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오 9,18-26
18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넓고 깊은 강에서 살던 개구리 한 마리가 길을 가던 중에 우물을 발견했습니다. 마침 무더운 날씨에 몹시 목이 말랐기 때문에 우물 속에 풍덩 뛰어들었지요. 그런데 그곳에는 토박이 개구리가 있었습니다. 나그네 개구리는 자신을 토박이 개구리에게 자기를 소개했지요.
“저는 아주 큰 강에서 온 개구리입니다.”
그러자 토박이 개구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큰 강? 큰 강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도대체 그게 뭐요?” 라고 묻습니다. 나그네 개구리는 설명을 했지요.
“아하, 그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신은 우물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이 우물은 너무나 자그마한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한 번 설명해 볼게요.”
성격 급한 토박이 개구리는 껄껄껄 웃으면서 말합니다.
“이 우물보다 더 큰 게 있다는 소리는 처음이오. 당신이 말하는 그 강은 얼마나 크오? 이 만큼 되오?”
그러면서 우물 안 넓이의 삼분의 일쯤 펄쩍 뛰어 봅니다. 나그네 개구리는 “천만에요.”라고 답했지요. 이번에는 우물 안 넓이의 삼분의 이쯤을 펄쩍 뛰어 보이며 말합니다.
“이 만큼 되오?”
나그네 개구리는 “아무래도 도저히 설명하기가 불가능할 것 같네요. 그건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요. 아주 넓고 크단 말이오. 아예 경계도 없소.”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토박이 개구리는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당신 미쳤소? 아니면 철학하는 개구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당신은 거짓말쟁이가 분명하오. 여기서 얼른 나가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다니!”
누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일까요? 바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토박이 개구리이겠지요.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있는 나그네 개구리가 바보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네요. 바로 이런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아이가 자고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웃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역시 주님의 손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분인데, 그래서 사랑으로써 어떻게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신데, 우리들은 그 사랑을 의심하고 판단함으로써 이천년 전에 예수님을 비웃던 이스라엘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그러면서 앞선 이야기에서 등장한 토박이 개구리의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당신 미쳤소?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다니!”
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다가선 회당장,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보여준 혈루증을 앓는 여인. 바로 주님 앞에 철저히 다가서려 했던 사람의 모습이고, 우리 역시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비웃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