이요, 하나는 배꽃이 만발한 4월의 봄밤이 다를 뿐이다.
죽어도 못 감은 눈 붉은 눈물 그렁대고
아픈 역사 움켜진 주먹 아직 떨리는데
한마디 말 없는 구름 달만 갉아 먹는다.
-김영애의 <소녀상(少女像)>전문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어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 설치하였다. 이 소녀상은 지금 전국 각지에 세워지고 있으며 미국, 독일 등 해외에도 세워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잔학상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일본군에 끌려갔던 여인들은 14세~16세의 어린 소녀였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김영애 시인은 당시 일본군의 만행과 이에 대한 분노를 “죽어도 못 감은 눈, 붉은 눈물 그렁대고/ 아픈 역사 움켜진 주먹 아직 떨리는데”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종장에서 “한마디 말 없는 구름이 달만 갉아 먹는다”고 일본 정부당국에 강력히 경고한다.
그렇다. 해방 된지 올해 76년째, 아직까지도 한일 양국 간, 관련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고 거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조속히 해결할 것을 양국 책임 있는 지도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촉구한다.
삶이란 그 자체는 알 수 없는 의문부다
숱한 날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고도
앞일을 알 수 없으니 물음표의 연속이다.
-박일랑의 <물음표(?)>전문
박일랑 시인의 <물음표(?)>전문이다.
시인은 삶이란 “알 수 없는 의문부”라 말한다. 이를 종장에서 다시 “알 수 없으니 물음표의 연속이다”라고 강조한다.
삶의 정의를 자신 있게 말 할 사람 있을까? 국어사전을 찾으면 1) 사는 일 2) 살아 있는 현상 3)목숨이라고 나와 있다. 신통치 않은 답이다. 박일랑 시인이 말한 “물음표의 연속”이 정답인 듯싶다.
그러기에 김상용(1902~1951) 시인은 그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3연에서 “왜 사냐 건 웃지요”라고 끝을 맺는다. 얼마나 멋이 있는가. 전원에서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시인의 여유로운 관조(觀照)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삶이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단 한 번의 여행길이기에 멋지고 값진 그래서 보람을 쌓는 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썩은 줄 생명 줄로 착각하는 어리석음
번뇌가 발버둥친 얽힌 원망 뿌리치고
버려서 홀가분하게 나쁜 마음 비운다
날마다 무질서한 가장 나쁜 불행 속에
간신히 행복하게 다행으로 채워지는
매순간 털어내는 일 그런 빈손 가진다.
싸구려 영혼들이 내편 네 편 가른 세태
허영의 줄을 잡고 본능욕구 깔고 앉은
허망한 가짐의 집착 미련 없이 버린다.
-송귀영의 <방하착(放下着)>전문
방하착(放下着)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뜻으로 우리 마음속엔 온갖 번뇌와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 등이 있는데 그런 것을 홀가분하게 던져버리라는 말이다.
앞을 못 보는 장님 한 사람이 비탈길에서 넘어져 나뭇가지를 붙잡고 떨어지면 죽을까봐 살려 달라 외치면서 소리소리 지른다. 이 때 길을 지나가던 스님이 이 광경을 보고, 장님이 땅에서 아주 가까운 높이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여보시오! 그 나뭇가지를 놓으시오”라고 일러준다. 그래도 장님은 한참을 붙잡고 소리 지르다가 지쳐서 나뭇가지를 놓지 고야 만다. 장님은 가볍게 궁둥방아를 찧고 일어나 멋쩍은 듯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났다.
장님이 자기가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자신을 살려주는 생명줄 인줄 알고 움켜쥐듯 우리도 썩은 동아줄 같은 물질을 잡으려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들통이 나고 망신을 당하게 된다.
헛된 욕망, 허망한 집착을 버리고 매순간 털어내면서 마음을 비우고 살겠다는 송귀영 시인의 결연한 의지를 본다.
