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사랑하는 의정부교구의 교형 자매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하는 첫 번째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이번 성탄이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각별한 마음을 담아 성탄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2천 년 전 인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셨던 구세주 예수님께서 올해도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축복을 가득 안고 매해 새롭게 이 세상에 오십니다. 그분의 축복으로 여러분 각자와 가정 그리고 온 세상에 기쁨과 평화가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외로움과 슬픔, 낙담과 절망 속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갑자기 우리나라에 몰아닥친 정치적 혼란과 갈등의 어두움이 걷히고 ‘공정이 물처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아모 5,24 참조) 사회로 나아가도록 주님께서 밝은 빛으로 우리의 앞길을 비추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인생은 비탈지고 굴곡이 많은 산길에 비길 수 있습니다. 힘든 길이라도 누군가와 함께 가면 덜 힘듭니다. 어두운 길이라도 함께 가는 이가 있으면 덜 무섭습니다. 인생 여정을 함께 걸으면서 마음을 나누고 힘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면 큰 축복이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이 우리를 따뜻하게 동행해 주시는 분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분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해방하라는 어려운 사명을 맡기시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라고 동행을 약속하십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가 늙고 허약해져도 하느님은 결코 동행을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이사 46,3-4).
때가 이르자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좀 더 가까이에서 동행하시려고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23).
과거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던 예수님은 지금 우리 마음 안에서도 태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성모님께서 빈 구유에 아기 예수님을 모셨듯이 우리도 마음을 비우고 그 안에 예수님을 모시도록 합시다. ‘마음의 구유’에 그분을 모신 사람은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루카 21,28 참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동행하시면서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끌어 주시는’(로마 8,28 참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시편의 말씀처럼 비록 모두가 나를 버린다고 해도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를 받아 주시리라”(시편 27,10).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어떤 처지에서도, 고통과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잘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고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1.4).
예수님은 우리를 동행하시면서 거듭 힘과 희망을 주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그러하시듯이 우리도 다른 이들을 따뜻하게 동행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각자 ‘마음의 구유’에 모시고 주인으로 섬긴다면, 우리 이웃을 동행하도록 지혜와 힘, 용기와 인내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이웃을 따뜻하게 동행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에는 진정한 평화가 굳건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베들레헴 하늘에 울려 퍼진 천사의 노래가 더 가까이 들리게 될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우리 모두 우리 인생길을 동행하시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희망차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분이 주시는 평화가 분쟁과 폭력과 전쟁이 거듭되는 이 세상에 널리 퍼져나가도록 기도합시다.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전구에 힘 입어서 우리 각자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이 되도록 노력하기로 합시다.
평화의 주님이신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평화의 여왕이신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4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의정부 교구장