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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야기] 10
S#1. 경태방
시계가 채칵채칵 돌아가고 있다. 오전 9시를 17분 정도 남겨두고 있다.
그 시계를 열중해서 보고 있는 경태.
S#2. 뮤즈 홀
카운터에서 노트북을 열어놓고 앉은 문호. 손가락을 꼼질거리면서.
문호 : 몇분 남았어?
홀의 테이블에 앉은 재명이 단말기(혹은 핸드폰)를 켜면서.
재명 : 11분.
문호가 조바심을 내면서 커피잔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문호 : 몇분 남았는데.
재명이 짜증이 나서 돌아본다.
홀의 중앙 쯤에는 신이 서있다. 묵묵히. 혼자 생각하면서.
S#3. 채회장 집 외경 / 아침
그 위로 경태 방의 채칵채칵 초침이 계속 들린다.
S#4. 회장 서재
서재 한쪽에 놓여있는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9시가 4분쯤 남았다.
그 앞에 소파에 채회장이 앉아서 노려보고 있다.
도우가 노트북을 펼쳐서 옆에 놓는다. 회장과 자신이 다 화면이 보이게.
도우 : 결정하세요.
채회장 : (코웃음)
도우 : 아버지 가진 주식 저한테 넘기시라구요. 이제 제가 채동의 대표이사니까. 알아서 잘 처리할게요.
채회장 : 어림도 없는 소리.
도우 : 그럼 별 수 없네요. 그 주식 아버지가 갖고 계시면 언제고 또 사기꾼들하고 손 잡고 제 뒤통수 칠거잖아요.
(시계를 본다. 1분 전) 그럼 내가 채동을 열심히 키워놓아봤자 또 이번처럼 흔들어대시겠죠? (핸드폰의 단축키를 입력하며)
그럴 바엔 그냥 버리는 게 낫겠어요.
채회장 : 뭐하자는 거야.
도우 : (핸드폰에) 다들 대기하고 있죠? 장.. 열리네요. 우리 갖고 있는 채동 주식. 다 던지세요.
채회장 : 뭐하는 거냐고.
도우 : 아무도 받아가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완전히 바닥까지. 다 버리세요.
채회장, 급해서 노트북을 끌어당겨 본다.
도우 : (그런 아버지를 차갑게 보면서 계속 지시) 지금 채동 주식을 끌어안고 있는 자들 손 쓰지 못하게 속도전 해주시구요.
다시 채동을 살릴 건지는 나중에 말씀드리죠. 안되면 채동 버리고 다음 타겟으로 넘어갈 거니까.
채회장, 노트북을 든 채 부들부들 떨며 아들을 본다.
S#5. 뮤즈
문호가 사색이 돼서 노트북의 화면을 보고 있다. 급락하고 있는 주식 차트.
재명이 단말기를 보고 있다가 휙 던진다.
재명 : 게임 아웃.
경태가 초조함에 흔들며 나온다. 문호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저으며.
경태 : 방법이 없습니다. 손 쓸. 어떻게..
문호 : 그럼 어뜩게 되는거냐. 우리 주식은.. 거기 쓸어넣은 우리 돈은.
경태 : 내 계산으로는..
문호 : 그래 계산 좀 해보라고.
경태 : 이대로라면 우리가 넣은 90억원어치의 주식은
문호 : 그 중에 반은 담보 대출 받아서 박은 거지. 그래서.
경태 : 31억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문호 : (말이 막힌다)
경태 : 그럼 담보대출 받은 거 중에 19억이 순수부채로 남습니다.
문호 : 그럼.. 그건 어뜩게 갚으면 되는데.
경태가 생각을 해보더니 천정을 본다.
문호가 신을 돌아본다.
아직 홀 중앙에 서있던 신이 입구 쪽으로 나가고 있다.
S#6. 대로변
걸어오는 신.
옆의 큰 길로 차들이 빠른 속도를 내며 지나쳐 간다.
걸어오는 신. 떨치려 해도 생각하는 소리들.
욱소리 : (1회 #32) 내가 니 형이야. 니가 내 동생이구.
신. 혼자 웃는다. 웃으며 걷는데.
욱소리 : (1회 #38) 우리 만두. 아버지가 만든 것만큼은 아니어두 괜찮았어. 쓰레기라니. 아니야.
신 점점 빨리 걷는다.
욱소리 : (1회 #27) 좀 봐주세요.
S#7. 회상 1회 #27
욱이 전화를 하고 있다.
욱 : 우리 아버지때부터 그 은행하고만 거래했잖아요. 삼십년 고객이라구요. 그런데 일주일을 못 기다려줍니까?
우리 부도나면 우리 공장 사람들. 직원들 어쩌라구요. 예? 아니 저기.. 지점장님. 여보세요. 여보세요?
S#8. 대로변
신이 결국 멈춰선다. 그 옆으로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도우소리 : (9회) 안될텐데.
S#9. 회상 9회
도우 : 당신같은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돼. 돈은 아무나 버는 게 아니거든.
아무나 벌 수 있는 거라면 세상에 서민이란 게 왜 있겠어. 서민. 일반 백성. 떨거지들.
S#10. 대로변
신이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를 다스리려 애쓰고 있다. 계속 들리는 소리.
경아소리 : (9회) 이 세상엔 해도해도 안되는 것들이 있어.
S#11. 회상 9회 주총장 일각
신의 앞에 경아가 말하고 있다.
경아 : 사는 세상이 다르다구. 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기를 쓰구 싸워봤자 이 세상 사람들한테는 안돼.
그니까 제발 싸우지 마. 신아. 너만 다쳐.
S#12. 회상 9회 뮤즈
신에게 도우가 말하고 있다.
도우 : 날 찾아올 때는 김신씨 혼자. 주식을 사달라고 부탁을 할 때는 무릎을 꿇고 해주세요.
S#13. 대로변
신이 우뚝 길가에 서있다. 또 하나의 차가 쌔앵 지나간다. (혹은 커다란 트럭이)
신이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고 있다.
S#14. 채회장의 서재
도우가 서류를 내밀어 준다.
채회장이 물끄러미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다.
도우가 만년필을 내밀어 준다.
채회장이 만년필을 받아든다.
도우 : 거기 사인하시면 되요.
채회장 : (손이 떨린다)
도우 : 아버지 좋아하시잖아요. 사인하는 거.
채회장. 불끈해서 도우를 보지만 도우는 그저 순한 얼굴로 보고 있다.
채회장 : 내 채동은..
도우 : 살려놓을게요. 지금 제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거기 붙여주면 채동. 금방 살아날 거니까..
그냥 신경 끄세요. 아버지는.
채회장. 더욱 초라해진 느낌. 결국 사인한다.
도우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는데 뭔가 허무하고 재미없다. 창가 쪽으로 걸어간다.
채회장 가만히 옆눈으로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데 증오가 서린다.
S#15. 뮤즈 홀
카운터의 전화벨이 울려대고 있다.
S#16. 경태의 방
책상 위의 전화가 울려대고 있다. 경태는 완전히 겁먹어서 전화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있다.
S#17. 뮤즈홀
문호가 벌컥 수화기를 집어들더니.
문호 : 갚어. 갚는다고. 돈 빌렸으면 갚아야지. 갚을 거니까 어이 증권사. 좀 기다려. 알았지?
탕 끊더니 아예 코드를 뽑아버린다. 궁시렁대다가 돌아보면 신이 손을 내밀고 있다.
신 : 주세요. 신분증.
문호 : (뭐라 말을 못하고 망설이다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는데 내주지는 못하고 보는)
재명 : (뒤에 늘어져 있다가) 찾아가지 마. 그런 놈.
신 : (웃는)
재명 : 우리 모두 비행기표 사면 돼. 엘에이에 가면 여기 세명쯤 재워 줄 수 있다.
신 : 빚이란 거에 대해선 세상 누구보다 내가 좀 알거든. 아는 내가 빚을 지게 했네. 당신들까지. (하며 경태를 본다)
아직 제대로 몰랐던 모양이야. 내가 저지른 거니까 내가 처리할게.
문호의 신분증을 낚아채더니 돌아선다. 준비되어있던 가방에 신분증을 던져 넣는데
재명 : 그럼 너의 복수는 끝난 건가.
신 : (멈췄다)
재명 : 지금 서렌더 가는 거잖아.
경태 : (재빨리) 서렌더. 에스유알알이엔디이알. 항복. (그 단어의 뜻이 새삼 느껴져서) 항..복.
신 : (가방의 뚜껑을 닫고 집어든다)
문호 : 껀수 하나 잡자. 내가 원래 미술품 전문이거든. 작전설계라면 A부터 Z까지 있으니까 하나 골라서..
신 : 가볼게요.
문호 : 이봐.
신 : 해봤는데 내 체질은 아니드라구요. 그거. 사기치는 거.
신이 웃어주더니 그냥 입구 쪽으로 간다.
아무도 더 이상 말리지 못하고 보고 있다.
S#18. 도우의 사무실
음악이 흐르고 있다.
도우가 의자를 돌려 등을 보인 채로 음악을 듣고 있다. 손가락이 혼자 리듬을 탄다.
잠시 후 노크소리.
손가락이 멈춘다. 조용히 의자를 돌려 앞을 본다.
케이가 열어주는 문으로 신이 들어선다.
신의 뒤로 문이 닫히고, 신은 그대로 서있다.
도우가 미소짓는다.
도우 :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치다가 올 줄 알았는데.
신 : 감방에 있을 때 배운 것 중에 하나. 졌을 땐 빨리 졌다구 해라. 그래야 그 다음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
도우 : 그 다음 싸움이라구 했어요. 지금?