저녁놀에 자꾸만 눈이 가는 요즈음
자꾸만 쌓여가는 저 책들 어쩔거나
하나 둘 채울 때보다 비우는 게 더 힘들어
한 자 한 줄 쓰면서 고뇌했을 지은이
그런 생각 자꾸 나니 없앨 수가 없구나
다시금 자리만 옮긴 이리 힘든 책 정리.
-양계향의 <책 정리 하는 날>전문
책을 쓰는 사람들이 책을 버려야 하는 역설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쌓이는 책을 마냥 그대로 쌓아 놓을 순 없지 않은가.
양계향 시인은 책을 쓰면서 고뇌했을 지은이를 생각하여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자리만 옮겨 정리한다는 사연이다.
한 해 두 해 쌓여가는 책들이 사실은 문제될 때가 많이 있다. 필자의 경우도 그러했다. 버리고 싶어도 차마 버릴 수 없는 작가들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을 이해할 만하다.
내용이 참신하면서 소중하다고 판단되는 책의 경우, 마을문고 또는 경로당이나 아파트 문고 등에 기증하는 방안도 검토해볼만 하겠다.
거리 두기 2.5에 감당 못할 대출 이자
목울대 시퍼렇게 도 한번 세워 봐도
안으로 못이 박힌다
허리 휘는 4050
턱 높은 취업문에 빗장 지른 코로나
칼 같은 하루해가 앙가슴을 멍들어도
절절포*뛰어나가라
소망의 꽃 2030
*절절포:절대절대 포기하지마
-이종욱의 <십이월에>전문>
이종욱 시인의 <십이월에>전문이다. 코로나 시대 누구든 고통이 심하지만 젊은 세대와 소상공인 그리고 자영업자가 특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첫수에선 소상공인, 자영업자 4050세대가 대출이자 갚기에 허리 휜다 하고, 둘째 수에선 2030 젊은 세대가 취업문까지 빗장을 가로질러 앙가슴이 멍들었다고 울분을 토한다.
한파가 몰아친 한겨울 12월을 배경으로 어려운 난국을 돌파하려는 세대들의 안간힘, ‘목울대 시퍼렇게’ ‘칼 같은 하루해’로 묘사하면서 문장을 대담하게 전개하여 독자를 긴장시킨다.
특히 종장 “안으로 못이 박힌다/허리 휘는 4050” 과 “절절포 뛰어나가라/소망의 꽃 2030”의 결구 구성이 대조를 이루면서 절박한 위기의 시대를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감에 성공한다. 충격을 주는 신선한 작품이다.
택배 차 적재함은 숨 막히게 만원이다
팔도의 사람들이 팔 다리를 잃고 나서
이름표 하나만 달고 취객처럼 건방져
골목길 업어다가 뜨락에 뉘어 놓고
십 오층 끌어다가 설주에 앉혀 노니
내 집은 한 마장 더 간다고 다 풀리는 허리띠
착점을 돌아서니 내 팔도 허물어져
휭 하니 빈 껍질이 가벼워서 버거워라
푸른 등 네거리 옆에 김밥집이 보인다.
-이종행의 <택배의 기수>전문
이 시대 급작스레 혜성처럼 떠오른 직업이 택배 업종이다. 집합이나 만남이 통제된 감염병 시대에 택배업이 성행을 이루고 있다.
몰려드는 물량을 다 소화할 수 없어 배달하다가 쓸어 지는 사례도 있어 민망하기 그지없다.
골목길 업어다가 뜨락에 뉘어 놓기도 하고, 아파트 십오 층 끌어다가 문설주에 앉혀 놓곤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짐짝 들고 동부서주하다 보면 점심 먹을 시간도 놓쳐버린다. 푸른 등 네거리 옆에 김밥집이 보인다. 거기서 잠시 틈을 내어 김밥 한 덩이로 끼니를 때우겠단다.
이종행 시인은 코로나 감염시대 비대면 사회상을 특별히 택배 업종을 들어 긴박하게 전개되는, 시각을 다투는 분주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어머니 자식사랑
몸 중앙에 숨어 있다
팔십년 긴긴 세월 고장도 날 법한데
태엽을 감지 않아도
정확하고 어김없다.
