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란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worship)라고 한다.
그 정확한 개념은 "존경을 나타내다" 혹은 "최상의 가치를 돌리다"라는 뜻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존경을 나타내는 경건과 의식을 뜻하며, 최상의 가치를 하나님께 돌리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의 어떤 목사가 퀘이커 교도들이 참으로 신령하게 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듣고 이를 견학하려고 찾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기도만 하고 예배를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해 옆사람에게 언제 예배를 시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옆사람은 "우리의 예배는 이 예배당을 나가는 순간부터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에드가 프랭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공장 작업대를 늘 제단으로 생각하였고, 어떤 이는 상점 계산대를, 어떤 이는 사무 보는 책상을, 또는 부엌 조리대를 거룩한 장소로 삼았다..... 평범한 환경이 길가의 성전이 되어야 하리라".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수가라는 곳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다음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4:20)
1. 은혜의 정의 헬라어 ‘카리스’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도 자의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넓은 의미로는 대상의 가치나 공적에 관계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 곧 모든 피조물들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자비로운 역사와 선하심을 의미한다. 좁은 의미로는 아담의 범죄와 타락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수난, 부활 등의 사역을 통해 나타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이고도 자기 희생적인 사랑과 관심을 뜻한다.
2. 은혜의 특징
① 하나님의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사랑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선물’(엡 2:8)이라고 표현하였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②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선 영원 전부 터 택정하신 자에게 궁극적인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엡 1:3-5), 멸하고자 하는 자에겐 그 의 은혜를 끝까지 거부토록 하여 멸망을 피할 수 없게 하시는 것이다(롬 9:17-18).
엡 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 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롬 9:17-18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 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 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 악하게 하시느니라
③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구속(救贖)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그리고 최종적으 로 나타났다. 따라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3. 은혜의 종류
① 특별 은혜(구원의 은혜)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기로 예정한 자만을 불러주시사 거듭나게 하시는 선택적 은혜를 뜻한다(엡 2:8-10). 이 같은 은혜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뜻 안에 서 예정되었다는 것(딤후 1:9,10)과 이를 받는 자들에게 새로운 책임성, 즉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고전 10:31).
엡 2:8-10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 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 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딤후 1:9-10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 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 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 을 드러내신지라
고전 10:31 그런즉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 라
② 일반 은혜(보통 은혜) 특별 은혜와는 달리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 다(마 5:43-48).
마 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 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죄인들의 회개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 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 인간의 안녕을 위해 악의 팽창을 제어하심.
욥 2:6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 질서 유지를 위해 가정, 국가 등과 같은 제반 제도를 주심.
창 3:19-21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라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 가 됨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롬 13:1-4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 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 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 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 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 는 자니라
ⓓ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차별이 없는 자연적인 축복
시 145:9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 다
시 145:15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 시며
ⓔ 사람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갖가지 재능
고전 12:4-10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 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 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 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 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 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 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을 통역함을 주시나니
ⓕ 우주나 자연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그 자체 내에 주어진 자연 질서(욥 31:26) 등을 포함한다.
욥 31:26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4.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란 이미 성도의 삶 가운데 풍성히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은혜는 이미 허락되어 있는데 미쳐 그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함으로 말미암 아 그 은혜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불상사가 겪지 않도록 하자는 말이다. 그러면 이 를 위하여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①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는 도저히 생 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고 인정해야 하며, ②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 하며 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이며, ③ 그 은혜를 누릴 만한 청결한 신앙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세상의 죄악과 과감한 싸움을 해야 하며, ④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 신 은혜의 보고 속에 날마다 묻혀 사는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회개란 무엇인가?
1.성경은 “사람이 죄에 대한 마음을 바꾸기로 결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그 죄를 거부하고 주께로 돌아오는것”으로 회개를 정의한다. 그것은 내적인 마음의 결단과 더불어 외적인 행동으로도 나타나게 된다.
가. 잠언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회개의 두가지 단계는?
회개의 결과는?
회개의 반대는?
그리고 그 결과는?
(사31:6) 이스라엘 자손들아 저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나. 누가복음15:11-32 탕자이야기에서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 타락했다. 그러나 후에 그는 회개 하고 돌아왔다. 그 두 단계를 발견하고 이야기해 봅시다.