신 : 어. 이번에는 내가 졌어.
다가오더니 가방을 책상에 얹고 연다. (신은 너무 쿨하지 않게. 모든 굴욕과 참담함, 분노를 누르고 눌러서)
신 : 우리가 사모은 주식, 사준다구 했지? 사줘.
도우 : (가만히 본다)
신 : 주식양수도 계약서도 준비해왔어. (책상위에 계약서를 펼치며) 양수도 액수는 40억으로 써놨어.
도우 : (차가워져 있다) 김신씨. 이해력이 딸려요? 내가 뭐랬었지요?
찾아와서 주식을 사달라고 부탁을 할 때는 무릎을 꿇으라고 했던 말...
신 : 그럴 생각이야. 그럴려구 왔어.
도우 : (잠깐.. 이게 아니다라는 느낌에 웬지 초조해지는) 경아씨가 슬퍼할텐데. 그렇게 지키려고 애썼던 옛남자가
이렇게까지 하는 거.
신 : 그럴거야. 본바탕이 착한 애니까. 뭐... 그 여자한테 잘해줘라.. 이런 말은 안하겠어.
남자가 잘해주거나 말거나 자기가 알아서 잘 챙기거든. 걔는. ..도장 찍지?
도우 : (웃는다) 이런 남자였나. 김신. 돈 몇푼에 무릎 꿇러 지 발로 찾아와? 혹시 자존심이란 거.. 없어요?
신 : 있어. 있으니까 온 거야. 내 사람들, 나 때문에 다치지 않게 하는 거. 그게 내 자존심이야.
신이 천천이 무릎을 꿇더니 똑바로 도우를 본다.
신 : 부탁이야. 그 주식 사줘. 빚을 갚을 수 있게 해줘.
도우. 더 말을 못하고 신을 본다. 속에서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무릎을 꿇은 신이 말간 얼굴로 도우를 보고 있다.
S#19. 회사 회의실
문이 열리고 도우가 들어선다.
회의실 저만치에 혼자 있던 경아가 돌아본다.
도우가 조용히 문을 닫더니 기대 선다.
경아가 간절하게 본다.
도우 : 다녀갔어요.
경아 : (보는)
도우 : 그 친구가 가져온 주식 다 인수했구요. 놔뒀으면 그 반값에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부르는대로 값을 쳐줬어요.
경아 : (미소)
도우 : 내 수제자답지 않네요. 지금 이 값에 이 많은 채동 주식 인수하면 경아씨 미련한건데.
경아 : 도우씨 믿으니까요. 이번에 내가 산 채동 주식 몇배로 불려줄 거. 완전히 믿으니까요.
도우 : (보다가 웃는다) 경아씨. 보기보다 참 나이브하네.
경아 : 왜요. 매력 없어요?
도우 : 아니.. 좀 분하죠. (웃는데 싸하다) 당신 마음이 아직도 다른데 있다는 얘기니까.
S#20. 도심 버스 정류장
버스가 멈췄다가 출발한다.
정류장에 신이 혼자 앉아있다. 생각난 듯 휴대폰을 꺼낸다.
S#21. 뮤즈홀
벨소리에 달려온 문호가 수화기를 든다.
문호 : 여보세요. 어이 김신아.
옆에서 삼분라면을 먹던 재명이 돌아본다. 어느새 방에서 경태도 튀어나온다.
문호 : 너 어디냐.
S#22. 버스 정류장
신 : 담보대출 받은 거 다 갚았어요. 간신이 맞췄어요. 사장님 투자한 금액은 날라갔구요.
다시 복구시켜 드릴 수 있을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네요.
S#23. 뮤즈 홀
문호 : 일단 들어와. 야. 너하구 나하구 애인 사이냐. 그래서 니가 지금 나 걷어차는거야?
전화기 부여잡구 무슨 이별을 해. 들어와. 일단.
S#24. 버스 정류장
신이 웃는다. 눈물이 글썽한 것을 삼키고.
신 : 언제구 찾아갈게요. 재명이 그 놈 감시 잘하시구요. 경태.. 방에만 처박혀 있지 말라구....아뇨.. 이제 혼자 할래요. 예. 혼자.
끊는다. 힘들다. 웅크러드는데. 전화벨소리. 무시하다가 들어서 아예 밧데리를 뽑으려다가 본다.
찍힌 이름 중호. 열어서 귀에 대자 다급한 목소리.
중호소리 : 김신. 너 좀 와야겠다. 지금 빨리이.
S#25. 명도시 철거촌 가는 길 버스 정류장
마악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는 신.
마악 길을 건너려는 신의 앞을 난폭하게 지나쳐 가는 작은 트럭. 트럭의 뒤에는 용역깡패들이 잔뜩 타고 있다.
신. 불안감이 스치며 그 트럭을 따라 뛰기 시작한다.
S#26. 철거촌 입구 즈음
신이 헐떡이며 달려오다가 본다.
저만치 세워져 있는 경찰차. 경찰이 두세명 있기는 한데 하나는 무전을 보내고 있고, 나머지는 그냥 보고만 있다.
그들이 보는 이쪽에는 용역들이 우루루 모여서 거의 동네 입구를 막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은 팀장의 지시에 따라 대여섯씩 짝을 지어 구역을 할당받고 있는 중이다.
신이 그들을 뚫고 지나가려 하자 그들이 일제히 신을 본다. 험상궂은 분위기다.
S#27. 철거촌 내부 일각
급히 오는 신에게 보이는 광경.
뭔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 어느 집에 들이닥친 용역 한조가 행패를 부리고 있다.
그들은 마당에 있는 보잘것없는 살림살이를 이리저리 발로 걷어차고 있고,
그 가운데 신사복을 입은 공무원이 겁에 질린 집주인에게 서류를 내주고 있다. 집주인이라고 해봐야 나이든 늙은 노인.
공무원 : 알아들었어요? 할아버지. 내일 이 집 철거할 거니까 오전 아홉시 전에 집 비우셔야 되요. 아셨죠?
노인이 어리버리하자 서류를 노인의 앞에 대주며.
공무원 : 여기 날짜 박혀있죠? 나라에서 나가라. 이렇게 명령하는 겁니다. 아셨죠?
용역 하나가 그 집의 대문이며 사방 담에 붉은 색의 스프레이로 철거..라고 휘갈겨 쓰고 있다.
어디선가 개가 시끄럽게 짖어대고 있다.
이제야 신이 주위를 둘러본다. 주변의 벽에는 서툴게 씌어있는 커다란 글자들. 서툰 글씨로 씌어진 허술한 현수막들.
[생존권 사수] [우리는 살고싶다] [살인용역 물러가라] [대책없는 강제철거 결사 반대] [이주대책 확보하고 내쫓아라]
더욱 불안해지며 이제 뛰기 시작하는 신.
S#28. 명선의 집 앞
좀 떨어진 곳에서는 철거촌 사람들이 몇 모여서 겁에 질려 구경하고 있고.
명선의 집 앞에 댓명의 용역들이 험악한 분위기로 몰려들다가 우루루 뒤로 밀린다.
중호가 각목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댄다.
중호 : 안 나가. 어딜 기어들어와. 나가.
'이 섀끼가. 안 비켜. 너 뭐야.' 등등 소리지르며 중호를 향해 달려들려는 용역들을 헤치며 달려온 신이 그 사이로 끼어든다.
신 : 뭐야.
중호 : 이 깡패새끼들이 겁두 없이 함부로 기어들어오잖아.
용역 : 여기 진상놈이 하나 있었네. 당신 뭐야.
중호 : 진사앙. 노옴?
덤비려는 걸 일단 막으면서 뒤를 보는 신.
거기 집안(마당) 구석에 명선이 애들을 데리고 완전히 겁에 질려 보고 있다. 유리가 신을 보더니 왈칵 울며.
유리 : 삼촌..
신 : (명선에게) 애들 델구 들어가세요.
명선이 얼른 애들을 몰아 안으로.
신이 스윽 뒤를 돌아본다.
신 : 애들하고 여자만 있는 집에 이것들이 들어올라고 했다고?
중호 : 들어오기만 한 줄 아냐. 다 때려 부술라고 드는데 이 미친 것들이.
신 : (웃고 있다) 그래? 니들 왜 그랬냐.
용역 : 이봐 당신들. 세입자야? 세입자면 법을 지켜야지. 나가래잖아. 철거하기 전에 나가라고. 포크레인에 찍혀 나갈래? 찍어줘?
신 : 그래. (다가선다) 찍어봐.
중호가 오히려 어라..해서 본다.
신 : (그간 쌓였던 게 폭발하고 있다) 포크레인 어딨어. 갖구와봐. 찍는대매.
하며 옆에 있던 용역을 패며 그가 들고 있던 파이프를 뺏어든다. 크게 휘둘러 일단 앞에 있는 자들이 물러서게 한 다음에.
신 : 나 지금 좀 찍히구 싶으니까 찍어보라구. 이 자식들아.
하며 파이프를 휘둘러대며 덤벼든다. 아수라장이 되며 중호까지 끼어서 패싸움이 된다.
골목 아래에서 다른 용역들이 우루루 달려온다.
신이 미친놈처럼 날뛰지만 숫적으로 역부족이다. 뒤로 팔을 잡히며 얻어맞고 딩굴고 밟히는데.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용역들이 놀라서 돌아본다.
거기 양시장이 서서 꽹과리를 냅다 쳐대고 있다.
모두 자기를 바라보느라 동작을 멈추자 양시장이 꽹과리를 멈춘다.
