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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독서 에세이】
책갈피 속 ‘네 잎 클로버’
― 소중한 만남, 우연일까? 필연일까?
윤승원 수필가
혼자다. 넓은 거실 공간에 혼자다. 창문을 여니 상큼한 가을 향이 코끝을 스친다.
이렇게 고요한 가을날 아침, 혼자서 할 수 있는 ‘멋진 일’이 무엇일까?
차를 마시는 일,
그리고 책을 읽는 일.
이 같은 여유를 누리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복을 받은 사람이다.
차를 마시면서 아주 ‘작은 책’을 한 권 펼쳐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과거 접어놓았던 책갈피에서 ‘네 잎 클로버’가 나온다. 오래되어 아주 바싹 마른 이파리가 부서질 듯 책갈피에서 살짝 고개를 내민다.
▲ 반가운 만남 - 책갈피 속 네 잎 클로버(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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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짜리 문고본 수필집. 1979년 초판, 1990년 2판 2쇄. 범우사 펴냄. 김태길 수필집 《창문》.
그러니까 등단하던 해, 이 책을 내가 근무했던 대전 중구 선화동 충남 도경(道警) 앞 ‘문경 서적’에서 샀다.
밑줄 그은 곳이 유난히 많다. 빨간색 사인펜으로 밑줄 그은 곳도 있고, 연필로 밑줄 그은 곳도 많다.
그렇다면 이 책은 최소한 두 번 이상 읽었다는 흔적이다. 밑줄을 그으면서 꼼꼼히 읽었다는 증거다.
네 잎 클로버는 이 책의 어느 쪽에서 나왔을까? 그게 중요하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대목일 수 있다.
나의 짐작이 맞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장, 언젠가는 다시 읽게 될 대목에서 네 잎 클로버가 나왔다.
접어놓은 것도 부족해서 연필로 밑줄을 긋고, 또다시 빨간 사인펜으로 긋고, 두 번이나 그었는데, 그것도 부족해서 네 잎 클로버까지 꽂아 놓은 것이다.
아니다. 부족해서가 아니다. 책의 내용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 흔적을 남긴 것이다.
이 부분은 분명 언젠가는 또다시 읽으리라 여겨 접어놓고, 밑줄도 긋고, 소중히 여기는 ‘행운의 네 잎 클로버’까지 꽂아 놓았다. 반갑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네 잎 클로버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인가.
들녘에서 이것을 찾았을 때, 무슨 보물이나 발견한 듯 지갑 속에 소중히 간직했다.
그러다가 감명 깊게 읽은 책 속에 고이 넣어 둔 것. 36년 세월이 흘렀다. 이 책을 다시 꺼내 펼쳐보는 순간, 남모르는 은밀한 감동이 밀려왔다.
네 잎 클로버가 그 아득한 세월 나를 잊지 않고 기다려준 것이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잔잔한 여운을 주는 이야기 한 토막을 들었다. 그 프로그램 명칭이 ‘기분 좋은 오늘’로 기억한다. 진행 아나운서가 말했다.
“여러분들은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아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많고 많은 클로버 중에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면 마치 행운이 내게 온 듯하여 기분이 참 좋으셨죠? 소중하여 책갈피에 꽂아 두기도 하고요.
그런데 선택되지 않은 그 많고 많은 세 잎 클로버들은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우리는 흔히 네 잎 클로버를 ‘행운’의 상징으로 알고 있지만, 그 밖의 클로버는 ‘행복’이란 뜻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계신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이란 풀밭에서 ‘행운’만을 좇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내가 아끼는 책에서 나온 것은 ‘네 잎 클로버’뿐만이 아니었다. ‘세 잎 클로버’도 나왔다.
참으로 반가운 만남, 소중한 만남! 우연일까? 필연일까?
아, 손끝으로 만지면 금방 바스러질 듯 바싹 마른 ‘네 잎 클로버’와 ‘세 잎 클로버’. 두 장의 풀 이파리.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기다가 그만 나의 실수로 ‘세 잎 클로버’는 조각이 났다. 이 소중한 이파리를 접착제로 붙일 순 없을까?
아니야, 조각이 난 채 책갈피에 꽂아 두는 것도 역사야. 소중한 나만의 인생사 한 대목.
저명 철학자이자 수필가였던 김태길 교수의 수필 「글을 쓴다는 것」 첫머리 문장을 다시 살핀다.
“사람은 가끔 자기 스스로를 차분히 안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中略)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성의 자세로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활자로 된 이 말은 저자의 목소리일 뿐만 아니라 책갈피 속 ‘네 잎 클로버’와 ‘세 잎 클로버’ 두 장의 클로버가 내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단순히 넌지시 건네는 말이 아니라 ‘명령’으로 느껴졌다.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지혜와 영감을 얻었으면 당장 노트북을 열어라. 그리고 자신의 호흡에 맞게 독창적인 글을 써라.
