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의 노래 : '정주고 내가 우네' |
나는 개인적으로 리바이벌(혹은 리메이크)된 노래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원없이 듣고 나서 질릴 때쯤, 그 노래의 사연을 추적해 전혀 색다른 느낌을 주는 다른 가수의 같은 곡을 찾아내 감상하는 재미를 조용히 즐기는 것이다. 그런 노래를 여러 경로로 어렵사리 발견해 들을 때면, 원곡의 분위기와 다른 정조로 곡의 이해와 해석을 새롭게 얻는 즐거움이 있다. 또한, 남의 노래를 갖다가 편곡해 부르는 가수의 숨겨진 역량을 확인하는 덤도 있다. 그러나, 원곡에서 느꼈던 감흥을 새로운 맛으로 전하기는커녕 훼손하는 노래도 적지 않아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 그런 경우는, '메들리' '노래열차' '*박사' 등의 가판 시리즈물에서 종종 발견하는데,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유를 잘 아실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음악과 미술에서 '미' 이상을 받은 적이 없다. 아니 딱 한번, 고2 때든가? 실기 시험을 못 보는 상황에서 이론만으로 성적을 평가할 때, 미술 과목에서 당당히 '수'를 받은 매우 특별한 예외가 있기도 하다.[그 때 달달 외운 앙리 마티스의 생몰生沒 연대를 묻는 답답한 문제의 명쾌한 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니, 1869-1954!] 사설이 길었는데, 못 부르는 노래 실력에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참으로 괴로운 경우, 내가 마지 못해 부르는 18번이 있으니 그 노래가 '정주고 내가 우네'다. 이전에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통일을 갈망하는 어줍잖은 마음으로 불렀는데, '약발'이 떨어진 시국 탓에 조용히 접어 두었다. 그래서 어느 누구나, 어느 분위기에서나 선선히 참아주고 들어줄 만한 레파토리로 고른 게 '정주고 내가 우네'인데, 모니터 화면의 가사가 보이지 않아도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노래 중 하나며, 자연스런 임의의 편곡없이 원곡에 거의 가깝게 부를 수 유일한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모래탑', '옛님', '나를 두고 아리랑' 등을 부른 김훈과 트리퍼즈(한글로 '나그네들'이라고 칭했다)가 불렀다. 사실, 조용필 조경수 윤수일 최헌 김훈 등 동시대를 풍미한 밴드 보이들은 '락' 보다는 가요계 주류의 트로트를 빌어 70년대의 고고클럽에서 주가를 올렸지만, 그 중 김훈 만은 미국 그룹 Chicago처럼 '브라스 록'을 들고 나와 나름대로의 파워와 인기를 과시하던 터였다. '나를 두고 아리랑'이나 '정주고 내가 우네'을 들어 보면, 그 보다는 캬바레에 가보면 브라스 록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가요계의 실력자이며 히트곡 보증수표이자, 부인 양인자씨와 명콤비를 이루는 작곡가겸 연주인 김희갑이 만들고 김중순이 작사한 '정주고 내가 우네'는 1975년 발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노래는 한국 그룹 사운드의 효시라 할 He5(리드 싱어 한웅)가 60년대 후반에 처음으로 불렀고, 김훈과 트리퍼즈가 이어 받아 히트시켰다. 그 후 송대관, 라훈아, 김정수, 전영록, 최진희, 김수희, 문희옥 등등이 너나없이 리바이벌했지만, 이 노래에 담긴 의미를 살린 호소력이 좋은 최진희의 것을 나는 즐겨 듣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최진희 버젼은 특출한 가창력을 100% 살려 김훈 버젼에서 못 느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내가 이 노래를 (시킬 때면 마지 못해) 즐겨 부르는 이유는 이렇다. 먼저 약간의 '뽕짝끼'가 나 같은 음치에게 노래 배우기를 쉽게 해 주었다[도입부에서 박자를 잘 놓치지만…]. 또한, 가사에 담긴 의미가 젊어서나 지금이나 내 삶의 '꼬라지'를 상당히 상징해 주고 있어 애착(?)이 간다. 젊어서는 연애 후일담을 미화시키는 적절한 도구로, 지금은 세상의 독한 이기심에 치여 사는 어리숙한 태도를 합리화하는 장치로 간간이 쓰임새가 있다. 사실, 정만 뭉텅뭉텅 주고선 징징 우는 바보가 정글 같은 세상을 잘 버티며 살 수는 없다. 부디, 80년대식 용어로 '견결히 자신을 다그쳐 세우며', 저 '야속하고 우울'한 세상이나 지독한 인간들을 잘 이기며 살아갈 일이다. 또한, 등 돌리며 떠난 '무정한 당신(세상)이 내 마음 아실 때'를 막연히 오매불망 기다리지 말고, '첫사랑 고백하던' 그 불퇴전의 용기와 각오로 세상의 환멸에 맞서 밀리지 말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건이나 전제 없이 이타행利他行의 마음으로 마냥 '정주고 내가' 울고마는 선량한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순정이 없어진 시대가 참으로 싫다.■ 【이 글을 올리자, 어느 꾸꿈시런 음악팬께서 참으로 귀한 히파이브의 '정주고 내가 우네' 원곡을 보내 주셨다. 필자도 간절히 듣고 싶었던 것이어서 고맙고, 반가웠다. 들어보니, 과연 오리지날의 참 맛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무게감을 느끼게 했다. 1970년 유니버어샬레코드사에서 나온「HE5/이승재」조인트판에서 발췌했다. 필자로서는 그동안 애청해 왔던 최진희 버전보다 훨씬 좋게 느껴지니, 이 얼마나 사삭스런 인간의 마음인가... 아무튼, 히파이브 팬 혹은 '정주고 내가 우네'형 독자들의 즐감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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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주고 내가 우네'잘듣고가내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