용역 : 뭐하는 영감탱이야.
양시장 : 여기 명도시에 시장. 양우선이라는 영감탱이에요.
용역들이 멈칫하는 사이에 양시장이 고개를 빼서 땅에 쓰러진 신을 본다. 옆에는 중호가 얻어맞은 배를 움켜쥐고 있다.
양시장이 신에게 다가서는데 꿈틀거리고 일어서는 신. 후우 긴 숨을 내쉬어 고통을 뱉더니 피묻은 침을 퉤 뱉는다.
신 : 어딨어.
아까 말하던 용역이 돌아보는 순간, 신이 그 용역을 잡아채어 한방 먹인다.
신 : 포크레인. 아직 안왔냐고.
'이 자식이..' 다시 시작되는 싸움.
양시장이 한심해서 다시 꽹과리를 쳐대기 시작한다.
S#29. 보건소 외경 / 밤
S#30. 보건소 내부
대기 소파에 유리와 누리가 잠들어있다.
그 옆에 진찰실에서 나란히 앉아 치료를 받고 있는 신과 중호. 찢어진 데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정도.
옆에서 명선이 보건의를 도와주고 있다.
신이 아아.. 아프다하다가 돌아본다. 거기 양시장이 자기의 겉옷을 유리 누리에게 덮어주고 있다.
양시장의 허리 양쪽에는 꽹과리와 채가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신 : 거짓말이죠?
시장 : (돌아보는)
신 : 시장이란 거.. 아까 그랬잖아요.
시장 : 맞아요.
신 : (웃는다)
시장 : 이래뵈도 선거로 선출된 시장이에요.
신 : 무슨 시장이 자가용두 없이. 철거촌에 혼자 몸으루 야밤에 걸어 들어와요. 그런 시장이 대한민국에 어딨어.
시장 : 그럼 안되요?
신, 킬킬 웃다가 다친 입가가 아프다. 아아..하다가 보면 양시장이 앞에 와서 신을 내려다본다.
신 : 왜요.
시장 : 여기 살아요? 사리촌에?
신 : 알아서 뭐하실라고.
명선 : 여긴 제가 살구요. 우리 삼촌은 그냥 다니러 오신 건데요. 오늘은 괜히 저 때문에..
시장 : (명선에게) 세입자시죠?
명선 : 예.
시장 : 그럼 애들 델구 다른 데 가있을 데 없어요?
명선 : ..없는데요.
시장 : 하아.. (걱정되는)
신 : 왜요.
중호 : 그 놈들 쳐들어오는 겁니까?
시장 : 아침이라구 들었어요.
중호 : 아니 집에 사람들이 있는데.. 집을 부순다구요?
시장 : 그럴까봐요.
신 : 뭐야. 뭐가 어뜩게 돌아가는 건데. 누가 누구 집을 왜 부숴. 형수 집세 안 냈어요?
중호와 명선이 한마디로 대답할 수가 없어서 보는데.
시장 : 여기 안 사시는 분이 맞네요. 아는 게 하나두 없으신 분이야.
하는데 헐떡이며 들어서는 김정진 보좌관.
정진 : 어이구 여기 계셨네요. 얼마나 찾아다녔는데요.
시장 : (느긋) 무슨 일이 생겼어요?
정진 : 오늘 또 철거촌에 혼자 가셨다면서요. 서장님이 전화를 몇 번씩 했었습니다. 대체 왜 이러시냐구.
거긴 시장님 구역두 아닌데 괜히 기웃거리시다 다치면 경찰 체면이 뭐가 되냐구요.
시장 : (신을 보며) 들었죠? 나 시장 맞아요. 시장은 시장인데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신 : (어이없어서)
시장 : 아참. 내가 듣기로는 사리촌 사람들이 밤을 새워 함께 마을을 지키기루 한 거 같던데. 어뜩게. 함께 해 볼 생각없어요?
신 : 함께.. 지키다니. 데모를 한다는 얘기에요?
시장 : 데모라는 말이 원래 데모크라시에서 나온 단어에요. 데모크라시. 민주주의. 아시죠? ..모르시나?
신이 벙 해서 본다.
S#31. 보건소 앞 / 밤
밤에 불켜져 있는 보건소가 저만치 보이는 이곳.
케이가 전화를 하고 있다.
케이 : 예상하신대롭니다. 김신은 명도시로 왔습니다. 오자마자 용역들하고 충돌이 있었구요. 현재는 치료 중에 있습니다.
S#32. 도우의 방
도우가 전화를 받고 있다.
도우 : 아직 형수가 남아있다는 거지. 그럼 그 형수도 떼어내야 할 거 같은데. 그럼 어뜩게 될까..
트럭에 뛰어드나? 그 형이 그렇게 죽었다면서. 동생은 어떨까. 대개 형제는 비슷하다구 하지 않나?
하는데 노크소리. 돌아본다.
도우 : 네.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은수.
도우의 얼굴이 부드러워지며.
도우 : (전화를 끊는다) 아직 안 잤어? 늦었는데.
은수 : 오빠.. 사실이야?
도우 : 뭐.
은수 : 아버지. 입원시킬 거라는 거. 그것두 거제도에.
도우 : 아버지 몸이 안좋으시잖아. 치료 받으셔야지.
은수 : 치료 받구 계시잖아. 이렇게 집에서 내가 돌봐드리고. 매주 병원 꼬박꼬박 모시구 가잖아.
도우 : 니가 너무 고생이 심하잖아.
은수 : (울고싶다) 오빠 왜 그래. 아버지한테서 모든 거 다 뺏어갔잖아. 이제 그만 아버진 놔드리면 안돼?
도우 : 나야말로 묻고 싶어. 은수야. 왜 그래. 오빠한테 언제부터 그러게 된거야. 오빤 어째야할지 모르겠어. 너 그럴 때마다.
은수 : 아버진 그냥 집에 계실거야. 그렇게 해줘.
도우 : 김신이 패거리 만나구 난 뒤부터인가.. 오빠는 그렇게 느꼈는데.
은수 : 오빠..
도우 : 난 니가 그리워. 원래 니가.
은수 저도 모르게 후둑 흐른 눈물을 휙 닦더니
은수 : 아버지하구 나. 우리.. 그냥 놔줘. 부탁이야.
은수 돌아서더니 나간다.
도우.. 점점 차가와지면서 은수가 간 공간을 보고 있다.
S#33. 뮤즈 외경 / 밤
S#34. 뮤즈 내부
깊은 밤. 다른 곳은 다 어두운데.
이층 소파에 앉은 재명이 혼자서 총을 손질하고 있다. 많이 해본 솜씨로 분해해서 닦은 것을 하나씩 차칵차칵 조립한다.
S#35. 철거촌 일각 / 밤
신과 중호가 잠든 유리와 누리를 하나씩 안고 업고, 명선과 함께 걸어올라오고 있다.
신의 걸음걸이가 늦춰진다.
앞에 어떤 소년(소화기 집의 아이)이 스프레이로 벽에 글을 쓰고 있다.
커다랗게 쓰여지는 글자는 [너희가 탄압이면 우리는]
신이 아예 걸음을 멈추고 본다.
소년이 이어서 쓰는 글자는 [투쟁이다]
명선과 중호도 멈추고 신을 돌아본다.
신이 참지 못하고 소년에게.
신 : 야 임마. 투쟁은 무슨 투쟁이야. 너 몇 살이야?
소년이 신을 휙 돌아보더니 달려 도망친다.
신이 어이없어하며 옆을 보자 또 다른 누군가 쓴 거 같은, 다른 색 다른 글씨의 구호가 있다. [목숨걸고 싸운투쟁. 반드시 승리한다]
신 : 아니. 형수. 이 동네 무슨 빨갱이들 살아요? 무슨 투쟁이니 승리니.. 좀 거북하네.
명선 : (힘없이 웃는) 그래봤자 이 동네, 투쟁할만한 젊은 사람들도 별로 없어요. 대부분이 노인네들이거나 여자들. 애들. 그래요.
원래가 서울의 재개발 지역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갈데없어 떠돌다가 일루 모여들면서 만들어진 동네라거든요.
그러니까 좀 젊은 사람들은 돈 벌러 다 떠나구. 노인네들이 애들 데리고 사는 집이 많아요.
신 : 그니까 철거로 쫓겨난 사람들이 모였는데 여길 다시 철거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거부하는 거다. 그런 거에요?
명선 : 갈 데가 없어서 그렇죠.
신 : 보상비 ..그런 거 안줘요? 보통 재개발하구 그러면 사는 사람들한테 이주비니 보상비니
그거 뭐야. 딱지니 그런 거 주는 거 아닌가?
중호 : (답답해서) 그거야 땅주인, 집주인들 얘기지. 세입자들은 해당사항 없어. 집주인들은 팔라 그러니까 잽싸게 팔고 다 날랐고.
신 : 팔다니.
중호 : 이 동네 어떤 회사에서 다 샀대. 몽땅 다. 그 회사에서 이 땅에다 얼마나 대단한 걸 지을라고 하는지..
아니 근데. 원래는 철거를 해도 내년에 한다고 했거든. 그러다 갑자기 밀고 들어온다는 거야.
어뜩하냐고. 여기 사람들. 갈데가 없잖아.
신 : (문득 수상해져서 중호를 보며) 어떻게 그렇게 아는 게 많어?
중호 : ... (갑자기 기침을 한다)
명선 : (신이 안고 있는 누리의 옷을 바로 잡아주며) 가게 끝날 때면 와서 우리 태워주셨어요.
잠든 애들 둘 데리고 오는 거 늘 고역이었는데.