(눅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회개는 후회가 아닙니다. 가럇유다는 예수에 대한 배반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유다의 결과는?
(마27:3-5)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3.회개는 삶의 Turning Point(전환점)을 가져옵니다. (마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누가복음3:7-14을 통해 요한의 가르침을 이야기해 봅시다.
II. 회개의 중요성
1.세례요한의 메세지이다.
(막1:4)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2.예수 그리스도의 메세지이다.
(막1:14, 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3.구원의 필수요건이다.
(눅13: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제자들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눅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5.바울의 메세지의 핵심이다.
(행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6.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초보 6가지 중 첫번째이다.
(히6:1, 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7.우리 마음에 고백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하나님앞에 그의 사람으로 설 수 없습니다.
(시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III. 어떻게 회개할까,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로 설까?
1.당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세요.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2.그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마음을 갖으세요.
(시51:1-2)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긍휼: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심판을 받지 않는 것!
다윗은 무엇을 위해 기도했습니까?
3.죄를 인식하십시다. 용서를 구할때는 구체적으로 하십시다. 그 죄가 사람들에게 범한 죄라도 결국 하나님께 대한 죄입니다.
(시51:3-4)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다윗은 죄에 대한 그의 심정을 묵상해 봅시다.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4.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세요.
(시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결과는 어떻다고 합니까?
5.하나님께 당신을 전적으로 변화시키도록 구하십시오. 다윗이 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시51:10-12)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6.회개에 따르는 두가지 결과는 무엇입니까?
(시51:13-15)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7.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무엇입니까?
(시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IV. 내가 회개해야 할 죄는 어떤 죄들일까?
과거에 지은 죄 가운데 아직 기억 속에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다면 지금 회개합시다. 그리고 현재에 지은 죄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된 후에도 가지고 있는 죄악된 동기들.
(요일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롬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V. 회개의 결과들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잠3: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시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32: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사마리아사람들은 예배의 장소를 그리심산에서 드려야만 하는 것으로 알았고, 예루살렘 사람들은 오직 성전에서만 예배를 드려야하는 것으로 알았으므로, 여인은 예수님께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질문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를 얼핏 읽어보면, 여인과 예수님이 서로 동문서답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인은 예수님께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예배의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하나님이 축복하신 그리심 산이 옳은가(신11:29) 혹은 선택한 장소, 예루살렘이 옳은가(신12:5)에 대해서 여인은 예수님께 물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소에 대해서 전혀 답변을 하지 않으시고 오직 예배를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신령과 진정이란 말은 라고 영어로 번역이 되었는데, 성령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는 뜻이다.
그러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예배자를 찾으신다는 것이다. 즉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방법이 중요한 문제라는 뜻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과 신령의 예배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은 예배란 것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과연 예배란 무엇인가?
구약과 같이 성전 혹은 교회에서 주일날에 드리는 것만이 예배인가?
그것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방법적인 개념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하며, 그것이 바로 주님이 가르켜 주신 예배의 참의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바치는 재물로 인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예배인가?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말씀하셨음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삼상15:22)
재물은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이며 하나님께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신데 인간이 바치는 재물이 무엇이 필요한가?
예배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물론 구약에게 참예배의 실상이 오기 전까지, 우리에게 그림자적인 예표로서 예배의 형식과 패턴을 주셨다. 다시 말하여 구약의 성전예배는 우리가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그리스를 만났을 때에 그 여인이 그가 누구인가를 알았더라면, 이젠 신령과 진정의 참 예배를 드릴 때가 되었다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여야만 했다.
즉 예배는 주일날에 교회에서 국한된 장소적,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전 삶 자체가 모두 예배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성전이라는 건물에서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이 곧 예배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일에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가치를 돌리는 삶자체가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몸이 곧 성전이기에, 우리의 예배도 곧 우리의 전인적인 몸이 존재하고 활동하는 삶 전체가 예배의 장(章)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롬12:1-5에서 언급되는 "영적(靈的) 예배"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경건적이며 의식적(儀式的)인 것을 포함하는 행위가 예배일까?