글감이 꼬리를 물고 무수히 굴러온다. 가을 산에서 알밤 떨어지는 소리와 같다.
고요한 집안에서 혼자 할 수 있는 ‘멋진 일’, ‘가치 있는 일’이란 바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다.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다. ■
2026. 가을
윤승원, 독서의 즐거움, 수필 쓰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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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
이 작품은 단순한 독서 후기가 아니라, 36년 전의 독서 흔적과 책갈피 속 클로버를 매개로 자신의 삶과 글쓰기를 되돌아보는 ‘기억의 수필’로 읽힙니다.
특히 마지막에 김태길의 문장이 현재의 ‘나’에게 다시 말을 거는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감상평】
— 책갈피 속 ‘네 잎 클로버’가 일깨운 글쓰기의 운명
윤승원 수필가의 「책갈피 속 ‘네 잎 클로버’」는 아주 작은 사물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기억과 독서, 행복과 행운, 그리고 글쓰기의 의미까지 확장해 가는 작품이다.
겉으로 보면 오래된 수필집에서 마른 클로버 두 장을 발견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한 독자가 지나온 36년의 시간과 한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내면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미덕은 거창한 사건을 앞세우지 않는 데 있다. 가을 아침, 혼자 있는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작은 책 한 권을 펼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차를 마시는 일,
그리고 책을 읽는 일.”
짧고 평범한 문장이지만, 작가는 이것을 “복을 받은 사람”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미 작품의 중요한 가치관이 드러난다.
행복을 특별한 사건이나 외부의 성취에서 찾기보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 자체를 행복으로 발견하는 태도다.
이러한 소박한 행복관은 뒤에 등장하는 세 잎 클로버의 의미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1. 클로버는 ‘식물’이 아니라 36년의 시간을 저장한 기억의 물건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뛰어난 문학적 장치는 단연 책갈피 속 클로버다.
1979년 초판으로 시작된 책의 이력, 그리고 1990년 등단 당시 근무하던 곳 앞 서점에서 구입했다는 기억, 곳곳에 남아 있는 빨간 사인펜과 연필의 밑줄. 이 흔적들은 단순한 독서 기록이 아니다.
그것들은 젊은 날의 작가가 무엇을 읽고 무엇에 마음을 빼앗겼는지를 알려주는 시간의 지문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36년 만에 네 잎 클로버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클로버는 현재의 사물이면서 동시에 과거의 윤승원을 현재로 불러내는 매개체가 된다.
마른 잎 하나가 책장 사이에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나’가 오늘의 ‘나’에게 보내온 편지처럼 기능한다.
그래서 작가가 느끼는 감동은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발견했다”는 반가움보다 훨씬 깊다.
“네 잎 클로버가 그 아득한 세월 나를 잊지 않고 기다려준 것이다.”
이 문장은 작품의 핵심적인 의인화이면서 동시에 시간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다. 기다린 것은 사실 클로버가 아니라 기억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젊은 시절의 자신이 남겨 놓은 감정과 독서의 흔적이 36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현재의 자신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2. ‘행운’과 ‘행복’의 대비가 작품의 철학적 깊이를 만든다
작품은 네 잎 클로버를 ‘행운’으로, 세 잎 클로버를 ‘행복’으로 바라보는 라디오 방송의 이야기를 삽입한다.
이 대목은 단순한 일화가 아니다. 작품 전체의 의미를 한 단계 확장하는 철학적 전환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수많은 세 잎 클로버를 지나친다. 그런데 작가는 바로 그 두 종류의 클로버를 모두 책갈피에서 발견한다. 여기서 우연한 발견은 삶의 은유로 바뀐다.
우리는 특별한 행운을 찾느라 이미 곁에 존재하는 평범한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이 작품의 밑바닥에 조용히 흐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작가 자신이 네 잎 클로버만 귀하게 여기던 과거의 태도를 작품 후반에서 수정한다는 점이다.
세 잎 클로버 역시 이제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 그것도 실수로 조각이 나면서 오히려 더욱 특별한 의미를 얻는다.
“조각이 난 채 책갈피에 꽂아 두는 것도 역사야.”
이 한 문장이 참 좋다.
완벽하게 보존된 것이 역사인 것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과 실수까지 품은 것이 나의 역사라는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3. ‘우연일까? 필연일까?’는 사건의 질문이 아니라 삶의 질문이다
제목의 부제인 “소중한 만남, 우연일까? 필연일까?”도 작품을 읽는 중요한 열쇠다.
36년 만에 우연히 책을 다시 펼쳤고, 그 속에서 두 장의 클로버를 만났다. 표면적으로는 우연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우연을 단순한 우연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 클로버가 바로 자신이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에 꽂혀 있었고, 그곳에는 ‘글을 쓴다는 것’에 관한 문장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작가는 그 문장을 다시 읽으며 실제로 글을 쓰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연은 필연처럼 느껴진다.