신 : (에에.. 해서 중호를 보는)
중호 바쁜 듯 먼저 간다.
명선 : 그래두 이 동네서 우리 집은 형편이 좋은 편이었죠. 내 가게두 있고. 삼촌이랑 중호씨랑 보살펴주고.
신 : (소리는 안 내고 중호씨.. 라고 말해본다)
명선 : 근데 여기 사람들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이에요.
S#36. 철거촌 일각 / 밤
노인이 집 앞에 앉아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들고 앉아서 전파가 잘 잡히지 않는 라디오를 이리저리 틀어보고 있다.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이것저것 나왔다가 잡음이 들렸다가 그런다. 그 위로.
명선소리 : 아랫집에는 강할아버지 혼자 사시는데요. 폐지를 주워 팔아서 연명하세요.
시장님이 기초수급 뭔가.. 생활비를 보태주셔서 지난 겨울에는 전기장판도 켜고 산다고 좋아하셨죠.
S#37. 철거촌 일각 / 밤
(뒤의 소화분말 집)
아까 낙서를 하다 도망친 아이가 들어온다.
마당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던 아낙이 쫓아나와 아이를 잡아 끌고 들어가며.
아낙 : 왜 이렇게 늦게 쏘다녀어. 위험하니까 엄마한테 꼭 붙어 있으라구 했잖아. 손은 왜 이래. 뭐가 묻은거야.
얼른 가서 닦구 자. 또 늦잠자서 학교 지각하지 말구.
아이를 집안으로 밀어넣고 아낙이 불안하게 마당을 둘러본다.
명선소리 : 경석이네는 아버지가 그래도 괜찮은 중소기업 간부였대요. 회사가 부도나면서 애들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렸대나봐요.
어디 노숙자로 떠돌고 있는 모양이라고 맨날 얘기할 때마다 울어요.
아낙은 손에 닿는대로 부숴진 의자며 집기들을 끌어다가 대문 앞에 쌓아놓는다. 바리케이트라도 칠 셈이다.
들어간 줄 알았던 아들이 도로 나오더니 엄마를 도와 짐을 옮긴다.
명선소리 : 동네 사람들 전체가 불안에 떨구 있어요.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한번씩 당해본 사람들이 많거든요.
사람들 말로는 한밤중에 포크레인 밀구 들어오기도 하구요.
S#38. 철거촌 일각
철거촌 사람들 두명이 순찰을 하고 있다. 손에 든 손전등으로 여기저기 비춰보면서.
명선소리 : 어떤 재개발 지구에선 한밤에 여기저기 불을 지르기도 했대요. 알아서 나가라구.
사람이 다쳐도.. 그건 느네가 버틴 때문이라구.
S#39. 명선의 집 마당 / 밤
신과 중호가 마당의 평상에 앉아있다.
중호가 으이그그.. 하며 아픈데 신음을 하며 드러눕는다.
신 :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경찰은?
중호 : 뭐?
신 : 경찰은 뭐하냐고. 한밤중에 포크레인 밀구 와서 집도 부시고 사람도 다치게 하고 어제 보니까 패기도 하고 그러던데.
경찰 안 불러?
중호 : (킬킬 웃는다)
신 : 왜.
중호 : (끄응 다시 일어나 앉는다) 고백을 하자면 우리 남방파도 이 짓으로 용돈 좀 벌었다. 나도 애들 데리고
어느 전자회산지 찾아가서 겨기 노조원들 줘패봤고 솔직히 철거도 해봤어. 그래서 아는데. 경찰.. 우리 안 막어. 못 막어.
우리한테 맞은 애들이 전치 3주 진단 떼서 고소하지? 우린 바로 4주짜리 떼서 맞고소 하거든. 우릴 고소해?
우린 엄연히 용역경비업법에 의해서 법적인 행사 하는거야. 법 무시하고 까부는 건 저쪽이지.
신나서 말하다보면 신이 어이없어 보고 있다.
신 : 그니까.. 저쪽이라는 건 이쪽. 여기 사는.. 에이.
다시 누워버린다.
신이 돌아본다. 명선이 나오고 있다.
중호가 얼른 다시 일어나 앉는다.
명선 : 애들 정신없이 자네요.
신 : 꼭 여기 계셔야겠어요? 시장님이 딴 데 잘데 구해보라구 했잖아요.
명선 : 애들은 날 새면 딴데루 보낼라구요. 시장에 만두가게 집이 있는데 거기 아주머니가 애들 이뻐라 하시거든요.
며칠 봐준다 했어요.
신 : 형수님은요.
명선 : 난 있어야죠. 사람이 들어있는 집은 못 부술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있어야죠.
신 : (한숨 쉰다) 얘기 들어보니까 좀 험한 모양인데요?
명선 : 그래도 사람이 살자고 하는 일이고. 지들두 사람인데 설마 진짜루 포크레인으로 살아있는 사람. 깔기야 하겠어요? (웃는)
저두요. 많이 독해졌어요. 이런 거 겁 안나요. 그만 들어가세요. 누추하지만 이불 깔아놨어요.
신이 찝찝해서 본다. 불안해서 골목 쪽을 다시 돌아본다.
그 위로 라디오의 소리가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들린다.
어나운서 : 오늘은 기압골의 영향에서 벗어나 서해상에 위치한 고기압의 영향을 받겠습니다.
S#40. 철거촌 일각 / 밤
노인이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 무릎에 놓여진 라디오에서 일기예보가 계속된다.
어나운서 : 중부지방은 맑겠으나 남부지방은 흐리고 비가 오겠으며 서해안 지방은 오전에도 짙은 안개가 이어지는 곳이 많겠으니
교통안전에 각별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디선가 개가 짖는다. 웬지 불길하게.
S#41. 철거촌 입구 / 아침
포크레인이 덜덜거리며 오고 있다.
그 포크레인을 둘러싸고 (마치 탱크 옆의 보병처럼) 용역들이 들이닥치고 있다. 안전모들을 쓴 자들도 보인다.
아침이라서 더욱 살벌하게 보이는 담과 벽의 낙서들.
걸어가던 용역 중에 하나가 현수막을 잡아채더니 바닥에 던진다. 그 뒤를 따르는 자들이 그 현수막을 짓밟는다.
그 현수막에는 [우리는 살고싶다]라고 적혀 있다.
S#42. 철거촌 아낙의 집
용역들이 우루루 뛰어들어간다. 아낙이 밤새 설치해놓았던 보잘것없는 바리케이트는 금방 박살이 난다.
집의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안 열린다. 안에서 잠궈놨다. 발로 찬다.
옆의 창문 안에서 아낙이 내다보다가 용역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문을 닫는다.
용역이 뒤를 돌아본다. 뒤에서 소화기를 든 용역이 후다닥 앞으로 나오더니 창문을 깬다. 안에서 비명이 들린다.
용역이 창문 안으로 소화기를 뿌려댄다.
비명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며 소화분말에 아낙과 십대의 아이 둘이 뛰어나온다.
그들을 옆으로 밀치고 용역들이 안으로 뛰어든다. 아낙이 아이들을 끌어안고 울며 본다.
안에 들어간 자들이 이부자리며 낡은 상 같은 것을 함부로 밖으로 집어던진다.
S#43. 철거촌 내부 일각
또 한패의 용역이 우루루 다른 집으로 몰려가는데 몰려가던 자들이 멈춘다.
거기 동네로 올라가는 길목에 동네 사람들이 우우 모여있다. 아저씨 아줌마도 있지만 노인네들도 많다.
그들이 저마다 도화지에 손으로 서툴게 쓴 종이들을 들고 골목길을 막아서고 있다.
우루루 온 용역들 때문에 모두 겁에 질린 얼굴이다.
환갑이 넘어 보이는 노인 한분이 앞으로 나선다. 라디오를 듣던.
노인 : 책임자하구 말 좀 합시다.
용역들 뒤로 다른 용역팀이 합류하고 있다.
노인 : 원래가 내년에 철거하기로 하지 않았소.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나가라구 하면 우린 어디로 가요. 갈 데가 없어요.
용역 하나가 전화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할지를 묻는 듯.
모여선 마을 사람들 중에 하나가 약한 목소리로.
사람 : 우리들도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몇몇이 따라한다. 나머지는 그냥 있다.
그런 그들의 뒤 저만치 떨어진 곳에 신이 한심한 기분으로 그들을 보고 있다. 옆에 중호. 둘 다 반창고 등을 붙인 상태로.
중호 : 아무래도 애들을 좀 불러올까. 내 밑에 애들 다 불러오면 어뜩게 좀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
신 : 근데 이렇게 데모하고 막으면 뭐 막아지긴 하는거야?
중호 : 뭐 일단 막지 않으면 살던 집이 다 부숴지게 되있으니까.
신 : 그냥 저렇게 길을 막고 있으면 되는거야? 뭐 하긴 저기 대부분 노인네들인데 뭐 어쩌진 않겠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람들 비명소리.
돌아보면 용역들이 사람들을 덮치고 있다. 아줌마고 노인이고 가릴 것 없이 밀어젖히고 패면서 길을 내고 있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잡힌다. 옆의 중호는 벌써 앞으로 뛰어나갔는데 신은 멍하니 보고 있다.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
S#44. 철거촌 입구
순찰차 옆의 경찰 둘이 양시장을 막고 있다.
경찰 : 글쎄 들어가지 마시라구요.
시장 : 왜 안되요. 내가 저리로 걸어가는 게 도로교통법상 뭐 문제가 되요?
경찰 : 아유 시장님 왜 이러세요.