언어적으로 살펴보면 "영적"이란 말은 헬라어 "로기코스"라는 말인데 "합리적인, 논리적인, 이성적인"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영어로는 "Reasonable"이란 말로 사용된다.
롬12:1의 본문에서 "예배"란 헬라어로 "라트레이아"라는 용단어인데 이것은 조금 의미를 달리 해서 "봉사"(to serve)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킹제임스영어성경은 직역하여 reasonable service라고 번역하였고, NIV 영어성경은 의역하여 spiritual act of worship 이라고 번역하였다.
어원적으로도 예배란 "이성적 봉사"를 가르킨다.
즉 헬라어적인 "영적 예배"란 성도들의 합리적인 봉사 생활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전 인격을 다한 희생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12:1)고 권면 하는 것이다.
혹간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문을 할 것이다
우리가 늘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을 예배라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식(儀式)적인 예배의 필요가 없다는 소위 예배무용론을 말하는 것인가?
물론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예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예배를 드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배란 개념은 주일, 교회에서 드리는 개념에서 더욱 확장 내지는 연장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예배란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예배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22)고 꾸짖었으며, 사무엘 선지자는 성경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말로 꾸짖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구약에서 하나님은 결코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신 적은 없다.
하나님은 그 제사의 형식과 외면적인 형태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적인 자세와 마음을 보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형식적이고 장소적이며 외면적인 의식으로만 치루어진다면, 하나님은 그 예배자를 찾지 아니하실 것이 분명하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전5:1)
그렇다면 우리가 드려야 할 진정한 예배는 무엇인가?
첫 번째 : 하나님의 뜻대로 분별하는 것이다. (12:2)
"영적 예배"란 인간의 욕망대로 살려고 하는 이 세대에서 마음의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는 것, 하나님께서 온전히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합리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의 갈등은, 모든 것을 자기의 욕심대로 이루면서 살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데 있다. 이 말은 반드시 만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의 변화를 받아 이 세상 사람들처럼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살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삶 살기를 권면 하는 것이다. 문제는 성도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하나님의 뜻을 정리하여 알려주신 "성경"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영적 예배" 즉 합리적인 봉사생활이란 진리의 말씀을 철저히 배우며(딤후3:13-17) 분변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과 계획을 중심으로 사리를 해석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두 번째 :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12:3)
"영적 예배"란 만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분량대로 되어진다는 사실을 믿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해주신 분복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자족의 비결이 담겨져 있다(빌4:11-13). 즉, 주어지 않은 것을 기대하면서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항상 불만과 아쉬움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어지지 않은 것을 기대하며 살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산다면 이것이 곧 자족의 비결이며 행복의 척도(尺度)일 것이다. 일찍이 다윗은(시131편) 이러한 이치를 깨달은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외에는 일체 크고 기이한 일을 꿈꾸지 않겠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 결과 어린아이와 같이 아무 근심과 불만 없이 평안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생각이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분복대로 되어짐을 알고 어리석은 욕심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만족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예배" 즉 합리적인 봉사생활이란 풍부에 처하든,
가난에 처하든, 어떠한 환경 가운에서도 만족을 누리며 감사하며 사는 생활을 말한다.
세 번째 : 지체의 은사대로 봉사하는 것이다. (12:4-5)
"영적 예배"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따라서 자기에게 주어진 직임을 열심히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하여(엡4:12) 각자에게 섬기며, 가르치고, 권위하며, 구제하고, 다스리며, 긍휼을 베푸는 다양한 은사를 주셨다. 이것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광야에서 대열을 정비할 때 각 지파별로 임무를 부여하든 상황과 일치하는 것으로서(민3:-4:),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각각의 직임을 부여하신 것과 같이 신약의 교회 역시 각 지체들에게 한 몸을 이루어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은사에 따른 직임을 부여하신 것이다.
"영적 예배" 즉 합리적인 봉사생활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의 발견과 더불어 직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임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분별되는 만큼 자족의 비결을 터득하게 되고, 자족하는 믿음이 충만한 만큼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는 사명감이 발동하게 되어 자원하는 열정으로 봉사하는데 있다. 바울은 죄인의 괴수였던 자신을 충성 되이 여겨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먹는 것도, 굶는 것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봉사와 희생을 기쁨으로 감수하게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딤전1:12-15). 이와 같이 주님의 지체가 되어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일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면 할 수록 즐겁고 기쁜 일이다.