물론 객관적으로 필연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필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화자의 해석이다.
윤승원은 우연한 사건에서 필연적인 의미를 발견한다. 바로 이것이 수필적 사유의 본질 가운데 하나다.
4. 김태길의 문장이 ‘인용’에서 ‘내면의 목소리’로 변한다
후반부에 김태길 교수의 「글을 쓴다는 것」 첫머리를 인용한 것은 작품의 구조상 중요한 선택이다.
처음에는 오래된 책 속에 있던 타인의 문장이었다. 그러나 36년이 지난 뒤 다시 읽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남의 문장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활자로 된 이 말은 저자의 목소리일 뿐만 아니라 책갈피 속 ‘네 잎 클로버’와 ‘세 잎 클로버’ 두 장의 클로버가 내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서 독서가 창작으로 전환된다.
<책을 읽는 사람 → 기억하는 사람 → 사유하는 사람 →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내면의 변화가 완성된다.
특히 “넌지시 건네는 말이 아니라 ‘명령’으로 느껴졌다”는 표현은 작가의 글쓰기 태도를 잘 보여준다.
좋은 책은 읽고 덮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독자의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하고, 결국 자신의 언어로 무엇인가를 쓰게 만든다.
5.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클로버가 아니라 ‘독서하는 사람’이다
흥미롭게도 작품의 제목은 ‘네 잎 클로버’를 앞세우지만, 문학적으로 보면 진짜 주인공은 책을 읽는 사람의 시간이다.
1990년의 젊은 독자가 책을 읽었다.
밑줄을 그었다.
중요한 부분을 접었다.
네 잎 클로버를 꽂았다.
36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의 작가가 다시 그 책을 펼쳤다.
그 옛날의 문장이 오늘의 작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마침내 그는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쓴다.
이것은 곧 독서가 어떻게 글쓰기로 이어지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작은 서사다.
마지막의
“글감이 꼬리를 물고 무수히 굴러온다. 가을 산에서 알밤 떨어지는 소리와 같다.”
라는 표현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독서에서 얻은 영감이 하나의 글감에 그치지 않고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자연의 소리에 빗대었다.
앞부분의 ‘가을 향기’가 마지막의 ‘가을 산 알밤 소리’로 이어지면서 작품 전체가 계절의 감각 속에서 닫힌다.
6. 윤승원 수필의 특징인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찾는 힘’
이 작품에서 다시 확인되는 윤승원 수필의 특징은 일상적인 소재를 과장하지 않고 오래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네 잎 클로버 자체는 아주 작은 사물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클로버 → 책갈피 → 책 → 독서 → 기억 → 시간 → 행복과 행운 → 자기 성찰 → 글쓰기>로 확장한다.
이러한 확장은 억지로 철학을 덧붙인 것이 아니라 작품 속 사건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독자는 ‘클로버에 관한 글’을 읽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책장과 오래된 책, 잊고 지낸 기억과 삶의 흔적을 떠올리게 된다.
◆ 맺음말 — 행운을 찾다가 발견한 것은 ‘글을 쓰는 행복’
이 작품에서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지만, 궁극적으로 작가가 발견한 것은 행운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행복의 가치다.
조용한 가을 아침 혼자 차를 마시는 행복,
오래된 책을 다시 펼치는 행복,
젊은 날의 자신을 만나는 행복,
세월을 견딘 클로버를 발견하는 행복,
그리고 책에서 얻은 생각을 자신의 문장으로 옮기는 행복.
결국 이 작품은 이렇게 읽힌다.
행운은 우연히 발견할 수 있지만, 행복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독서는 그 행복을 발견하게 하는 가장 깊은 통로 가운데 하나다.
윤승원 수필가는 36년 전 책갈피에 무심코 꽂아 놓았던 두 장의 클로버를 통해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만나게 한다. 그리고 그 만남 끝에서 다시 노트북을 연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어쩌면 네 잎 클로버가 아니다.
그것은 36년의 시간을 건너와 다시 글을 쓰게 만든 한 권의 책과, 그 책을 읽던 젊은 날의 자신이다.
그 점에서 「책갈피 속 ‘네 잎 클로버’」는 독서 에세이를 넘어, ‘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한 노년 작가의 아름다운 자기 성찰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 덧붙이는 말
이번 작품은 특히 36년의 세월을 품은 책갈피와 두 장의 클로버가 작가의 지난 삶과 오늘의 글쓰기를 이어주는 장면이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 “조각이 난 채 책갈피에 꽂아 두는 것도 역사야”라는 대목에서, 완벽하지 않은 흔적까지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인간적인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다.”라는 결말은 이 작품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이번 글은 ‘행운의 네 잎’보다 ‘행복의 세 잎’을 다시 발견한 독서의 기록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참으로 윤승원 수필가다운, 소박하면서도 오래 여운이 남는 작품입니다. 🌿📖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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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영진 수필가님
원로 역사학자 낙암 정구복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