“끼니 거르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어라”
“세상은 뭐라 해도 밥심으로 사는 거여”
이제껏 하루 세 때를
꼬박꼬박 알린다.
-정진상의 <배꼽시계>전문
정진상 원로시인의 <배꼽시계>가 주목을 끈다. 어머니 자식 사랑은 팔십년 긴긴 세월에도 고장이 나지 않는다. 태엽을 감지 않아도 몸 중앙에서 어김없이 돌아간다.
“끼니 거르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어라” “세상은 뭐라 해도 밥심으로 사는 거여”이렇게 하루 세 때를 꼬박꼬박 알리는 어머니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원로시인의 시를 짓는 경륜과 기법이 노련하다. 어머니 말씀을 인용하여 현재형으로 생동감 있게 구성, 잔잔한 감동을 준다.
한 평 남짓 가건물에 몸 접고 갇힌 사내
틈새 빛 잇대어서 제 일생을 재단한다
불록한 안경 너머로 깊은 주름 당기며
너덜난 뉴스들을 촘촘하게 박고 있다
뒤축만 갈아대다 제 무릎 뼈 닳은 채로
몇 갈래 이마 팬 길에 기어오른 담쟁이
담장을 등에 지고 억척스레 살아낸 이력
비 오면 비 맞으며 흠뻑 젖음 되는 것을
세상에 가둬진 그가 남루하게 서 있다.
-황순희의 <구두 수선공 조씨>전문
한 평 남짓한 옹색한 가건물 공간에 갇혀 구두를 수선하는 수선공 조씨를 취재하듯 작품을 묘사했다.
너덜난 세상뉴스들을 접어 미싱으로 박으면서 구두 뒤축만 갈아대다 무릎 뼈가 다 닳은 채 몇 가닥 기어오르는 담쟁이의 집념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비가 오는 날은 그 비를 긋고 잠시 쉴 사이도 없이 세상에 가둬진 그가 남루하게 비를 맞고 서 있다.
우리들 주변에는 어두운 그늘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많이 있다. 황순희 시인은 신작특집에 올린 작품들, 구두수선공을 비롯하여 노점상, 폐지 줍는 노인, 취업준비생 등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실상을 묘사하여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이니 꺼꾸로 일등이네”
“괜찮다. 담에 잘해 못난 어미 탓이다”
목이 멘 어머니 말씀 내 가슴을 후비네
-권오운의 <성적표>전문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를 안 한 탓으로 꼴찌를 했다. 그것을 어머니는 아들을 탓하고 혼내지 않고 어미 탓으로 돌리면서 괜찮다고 격려한다.
“괜찮다. 담에 잘해 못난 어미 탓이다” 목이 멘 어머니 말씀 이 한 마디가 지금까지 화자의 가슴을 후빈다고 했다.
이처럼 용서하고 격려하는 말 한 마디가 감동을 주어 사람을 변화시킨다. 권오운 시인은 먼 지난시절의 어머니 말씀을 다시 떠 올려 작품을 구성한 시법이다. 절절한 감동을 준다.
침묵의 깊은 산속 고라니 울음소리
눈 쌓인 에움길로 그대가 오려는지
하늘이 목화이불로 원앙금침 내려주네
-김선길의 <하늘표 이불>전문
깊은 산속 눈이 많이 쌓여 걱정이다. 고라니가 길을 잃고 울고 있다. 고라니는 사슴을 닮은 귀여운 동물이다.
어쩌나 고라니가 눈 쌓인 에움길로 찾아올까? 하늘에서 목화이불로 원앙금침 내려 주니 잠시 쉬다 오라고 위로한다. 김선길 시인은 산과 숲 그리고 그곳에 사는 동식물을 사랑하는 학자요 시인이다.
눈 덮인 산속을 목화이불, 하늘표 이불, 원앙금침으로 환치한다. 제목이 신선한 작품이다.