시장 : (갑자기 뒤를 보며) 아이구 이제들 오셨네.
시장이 바쁘게 가는 곳에 차량 몇 대가 도착하며 기자들이 내린다. 카메라를 든 사진기자들도 있다.
시장 : 어서들 오세요. 지금 저 안에 사진 찍을 거 많아요. 일루들 오세요.
경찰이 어이가 없어서 얼른 순찰차 무선을 하기 시작한다.
S#45. 철거촌 내부
신이 다급해서 두리번거리다가 옆에 놓인 석유 빈통을 들더니 달려간다.
마악 앞에서 얘기하던 노인네가 용역에게 잡혀 밀쳐지는데 그 용역의 머리를 통으로 패는 신.
노인을 잡아 옆의 구석으로 밀어놓고 다시 돌아보는데 이건 뭐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아줌마 하나가 용역에게 잡혀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용역이 아줌마를 패대기 친다.
그때 신의 눈에 자기가 용역 패는데 썼던 빈통이 딩굴고 있는게 보인다.
신에게 맞은 용역이 각목으로 신을 팬다. 맞으며 방어하며 신이 다시 시선을 돌린다.
그 시선에 보이는 옆집 마당. 그 가운데 수도가 있다. (혹은 물이 가득 담긴 함지박)
신이 간신이 상대의 각목을 빼앗더니 냅다 후려친다. 다음 순간 빈통을 낚아 채 든다.
S#46. 골목길
다급하게 기자들과 함께 오는 시장. 카메라 기자 중 하나가 벽에 쓰여진 글자들을 사진 찍다가 멈춘다.
어느 집 마당에 소화기 분말에 젖은 채 아이들과 함께 울고 있는 아낙.
기자가 그 모습을 찍는다.
S#47. 철거촌 내부
각목을 들고 와악 달려나가려던 용역이 멈춘다. 옆의 다른 용역들도 멈추고 돌아본다.
그들이 보는 가운데 신이 우뚝 서서 휘발유통의 액체(물)를 자기 머리 위에서부터 붓고 있다.
다른 한손을 번쩍 드는데 라이터를 들고 있다. 근처에 있던 용역들이 놀라서 뒤로 피한다.
신 : 아무나 한 놈 나서. 내가 끌어안고 같이 가줄거니까.
하면서 우다닥 몇걸음 달려나온다. 그 앞에 있던 용역들이 놀라서 피한다.
신 : 나 혼자 못 가겠다고. 같이 좀 가자고오.
중호가 놀라서 보고 있다. 소리도 크게 안나와서.
중호 : 김신. 너 왜그래.
신 : 누가 대빵이야. 나와. 이왕이면 높은 놈하구 같이 가게. 안나와?
용역 하나가 앞으로 나선다.
용역 :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신 : 니가 같이 갈래? 너 얼마나 높은데.
용역 : 냅둬. 저 새끼. 타죽거나 말거나 지 혼자 지랄하는 거. 냅두고.
신이 잠깐 당황한다.
용역 : 거기 뭐해. 가재도구 끌어내고. 포크레인 들어오게 길 내야지. 어서.
신이 난감해지는데. 순간. 터지는 플래쉬. 신이 본다. 용역들도 본다.
양시장이 데려온 기자들 중에 카메라 기자들이 열심히 신을 찍어댄다.
신이 가슴을 펴더니 카메라를 향하여 라이터를 든 손을 더 높이 든다. 물에 쫄딱 젖은 모습으로.
S#48. 도우 사무실
도우가 안 좋은 기분으로 전화를 받고 있다.
도우 : 중지하다니. 왜 중지를 해요. 철거민들이 저항을 해? 그거 해결하라고 돈 써서 업체 사람들 부른 거 아니에요?
그 사람들 바라는 거야 뻔하잖아요. 보상비 달라는 건데. 주면 줄수록 더 달라고 기어오르는 게 그 사람들 근성인 거 몰라요?
뭐라구요? (잠시 듣던 도우가 옆을 돌아본다)
옆에서 충실하게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던 오이사가 얼른 반색을 하며 도우를 본다. 말씀만 하세요.. 하는 느낌으로.
도우 : 오이사님.
오이사 : 네 사장님.
도우 : 기자들이 골치아픈 사진을 찍어갔댑니다. 그거 기사 나는 거 좀 막아줘야 겠는데요.
오이사 : 알겠습니다. 그런 건 많이 해봐서 아주 간단합니다.
도우 : (수화기에) 거기 다녀간 기자들 어디 소속인지 확실히 체크해서 바로 알려주세요.
(한숨을 쉬더니)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내려가봐야 할 거 같네요. 현지에서 만나죠.
S#49. 채동 건물 앞
케이가 차를 몰고 와 정차시킨다.
운전석의 케이 얼굴에서 주욱 당겨온 곳.
이만치에 세워진 지프 안, 운전석에 재명. 말없이 케이를 보고 있다.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케이가 차에서 내려 뒤로 간다. 마악 건물에서 나온 도우를 위해 문을 열어준다.
도우가 타고. 케이가 타고. 차가 출발해간다.
재명, 천천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S#50. 뮤즈 내부
이층에서 요란하게 내려오는 문호.
문호 : 이 놈 어디갔어. 도재명아. 도재명.
안에서 경태가 나와 기웃해서 본다.
문호 : 어디 갔는지 몰라?
경태 : (갸우뚱)
문호 : 아 이놈의 자식은 도대체 움직이는데 소리가 안나. 지가 고양이 새끼야. 돌아보면 없어져있어. 어디 간거야.
경태 : 렌트 했습니다.
문호 : 뭘.
경태 : 렌트카. 알이엔티 씨에이알. 원래는 렌트어카. 중간에 에이가 들어가서 알이.
문호 : 언제.
경태 : ..한시간 전.
문호 : 그걸 왜 지금 말해.
경태 : (억울해서) 지금 물어봤습니다. 삼촌이. 나한테 지금.. 그러니까 내가 지금 말을 합니다.
문호 : 아아 진짜..
갑갑해서 카운터로 가던 문호가 가만..하더니 휴대폰을 꺼낸다. 잠깐 망설이다가 경태를 돌아보더니.
문호 : 내가 이 핑계 대구 김신이 그놈한테 전화하면 이상한 거 아니지? 아 사내자식끼리 용건두 없이 전화를 할 수는 없잖아.
S#51. 명선의 집 마당
신이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 쓴 채 앉아있다. 명선이 겉옷을 갖다준다.
명선 : 이거라두 좀 입어요.
신 : (받아입으며) 애들은요?
명선 : 방에 있어요. 나오지 말라 그랬더니 꼼짝두 않네요.
신 : 형수도 들어가세요. 저 걱정 마시구 애들하구 같이 계세요.
명선 : (한숨을 쉬는)
중호 : 하여간 이 꼴통. 나 진짜 놀라서 경기하는 줄 알았네. 야 임마. 휘발유도 아니구 물을 뒤집어 쓰면서
어뜩게 그렇게 실감나게 노냐.
신 : 내가 요즘 좀 배웠잖아. 사기치는 거.
하다가 보면 시장이 들어서고 있다. 신을 보더니 킬킬 웃는다.
시장 : 분신총각. 여기 계시네.
신 좀 민망하다. 시장이 명선의 인사를 받으며 신의 앞으로 오더니.
시장 : 덕분에 오늘 하루는 대충 넘어갔어요.
신 : 아니. 시장이란 분이 뭐하시는 겁니까? 이런 말두 안되는 짓. 냅둬요? 시장이래매.
시장 : 여긴 개인 소유지라서 공무원이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못해요.
신 : 사람들이 줘 맞구 있는데. 노인이며 여자며 깡패들한테 맞는데 이 시에 경찰들은 뭐하는데요.
그것두 사유지라서 냅두는 거에요?
시장 : 그 점에 대해선 나두 방금 엄중하게 항의하구 왔어요. 그런데 경찰 서장이 뭐래냐하면요. (서장흉내) 원래 다아 그래요.
철거회사 직원들이 하는 일이 터프할 수 밖에 없어요. 노인정에서 데려다가 쓸 수는 없으니까. 이러대요.
중호 : 내가 좀 아는데요. 걔들 그냥 철거회사 애들 아닙니다. 어디 소속에 조폭들인지 내가 정보 알아올까요?
알아오면 잡아넣을 순 있나?
시장 : 그게 우리 경찰서장님이 워낙에 법대로 처리하시는 분이라.. 시민도 시민이고. 용역들도 시민이다..
이렇게 나오시면 어뜩게 될래나..
하는데 신의 전화벨이 울린다.
신이 이름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받아서.
신 : 웬일이세요. 도재명이요? (걱정이 어린다) 언제 없어졌는데요.
S#52. 명도시 추진위 건물
(앞으로 현판식 때 쓰게 될 명도시 현지 뉴타운 개발본부)
도착하는 도우의 차.
내리는 케이. 열어주는 문으로 내리는 도우. 입구에 나와 이미 기다리고 있던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간다.
케이는 다시 운전석으로 타려다가 주위를 둘러본다. 케이의 시선 안에서는 아무 이상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케이가 차를 출발시킨다.
이만치의 시선으로 멀어져가는 차를 보고 있는데 핸드폰의 진동벨소리.
케이쪽에서는 보이지 않았음직한 건물 뒤에 재명이 숨어서 케이의 차를 보고 있었다.
재명이 짜증난 얼굴이 돼서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낸다. 받아서.
재명 : 뭐냐.
신소리 : 나 좀 보자구.
S#53. 명선의 집 마당
한구석에서 신이 전화를 하고 있다.