"영적 예배" 즉 합리적인 봉사생활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데(전12:13)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적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성도들의 모든 생활은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깨닫는 만큼 나타나기 때문에 성도생활의 원동력은 말씀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운동하여 성도의 영혼이 성숙하는 만큼 거짓과 진실·선과 악·의와 불의·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분별하게 되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파악하며 살아가는 영적 예배의 생활이 가능해 지며, 이러한 분별력은 어떠한 여건과 상황도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하여 범사에 감사하게 하는 효능을 발휘하게 되고, 자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은 사명을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기쁨으로 봉사하게 한다.
"영적 예배" 즉 합리적인 봉사생활이란 말씀운동의 효능에 의해서 시작되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말씀을 깨닫게 되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맥시코의 쿠이캐텍 홍인종이 쓰는 <예배>라는 단어는, "개가 그 꼬리를 흔들다"는 말과 어근(語根)이 같다고 한다. 그 오직 한 가지 차이점은 예배의 경우에는 꼬리를 젓는 것은 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이다.
"하나님 앞에서 꼬리를 젓는 일" 물론 심한 표현이지만, 개가 그 주인을 알아보고, 기뻐하며, 충성을 다하듯, 사람도 하나님께 대하여 항상 그러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요4:23)일주일에 한 시간 반 예배드리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들은 더욱 이 글을 읽어보길. 예배가 얼마나 충만한 영적 체험이며 세상을 이기는 삶의 지혜인지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시간 반 동안 이만큼 엑기스로 하나님의 무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예배뿐이라는 사실을 잘 기억하시길.
1. 바른 신앙
예배는 세상의 유혹과 마귀의 시험에 자칫 잘못 들 수 있는 길들을 온전한 하나님 지혜로 바로 세워주는 신앙의 교정소이다. 내가 믿고있는 승리와 성공의 열쇠들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확인하고 또 다른 기회를 부어주시는 귀중한 삶의 기회이기도.
2. 바른 마음
설령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라도 예배시간엔 경건해지고 부끄러워진다. 지난 한 주간의 삶의 질곡과 죄악들을 회개하고, 오직 내 방식 내 뜻대로만 해결하려던 사람의 지혜를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자신의 마음을 정결케 하는 시간. 무엇보다 사탄이 쥐어준 사악한 마음들을 눈처럼 깨끗이 정결케 할 수 있는 영혼의 세탁소이다. 정결함과 겸손한 마음을 얻어감으로 또 한 주일을 승리할 수 있다.
3. 바른 성경
아무리 지혜가 출중한 사람이라도 성경을 이해하는 데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신앙적인 지식과 영적으로 충만한 믿음의 선지자로써 목사님의 설교말씀에 담긴 성경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고 내 삶에 적용시키는 귀한 시간이다. 또한 평소 성경을 잘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주일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기도.
4. 바른 기도
기도는 우리의 호흡이다. 아무리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여러 믿음의 지체들이 모인 가운데 합심에 올리는 기도는 우리의 영적 갈증을 해결해주고 좀더 충만한 신앙체험을 가능케 해준다. 혼자 하는 기도도 좋지만, 거룩한 산 제사인 예배 때 드리는 기도는 우리의 갈구를 좀더 하나님께 정하고 정해서 드린다는 의미도 있다. 무엇보다 여러 믿음의 지체들이 모인 가운데 드리는 기도는 그만큼 힘이 있고 따라서 하나님께도 더욱 강력히 전달될 수 있다.