경상도에선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물으면
맛이 없을 땐 니 맛도 내 맛도 없다고 한다
요사이 세상 살아가는 맛이 바로 그렇다.
-김월준의 <니 맛도 내 맛도 없다>전문
오랜만에 김월준 시인을 만난다.
요즘처럼 하루하루 세상사는 맛이 재미없을 때가 또 있을까? 답답하고 우울할 뿐이다. 어디 나갈 데도 없고 사람을 만나기도 두렵다. 감염병 때문이다.
경상도에선 음식 맛이 없을 땐 ‘니 맛도 내 맛도 없다’고 한다. 작품 종장에서 “요사이 세상 살아가는 맛이 바로 그렇다”고 그 의미를 음식 맛에 견주어 재미없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코로나가 빨리 소멸되고 정상으로 돌아가 활력을 찾아야 하겠다.
나를 사랑한 죄 흠잡을 것 하나 없는
그를 밝혀 단죄하려 옥조여 채근하니
차라리 심장을 꺼내 가슴에 달았습니다.
-나순옥의 <주홍글씨>전문
미국작가 호손(1804~1864)이 쓴 장편소설 ‘주홍글씨’ 스토리를 압축하여 작품을 구성했다. 17세기 청교도의 식민지 보스턴에서 일어난 간통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주인공 젊은 여인은 사생아를 낳고 간통죄로 ‘A(Adulery)’라는 글자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형을 받고도 간통한 상대를 끝내 밝히지 않는다.
상대는 젊은 목사였다. 젊은 목사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자신의 가슴을 헤쳐 보인다. 가슴에는 ‘A’자가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죄를 고백하고 쓰러져 죽는다. 양심 고백을 하고 최후를 마치는 장면이다.
나순옥 시인은 소설을 압축하여 단시조로 긴장시켰다. 장편소설을 압축하여 주제를 살리면서 단시조로 구성한 기법 또한 만만치가 않다.
맘속에 뿌리 내린 탱자나무 가지마다
향 짙은 꽃 피고 지고 열매가 자랐건만
왜일까 무서리 내리도록 농익을 줄 모른다.
-모상철의<어느 열매>전문
시인의 마음속에 탱자나무를 심었다. 향이 짙은 꽃이 피고 열매가 자랐지만 웬 일일까? 무서리가 내리도록 농익을 줄 모른다고 한다.
여기서 ‘어느 열매’는 모상철 원로시인 자신이다. 시인은 탱자나무를 심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무서리가 내리도록 그 열매가 농익을 줄 모른다고 겸손해 한다.
시조집도 여러 권 내시고 문학상도 많이 수상하셨다. ‘모상철시조문학상’도 제정하여 2회째 시상하였으니 얼마나 보람인가? 시인의 말년이 농익어 보람을 거두고 계심이 아닐까.
밤낮 없이 피터지게 싸우는 꼴만 보느니
차라리 더운 나라 방글라데쉬로 가자
째지게 가난할망정 마음 편히 사는 나라.
-민병찬의<잠꼬대>전문
잠을 자면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헛소리를 잠꼬대라 한다. 사리에 맞지는 않지만 비유적으로 말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정치하는 사람들 꼬락서니를 보면 가관이다. 나라생각, 국민걱정은 안중에도 없고 네 편 내편 갈라서 맨 날 싸움판이다. 그 꼴 보느니 차라리 방글라데쉬로 가서 살겠단다.
째지게 가난할망정 마음은 편한 나라가 아닌가. 정치하는 위정자들이 얼마나 가관이면 이런 생각을 할까. 이런 잠꼬대 같은 생각을 않도록 위정자들이 보국헌신해 주기를 당부한다.
민병찬 시인은 올해 팔순을 맞이한다. 기념시조화집 ‘남한강 서정’과 네 번째 시조집 ‘뒷짐 지고 걷다가’를 발간, 귀한 저서들을 보내오셨다. 축하를 드리면서 건승, 건필, 건화하시기를 빌어 드린다.
