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3:31~14:4, 마12:32
우주가 창조 될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멸하고 인류를 구원하실 것과 역사의 새 종이 울릴 종말까지 모든 때가 예정돼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역사가 구속사의 중심이신 예수께로부터 시작되고 마쳐집니다.
1.구속사적으로 예수님의 세계관은 금세와 내세로 나뉩니다.
오늘본문 마12:32에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은 눅18:30에 금세와 내세로 표현돼 있는데, 성경에는 시간과 관련지어 공간영역을 표현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천국'은 영원한 곳으로, 사도바울은 저 세상으로 가서 주님과 함께 거하고 싶은 욕망이 많다고 하였습니다(빌1:23~24). 고전13:12에 "이제는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온전히 알리라"라고 말씀했는데, 여기 '이제'는 이 세상이고 '그때'는 오는 세상을 말합니다.우리가 이 땅에서 환난을 받다가 마침내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지극히 크고 영원한 하늘의 집을 선물로 받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육신이 낡고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강건해집니다(고후4:16~17).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했습니다(고후5:2) '이 세상'은 '오는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일시적 시간, 임시적 공간으로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이룩해가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현장입니다.. 그래서 죄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는 인류를 구원할 말씀과 그 복음을 선포할 교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오는 세상'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계20:12~15, 히9:27). 모든 종류의 죄는 어디서 온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들입니다. 양심을 속이면서부터 죄가 시작돼, 당사자와 그 가정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시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시119:11). 본문 마12:32에 예수께서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만, 성령을 거역하는 '성령 훼방죄'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죄 사함 받는 자 곧 구원 받는 자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입니다(마1:21). 에수님은 세리장 삭개오 한 사람을 보시고 여리고에 들어가셨습니다.삭개오가 주님 앞에 회개하자, 예수께서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찻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눅19:10). 의인보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는 것, 소자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마18:14,요6:39, 10:28, 눅5:32, 15:7)
2.금세는 우리가 본 '아버지 집'에 돌아가기 위한 임시 거주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천국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성도들이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믿지 않는 자들로 인해 모욕을 당하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 각자와 가정에게서 자신이 거룩한 이름을 아끼시는 무서운 저주를 하시는 것입니다. (겔36:12, 21).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대접이나 영광,칭찬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버려 인류를 대속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마20:28, 막10:45)그의 죽으심은 과거부터 장차 올 인류의 모든 죄까지 단번에 사하시는 제사였습니다(롬6:10). 예수를 먼저 믿고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 말씀이 온 세상에 전파된 때에야 세상 끝이 오기 때문입니다(마24:14).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마20장 하나님의 포도원에 고용되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일한 사람이나, 오후 5시부터 일한 사람이나 임금은 다 똑같이 한 데나리온, 곧 '구원'입니다. 이는 다시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완전한 구원으로 (고전15장), 예수님이 약속하신 '오는 세상'에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게 됩니다(계21:2). 예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내가 떠나가니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수 없다"고 하시니, 그들은 예수께서 자살하려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요8:21~22). 죄의 종에서 해방된 자는 누리는 영생의 세계를 말씀하신 것이었으나 ,자신들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찌 자유케 될 것이라 하느냐고 하면서 깨닫지 못했습니다(요8:31~36). 예수님이 최후만찬에서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올 수 없다"고 하시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를 위하여 목숨도 버리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하였는데, 예수님은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번 부인할 것" 이라고 말씀했습니다(요13:33~38). 예수님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하여 베드로가 세 번째 저주하며 맹세하여 예수를 부인하였을 때 닭이 곧 두번 울었습니다(막14:70~71). 이 때 베드로의 너무 큰 목소리 때문에 주께서 돌이켜 보셨는데, 예수님의 눈과 마주친 베드로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습니다(눅21:61~62). 서로 대화는 없었지만, 예수께서 저주스런 눈빛이 아니라, '너는 나를 세번 부인했지만 나는 너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구원시키겠다'는 사랑의 눈길로 말씀하시는 것을 베드로가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 입니다(요13:1). 이 말은 곧 현세와 내세, 세상과 천국에서도 변함이 없는 ,시간과 공간에 제한 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사랑을 깨닫고 , "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예수께 받은 사명, 복음 증거의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갈2:20, 행20:24) . 주님이 본래 영존하시던 곳, 이 땅에 오셨다가 다시 가신 곳, 장차 우리가 갈 곳은 '내 아버지 집'입니다(요14:20), 바로 우리가 출생한 곳이요, 성장한 곳이고, 잘 아는 집, 정든 집, 우리의 본 고향, 본적지입니다. 이 '처소'(요14:2)는 헬라어 '토포스'로 많은 맨션, 개개인이 확보한 독립 저택, 완전한 집, 이상적인 스위트홈입니다. 이 집을 예수께서 친히 예비하시고, 다시 와서 우리를 데리고 가셔서 그곳에 영원히 함께 거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요14:3)
결론: 이 세상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찻는 구속사의 시간과 공간을 총칭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를 선장으로 모시고 세계를 운행하는 평강호의 선원으로서 일사분란하게 협력하여 배의 갈라진 틈, 터진 구멍, 새는 곳을 막고 보수하는 충성스런 사명자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겔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