5. 바른 시간
세월을 아끼라 하셨다.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일주일동안 세상에 지친 우리들을 또 다시 세상이 주는 유혹으로 몰아넣곤 하는데 그 결정적 시기는 바로 주일날이다. 주말이라는 이름으로 다녀오는 여행이나 휴식, 술자리나, 유흥들은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커다란 악재로 작용하곤 한다. 주일만큼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지혜를 나타내야 할 때다. 과연 우리는 주님께 내 마음을, 내 정성을, 내 시간을 얼마나 드리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6. 바른 역할
주일날을 비롯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수많은 직분들은 하나님보시기에 너무나 기뻐하시는 일들이다. 비록 세상의 지위와 명예처럼 이익도, 알아주는 이도 많지 않지만, 우리들이 늘 즐거움으로 맡은바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건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주는 역할을 주일만큼은 과감히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쓰임 받자.
7. 바른 교제
주님 안에서의 교제는 가장 합당하고도 올바른 교제다. 예배 후 주님의 아들딸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정겨운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는 것들은 세상의 교제 이상의 큰 의미와 희망을 가져다 준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기에 먼저 손 내밀 수 있고 먼저 기도해 줄 수 있으니까. 세상이 만든 마음의 벽에서 자유로와 질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주님 안에서의 교제뿐이다.
8. 바른 즐거움과 바른 은혜
주일날 해맑게 웃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천사의 그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세상의 가식적이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무책임한 즐거움들과는 달리 주님의 사람들은 예배에서 얻은 가장 깨끗하고 가장 정결한 마음으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보답이란 주로 물질과 능력에 한정된 너무나 소모적인 것들이지만 주님이 주신 참된 은혜는 더함도 덜함도 없이 언제나 우리 안에 넘쳐난다.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역시 예배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지혜다.
9. 바른 자세
자세가 구부정한 사람에게 희소식. 예배에 나오기만 하면 저절로 바른 자세를 만들어 준다. 예배당의 의자는 절대 구부정하고 편한 자세로는 앉아있을 수 없도록 신앙공학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졸기도 힘든 딱딱한 의자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기적을 다 함께 누려보자.
10. 바른 기다림
휴거 소동이후에도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나 믿는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Big One이다. 하지만 그날은 도적처럼 임한다. 올바른 교회에서 바른 예배를 드리며 허둥대지 말고 그 날을 차분하게 하지만 절실히 기다리자.
예배의 정의
1. '예배(worship)'라는 용어는 앵글로색슨 어인 worth-ship을 줄인 말이다. 이 말은 '가치를 어떠한 대상에게 돌린다'는 뜻이다. 예배는 '최상의 존재에게 표하는 경의'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최상의 존재에게 존경, 경의, 찬양,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계4:11/계5:12을 읽고 찬양의 대상과 찬양해야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묵상하라.
2. 구약에서 예배의 의미는 아바드(abad)가 사용되었다. 이 말의 뜻은 일한다(work), 노동한다(labor), 섬긴다(serve) 등의 뜻이 있다. 이 말은 '성전에서 봉사'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삼하15:8을 읽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라.
3. 신약에서 예배의 의미로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낱말은 프로스쿠네오(proskuneo)였다. 이 말의 뜻은 '손에 키스하다', '무릎을 꿇다', '허리를 굽힌다'(kiss the hand and the ground toward)는 뜻으로 이는 예배자가 자신의 몸을 꿇어 엎드리는 외부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겸손과 사랑과 존경을 드려야 하는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함을 가리킨다. 마18:26/마2:2,11/마14:33/요4:20-24을 읽고 자신의 말로 표현해 보라.
4.예배란 주 예수그리스도를 중보로 한 하나님과 사람, 곧 예배자와의 교제 혹은 만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상의 신 구약에 나타난 예배에 대한 단어를 종합하면 예배는 주관적인 경험인 내적인 마음의 태도(경외, 존경, 경탄)와 객관적인 행위인 외적인 행동(엎드림, 섬김, 절함)의 결합임을 알 수 있다.
5.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 얻으려고 교회에 간다. 어떤 성도는 설교를 들으러 예배에 참석하고, 어떤 성도들은 자신의 질병을 고침 받기 위하여, 어떤 성도들은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하여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배정신에 크게 어긋난 것이다. 예배를 통하여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것을 드리기 위한 예배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나의 예배정신을 생각해 보자. 받을 목적의 예배인가 아니면 드림으로서의 예배인가?
예배의 의미
1. 에덴 동산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와 만남이 자유로웠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두려워 숨게 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다. 창3:8-10을 읽고 교제의 단절을 확인하라.