신 : 말릴 생각은 없어. 난 일차 졌고. 내가 지면 그 담엔 너 맘대루 하라구 했으니까 안 말려. 못 말리지. 그런데.
나 델구 가서 써라. 너 혼자 하지 말구. 너두 날 도왔으니까 이번엔 나 델구 가서 쓰라구.
신. 긴장해서 대답을 기다린다. 대답이 없다.
신 : 너 어디 있는지만 말해. 내가 찾아갈게. ...도재명. 듣구 있냐.
S#54. 추진위 건물 앞
핸드폰을 든 채 말이 없던 재명이 그냥 끊어버린다. 베터리를 뽑더니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뒤쪽에 세워놓았던 지프차 쪽으로 이동한다.
S#55. 명선의 마당
신이 끊어진 전화를 잡고 갑갑해하다가 후딱 단축키를 누른다.
S#56. 뮤즈 내부
문호가 받고 있다. 옆에서 경태가 열심히 듣고 있다.
문호 : 스케줄?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내라구?
S#57. 채동 건물 앞
오이사가 나오면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오이사 : 오상원입니다.
S#58. 뮤즈 내부
문호 : (목소리를 젊은 기자처럼 변용해서) 안녕하십니까. 주간한강 경제부에 안동세 기잡니다.
채동의 새로운 대표이사님에 대해서 특집 기사를 쓰기로 했었는데 혹시 아십니까? 오늘부터 밀착취재를 하기루 했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오이사님은 저 알겁니다. 전에 뵈었었는데..
아 참. 이번 취재에 오이사님 인터뷰도 필요한데요.
S#59. 채동 건물 앞
오이사가 흐믓해서 선 채.
오이사 : 아하하. 저야 뭐 언제나 빈틈없는 이인자로서 제 할 일을 다할 뿐이죠. 뭐.. 새로운 대표이사님을 위한 인터뷰라면
언제든지.. 하하. 사장님께서는 지금 명도시로 내려가셨는데요. 그렇지요. 거기 어딜 찾아가시면 되나..하면 말입니다.
S#60. 명선의 집 앞
신이 핸드폰을 끊으며 시장을 돌아본다.
신 : 여기 명도시에 명도뉴딜 정책 기획단이란 데가 있어요?
시장 : (역시 전화를 받고 있다가) 바로 거기로 나도 오라고 하는데요.
S#61. 뮤즈
문호가 겉옷을 입으며 부지런히 입구로 가며.
문호 : 난 도대체가 그런 이름이 맘에 안들어. 뉴우딜? 포커 쳐? 무슨 딜을 해. 하기는..
하다가 보면 입구 앞에 이미 경태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문호 : 너는 왜.
경태 : 같이. 갑니다.
문호 : 니가 왜.
경태 : 그러니까.. 왜냐하면..
하다가 그냥 나가버린다.
S#62. 기획단 건물 뒤 주차장
케이가 차를 주차하고 운전석에서 나온다. 차문을 닫으려다가 멈추고 슬쩍 차문 뒤로 몸을 가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냥 일상적인 차들이 주차되어있을 뿐,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 찝찝하다.
S#63. 기획단 회의실
기다리고 있던 경찰서장이 부지런히 나오며 도우와 악수를 한다.
서장 : 아이구 채대표님 오신단 말을 듣고 내가 아주 사이렌 켜구 달려올까 하다가..
우리 명도 시민들 놀라실까봐 참았습니다. 하하.
도우 : 서장님. 노고가 많으시죠?
서장 : 노고가 좀 많긴 하지요. 채대표님의 꿈과 이상을 따라가는 우리 명도시. 이거 쉽지 않습니다.
서장이 껄껄대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건교부 국장.
서장 : 아이구 우리 국장님까지 내려오셨네. 요즘 우리 명도시 날마다 영광이올습니다.
국장은 서장보다 도우와 먼저 악수를 나눈다.
도우 :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장 : 우리 채대표가 급한 일이라는데 와봐야죠. 그래 무슨 일인가요.
도우 : 먼저 앉으시죠. 아직 몇분 더 오셔야 하는데 길이 막히나 봅니다.
하면서 도우도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데, 테이블 밑으로 손수건을 꺼내 악수를 한 손을 닦는다.
S#64. 기획단 건물 앞
와서 서는 시장의 낡은 승용차.
운전하는 김보좌. 옆좌석의 신이 얼른 내려서 뒷문을 열어준다. 내려서는 시장.
시장 : 나야 불려서 온 몸이고, 분신총각은 뭐하시게.
신은 이미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신 : 태워주셔서 감사하구요. 나중에 뵐께요.
하더니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S#65. 주차장
케이가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간다. 차문을 타앙 닫는다.
// 차 내부
운전석에 앉은 케이가 자세를 스윽 낮춰 등받이 보다 아래로 머리를 내리더니 백밀러를 조정해서 뒤를 본다.
사이드밀러도 체크한다. 아직은 별 이상이 없다.
// 케이의 차로부터 스윽 카메라를 돌려서 보이는 저만치 건물?
// 그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의 건물 위. 혹은 다른 높은 곳.
재명이 말없이 숨어서 케이의 차를 보고 있다. 그렇게 언제까지라도 따라다니다가 가장 적당한 순간을 노릴 생각이다.
S#66. 기획단 건물 내부
신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다. 비상구의 입구를 발견하고 후다닥 뛰어든다.
S#67. 회의실
양시장이 사람좋게 웃는다.
시장 : 맞아요. 내가 그랬어요. 내가 기자들을 불렀어요.
서장과 국장. 도우가 둘러앉고 뒤쪽으로 각각 보좌관들이 둘러서 있는 회의실.
도우가 조용히 시장을 보고 있다.
시장 : 그거.. 포크레인이 막 몰구 들어오는데 그런 거는 기사로 내보내면 재밌지 않겠어요? 그래서 불렀는데..
서장 : 아아참. 시장님. 도대체 왜 그러세요. 우리 명도시가 세계적인 신도시로 발전하면 누구보다 시장님이 좋으실 거잖아요.
도우 : 그 철거민촌.. 제 땅인 건 알구 계시죠?
시장 : 알죠. 그럼요.
도우 : 제 땅에 제가 건물을 지으려구 해요. 그것도 저 혼자 돈 벌어보겠다구 아파트 그런 거 짓는 거 아니구요. 그 부지에는
기숙사형 국제학교를 지을려구요. 벌써 교육부하고 합의해서요. 영국의 최고 사립국제학교가 들어오기루 했어요.
국장님 알고 계시죠?
국장 : 알다뿐입니까. 이야.. 난 그거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대단합니다.
도우 : (다시 양시장에게) 국제학교는 우리 명도시의 커다란 프로젝트 중에 중요한 일부에요. 그게 맘에 안드세요?
시장 : 맘에 들어요. 훌륭하죠. 뭐 저같은 무식한 시장은 꿈도 못 꾸어보는 대단한 겁니다. 그럼요.
도우 : (달래듯) 그런데 왜 방해를 하세요.
서장 : 아니.. 까놓구 얘기해서요. 양시장님. 이건 시장님이 방해를 할 수가 없어요. 법적으로 그래요.
일단 거긴 사유재산이니까 구청이든 시청이든 간섭할 수 없구요.
시장 : 간섭을 한 게 아니구요. 자꾸 사람들이 다치니까.. 경찰이라도 좀..
서장 : 우리도 어뜩게 할 수 없다니까요. 행정대집행법에 의거하면요. 사유지 재산권 철거권. 그런 거 경찰이 개입하면 안되요.
도우 : 시장님.
시장 : 예.
도우 :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최선을 다할게요.
시장 : 진짜요?
도우 : (웃는) 말씀하세요.
시장 : 저기.. 대표님이 우리 명도시를 엄청 멋진 도시루 만들겠다.. 하시는데. 그 한쪽에다가 임대아파트 좀 지어주시면 안될까요.
철거민들 들어가 살만한 거루다가..
도우 : (웃음기가 가신다)
시장 : 그렇게만 해주면 여기 철거민들 모두가 정말 감사할 겁니다.
도우 : 그렇게 못해드리면요?
시장 : 그.. 국제학교나 다른 거나.. 건물을 지으려면 시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거든요. 그게 좀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도우 보다가 허 웃는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양시장도 따라서 사람좋게 웃는다.
S#68. 건물 옥상
달려나온 신이 재빨리 옥상 전체를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다시 나가려다가 멈춘다.
가장자리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보다가 어딘가에 시선이 멈춘다. (가능하면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야외주차장)
신이 다시 달려나간다.
S#69. 주차장
차 안에 앉은 케이가 움찔해서 한 곳을 본다. 거기 신이 혼자 걸어오고 있다.
신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오다가 케이와 눈이 마주친다. 신이 빙긋 웃는다.
// 높은 곳.
숨어있던 재명이 찌푸린다. 재명의 시선에 보이는 신.
신은 어슬렁거리며 케이가 타고 있는 차 앞으로 오더니 케이를 향해 손경례를 해보인다.
그러더니 양손을 뻗어서 사방을 향해 한바퀴 돌아보인다. 어디선가 보고 있을지 모르는 재명이 보라는 듯.
그 손으로 기지개를 켜더니 아예 케이의 차 앞에 기대선다.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하나 입에 넣었다가 케이를 돌아본다. 껌을 들어보인다. 하나 씹겠냐는 듯.
// 높은 곳
재명이 완전히 김샌 기분이 된다.
S#70. 기획단 앞 / 밤
케이의 차와 국장의 차. 서장의 차 등이 줄줄이 와서 대기한다.