물고기 낚아채려 강물에 내려앉자
갈대도 숨죽이고 바람도 멈춘 자리
생이란 목울대 뽑아 도둑 걸음 디딘다.
-박홍재의 <왜가리> 전문
왜가리는 다리와 부리가 긴 비교적 큰 새다.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기에 강가에 산다. 물고기를 낚아채려고 강물에 앉아서 목울대 뽑아 기회를 노린다.
몰래 도둑 걸음을 하다가 물고기가 나타나면 전광석화처럼 낚아챈다. 여기서 왜가리는 누구를 상징할까?
요즈음 LH(한국토지주택공사) 땅 투기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국민들이 사용할 택지를 조성하여 공급하는 공기업인데 해당 임직원들이 그 땅을 투기를 했으니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식이 되었다.
사회의 부조리와 비리를 작품 ‘왜가리’를 통하여 멋지게 풍자한 작품이다.
관형어를 골라내어 잔칫상 차리는 일
따근따끈 찰진 낱말 진설하고, 다시 괴고
그렇게 무릎 딱! 치다가 꽃그늘에 앉히는 시
-배종도의 <딱! 시조 한 수>전문
시조 한 수를 완성하고 그 쾌감으로 무릎을 딱! 치는 모습이다. 시조 짓기를 잔칫상 차리는 일에 비유한다.
관형어를 선정, 적합한 시어를 찾아 진설(표현)하고, 부족하면 다시 괴고(퇴고) 하고 드디어 시조 한 수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뜻대로 시조가 잘 끝나면 무릎 딱! 치고 꽃그늘에 앉힌다. 시조가 완성되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기쁘다.
이런 경우 배종도 시인만이 쾌재를 부를까. 아니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기쁨이다. 그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한 길가 눌러앉아 땡볕에 그을려도
결코 난 세상일에 끌려가지 않을 거다
훅하는 흙내 맡으며 땅심으로 살 거다.
-임석의 <들풀의 자존심>전문
‘들풀’에도 자존심이 있다. 들풀은 민초(民草)가 아닌가. 서민을 비유하며 서민을 상징한다. 길가에 눌러 앉아 밟히고 그을려도 세상사에 끌려가지 않는 자존심으로 살겠다는 의지이다.
흙냄새 맡으며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땅심, 곧 본연의 의지로 살겠다는 신념이요, 철학이다.
함께 제시한 작품 <나팔꽃>도 격정에 시달리고 인정에 부대끼며 소소한 연민에 아랑곳하지 않는 삶을 영위하겠다는 숭고한 내용으로 앞의 작품과 궤를 같이하는 수작이다.
무엇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효모의 증식으로 기질이 변하듯
마음도 용이 삭으면 정으로 다가온다.
-허남호의 <발효>전문
발효는 삭힘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효모의 증식으로 체질과 기질이 달라진다. 발효된 음식은 몸에 좋다. 유익균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미움도 시간이 지나면 기운이 삭아 정으로 변한다. 잘못을 용서하고 품에 안으면 그처럼 마음이 편할까.
마음을 발효시키자. 미움도 원망도 사랑으로 용서하고 포용하면 따스한 정으로 돌아선다는 사랑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좀 더 기다리고 용서하자.
‘발효’라는 제재로 미움을 삭여 정으로 유도하는 발상이 한 굽 수준 높은 작품이 되었다.
뭉텅뭉텅 잘려나간 시간들을 가늠한다
유통기한 남아있는 희망의 나날 위해
열어라, 문을 열어라 푸른 나를 열어라
-김민정의 <빛> 전문
빛을 추구하는 화자의 희망찬 삶의 현재를 노래한다. 뭉텅뭉텅 잘려나간 과거의 시간들이 아쉽기만 한 것인가.
시인에겐 아직 유통기한 곧 쓸모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희망찬 미래를 위해 문을 열고 아직 싱싱한 나(自我)를 열라고 자위하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충전한다.
김민정 시인은 지금 한국 문협 시조 분과 회장을 맡아 시조세계화 운동에 불을 붙이느라 수고가 많다. 하는 일이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도농 인정 엮어 싣고 어둠을 누벼갔지.