2. 이처럼 교제의 단절을 가져온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가 성막과 성전에서 가시적으로 제사를 통하여 만나주시는 제사 사건으로 표현되게 된다. 그러므로 예배는 타락한 인간을 만나주시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출25:8/출/25:22에서 하나님께서 죄악된 인간을 어디에서 만나시는가?
3. 구약에서 제사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기 위한 제도로 희생제사를 통하여 대속의 모형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막이나 성전에서 제사장과 희생물을 통하여 예배하였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유대인들이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헐어 버리라고 하셨다. 그것은 지금까지 희생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한 제사가 예수님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직접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요2:19-21/히10:19-20을 읽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고 적용해 보라.
4.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 만남이며 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이 후 인간 단독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거룩하신 그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할 수 있게 된 것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마27:51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어떻게 정상화되는 가를 보라.
5. 예배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 사건이 현재에 재현되는 종말적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지상 예배는 언제까지 지속되겠는가? 고전11:26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가?
목회는 영적전쟁 그 자체이다.
영적전쟁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며 시대적 소명이며 그리스도인의 운명이다.
전도와 교회성장과 세계복음화는 영적전쟁의 결과이다.
영적전쟁으로서 목회를 위한 십계명은 무엇인가?
1. 세계관을 바꾸라 마음과 생각 즉 세계관은 영적전쟁의 가장 치열한 싸움터이다.
하나님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만 말하는 기능적 이신론에서 탈피하여 중간세계
즉 천사와 사탄의 영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세계관으로 무장되어야 영적전쟁이
가능하다. 2.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라 영적전쟁에서는 능력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사탄과의 싸움은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고 도우시는 관계없이는 백전백패일 뿐이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가까이하고 마음과 손을 깨끗이 하는 거룩과 순결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3. 전투적 기도에 들어가라
마귀를 대적하고 내어쫓는 명령형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이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 바로 영적전쟁이다.
기도는 전투 그 자체이다. 4. 중보기도 특공대를 조직하라. 영적전쟁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없다. 여호수아가 이긴 것은 모세와 아론과 훌의 협력적 중보사역때문이다. 목회자는 기도를 많이 해야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기도를 가장 많이 받아야 하는 자이다. 어떤 교회든지 출석성도의 10퍼센트 이상은 중보기도의 은사를 받은 자이다. 5. 영적전쟁에 대해 가르치라 영적전쟁의 최대 장애물은 무지이다. 싸우기 전에 먼저 깨달아야 한다. 깨닫지 못하면 두려움의 포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려과 마귀의 실상과 영적전쟁의 방법의 대해 교육하라.
6. 성령운동에 동참하라 영적전쟁의 주체는 성령이시다. 삶의 통치권이 성령에게 있는 사람, 즉 성령충만한 사람은 승리를 보장받는 사람이다.성령운동은 어느 교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교회의 본질 그 자체이다.
7. 지역사회를 영적으로 도해하라 영적도해 (spiritual mapping)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목회의 대상지역을 철저히 연구분석하여 그 지역을 다스리는 영 (territorial spirits)을파악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것 만큼이나 중요하다.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하기 때문이다. 8. 비난과 축복을 지혜롭게 극복하라 영적전쟁의 적은 사탄만이 아니다.내부의 비난과 핍박이 더 강력한 장애물일 수 있다. 예수님도 똑같은 일을 당하셨다.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비난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 주고
적극적으로 그러나 지혜롭게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치료하고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9. 다른 동역자들과 연합하라
하나님이 영적전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바로 순결과 연합이다. 분열은 사탄의 진을 강화시키고 연합은 성령의 진을 강화시킨다.
영적전쟁의 제 1원칙이 성령과의 연합이라면 제 2원칙은 사람과의 연합이다. 다른 교회와 동역자들과 최선을다해 연합하라. 연합 그 자체가 승리이다. 10. 성서적 균형을 유지하라 극단주의는 항상 실패를 부른다. 귀신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만큼이나 모든 것을 귀신의 역사로 단정하는 것도패배로 이끄는 함정이다. 성경과 성령과 교회와의 조화를 추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