나서는 이들이 서로 악수를 하며 헤어진다.
제일 후진 시장의 차도 도착한다. 그 뒤 좀 떨어진 곳으로 와서 서는 중호의 봉고차.
순간. 문이 열리며 잽싸게 타는 신. 다른 이들이 보지 않게.
중호 : 내가 콜택시냐. 아무 때나 부르면 오는 줄 알어?
신 : 왔잖아.
하며 시선은 저 앞의 도우를 놓치지 않고 있다.
도우는 국장과 서장을 깍듯하게 예를 다해 보내고 있다. 두 차가 먼저 떠나고.
도우가 시장에게도 인사를 한다. 시장이 어허허 웃으며 인사를 받으며 후줄근한 자기 차 앞으로 온다.
그러다가 신네의 차를 발견했다. 이쪽으로 어슬렁거리며 온다.
아이씨.. 해서 신이 얼른 기어 옆에 있던 중호의 야구모를 집어들어 눌러쓴다. 자세도 낮춘다.
시장이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며.
시장 : 찾던 거는 찾았어요?
저 앞의 도우가 이상한 듯 이쪽을 보지만 차 내부의 신은 발견하지 못한 채 자기의 차로 간다.
시장 : 못 찾았어요?
신 : 저기. 제가 좀 바쁘거든요.
시장 : (명함을 내주며) 이거 줄라고요. 뒤에 내 집주소도 있어요. 필요하면 찾아와요.
낮에는 시청으로 오면 되고. 밤에는 내 집으로 오면 되고.
신 : 저기.. 시장님. 우리가 좀..
시장 : 아직 신문 안나왔어요? 분신총각 사진 어뜩게 나왔나 궁금한데.
시장이 히히 웃으며 자기 차로 간다. 신이 입맛이 쓴데..
중호 : 어디 갈건데.
신 : 저기 채도우 차 미행해줘.
중호 : 미행이라.. 그럼 좀 떨어져 따라가야겠네.
이미 출발해가는 도우의 차.
중호가 신중하게 따르기 시작한다.
신은. 앞차보다는 뒤나 옆에 관심이 있다. 재명이 뒤따르지 않는지 살피는 중이다.
중호 : 근데 따라가서 뭐할라고.
신 : 우리 말고 따라가는 놈이 있는지 그거 좀 알아볼라고.
중호가 뭔 소린지 몰라서 돌아보면 신은 아예 뒤를 돌아보고 있다.
S#71. 신문사 기자실 / 밤
어느 기자의 책상. 기자가 노트북에 기사작성을 하고 있는 중.
사리촌의 강제철거 현장 분신기도 등의 제목이 보인다. (기자의 얼굴은 안보여도 상관없다)
옆에는 큼직하게 뽑아놓은 신의 사진. 물에 젖어서 라이타를 높이 들고 있는 사진이다.
그 사진 밑으로는 울고 있는 철거 아낙을 찍은 사진도 반쯤 가리워져 보인다.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소리.
소리 : 어이 남기자. 나 좀 봐.
기자가 일어서더니 간다. 역시 얼굴은 안 보이는 상사와 마주 서서 얘기하는 발.
잠시 후 기자가 자리로 돌아온다.
책상 위에 있던 신과 아낙의 사진을 들더니 반으로 주욱 찢어서 옆의 쓰레기통에 넣는다.
의자에 앉더니 작성하던 기사를 주욱 블록 지정하더니 삭제해버린다.
S#72. 채회장 거실 / 밤
은수가 다반을 가지고 오다 보면 채회장은 크고 두툼한 서류철을 보고 있다.
은수 : 또 뭐에 신경쓰시는 거에요? 박사님이 안정. 또 안정 하라구 하셨잖아요.
다반을 내려놓고 손을 내민다.
은수 : 주세요. 일루.
채회장이 순순히 손을 놓는다. 은수가 가져와서 겉표지를 보면, [명도시 투자 유치 계획서]하는 제목이 쓰여져 있다.
채회장 : 그게 도우 그 놈이 노리는 것인 모양이다.
은수 : (몇장 들춰보는)
채회장 : 한마디로 꿈의 도시를 만들겠다 그건데.
코웃음을 친다. 은수가 뭔가를 생각하더니.
은수 : 그런 얘기 여러번 했었어요. 네오모나코가 꿈이라고. 모나코같은 도시를 만들어보고 싶다구요.
채회장 : 꿈의 도시.. 좋아하네.
은수 : 오빠 꿈이잖아요.
채회장 : 꿈이 아니지. 장난감이겠지. 별 짓을 다해 손에 쥔 다음엔 이내 싫증나서 버릴 거고. 그 놈을 모르냐?
은수 : (대답 못하는)
채회장 : 그 다음 장난감은 또 뭘까.
은수 : 조금은.. 응원해줘도 괜찮지 않을까요.
채회장 : 흥.. (새삼 은수를 보더니) 그 놈들은 뭐하구 있대. 도실장 아들하구 만두공장 그 놈하구.
은수 : 글쎄요.
채회장 : 지들 가진 거 죄 꼴아박구. 모르긴 해두 빚두 덮어 썼을텐데. 왜 안 와. 나한테 돈 좀 달라구 올만두 한데.
은수 : (미소) 왜요. 오면 비웃고 화내실 거면서.
채회장 : 그러니까. 왜 안 오냐고.
S#73. 명도시 거리 / 한적한 곳 / 밤
// 달리고 있는 도우의 차. 내부
뒷좌석의 도우가 우울한 얼굴로 앉아있는데 핸드폰 진동벨 소리.
받아들어 이름을 보고는 미소 짓는다.
도우 : 어디에요?.. (차 창의 앞을 살펴보고는) 아 그럼 그냥 거기 서 있어요. 내가 근처니까 찾아갈께요.
길 가에 서서 나 기다려봐요.
// 길
도우의 차 뒤를 거리를 두고 따르고 있는 중호의 차.
신은 여전히 뒤쪽과 옆 라인을 지나쳐 가는 차들을 살피고 있다.
중호 : 저기 서는데.
신이 앞을 본다. 도우의 차가 거리 한쪽에 서고 있다.
중호 : 일단 지나쳐 갈게.
중호의 차가 도우의 차에 가까이 간다. 신이 모자를 눌러 쓰면서 슬쩍 보다가 얼굴이 굳는다.
도우의 차가 선 앞 쪽에는 다른 차가 하나 서 있는데. 그 차 옆의 길에 서서 기다리는 여자. 경아다.
중호의 차가 그 옆을 지나쳐간다.
경아는 다가오는 도우를 향해 미소짓고 있다.
경아가 차 열쇠를 들어보이고 도우가 받아들며 다른 손으로는 경아의 허리를 감싸서 경아의 차 쪽으로 간다.
서로 보며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멀어진다.
중호 : 이쯤 세울까?
신은 중호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중호가 한참 거리를 두고 차를 세웠다. 신은 뒷 창문을 통해 계속 보고 있다.
도우가 경아를 경아 차의 조수석에 태우고 자기는 운전석으로 간다.
도우가 모는 차가 출발한다. 가까워지고.. 신이 탄 차의 옆을 지나쳐간다.
신이 모자 밑으로 본다. 그들을 마주보며 웃고 있다. 그들이 탄 차가 다시 멀어진다.
중호가 힐끗 신의 기색을 살핀다.
신.. 잠시 있다가 피식 웃는다. 웃고 모자를 벗고 허리를 펴다가 굳는다.
중호의 차 옆을 지나쳐 가는 지프차. 그 운전석의 재명.
그 지프차가 저 앞에서 급하게 유턴을 한다.
신이 휙 뒤를 돌아본다.
저 뒤의 케이가 운전하는 차가 유턴을 해서 가고 있다. 재명이 그 차를 따르는 것.
신이 저도 모르게 다시 앞을 본다. 도우와 경아가 탄 차는 멀어져 가고 있다.
신 : 돌려.
중호 : 뭐?
신 : (버럭) 유턴하라구.
중호의 차가 급히 유턴을 한다.
S#74. 개발지 근처 도로 / 경아의 차 내부 / 밤
경아가 차의 음악을 튼다. 재즈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경아 : 좋아하는 곡이죠?
도우 : (웃는다) 나에 대해서 논문 쓰고 있어요?
경아 : 자 이제 보여주세요. 도우씨 꿈을 보여준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먼길 달려 내려왔는데?
도우 : 보구 있잖아요.
경아 : (앞을 본다) 어느 거요.
도우 : 옆에 땅 보여요? 여기 호텔하구 카지노가 들어설 거에요. 사이사이 테마파크가 들어설 거구요.
완성되구 나면 미니 라스베가스같이 보이지 않을까?
S#75. 다른 도로 / 밤
케이의 차가 달리고 있다. 백밀러로 뒤를 살핀다. 백밀러에 보이는 (혹은 뒷창문으로 보이는) 재명의 지프차.
// 사거리다. 빨간불로 바뀐다.
케이가 차를 세운다.
뒤에 다른 차 하나 그 뒤가 재명의 차다.
케이 미소 짓는다. 재미있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 급회전으로 우회전을 하는 케이.
그 뒤를 따르는 재명. (맹수가 내내 숨어서 먹이를 노리다가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앞뒤 안보고 맹렬하게 추적하는 느낌의)
잠시 후 도착하는 중호의 차. 그러나 마악 옆을 지나쳐 가는 학원 버스 때문에 지체한다.
학원 버스도 우회전을 해서 그 길로 간다.
우회전해서 들어가는 길은 차량 통행이 적은 한적한 길.