칸칸마다 덜컹덜컹 얕은 잠이 쏟아지고
왁자한 삶이야기들 창유리에 얼비쳤지.
긴 꼬리를 흔들며 산과 들을 살펴갔지.
바쁠 것 하나 없이 쉬엄쉬엄 쉬어갈 제
역마다 고장 냄새가 콧속에 와 붐볐지.
-유준호의 <야간 완행열차>전문
옛날 젊었던 시절 가끔은 야간 완행열차를 타야 했다. 긴 열차 안에는 칸칸마다 얕은 잠이 쏟아지고, 도시 농촌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로 왁자하게 떠들썩했다.
길게 연결된 열차가 꼬리를 흔들며 산과 들을 돌아서 바쁠 것도 없이 쉬엄쉬엄 쉬어갔다. 그때마다 그 고장의 독특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도 했다.
유준호시인은 사오십년 전 야간 완행열차 타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시절의 묻어나는 향수, 잊지 못할 추억에 잠기고 있다.
비비고 두드려서 속내를 털어내도
끝없이 솟아나는 애증의 찌꺼기가
물위에 기름 뜨듯이 으밀아밀 번진다.
엉키고 설킨 인연 매듭은 못 풀어도
때 절은 지난날들 헹구고 또 헹구어
서늘한 가을바람에 눅진눅진 말리리
-함세린의 <빨래를 널며>전문
함세린 시인은 지금 빨래를 비비고 두드리면서 끝없이 솟는 애증의 찌꺼기 까지 속내를 털어낸다. 그러나 그 찌꺼기는 말끔히 지워지지 않고 물 위에 기름 뜨듯 으밀아밀 번지고 있다.
엉키고 설킨 인연의 매듭을 어찌 다 풀까? 때 절은 지난날의 자국들을 헹구고 또 헹구어 가을바람에 눅진눅진 말리고자 한다. 빨래를 빨아 헹구어 말리는 동작을 섬세하게 동영상으로 그려냈다. 으밀아밀 눅진눅진 단어가 재미있다.
청풍명월 정격시조 회원답게 시조의 정형을 철저하게 지킨 점이 돋보인다.
끝으로 시조문학 발행인이신 김 준 박사께서 금년 정월에 발간한 단시조집 <그래도 행복했네> 표제시조를 소개하면서 평설을 마친다.
가난이/뒤 따르고/배우기가 힘들어도
내 뜻을/이루려고/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래도/행복하였네/행복하고 있었네
김준의 <그래도 행복했네>전문
김준 회장은 정년을 마치고 18년을 보내는 동안 단시조 48,000여 수를 완성했다고 시조집 서문에서 기술한다. 몇 년 전부터는 매일같이 20수를 쓰고 있다니 그 열정을 짐작할 만하다. 그동안 발간한 시조집도 25권에 달해 멀지 않아 전집을 간행할 듯싶다.
시조문학은 1960년 월하 이태극 회장께서 창간, 1997년까지 계속하시다가1998년 김준 발행인이 뒤를 이어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오는 국내 유일의 시조전문 문예지로 장족의 발전을 이어오고 있다. 창대(昌大)한 미래로 이어가기를 축원한다.
위의 작품에서도 그간 오랜 세월 동안 가난이 뒤따르고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오늘의 탑을 쌓기까지 “그래도/행복하였네/ 행복하고 있었네”라고 술회하는 김 준 시인이 한없이 장하기만 하지 않은가.
“연단 후 내가 부서져 순금 되어 나왔으니”(욥기 23:10) 얼마나 행복할까?
건승건필을 빌어드린다.
첫댓글 참으로 장쾌한 평설 시조인들에게 소중한 학습자료가 될 것입니다.
원로이신데 왕성한 정력으로 시조문학을 다 읽으시고 평설을 쓰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야성 선생님. 훌륭한 평설을 읽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훌륭한 말씀 명심하여 시조창작에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경진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