S#76. 개발예정지 도로 / 밤
차를 운전하며 도우가 계속 설명하고 있다.
도우 : 어두워서 지금은 안보이겠지만 저 쪽에 산이 있어요. 거긴 180홀짜리 국내최대골프장이 들어설 거에요.
근데 그게 단순한 골프장이 아니에요.
경아 : 단순하지 않은 골프장은 어떤 걸까.
도우 : 골프장마다 풍력 발전기를 설치할 거에요. 도시에 공급하는 전기의 상당량을 공급할 수 있게 되죠.
경아 : 와아..
도우 : 네오모나코 명도시의 특징이 그거에요. 외부 도움 같은 거 필요없이 에너지를 완전히 자체 조달하는 거요.
S#77. 거리 / 밤
케이가 차를 급회전하더니 옆의 골목으로 몰고 들어간다.
재명이 바로 따라 들어간다.
지나쳐간 학원버스가 골목길 앞쪽에 선다.
바로 뒤에 쫓아온 중호의 차는 여섯명 정도의 초등생들이 내려서 이리저리 흩어지는 바람에 골목길로 진입을 못하고 지체한다.
중호가 크랙션을 누르지만 손을 들고 골목길 입구를 가로지르는 아이들은 천진하기만 하다.
아이들 중에 저학년 둘, 1,2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간다.
S#78. 골목길 안 / 밤
재명이 차를 급정거한다. 바로 앞에 케이의 차가 세워져 있다.
허리춤의 권총을 빼든다. 차문을 열며 잠시 앞을 살핀다.
케이는 운전석의 문을 열어놓았다. 일단 뒷유리창으로는 차 안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의 시선으로 케이의 차에 다가선다. 운전석을 본다. 비어있다. 그 옆도. 뒤도.
차를 돌아가보면 차의 밖, 골목담과 사이에 케이가 도사리고 기다리고 있다. 한 손에 쥐고 있는 칼.
재명이 차 안의 케이를 노리고 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근거리의 싸움을 원하고 있다.
뒤에 정차해있는 재명의 지프가 보인다.
/지프의 옆을 초등생1이 아무 생각없이 걸어온다.
그 아이가 지나는 지프 안에는 이미 재명이 없다. 비어있다.
/ 케이가 뒤를 보던 시선을 돌려 앞을 보다가 굳는다.
어느새 앞쪽으로 간 재명이 스윽 웃으며 케이를 본다.
두손으로 잡은 권총, 절컥 안전장치를 푼다.
S#79. 골목길 다른 곳 / 밤
달려오던 신이 거기 놀고 있는 초등생2를 본다.
초등생2는 가방을 휘휘 휘두르며 천천히 걸어가는 중.
신이 주위를 둘러보며 아이에게 다가선다.
신 : 너 집이 어디야?
아이는 대답없이 신만 쳐다본다. 이 아저씨 뭐야.. 해서.
신 : 너 꼭 일루 가야 돼? 다른 데 돌아가는 길 없어?
아이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뛰기 시작한다. 제 딴에 겁이 나서 도망치는 중.
신이 짜증이 나지만 달려서 아이를 잡아 안는다.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신 : 아 쫌.. 너 집이 어디냐고.
뒤를 따라오는 중호에게 소리친다.
신 : 얘 좀 받아봐.
S#80. 골목길 안 / 밤
케이가 보는 재명, 재명이 두 손을 서서히 올려 케이를 겨냥하는데 순간, 한바퀴 구른 케이가 막 지나가던 아이를 잡아채 안는다.
재명이 움질해서 보는데, 아이를 안은 케이가 일어난다.
아이는 영문을 몰라 울먹이며 빠져나가려 하지만
케이는 한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에는 칼을 잡아 늘어뜨린 채, 재명을 향해 걸어간다.
재명이 부들 떨어서 보다가 총을 내린다. 뒤로 물러서려 하자, 케이가 고개를 젓는다. 움직이지 마라고.
칼을 든 손이 아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다.
재명이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다.
아이를 방패처럼 안고 점점 다가서는 케이.
재명이 아이를 본다. 아이는 겁에 질린 채 재명을 본다.
아이를 보던 재명이 체념하면서 케이를 본다.
케이가 바로 재명의 앞까지 왔다.
순간, 칼을 든 케이의 손이 움직인다.
S#81. 골목길 / 밤
신이 달리고 있다.
S#82. 골목길 안 / 밤
달려오던 신이 놀라 선다. 거기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재명.
신을 천천이 올려다보는데, 한손이 허리를 움켜잡고 있다. 움켜잡은 손 사이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S#83. 기획단 회의실
벽에 걸려 있는 명도시 지도. 그 지도를 보며 도우가 꿈에 젖어 말하고 있다.
도우 : 한번 상상해봐요. 여기 늘어선 최고급 호텔들. 외국인 내국인이 섞여 사는 복합레저단지.
아 참. 여기 명도시는 말이죠. 완전한 자치도에요. 지금 재경부하고 상의 중인데 여긴 소득세 상속세를 없앨 거야.
전 지역이 면세지역인 거지. 내가 말했잖아. 모나코처럼 만든다고.
갑자기 변한 말투에 경아가 뭔가 이상해서 도우를 돌아본다.
그러나 도우는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다. 꿈꾸는 듯한 눈으로.
도우 : 전세계에 있는 돈 좀 있단 사람들이 몰려들거야.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피해서 본사를 일루 옮길 거고. 모나코처럼 말이야.
이 얘기 전에도 해줬잖아. 은수야.
하면서 경아를 돌아본다.
경아가 놀람과 충격으로 도우를 보고 있다.
도우,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S#84. 서민 빌라 외경 / 밤
오층 정도의 후질구레한 서민 빌라. (혹은 다세대 주택. 혹은 서민 아파트. 옥상이 있는 곳으로)
S#85. 시장 집 내부
방 두 개 정도의 작은 아파트의 작은 부엌. 시장 혼자 독신으로 생활하는 곳.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라면. 달걀을 깨넣는 손. 양시장이다.
옆에 썰어놓았던 파를 넣으며 뒤를 본다.
부엌에서 빤히 보이는 방 내부. 이불에 누운 재명이 보인다.
보건의가 나오고 있다. 치료가방을 들고.
보건 : 진통제를 놔줬으니까 한동안 잘 겁니다. 상처가 깊지 않아서 별 문제는 없어보이지만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제대로 검사를..
시장 : 수고했어요. 미안해요. 퇴근한 사람 다시 불러내고.
보건 : 근데.. 진짜 경찰에 알리지 않아두 되요?
시장 : 사과 깍아먹다 찔린 걸 경찰에 알리면 뭐하게요.
보건 : (어이없어 보다가) 가보겠습니다.
시장 : 멀리 못 나가요. 조심해 가요.
보건의 어이없어 하며 가고. 시장이 아차해서 라면의 불을 끈다.
방쪽으로 걸어가 안을 들여다본다.
한팔로 눈을 가린 채 누워있는 재명. 벗은 상체의 허리는 치료붕대로 감겨져 있고.
그 옆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신.
시장 : (작뜩 낮춘 목소리로) 라면 안 먹을래요? 불면 맛 없는데.
신이 일어서더니 방을 나서며 불을 꺼준다.
S#86. 옥상 / 밤
옥상문을 열며(계단으로) 들어서는 시장. 둘러보니 저만치 신이 밤바람을 맞으며 난간 근처에 서있다.
그 옆으로 가 서는 시장.
시장 : 아무래도 공기가 서울하고는 다르죠? 숨 좀 크게 쉬어보세요. 아주 달아요.
하고는 자기가 먼저 심호흡을 한다.
신 : 인사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폐 끼쳐서 죄송하구. 도와주셔서 감사하구.. 또.. (할 말을 찾는데)
시장 : 나한테까지 찾아온 걸 보니 달리 의지할 데가 없는가보네.
신 : (웃는) 없네요.
시장 : 뭐하는 건데요? 총각하고 밑에 누워있는 친구하고.
신 : 둘이 하고 있는 게 달라요. 저 친구는 그래도 자기가 하는 게 뭔지 아는데. 난.. 글쎄요.. 뭐하구 있는 걸까.
계란으루 바위치기를 하구 있다고 해야 되나.
시장 : 왜요. 바위가 못되고 계란이라서 분해요?
신 : 밑에 있는 친구가요. 나보구 착하대요. 난 착하다구. 근데 착한 건 약한 거라구. 그래서 질 수 밖에 없다구요.
그러니까 난 착하구. 약하구 질 수 밖에 없는 계란인 거죠.
신이 웃는데. 시장은 가만 생각해보더니.
시장 : 친구분이 잘못 아셨네. 착해서 약한 게 아니에요.
신 : (돌아본다)
시장 : 혼자라서 약한 거에요. 혼자 하려구 하니까.. 혼자 덤비니까 혼자 질 수 밖에 없지요.
(신을 돌아본다) 계란으루 바위치기라구요? 계란 하나 던져봤자 당연히 표도 안나죠.
만개 백만개 던져보세요. 바위.. 깨지게 되있어요.
어쩐지 그 말에 신이 속 깊은 데서 울음 같은 게 치솟으려고 한다.
그런데 시장이 한마디를 더한다.
시장 : 김신씨라구 했죠?
신 : (뭔가가 목에 차서 대답을 못하는데)
시장 : 지금.. 마음이 혼자지요?
그 말에 둑이 무너지듯 그만 울음이 울컥 솟는다.
도우의 앞에 무릎을 꿇을 때부터 누르고 눌러온 울음이 순간 터졌다. 외롭고 지쳤던 마음이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